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가 밥이다’… 아이들이 달라졌다

2014. 3. 7. 14:42교육, 도서 정보/교육혁신 자치의 길

‘놀이가 밥이다’… 아이들이 달라졌다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ㆍ서울 초등교 3곳, 1년 놀이 실험을 통해 본 ‘놀라운 변화’

9살 민준(가명)이는 또래들보다 머리 하나만큼 더 크다. 쉬는 시간이나 방과후에 학교운동장에서 작은 아이를 확 밀치고, 노는 친구들에게 모래를 뿌리고, 땅바닥의 금을 흩뜨려 놓기 일쑤였다. 끼워주지 않는 아이들 옆을 빙빙 돌다 싸움을 걸고, 주먹으로 친구를 울리거나 큰 돌멩이로 위협할 때도 있었다. 아이들은 민준이를 슬슬 피해 다녔다.

그렇게 심술꾸러기였던 민준이가 변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짱’이다. 이 놀이, 저 놀이 하자고 친구들에게 제안하고 약한 아이들은 누구보다 앞서 지켜주고 배려해 주는 듬직한 친구가 됐다. 늘 야단만 맞고 선생님 눈을 피했던 민준이는 이젠 학교 가는 것이 즐겁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학원 가라는 엄마에게 화부터 냈던 8살 명수(가명)도 달라졌다. 한 해 전만 해도 엄마가 뭘 하자고 하면 이유 없이 싫다고 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짜증만 부리던 명수였다. 엄마는 반항이 몸에 밴 아이와 싸우는 게 싫어 거의 말을 하지 않고 내버려뒀다.

지난해 가을 서울 동북지역의 ‘와글와글 놀이터’에 참여한 초등학교 아이들이 숲에서 줄에 거꾸로 매달려 놀고 있다. | 와글와글 놀이터 제공

 

담임선생님은 명수가 책을 많이 읽고 선행학습도 해 아는 것은 많지만 수업시간에 흥미가 없다고 말했다. 툭하면 친구들을 무시하며 잘난 척만 해 아무도 같이 놀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랬던 명수도 지금은 수업시간에 한눈 팔지 않고 친구들과도 잘 지낸다. 명수 엄마도 짐처럼 가슴을 눌러온 아이와의 관계가 한결 편해지고 명수를 훨씬 잘 이해하게 됐다.

1년 만에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이도, 부모도, 학교도 달라졌다. 마법의 약은 ‘놀이’였다.

시작은 지난해 4월이었다. 맘껏 뛰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동네 놀이터에서 놀이 친구가 되어주고 놀이 축제를 벌이던 엄마들이 학교를 찾았다. 매일 친구들과 어울리는 학교에 놀이터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울 동북지역의 세 초등학교(쌍문·유현·상원)가 엄마들에게 선뜻 마음을 열고 저학년 학부모들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야외 놀이는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학교 운동장에서 맘껏 놀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고자 합니다. 놀이에 참가할 학생과 이를 지원할 학부모님들은 신청하세요.”

그렇게 쌍문초에 ‘마음밥’, 유현초에 ‘와글와글’, 상원초에 ‘하늘마당’이란 이름의 놀이터가 열렸다.

아이들은 꽃피고, 녹음이 드리우고, 낙엽이 지는 운동장에서 1년 내내 하루 2시간씩 놀았다. 추워도, 더워도, 비바람이 불어도 놀고 또 놀았다.

긴줄넘기, 땅따먹기, 사방치기, 찰흙놀이, 구슬치기, 숨바꼭질, 숲에서 거꾸로 매달리기,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아이들의 놀이는 끝이 없었다. 스마트폰에 코박고 살던 아이들이 장난감 하나 없이 땅을 파 개미집을 연결했고, 자연 속에서 이름모를 놀이들을 계속 만들어 냈다. 게임과 텔레비전을 떠난 아이들은 놀이터 갈 생각에 아파도 학교에 나왔고, 친구들과 눈과 몸을 부딪치며 자랐다.

실패를 못 견뎌하던 아이들은 금을 밟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고, 오늘은 졌지만 내일은 이기는 체험을 하며 스스로를 긍정하는 여유를 되찾았다. 놀이에 허기진 아이들은 처음엔 더 놀고 싶어 다툼이 많았지만, 충분한 놀이밥을 먹자 마음도 넉넉해졌다. 오늘 못 놀면 내일 또 놀면 됐고, 학원 가며 겨우겨우 시간 내 10분, 20분 놀다 헤어지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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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수 엄마는 “놀이터 이모를 하며 아이를 내뜻대로만 통제하려 했던 나를 돌아보고, 명수와 명수 친구들 마음까지 더 잘 이해하게 됐다”면서 “놀이터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지금도 아찔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놀이터가 제대로 굴러갈까 불안해했던 교사들도 지금은 놀이가 만든 아이들의 변화와 치유의 힘을 확신한다. 지난해 유현초에서 1학년 담임을 맡은 한희정 교사는 “학기말에 아이들에게 2학년이 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자 아이들 대부분이 ‘와글와글 놀이터에서 놀고 싶다’고 대답했다”며 “전국 모든 학교가 아이들이 이처럼 즐거워하는 놀이의 마법에 걸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변화를 목격한 놀이터 이모들이 더 큰 변화를 꿈꾸며 신문사 문을 두드렸다. 1년간 놀이삼매경에 푹 빠진 아이들은 즐거웠고, 엄마들도 아이 키우는 것이 힘겹기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배려와 소통을 배운 아이들이 가정과 학교를 더 평화롭게 만든 소중한 체험을 더 많은 학교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했다. 하루 2시간의 놀이가 1년 만에 이뤄낸 변화였다.

와글와글 놀이터 큰이모 김수현씨는 “놀이 그 자체가 아이에겐 중요하다”며 “놀이터가 시끄러워야 세상이 평화롭고, 아이들이 살 만한 건강한 세상을 만들려면 놀이터가 더 시끌벅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 아이들이 놀이터에 보낸 편지
“놀이터야 같이 놀아줘서 고마워”



▶와글와글 놀이터는 7000년이 되었어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증서> 1학년 2반 ○○○. 위 어린이는 와글와글 놀이터가 계속되어야 함에 따라 이 증서를 씁니다.

▶와글와글 놀이터야!! 내년에 내가 2학년 되면 또 만나자!! 그런데 내년에 또 할 거니?? 와글와글 놀이터야 항상 내 곁에 있어주어 고마워~ 안녕~ ♡

▶커서도 까먹지 않을게. 놀아주어 고맙고 이제 마지막이야 내년에도 만나자. 안녕 잘 지내고 다음에 만나. 안녕 아프면 안돼 사랑해.

▶놀이터야 우리들과 놀아주어 고마워. 널 망가뜨리지 않을게. 놀아주어 고마워.

▶너무너무 재미있었고 친구들과 더 친하게 지낼 수 있어 좋았고 고맙습니다. 내년에 더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3학년에도 하게 해주세요.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와글와글 놀이터 너무 재미있어요!! 와글와글 안 하면 미워요! 치~


<경향신문·참교육학부모회·서울 노원·도봉구청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