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대전역에서 가톨릭행동 주최 시국기도회 열려

본문

대전역에서 가톨릭행동 주최 시국기도회 열려지방에서 평신도 차원의 시국기도회는 처음, 대전 시민단체와 함께해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4.03.04 11:56:0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지난 2월 27일 대전역 서광장에서 열린 ‘나와 내 이웃의 안녕을 묻는 대전교구 시국기도회’에 참석한 이요안 님의 글과 지요하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공동대표의 복음 해설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2월 27일 저녁, 대전역 서광장에서 ‘나와 내 이웃의 안녕을 묻는 대전교구 시국기도회’가 열렸다. ⓒ이요안

“국정원 해체”, “민주주의 수호”, “진상규명”, “관련자 처벌”, “박근혜 퇴진”.

‘나와 내 이웃의 안녕을 묻는 대전교구 시국기도회’가 대전역 서광장에서 2월 27일 오후 7시 천주교와 개신교 평신도, 개신교 목회자와 시민 등 12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이번 시국기도회는 매주 목요일 대전역 서광장에서 ‘총체적 관권부정선거 진상규명 민주수호 대전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는 관권부정선거진상규명민주수호대전범국민운동본부의 후원에 힘입어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이하 가톨릭행동)이 주최하였다. 그동안 서울에서 시국기도회와 시국미사를 열어왔던 가톨릭행동이 지방에서 시국기도회를 갖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국기도회는 1부 말씀 전례와 2부 이야기 마당으로 진행됐다. 1부 말씀 전례에서 소설가 지요하 씨(가톨릭행동 공동대표)는 복음 해설을 통해 “3%의 염분이 바닷물을 짜게 하고 썩지 않게 한다. 우리는 짠 맛을 지닌 소금이 되어야 한다”며 “우리 다 같이 행동하는 예수님을 따라 행동하는 양심, 행동하는 신앙을 추구하며 스스로 빛과 소금이 되자”고 촉구했다.

▲ 시국기도회 참가자들이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요안

2부 이야기 마당은 이원영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가톨릭행동 실행위원)의 사회로 평신도신학자 김근수 씨(가톨릭행동 공동대표)와 문현웅 변호사(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민변 대전충남지부 사무처장), 한창승 목사(민주수호대전충남기독교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장)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학자 김근수 씨는 “우리 대한민국의 배꼽이라 생각되는 대전에서 동학혁명 120년을 맞이하는 중요한 시기, 중요한 장소에 3%의 신도와 시민들이 모인 것 같다”며 “이 자리에 대전교구 교구장 나오셨나? 대전교구 신부님들 많이 계시나?” 물었다. 이어 “우리 주교님들과 신부님들이 아직 남미 주교님과 신부님들처럼 세상을 제대로 보고 행동을 제대로 하기에는 많은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불의에 저항하는 것은 가톨릭 신도들의 정당한 의무다. 저항하지 않는 사람들이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은 아주 훌륭한 신도들이다”고 참석자들을 격려했다.

김근수 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할 경우, 북한을 방문해 한반도의 평화 기운을 높여 줄 것, 한반도의 평화와 갈등의 가장 대표적인 현장인 제주 강정마을을 방문해 줄 것, 6월 항쟁의 대표적 장소이고 많은 시민들이 모일 수 있는 광화문광장에서 미사를 집전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덧붙여 “광화문광장, 시청 앞, 대한문에 수십만, 수백만이 모여서 교황이 8월에 오시기 전에 박근혜를 몰아내고 축제의 미사를 드리자”고 제안해 큰 호응을 받았다.

▲ (왼쪽부터) 이야기 마당에 문현웅 변호사, 한창승 목사, 신학자 김근수 씨가 참여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요안

문현웅 변호사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1심 무죄 사건에 대해서 보이는 검찰의 고의적인 직무유기, 그리고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판결은 어떻습니까? 왜 수사를 진행하고 왜 기소를 한 것인가” 하고 물었다. 또 “국가기관의 불법적인 선거 개입을 모두 덮으려고 꼼수를 부리는 것 아니겠습니까”라며 박근혜 정부를 ‘꼼수정부’로 규정했다.

이어 “이명박 정부 5년, 그리고 박근혜 정부 1년을 지나면서 민주주의가 땅에 떨어지고 짓밟힐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민주주의가 짓밟히면 인권은 그냥 내던져지는 것”이라고 통탄했다. 문 변호사는 “그러면서도 다행인 것은 이 자리에 촛불을 함께 들고 있는 시민과 가톨릭 신자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함께 힘을 모으고 있다는 것”이라며 “다시 민주주의가 찬란히 꽃피고 인권이 제대로 보호받도록 하자”고 외쳤다.

한창승 목사는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이는 이유는 “그들이 이런 짓을 해도 지지율이 나오고 새누리당을 찍는다는 믿음”과 “소수의 기득권자에 대한 믿음”이라며, “신앙이 곧 삶이고 실천이라면 이제 우리가 이 소수의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조금씩 대항해 나가면서 함께 살 권리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기도회 마무리 발언을 했다.

가톨릭행동은 “우리 교회에는 행동 없는 믿음, 실천 없는 기도, 증거 없는 삶, 희생 없는 제사가 꽹과리 소리처럼 요란하다. 이 시점에서 우리 평신도들은 자기 쇄신을 위한 작은 노력과 실천을 시작으로 나와 교회 그리고 지역사회와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면서, 평신도들의 각성과 참여를 요구하며 지난 1월 24일 ‘천주교 1만인 시국선언’을 모태로 결성된 단체이다.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제6차 시국기도회 복음 해설

우리가 지니고 사는 소금의 질량

지요하 (소설가,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공동대표)

오늘 이 자리에는 소금 알갱이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인 우리는 ‘소금’의 본질과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고, 소금의 성분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그 소금의 성분 때문에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소금은 예수님 시대에 매우 귀한 사물이었습니다. 오늘처럼 염전이나 가마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소금이 아니었습니다. 수만 년 전 지각변동에 의해 육지에 갇힌 바닷물이 증발하면서 남게 된 염분이 응고된 형태의 소금이었습니다. 그 소금을 먼 곳에서 채취해 오기 때문에 공력과 비용이 많이 들었지요. 그래서 소금은 왕실에서 관리를 할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또 예수님 시대에는 염장문화가 발달하지 않아서 소금이 사물을 썩지 않게 하는 용도로는 많이 쓰이지 않았습니다. 주로 음식의 맛을 내는 데에 많이 활용되었지요.

예수님 시대나 지금이나 모든 음식 맛의 기본은 소금입니다. 일단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야 음식은 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맛이 조화를 이루어야 음식다운 음식이 되는데, 그 조화의 기본은 소금이지요.

그런데 인류가 소금을 섭취한 기간이 그리 오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인체는 소금의 해독을 제어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소금의 해독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는 쪽으로 인체가 진화를 하려면 수만 년이 더 필요하리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아무튼 소금은 사물을 썩지 않게 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고 또 음식 맛을 내려면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기본적인 재료이지만, 과잉 섭취는 금물입니다. 소금의 과잉 섭취는 인체의 건강을 해치는 지름길이지요. 오죽하면 소금이 ‘만병의 원인’이라는 말까지 있겠습니까. 현명한 사람이라면 ‘사람 잡는 설탕’, ‘만병의 원인 소금’이라는 말을 명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설탕과 소금의 과잉 섭취로 성인병이 창궐하고 있는 이 시대에 진짜 소금의 성분을 지닌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맛의 조화를 이룬 갖가지 진미들을 열심히 즐기며 사는 사람들은 많고 많건만, 소금 성분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는 역설이 오늘의 시대 풍경인 것 같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지만, 바닷물을 구성하는 수만 가지 성분 중에 염분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3%라고 합니다. 고작 3%의 염분이 바닷물을 짜게 하고 썩지 않게 한다는 얘기지요.

그래서 어떤 이는 3% 소금의 가치를 얘기합니다. 이 세상에 소금 성분을 지닌 사람들이 3%만 있어도 이 세상은 썩지 않고 늘 정화의 파도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얘기지요. 또 어떤 이는 종교를 가진 신앙인들 중에 소금 성분을 지닌 3%의 신앙인만 있어도 그 종교는 세상에서 나침반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으리라는 얘기를 합니다.

한국은 종교가 많고 종교인들이 많은 나라입니다. 한국인의 특성 중 하나가 종교적 심성이라고 합니다. 종교적 심성이 탁월하게 발달한 민족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국민 대다수가 갖가지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종교가 없는 국민보다 종교를 가진 국민이 월등히 많습니다.

그리스도교도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개신교와 천주교 신자를 합하면 전체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입니다. 세계 50대 대형교회들 중에 절반에 가까운 23개를 한국의 개신교회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 1 · 2 · 3위를 비롯하여 세계 10대 교회 안에 한국 개신교회가 다섯 개나 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대형교회도 많고 성공한 목사님들도 많다 보니 그 안에서 여러 가지 비리도 생겨납니다. 교회를 세습하는 일도 생겨나고, 여의도 순복음교회처럼 교회 재산을 둘러싼 가족 간의, 또 신도들 간의 법정 싸움도 발생합니다.

한국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교회세습도, 또 북한에서 행해지고 있는 3대 권력세습도 따지고 보면 한국인들의 과잉적인 종교적 심성, 맹목적인 충성심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는 학설도 있습니다. 한국 대형교회의 세습이나 북한의 권력세습이나 종교적 심성 면에서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는 얘기지요. 이 일맥상통 속에는 남한의 박정희교, 유신공주의 집권도 포함이 됩니다.

그건 그렇고, 우리 가톨릭교회도 이 한국 땅에서 500만 명 시대를 열었습니다. 전체 국민 5천만 명 중에 10분의 1에 달하는 500만 명이 천주교 신자라는 얘기입니다. 열 명 중에 한 명이 천주교 신자라니, 놀라운 수치입니다.

그런데 천주교 신자 500만 명 중에 소금 성분을 지니고 사는 신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반짝거리는 소금덩이로 갖가지 형태의 액세서리를 만들어 몸에 붙이고 사는 신자들이야 많지만, 진짜 소금 성분을 지니고 사는 신자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오늘의 교회 현실입니다.

소금덩이로 만든 갖가지 형태의 액세서리를 몸에 붙이고 사는 사람들 중에는 진짜 소금 성분이 뭔지에 대한 관심이라곤 전혀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비뚤어진 지나친 관심으로 진짜 소금 성분을 지닌 사람들을 방해하고 핍박하는 일을 자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그런 사람들을 심심찮게 목도하며 삽니다.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시국미사를 쫓아다니며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당 앞에서 시국미사 규탄집회를 열곤 합니다. 자기들끼리만 하기는 힘이 부친 듯 고엽제 군복들과 합세하여 소란을 피웁니다. 그들의 입에는 종북사제니, 위장사제니, 좌파신부니 하는 말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 천박하고 살벌하고 폭력적인 말들을 새겨서 만든 피켓을 들고 심지어는 성품성사가 거행되는 거룩한 자리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들은 지난 1월 15일 천안시 유관순실내체육관에서 거행된 대전교구 사제서품식 자리에도 나타나 ‘종북사제척결’ 따위 천박하기 짝이 없는 글귀들을 적은 유인물을 대량으로 살포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이 과연 온전한 천주교 신자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어디에서 자금을 조달받아 그런 짓을 하는지 짐작은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그 집단의 수뇌부의 면면들입니다. 그들은 과거 유신독재정권과 5공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천주교 신자라는 명함을 들고 독재권력에 빌붙어 갖은 호사를 다 누렸던 사람들입니다.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걸림돌 구실을 했던 사람들이지요.

민주시민들의 고난, 가난한 이들의 고통과 눈물의 심연을 알 리 없는 그들은 오늘도 등 따습고 배부른 바리사이의 형색으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의 본분을 훼방하고 있습니다. 그들 때문에 눈이 흐려진 교회 장상들도 여럿이나 됩니다. 눈이 흐려진 교회 장상들이 누구인지는 굳이 이름을 들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진짜 소금의 성분을 지니기 위해 눈물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가만히 앉아 열심히 기도를 한다고 소금의 성분을 지닐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행동을 해야 합니다. 파도처럼 끊임없이 운동을 해야 바다의 청결한 염분이 유지되고 소금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우리는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행동을 해야만 소금의 성분을 지닐 수 있습니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쓸모가 없어 버려지고 맙니다. 오늘의 복음은 그 사실을 잘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짠 맛을 지닌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썩지 않게 하고, 음식의 간을 맞추어 맛의 조화를 이루어내는 소금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의 요체는 스스로 소금의 성분을 갖추려는 자각과 노력입니다. 그리고 행동을 해야 합니다, 파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작은 행동들을 모아 파도를 만들어낼 때 우리는 진정으로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우리가 새롭게 소금이 되기를 다짐하는 자리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으로 가능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교는 갱신과 희망의 종교입니다. 우리 다 같이 행동하시는 예수님을 따라 행동하는 양심, 행동하는 신앙을 추구하며 스스로 빛과 소금이 됩시다.

감사합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