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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우리가 옮았어" AI, 철새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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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무맨 2014. 3. 16.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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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우리가 옮았어" AI, 철새는 죄가 없다

한겨레 | 입력 2014.02.09 12:00
[한겨레][토요판]


뉴스분석 왜? / AI는 과연 철새에게 책임이 있는가

▶ 300만마리 가까운 닭과 오리가 곡절 없이 언 땅에 묻혔다. 99% 이상은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리지 않은 건강한 생명체다. 칼자루를 쥔 우리 방역당국과 언론은 철새에게 그 책임을 지우고 있다. 그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가 충분한가? 닭과 오리를 공장식 밀집축산의 열악한 환경에 몰아넣은 우리가 그럴 자격은 있는가? 가창오리는 외친다. "우리는 죄가 없어요. 시베리아로 건강하게 돌아가게 해주세요."

전북 고창군 신림면의 씨오리 농장에서 처음 조류인플루엔자(AI) 의심신고가 접수된 것은 1월16일. 하루 만인 17일 고병원성 H5N8형 조류인플루엔자 감염이 확진됐다. 농림축산검역본부(검역본부)에서는 H5N8형의 국내 발생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철새 수난사'는 1월18일부터 이어졌다. 몇몇 언론에서 '고창 AI 농장 인근에서 가창오리 1천여마리 떼죽음…고병원성 AI 공포 확산' 같은 제목으로 과장해 보도한 것이 시발이었다. 실제 고창의 동림저수지에서 폐사한 가창오리는 고작 100마리 정도인 것으로 밝혀졌지만, 철새의 조류인플루엔자 유입설은 꼬리를 물고 커져갔다.

1월19일 이후로도 전남 신안에서 인천 옹진에 이르기까지 서해안 벨트를 타고 가창오리뿐 아니라 큰기러기, 쇠기러기와 물닭, 청둥오리와 같은 야생 철새의 고병원성 감염 폐사체가 간헐적으로 발견됐다. 하지만 그 수가 각각 수마리에 불과해, 철새의 집단 폐사라고 이를 만한 일은 더이상 일어나지 않고 있다.

처음부터 '철새 유입설'에 무게를 실었던 방역당국은 철새 먹이주기를 금지하고 전국의 모든 철새도래지에 대한 대대적인 방역을 벌였다. 농림축산식품부와 검역본부는 철새 이동경로를 근처 농가에 전파해 경보를 발령하는 '철새경보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등의 국회보고용 대책을 서둘러 내놓기도 했다.

물증 없는데 심증으로 유죄 판정

지난달 28일 검역본부의 역학조사위원회(위원장 김재홍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발표가 '철새 논란'에 더욱 불을 지폈다. 방역당국이 '철새 유입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것이다. 비록 중간 조사결과이고 추정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역학조사위원회 발표는 정부가 위촉한 전문가들의 권위있는 견해가 정리된 것이어서 무게가 더 실리고 파장이 크다.

당시 김재홍 위원장은 철새 유입 가능성을 가장 높게 보는 이유를 세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지금까지 국내에서 H5N8형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한 적이 없고, 최근 3년 동안의 상시 예찰 검사에서도 H5N8형 바이러스는 검출된 적이 없다. 둘째, 전북 고창의 최초 발생 농가가 철새도래지 근처에 위치해 있고, 다른 발생 농가들도 겨울철새가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서해안지역에 편중돼 있다. 셋째, 발생 농가에서 확인한 것과 똑같은 H5N8형 바이러스를 전북 고창 동림저수지 등 여러 지역에서 수거한 철새들의 폐사체에서 검출하였다.

역학조사위원회 발표 내용을 쉬운 말로 정리하면 이렇다. 국내에서 발생한 적이 없는 새로운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국외에서 유입됐을 것이다. 그리고 발생 농가 근처에 철새도래지가 있었고 그곳의 철새 폐사체에서 똑같은 바이러스가 검출됐기 때문에 철새에서 오리 농가로 바이러스가 전파됐을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또다른 역학조사위원인 모인필 충북대 교수도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전파 경로는 사람, 축산물(사료 등), 철새 세가지다. 조사를 해보니 최근의 농가 방문자 중에 국외를 다녀온 사람이 없고, 축산물은 아예 수입 자체가 안 되고 있다. 철새가 바이러스를 들여왔다는 증거는 없지만, 지금으로선 철새에게서 유입됐을 가능성을 높게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새로운 바이러스 유형의
조류인플루엔자 감염 확진 뒤
발생 농가 주변에 도래지 있고
국내서 발생한 적 없다는 이유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철새

그러나 철새 집단 폐사 없고
세계 어느곳 야생조류에서도
같은 바이러스 발견 안 됐기에
철새의 무죄를 주장하는 의견이
전문가 그룹에서 나오고 있다


"방역당국은 국회와 언론 무시 못해"

하지만 민간 수의학자들과 조류 전문가를 포함한 국내외 과학계의 반론이 만만치 않다. 유엔환경계획(UNEP)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서 2005년부터 운영하는 '조류인플루엔자와 야생조류 과학특별전문위원회'는 역학조사위원회의 발표가 있던 같은 날, 한국의 고병원성 H5N8형 조류인플루엔자 발생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철새는 죄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논거를 적극적으로 제시했다.

세계적 과학자 집단인 이 위원회에서 발표한 성명의 요지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는 대부분 가금류 농장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세계 어느 곳의 야생 조류에게서도 H5N8형 바이러스가 발견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닭·오리 농장에서 저병원성 바이러스가 고병원성으로 진화해, 사람과 차량 및 사료 등의 가치사슬을 타고 확산됐을 가능성이 오히려 더 높다는 것이다.

또 "철새로부터 바이러스가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충분한 역학적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고 우리 방역당국의 '성급한 철새 유입 가능성 추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가창오리와 큰기러기는 2013년 가을(10월 말)에 러시아 레나강에서 날아온 뒤 고창 농가에서 H5N8형이 발견될 때까지 몇달 동안 바이러스 감염의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 또 20만마리가 군집하는 가창오리 떼에서 고작 100마리의 폐사가 일어났다는 점을 '철새 무죄 추정'의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이 위원회는 "야생 철새가 H5N8형 바이러스의 유입 경로라는 증거는 아직까지 없으며, 따라서 철새는 조류인플루엔자의 매개체가 아닌 피해자로 간주돼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우리 농림축산검역본부 역학조사위원회의 중간조사 정도만으로, 철새가 H5N8형 바이러스의 매개체인 것처럼 간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지금으로선 닭·오리 농장에서 바이러스의 진화를 통해 H5N8형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더 높게 보아야 하며, 그렇게 접근할 때 공장식 집단사육 환경에 대한 더 효과적이고 지속가능한 질병통제 활동을 벌이고 바이러스의 잠재적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미래지향적인 권고도 덧붙였다. 철새가 이번 조류인플루엔자를 유입하지 않았다는 증거 또한 없음은 물론이다. 좀더 정확하게 풀이하자면, 아직은 원인을 잘 모르니 애꿎은 철새를 성급하게 잡으려 들지 말라는 뜻이다. 그보다는 공장식 농장의 방역과 사육환경 개선에 힘을 쏟는 게 바람직한 방역당국의 자세라는 충고도 담고 있다.

철새 유입 가능성을 발표한 우리 역학조사위원회 내부에서도 '처음 매개체로 지목됐던 가창오리는 오히려 피해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모인필 위원은 "가창오리가 매개체라면 국내에 (바이러스를 품고) 들어온 10월 말에 일찌감치 대규모 폐사가 일어났을 것이라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두세달이 지난 지금 폐사하는 것으로 보아, 가창오리도 피해자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청둥오리 같은 다른 철새한테서 뒤늦게 전염됐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가창오리 이외의 다른 철새 유입 가능성' 또한 과학적 근거가 충분치 않은 추정에 불과하다.

환경운동연합과 같은 시민단체들은 "방역당국인 농식품부와 검역본부에서 철새를 조류인플루엔자 발병과 전파의 매개체로 기정사실화하고 철새들을 적대하는 방역정책을 펴는 것은 타당치 않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현경 환경운동연합 생태사회팀장은 "철새가 바이러스 확산의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있으나 발병 원인일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충분히 시간을 두고 조사한 다음에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하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을 텐데, 성급하게 철새한테 덮어씌우려는 방역당국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검역본부의 역학조사에 참여한 적이 있는 한 수의사는 "방역당국으로선 국회와 언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최종 역학조사 결과는 반년은 지나야 나올 텐데, 그때까지 '모른다'고 하면 욕을 먹지 않겠느냐. 과학적으로는 무리하지만,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 발생 때 서둘러 역학조사의 가닥을 잡아주는 게 이미 관행처럼 됐고 그로 인한 피해 사례도 여럿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0년 11월의 경북 안동 구제역 발생 때 당시 국립수의과학검역원(농림축산검역본부의 전신)은 베트남을 다녀온 한 축산농가를 최초 발생 원인 가능성으로 지목하는 역학조사 중간결과를 발표했던 적이 있다. 뒤늦게 베트남 바이러스와 안동발 바이러스의 연관성이 크지 않다는 논란이 제기되면서, '서둘러 축산농가에 책임을 씌우려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자초하기도 했다. 그해 초의 강화발 구제역 사태 때는 최초 신고 농가에서 수입 건초를 쓴 것이 구제역 발생 원인인 것처럼 잘못 발표해, 해당 농가에 씻지 못할 피해를 주기도 했다. 그 농가에서 수입 건초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 얼마 뒤 확인됐지만, 농가 살림은 이미 거덜 난 뒤였다.

먹이 못 주게 하면 감염 확산될 수도

철새들이 가해자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철새 유입 가능성'이 일찌감치 기정사실화하면서 철새들의 피해는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제대로 먹지 못한 철새들의 면역력 저하와 잦은 이동으로 2차, 3차 바이러스를 확산시킬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철새 전문가인 주용기 전북대 전임연구원은 "철새 먹이주기까지 제한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제대로 먹지 못한 철새의 저항력이 떨어져 더 쉽게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죽을 수 있고, 혹 죽지 않더라도 다른 서식지로 이동해 병을 전파하도록 부추기는 꼴이 된다"고 걱정했다. 사람이 먹이를 주지 않으면 겨울철새가 굶주릴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적 농촌 현실'이다. 추수 뒤의 볏짚을 가축사료용으로 곧바로 비닐 포장하기 때문에 철새들이 들판에서 먹을 수 있는 낙곡이 사라진 탓이다.

환경운동연합은 "철새도 안전하고 사람도 안전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먹이공급이 필요하다. 굶주린 철새들이 먹이를 찾아 근처 농가를 찾거나 전국으로 분산되어 이동하는 것은 조류인플루엔자의 방역 관리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가고시마현에서는 2010년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했을 때 두루미 먹이주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야생 철새들의 바이러스 면역력을 길러주기 위해서도 충분한 영양공급은 필수적이다.

무차별적인 철새도래지 방제작업에 대해서도 큰 우려를 나타낸다. 철새들이 먹이를 먹고 있거나 물 위에서 노는 곳을 찾아가 소독약을 뿌리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주 전임연구원은 "지금 식의 무분별한 방제는 철새들을 위협해 이동을 부추길 수 있다"고 걱정했다.

근본적으로는 바이러스 감염과 전파에 지극히 취약한 공장식 집단사육 시스템을 재편하는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의 닭과 오리는 열악한 공장식 비닐하우스에서 밀집 사육되고 있다. 또 거의 모든 농장들이 사료이동이나 계열로 연결돼 있다. 한 마리의 바이러스 감염이 전국적 바이러스 확산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최고의 위험 환경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지난달 16일 첫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고 불과 20여일 동안 얼어붙은 땅에 묻힌 닭과 오리만도 460농가 282만마리를 넘어섰다. 2003년 이후 지금까지 네차례 조류인플루엔자 발생으로 매장된 닭·오리가 이미 2500만마리에 이른다. 그중 조류인플루엔자에 실제 감염된 생명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99%가 넘는 대다수가 예방 차원에서 사실상 생매장당했다. 닭과 달리 오리는 회복이 빠르고 치사율이 지극히 낮은데도 예외가 인정되지 않는다.

철새가 닭·오리 농장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조처도 필요하다. 야생 조류들이 서식하는 일정 거리 안에는 닭·오리 농장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철새들이 바이러스 감염 및 전파 위험이 낮은 곳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는 좀더 세심한 정책적 배려도 요구된다.

죄 없는 철새들은 자신들의 서식지인 시베리아로 안전하고 건강하게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그렇게 보살펴야 할 책임이 있다.

김현대 기자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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