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가 밥이다]학원 가다 잠깐, 혼자 그네타기… 큰 놀이터는 ‘오늘도 심심해’
2014. 3. 7. 13:57ㆍ교육, 도서 정보/교육혁신 자치의 길
[놀이가 밥이다]학원 가다 잠깐, 혼자 그네타기… 큰 놀이터는 ‘오늘도 심심해’
ㆍ(4) 놀이 결핍
안녕. 나는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있는 들국화 놀이공원이라고 해. 아이들이 맘껏 뛰놀며 들국화처럼 싱그럽게 자라나라고 붙인 이름이야. 길 건너면 초등학교가 있고, 옆엔 개천이 흘러 산책 나온 어른들이 잠깐씩 들르곤 해. 200평 정도 되니까 놀이터 치고는 크지. 한쪽엔 애들이 노는 모래, 또 한쪽엔 어른들이 찾는 벤치와 운동시설이 있고 중앙엔 우레탄 매트에 여러 놀이기구가 들어서 있어. 미세먼지도 없고 봄방학이라 놀기 좋았던 2014년 2월19일, 한나절의 일기를 보여줄게.
▲ 200평 크기 ‘놀이터의 하루’ 다양한 기구·시설 갖췄지만
찾는 아이들 20여명뿐서 너명이 와도 따로 놀아
미세먼지 없던 봄방학… 놀이터는 놀이 없이 텅 비어
▶ 10:30(2~3명)
오늘은 아침부터 봄볕이 잘 드네. 따스하고 나른해서 잠에 빠져들다가 13살, 8살 남매가 노는 소리에 잠이 깼어. 쟤들이구나. 2~3일에 한번꼴로 오지만 여기선 자주 보는 아이들에 속하지. 남자애는 ‘매달리기’와 ‘나무 기어오르기’를 많이 해. 키보다 높은 손잡이를 잡고 앞으로 움직여가거나 나무기둥을 힘쓰며 오르는 단순한 놀이란다.
세번이나 땅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곧장 쪼르르 달려가 기구에 매달리던 아이가 나무기둥으로 옮겼어. 거기서 한뼘 간격으로 나 있는 작은 홈을 손으로 잡고 밟으며 올랐다. 꼬맹이는 네댓번 꼭대기까지 올랐는데 그때마다 삐죽한 정상에 배를 대고 납작 엎드려서 “엄마! 구해줘! 난 내려갈 수가 없어!”라고 소리쳤지. 그 때마다 주변을 산책하던 엄마가 와서 손을 뻗어서 내려주더군.
11시10분쯤 이 꼬맹이와 유치원 동갑내기 친구가 놀이터에 와서 함께 모래장난을 시작했어. 한데 2~3분이나 됐을까. “흙장난 하지 말랬잖아!” 엄마의 목소리가 커지고 꼬맹이는 말 없이 겉옷 주머니 두개를 뒤집어 탈탈 털고 누나 손을 잡고 놀이터를 나갔지. 모래판에 혼자 남은 친구도 10분도 안돼 일어났고. 놀이터는 다시 공터다.
▶ 12:00(1~3명)
빨간 패딩 점퍼를 입은 7살 꼬마 남자애가 할아버지 손을 붙잡고 왔어. 꼬마는 넓은 놀이터를 혼자 누비며 그네를 타기도 하고 굵은 줄로 엮어놓은 흔들틀에서 발을 구르며 놀았어. 할아버지는 운동기구를 타거나 벤치에 앉아 아이가 노는 걸 지켜봤지.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한분이 하얀 마르티즈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왔다. 개가 짖자 아이는 “저리 가” 하면서 흔들틀 위에서 안 내려오려 해 웃음이 나왔어. 이맘때쯤 놀이터엔 손주나 애완견을 데리고 오는 할아버지들이 있어.
▶ 13:30(8~10명)
방과후교실이 끝나고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애 7명이 자전거를 타고 몰려왔어. 모처럼 놀이터가 시끌시끌해졌지. 그때까지 놀이터를 차지하고 놀던 꼬마아이는 슬그머니 물러나 목마를 타다가 혼자 구석에서 놀았고. 남자애들은 땅바닥을 15발만 디디고 이쪽 기구에서 저쪽 기구로 옮겨가는 ‘발놀이’를 시작했어. 한명이 넘어지자 애들은 놀이터가 떠나갈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웃었고, 넘어진 애는 무릎을 털고 곧장 일어나 애들을 잡으러 다니는 술래를 했어.
그 사이 어린이집이 끝나고 5살짜리 남자애도 엄마 손을 잡고 왔어. 등엔 토마스 기차가 그려진 노란색 모래장난도구 가방을 앙증맞게 메고 있었어. 아이는 형들이 놀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구석에 앉아서 모래삽과 플라스틱통을 꺼내 혼자 놀았어. 엄마는 서서 아이의 겉옷을 든 채 아이가 노는 것을 바라보다가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봤어.
▶ 14:30(3~4명)
잠시 시끄럽던 아이들이 떠나고 놀이터는 다시 조용해졌어. 아이 셋과 가방 든 엄마 셋이 개천쪽에서 걸어왔어. 초등학생 여자애 둘과 안경쓴 남자애 하나였는데 엄마들은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었지. 셋은 같은 수학학원에 다니는 애들이야. 가끔 학원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20~30분 놀다 가지.
아이들은 모래터에서 커다랗고 매끈한 돌멩이를 찾으며 놀았어. 한 여자애가 “찾았다!”고 소리치며 돌을 들어올리자 남자애가 그걸 뺏으려다가 돌에 손을 살짝 긁혔어. 손을 보다 조금 미안했는지 애들이 모래터를 나와 용모양 놀이기구를 타러 갔어. 애들은 “어어~”하며 기구 위에 납작 엎드렸는데 결국 여자애가 땅으로 떨어졌어. 셋 다 웃음이 터졌어. 3시10분이 됐나봐. 벤치에 앉아있던 엄마가 “시간 다됐어, 학원 가야지!”라며 아이 이름을 불렀고, 다시 놀이터는 조용해졌지.
▶ 15:20(1~2명)
노란 장갑을 낀 9살 여자아이가 엄마와 함께 놀이터에 왔어. 이 엄마도 “4시에 영어학원에 가야 하니까 그전까지만 놀다와!”라고 말했어. 아이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그럼 3시50분까지 놀지 뭐”라고 대답한 뒤 패딩 점퍼를 벗어 벤치 위에 걸쳐놓았어. 여자애는 혼자서 기구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암벽타기를 위에서 거꾸로 타고 내려오기도 했어. 3시45분쯤 엄마가 “시간 다 됐다”고 다가오자 아이는 “기구 한번만 더 돌고 갈게요”라고 똑부러지게 말하더라. 정말 자기 말대로 암벽타기부터 시작해서 거미줄, 흔들틀, 미끄럼틀까지 기구를 전부 한번씩 가지고 놀고는 패딩 점퍼를 다시 입고 엄마를 향해 달려갔어.
▶ 17:00(0명)
해가 뉘엿뉘엿 지고 미끄럼틀의 그림자가 길게 떨어지자 다시 이곳도 고요해졌어. 저녁밥을 위해 장보러 나온 할머니 한분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장바구니를 옆에 두고 5분쯤 신나게 그네를 타고 돌아가셨지. 이 할머니가 아마도 오늘의 마지막 손님일 듯 해. 잠깐 세어볼까. 놀이터에 들른 아이들이 오늘도 20명쯤 될까. 그나마 학원 가다 들르거나 혼자 그네·미끄럼틀 타다 가기 일쑤지. 서너명이 와 있어도 얼굴 안 보고 따로 노니까, 이 큰 놀이터에 놀이도 없어. 온 종일 말소리도 들리지 않고….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참 무료하다.
<경향신문·참교육학부모회·서울 노원·도봉구청 공동기획>
안녕. 나는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있는 들국화 놀이공원이라고 해. 아이들이 맘껏 뛰놀며 들국화처럼 싱그럽게 자라나라고 붙인 이름이야. 길 건너면 초등학교가 있고, 옆엔 개천이 흘러 산책 나온 어른들이 잠깐씩 들르곤 해. 200평 정도 되니까 놀이터 치고는 크지. 한쪽엔 애들이 노는 모래, 또 한쪽엔 어른들이 찾는 벤치와 운동시설이 있고 중앙엔 우레탄 매트에 여러 놀이기구가 들어서 있어. 미세먼지도 없고 봄방학이라 놀기 좋았던 2014년 2월19일, 한나절의 일기를 보여줄게.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노원구 중계동 들국화놀이터에서 여자아이가 혼자 놀고 있다. 660여㎡(200평) 크기에 놀이기구는 많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 놀이터에서 아이는 10분가량 앉아 있다가 떠났다. | 김정근 기자
▲ 200평 크기 ‘놀이터의 하루’ 다양한 기구·시설 갖췄지만
찾는 아이들 20여명뿐서 너명이 와도 따로 놀아
미세먼지 없던 봄방학… 놀이터는 놀이 없이 텅 비어
▶ 10:30(2~3명)
오늘은 아침부터 봄볕이 잘 드네. 따스하고 나른해서 잠에 빠져들다가 13살, 8살 남매가 노는 소리에 잠이 깼어. 쟤들이구나. 2~3일에 한번꼴로 오지만 여기선 자주 보는 아이들에 속하지. 남자애는 ‘매달리기’와 ‘나무 기어오르기’를 많이 해. 키보다 높은 손잡이를 잡고 앞으로 움직여가거나 나무기둥을 힘쓰며 오르는 단순한 놀이란다.
세번이나 땅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곧장 쪼르르 달려가 기구에 매달리던 아이가 나무기둥으로 옮겼어. 거기서 한뼘 간격으로 나 있는 작은 홈을 손으로 잡고 밟으며 올랐다. 꼬맹이는 네댓번 꼭대기까지 올랐는데 그때마다 삐죽한 정상에 배를 대고 납작 엎드려서 “엄마! 구해줘! 난 내려갈 수가 없어!”라고 소리쳤지. 그 때마다 주변을 산책하던 엄마가 와서 손을 뻗어서 내려주더군.
11시10분쯤 이 꼬맹이와 유치원 동갑내기 친구가 놀이터에 와서 함께 모래장난을 시작했어. 한데 2~3분이나 됐을까. “흙장난 하지 말랬잖아!” 엄마의 목소리가 커지고 꼬맹이는 말 없이 겉옷 주머니 두개를 뒤집어 탈탈 털고 누나 손을 잡고 놀이터를 나갔지. 모래판에 혼자 남은 친구도 10분도 안돼 일어났고. 놀이터는 다시 공터다.
▶ 12:00(1~3명)
빨간 패딩 점퍼를 입은 7살 꼬마 남자애가 할아버지 손을 붙잡고 왔어. 꼬마는 넓은 놀이터를 혼자 누비며 그네를 타기도 하고 굵은 줄로 엮어놓은 흔들틀에서 발을 구르며 놀았어. 할아버지는 운동기구를 타거나 벤치에 앉아 아이가 노는 걸 지켜봤지.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한분이 하얀 마르티즈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왔다. 개가 짖자 아이는 “저리 가” 하면서 흔들틀 위에서 안 내려오려 해 웃음이 나왔어. 이맘때쯤 놀이터엔 손주나 애완견을 데리고 오는 할아버지들이 있어.
▶ 13:30(8~10명)
방과후교실이 끝나고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애 7명이 자전거를 타고 몰려왔어. 모처럼 놀이터가 시끌시끌해졌지. 그때까지 놀이터를 차지하고 놀던 꼬마아이는 슬그머니 물러나 목마를 타다가 혼자 구석에서 놀았고. 남자애들은 땅바닥을 15발만 디디고 이쪽 기구에서 저쪽 기구로 옮겨가는 ‘발놀이’를 시작했어. 한명이 넘어지자 애들은 놀이터가 떠나갈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웃었고, 넘어진 애는 무릎을 털고 곧장 일어나 애들을 잡으러 다니는 술래를 했어.
그 사이 어린이집이 끝나고 5살짜리 남자애도 엄마 손을 잡고 왔어. 등엔 토마스 기차가 그려진 노란색 모래장난도구 가방을 앙증맞게 메고 있었어. 아이는 형들이 놀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구석에 앉아서 모래삽과 플라스틱통을 꺼내 혼자 놀았어. 엄마는 서서 아이의 겉옷을 든 채 아이가 노는 것을 바라보다가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봤어.
▶ 14:30(3~4명)
잠시 시끄럽던 아이들이 떠나고 놀이터는 다시 조용해졌어. 아이 셋과 가방 든 엄마 셋이 개천쪽에서 걸어왔어. 초등학생 여자애 둘과 안경쓴 남자애 하나였는데 엄마들은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었지. 셋은 같은 수학학원에 다니는 애들이야. 가끔 학원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20~30분 놀다 가지.
아이들은 모래터에서 커다랗고 매끈한 돌멩이를 찾으며 놀았어. 한 여자애가 “찾았다!”고 소리치며 돌을 들어올리자 남자애가 그걸 뺏으려다가 돌에 손을 살짝 긁혔어. 손을 보다 조금 미안했는지 애들이 모래터를 나와 용모양 놀이기구를 타러 갔어. 애들은 “어어~”하며 기구 위에 납작 엎드렸는데 결국 여자애가 땅으로 떨어졌어. 셋 다 웃음이 터졌어. 3시10분이 됐나봐. 벤치에 앉아있던 엄마가 “시간 다됐어, 학원 가야지!”라며 아이 이름을 불렀고, 다시 놀이터는 조용해졌지.
▶ 15:20(1~2명)
노란 장갑을 낀 9살 여자아이가 엄마와 함께 놀이터에 왔어. 이 엄마도 “4시에 영어학원에 가야 하니까 그전까지만 놀다와!”라고 말했어. 아이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그럼 3시50분까지 놀지 뭐”라고 대답한 뒤 패딩 점퍼를 벗어 벤치 위에 걸쳐놓았어. 여자애는 혼자서 기구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암벽타기를 위에서 거꾸로 타고 내려오기도 했어. 3시45분쯤 엄마가 “시간 다 됐다”고 다가오자 아이는 “기구 한번만 더 돌고 갈게요”라고 똑부러지게 말하더라. 정말 자기 말대로 암벽타기부터 시작해서 거미줄, 흔들틀, 미끄럼틀까지 기구를 전부 한번씩 가지고 놀고는 패딩 점퍼를 다시 입고 엄마를 향해 달려갔어.
▶ 17:00(0명)
해가 뉘엿뉘엿 지고 미끄럼틀의 그림자가 길게 떨어지자 다시 이곳도 고요해졌어. 저녁밥을 위해 장보러 나온 할머니 한분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장바구니를 옆에 두고 5분쯤 신나게 그네를 타고 돌아가셨지. 이 할머니가 아마도 오늘의 마지막 손님일 듯 해. 잠깐 세어볼까. 놀이터에 들른 아이들이 오늘도 20명쯤 될까. 그나마 학원 가다 들르거나 혼자 그네·미끄럼틀 타다 가기 일쑤지. 서너명이 와 있어도 얼굴 안 보고 따로 노니까, 이 큰 놀이터에 놀이도 없어. 온 종일 말소리도 들리지 않고….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참 무료하다.
<경향신문·참교육학부모회·서울 노원·도봉구청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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