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하는 가장 중요한 지식인"( < 뉴욕 타임스 > ), "세계 최고의 지식인"( < 가디언 > < 포린 폴리시 > ), "현세 최고의 지성"( < 프로스펙트 > ),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되는 여덟 번째 인물, 생존하는 학자 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인물"( < 시카고 트리뷴 > ). 에이브럼 놈 촘스키(85)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언어학과 석좌교수에게 쏟아지는 찬사이다.
촘스키는
변형생성문법 이론을 확립해 20세기 학계에 가장 중요한 공헌을 한 언어학자로 꼽힌다. 또한 전쟁을 반대하고,
패권주의에 맞서며, 정부와 자본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실천적 지식인으로 '미국의 양심'이라고도 불린다. 특히 민영화를 비롯한 신자유주의 광풍, 정부 권력의 독재, 조작된 언론 등에 대한 그의 분노는 에두름이 없다. "신자유주의에 맞서지 않는다면 극소수를 위해 나머지는 가난한 잉여인간으로 살게 될 것이다"라는 석학의 혜안은 차갑고도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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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의 말은 한국의 현실과 이상하게도 잘 들어맞는다. 이 때문인지 그의 책이 가장 많이 팔리는 곳은 한국이다. 그의 목소리가 가장 필요한 곳이 한국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1년을 맞아 그에게 한국의 오늘을 물었다. 인터뷰는 2월26일(현지 시각) MIT 언어학과 연구실에서 이루어졌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쌍용자동차 노동자 해고,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철도민영화 반대 파업 등 한국의 현안에 대해 계속 목소리를 냈다. 한국에 특별한 관심을 갖는 까닭이 무엇인가?지난 반세기를 돌아보면 한국은 놀랄 만한 역사를 만들어냈다. 1950년대에 한국은 아주 가난한 나라였다. 경제 상황은
아프리카 나라나 마찬가지였다. 일제 식민지로 매우 비참한 대우를 받았고 무시무시한 한국전쟁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 가장 부유한 공업국가 중 하나로 성장했다. 오랜 기간 독재정권하에 있었지만 1980년대 민중의 투쟁을 통해 놀랄 만한 민주국가를 이루어냈다. 문화적으로도 놀라운 발전을 이루어냈다. 한국은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문화의 아이콘이 되기도 한다. 그런 나라에서 다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쌍용자동차 노동자 해고,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철도민영화 반대 파업 사건 등이 벌어지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다.
지난해 9월에는 미국 내 진보적 지식인들, 인권·평화 운동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위협적인 공세를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여당 새누리당과 국가정보원은 정치권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축출하기 위한 마녀사냥에 주력하고 있다"라는 성명서를 내놓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1년을 맞았는데 그 생각은 여전히 유효한가?매우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상황까지 왔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놀랄 만큼 성장했다. 그러나 지금은 급속도로 퇴보하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최근 남한과 북한이 화해를 진전시키려는 작은 노력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민주체제의 근간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다. 국정원·국방부 등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으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문제와 관련한 대화를 거부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 국정원의 불법 선거운동으로 이익을 받은 것이 없다고만 말하고 있다.나는 이 문제에 대해 독립적인 판단을 할 정도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매우 부적절한 일이다. 그건 범죄다.
선거 부정보다 그것을 밝히지 못하는 현실이 더 안타깝다. 법이 상식으로 이해되기 힘들 때가 많다. 권력자 편은 무죄, 권력자 반대편은 유죄가 되는 현상을 너무 자주 만나게 된다.질문 자체가 곧 답이다. 정직한 사법제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애초에 한국이 민주주의를 이룬 똑같은 방법을 통하는 수밖에 없다. 누가 선물로 주는 게 아니다. 독재자가 내려줄 리는 없다. 민중이 투쟁해서 얻어내는 수밖에 없다. 이제껏 발견된 유일한 해결책은 조직화된 대중과 그들의 행동이었다. 정의와 평화를 위한 투쟁 말이다.
부정선거의 진상을 밝히자고 주장하거나 혹은 정부를 비판하는 지식인과 시민은 '빨갱이' '종북주의자'로 몰리는 형편이다.정부뿐 아니라 언론이 이런 흐름을 만들고 있다. 정말 비통한 일이다. 1980년대 한국의 민주주의를 밖에서 누가 도와줘서 이룬 게 아닌 것처럼 지금의 문제도 밖에서 누가 해결해줄 수 없다. 민주주의는 결국 민중의 자기희생적인 투쟁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지금처럼 퇴보의 시기도 있었으나 많은 성과도 있었다. 예를 들면 1930년대처럼 아주 진보적인 입법의 시대도 있었다. 이것은 집단적 대중조직, 노동운동 그리고 다양한 그룹의 행동을 통해 이루어졌다. 마치 그런 노력에 대한 선물처럼.
저서 <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 에서 "부패한 정부는 모든 것을 민영화한다"라고 했다. 한국 정부는 철도·의료 등 여러 분야에서 민영화에 힘을 쏟고 있다. 박 대통령은 프랑스를 방문하면서 유럽 시장에 공공 부문을 개방하겠다고 해서 큰 박수를 받았다. 어떻게 보는가?민영화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대표적 산물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대중을 공격한다. 정부는 국민 복지에 대한 책임을 민간으로 전가하는데, 민간은 기본적으로 복지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의 관심은 복지가 아니라 이윤이다. 의료를 예로 들어보자. 미국은 한국이 이루고자 하는 의료 민영화가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단적인 예이다. 이것은 총체적인 재앙이다. 다른 나라보다 두 배의 비용이 들고, 1000만명은 아예 의료 복지를 전혀 받지 못한다. 민영화 체제에서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이다. 보험회사는 의료 복지를 제공해주는 회사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회사다. 철도도 은행도 같은 원리다. 은행은 신자유주의 아래 규제를 없앤다. 일단 규제가 없어지면 그들은 바로 재정 위기를 맞고 정부에 구제해줄 것을 요구한다. 정부는 그 요구에 따른다. 그러면 결국 한국에서 발생했던 것과 같이 금융위기를 맞게 된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보이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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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슈 안테놀리 '노란봉투' 이야기를 듣고 촘스키 교수는 '47달러 봉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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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파업은 탄압의 대상이다. 거의 모든 파업에 불법 딱지가 붙는다. 파업 참여자에게는 해고와 구속 그리고 손해배상 소송이 이어진다. 자살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노동자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쌍용자동차에서 대규모 정리해고가 있은 후 목숨을 끊은 노동자와 가족이 24명이나 된다. 많은 노동자가 범죄자로 몰려 감옥에 갔고,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회사와 경찰에 47억원을 배상해야 한다.현대 육식성 사회에서 모든 것을 민영화하고자 하는 자본을 국민이 귀찮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정부의 감독을 통해서다. 파업 같은 개별 행동을 통해서 방해할 수도 있으나, 파업은 쌍용차에서 보듯이 상당히 가혹하고 형편없이 취급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일이다. 몇몇 국가는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발전했다. 한국은 (박정희 정권 같은) 성장기 때 자본 유출에 대한 국제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제성장기 동안 한국에서 자본을 유출했을 경우 사형선고를 받을 수도 있었다. 한국은 민영화를 거부하고 발전했다. 다른 나라들도 같은 방법으로 발전했다. 지금의 중국이 그렇다.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나라들은 삼류 국가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신식민주의로 돌아가려 한다. 불행한 일이다. 저항해야 한다.
민영화가 국민을 이롭게 할 가능성은 없는가?(민영화론자들에게) 국민의 이득은 중요하지 않다. 내용을 정확히 알면 국민이 민영화를 원할 순 없다. 미국은 매우 부유한 국가이지만, 신자유주의 시기인 지난 10년 동안 엄청난 부의 집중이 있었다. 성장의 약 95%가 1%의 국민에게 편중됐다. 미국의 실질임금은 25년 전 수준이고, 남성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1968년 수준이다. 인구는 계속 감소 중이다.
지난해 12월 "정부의 노동자 탄압에 대한 저항과 한국 노동자들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지지한다"라는 서한을 냈는데, 미국인이 아니었다면 교수님도 '빨갱이'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당신을 빨갱이로 모는 사람도 있다. 한국의 대다수 언론이 그런 부류에 속한다.(화를 내며) 바보 같은 짓이다. 러시아에서 파업하는 것을 본 적 있는가? 대다수 국가에서 총파업은 정상적인 행위다. 파업 지지자를 빨갱이로 모는 것은 독재 권력이 민주주의와 자유를 막으려는 한 방법일 뿐이다.
"대다수 언론이 권력에 종속됐기 때문에 늘 '찬란히 빛나는 거짓말' '그럴듯한 거짓말'로 권력 편에 서거나 공생관계를 유지한다"라고 한 교수님의 말이 한국에서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대다수 한국 언론은 권력의 대변인으로 전락했고, 점점 권력의 동업자처럼 행동한다. 언론이 진실을 감추는 데 적잖은 공을 세우고 있다.지금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미국을 예로 들면, 1950년대에 약 800개 노동신문이 3000만 독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이들은 다 사라졌다. 1960년대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은 좌파 신문이었다. 이제는 아주 우파로 가버려서 망원경으로도 보기가 어렵게 됐다. 이런 일은 지난 100여 년 동안 계속됐다. 두 가지 요소가 언론 산업을 망하게 했다. 하나는 자금이 한쪽에 몰렸다는 사실이다. 언론사를 하려면 많은 자금이 필요하므로 언론 산업은 아주 부유한 계층에게 제한됐다. 또 하나는 언론이 광고에 의존한다는 사실이다. 주류 언론은 부자들로 이루어진 광고주가 원하는 바를 따르려 한다. 사실 광고주들이 반(反)자본주의자라는 것은 대단히 흥미롭다. 시장이라는 것은 정보를 잘 아는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결정을 하는 것에 기초한다. 텔레비전을 켜보라. 정보를 제대로 아는 소비자가 합리적인 결정을 하도록 광고가 도와주고 있는가? 사실은 반대다. 광고는 시장을 해치려고 노력한다.
한국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독재자의 후손이 다시 권력을 잡았다. 친일에 뿌리를 둔 독재자의 후손들은 독재 행위를 미화한다. 대통령의 아버지가 일으킨 군사 쿠데타를 혁명으로 칭송하고 나섰다. 친일파였던 대통령의 아버지를 옹호하기 위해 일본의 식민 지배가 정당했다는 데까지 논리가 비약되는 수준이다.역사가 항상 바른 길로 가지는 않는다. 국민이 방심하고 게을렀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대중은 항상 쓰라린 계급투쟁을 하고 있다. 만일 국민이 이 투쟁에서 물러선다면 독재 세력이 이길 것이다. 우리가 지금껏 보아왔던 것이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역사까지 위협당한다는 우려가 크지만, 국민이 선뜻 나서기에는 한계가 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크고.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한국의 민주주의를 이룬 분들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분들과 같은 일을 해야 한다. 권력에 맞서야 한다. 싸워야 한다.
인터뷰 과정에서 쌍용차 사태와 4만7000원 캠페인 소식을 들은 촘스키 교수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현실이 안타깝고 고통스럽다"라면서 자신의 저서인 < 메이킹 더 퓨처(Making the Future) > 와 47달러가 든 봉투를 기자에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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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우 기자 /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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