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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영
신부 | 안녕하십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사입니다.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우리네 인사말이 어느
때부터인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또 계약서나 법률적인 용어인 ‘갑’과 ‘을’이라는 단어가 특별한 계층이나 집단을 의미하며 통용되기도
합니다.
어느 젊은이의 글에서 제목으로 사용된 “안녕하십니까?”는 부정과 불의가 진리처럼 옷을
갈아입은 채, 나와 내 이웃을 괴롭혀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무감각했던, 자신의 부끄러운 양심과 이성을 고백하는 문장으로 지난해를
장식했습니다.
또한, 계약서나 두꺼운 법률서적에서나 읽을 수 있었던 ‘갑’과 ‘을’이라는 단어는, 더
가지거나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덜 갖거나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도구처럼 사용하는 이들을 ‘갑’으로, 생존과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힘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이들을 ‘을’이라 지칭하는 단어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이 현재 홍익인간, 즉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를 건국이념으로 삼아 세워졌다고 하는 반만년 짧지 않은 역사의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제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우리의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열어 주고자 얼마나 노력하며 살아왔는지?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세상, 정의와 진리를 따르면 항상 행복하고 기쁜 삶을 누릴 수
있음을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지? 그리고 불의와 거짓에 대항하여 이 땅에 참된 하느님의 나라가 세워질 수 있도록 헌신하였는지를 물어봅니다.
이 나라에서 법과 양심과 상식에 준거하여 살아가면 그에 걸맞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확신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불행하게도 전 아직은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리의 상대적 개념인 거짓이 판을
치고, 정의의 상대적 개념인 불의가 이 땅을 지배하고 있으며, 피 흘려 쌓아올린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두 번의 대통령선거를 외국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국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조국의 대통령선거는 불도저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사람이 당선되었고 그 별칭에 걸맞게 대다수 국민의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4대강 공사라는 것을
밀어붙여 환경의 재앙이 예견되는 사업에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저에게 강론을 부탁하던 신부님과 주변의 신부님들께서 강론은 하되 수위를 조절해 달라고
하셨는데, 우리나라에서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지 아십니까? 이 나라에서 수위 조절하려면 최소 30조라는 거액이
들어갑니다. 신부님들 너무 비싼 부탁을 저에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대통령선거를 외국에서 맞이할 때, 주로 인터넷을 연결하여 한국의 상황을
접해야 했는데, 숱한 인터넷 사용자들의 글들과 댓글들을 읽으며, 후보들에 대한 무분별한 비방과 루머들의 생산과 확대재생산의 과정을 보며 우려를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터져나온 국정원 직원에 의한 인터넷 댓글 사건과 처리과정을 지켜보면서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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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부산시 남구 대연성당 마당에서
신자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시국미사에 참여하고 있다. ⓒ장영식 |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헌법과 법률 무시한 불법행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
국가공무원의 선거개입이라니요? 대한민국 헌법 제7조 1항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2항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공무원이 특정인 한 사람에 대한
봉사자로 신분을 바꾸다니, 아니 돈세탁이라는 말은 들어보았어도 신분세탁이라는 말은 못 들어 보았습니다.
조금 더 알아볼까요? 국가공무원법 제7장 제65조(정치 운동의 금지) 2항 “공무원은
선거에서 특정 정당 또는 특정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기 위한 다음의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의 3호에는 “문서나 도서를 공공시설 등에
게시하거나 게시하게 하는 것”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국가공무원에다가 국정원 직원이었지요?
국가정보원법 제9조(정치 관여
금지) ① 원장 · 차장과 그 밖의 직원은 정당이나 정치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② 제1항에서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행위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 2. 그 직위를 이용하여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지지 또는 반대 의견을 유포하거나, 그러한 여론을 조성할 목적으로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하여 찬양하거나 비방하는 내용의 의견 또는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 4.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의 선거운동을 하거나 선거 관련 대책회의에 관여하는 행위 6. 소속 직원이나 다른
공무원에 대하여 제1호부터 제5호까지의 행위를 하도록 요구하거나 그 행위와 관련한 보상 또는 보복으로서 이익 또는 불이익을 주거나 이를 약속
또는 고지(告知)하는 행위
명백한 불법행위입니다. 국정원장의 임면권자는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입니다. 본인도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 임면권자인 대통령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최상위법인 헌법 제69조.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분명히 헌법을 준수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헌법에 명시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였던 부정선거 당시의 행정부 수반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그에게 주어진 대한민국과 법률 수호의 의무를 무시하거나 의도적으로 국민을
기망하였으므로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또한 그러한 공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치러진 부정선거의 결과로 당선된 현 정부의 수반 역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지난 대선, 불공정한 스포츠 경기와 다르지 않아
김연아 스텔라가 소치에서 은메달을 받았습니다. 새벽 4시 가까운 시간까지 잠을 설치며
응원하던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예상치 못한 결과에 허탈해하고 분노하였습니다. 동계올림픽이 끝난 오늘까지도 그 분노는 사그라질 줄 모릅니다. 2백만
명이 넘는 네티즌들이 ‘소치 동계 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 심판 판정에 대한 조사와 재심사를 촉구한다’는 제목으로 인터넷 서명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4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었지만, 부족함이 눈에 보이는 실력을 가진 주최국 출신의 선수에게
금메달을 빼앗긴 그녀를 위해 젊은 네티즌들이 나선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 사건에 분노할 것입니다. 제가 분노한 것은 주최국의 이익을 위해
어린 선수의 땀과 노력을 허망하게 무위로 돌려버렸는데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수년 전, 다른 힘 있는 나라는
할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는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짓이 진실을 덮어버렸고 부정이 정의를 짓밟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정작 책임져야 할 어른들은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으니 우리네 어린 세대가, 이루어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서명운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어디서 본 듯하지 않습니까? 주최국 출전선수에게 금메달을 이미 예정해 놓고 공정한
경쟁이라고 설레발을 치는 모습. 전 재작년 12월에 보았습니다. 자국의 선수에게 금메달을 주기 위해, 공정해야 할 심판들이 나서서 상대 선수의
점수를 깎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댓글 공작을 해대는 것을. 국정원과 국방부 사이버사령부 요원들. 그들은 하지 말아야 될 일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던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제 끝난 것입니까? 경기에 졌으니 그냥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만족하면 됩니까? 이 땅에
정의가 강물처럼 넘치게 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은 다음 기회에 실천하면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가 눈감고 귀 막아 버리면
부정과 불의가 정의의 옷을 입고 진리처럼 활보하게 됩니다. 우리네 아이들이 슬퍼합니다. 내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이 부끄럽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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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저녁, 부산시 남구 대연성당에서
천주교 정의구현 부산교구 사제단이 ‘부정선거 규탄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국미사’를 봉헌했다.
ⓒ장영식 |
지금 말하지 않으면, 오랫동안 말하지 못하게 될까
두렵다
벌써 불길한 기운이 이 나라를 감싸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의 견해에 따르지 않으면
종북이라는 해괴한 논리가 온 땅을 뒤덮고,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간첩들이 정부에 의해 체포되고, 조작된 서류들이 법정에 제출되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조작된 증거와 자료에 의해 목숨을 잃어 왔고 긴 세월을 빼앗겨 왔습니까! 유죄임이 분명한 사람들이 현 정부에 호의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죄로 방면되기도 합니다. 수사기관과 법정이 한 몸이 되어갑니다.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겨우 수만 원을 손댄 우리의 이웃들은
감옥으로, 수천억을 훔친 가진 자들은 자유의 몸이 되는, 예전에 경험하였던 일들이 다시 우리들 앞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두렵습니다. 지금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어느 밤 조용한 시간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대문을 열었다가 내 사랑하는 가족들을 다시 보지 못하는 날이 올까 두렵습니다. 선배들이 피땀 흘려 이룩해 놓은 민주주의가 장충체육관으로 돌아갈까
두렵습니다. 지금 우리가 입을 열지 않으면 오랜 시간 제대로 입을 열지 못하고 살게 되지 않을까 두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고,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세상을 누리기 위해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좋은 열매를 얻으려거든 좋은 나무를
길러라. 나무가 나쁘면 열매도 나쁘다.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알 수 있다. 이 독사의 족속들아! 그렇게 악하면서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겠느냐?”
오늘 복음 말씀입니다. 이 나라의 미래에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좋은 나무를 길러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닌, 정정당당함이 최고의 선택임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며 신앙인의 사명입니다.
파벌과 개인의 이익을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을 내치는, 그래서 이 땅에 살지 못하고
수만리 떨어진 외국에서 외롭게 살아가야 할 안현수 같은 젊은이가 다시는 생겨나지 않는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성실한 사람이 잘사는 나라,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공격하거나 매도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주기 위해 우리가 함께해야
하겠습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야고
2,14)
김현영
신부 (마태오) 부산교구 동항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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