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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회를 위하여-학교 떠난 아이들을 품자] 공부 포기 순간 존재감 없어져 '잉여인간'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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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무맨 2014. 1. 28.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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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회를 위하여-학교 떠난 아이들을 품자] 공부 포기 순간 존재감 없어져 '잉여인간' 전락

국민일보 | 입력 2014.01.06 01:39
교문 '안'과 '밖'은 다른 세상이었다. 학교 밖으로 몇 발짝 걸어나갔을 뿐인데 학교이탈 청소년들은 사회의 보호막 밖으로 철저하게 밀려났다. 사회는 '학생'이 아닌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게 없었다.

방치된 아이들은 무기력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되거나 게임을 하며 현실을 도피했다. 술·담배·오토바이로 시간을 보냈고, 훔치고 협박해 유흥비를 마련하는 잠재적 범죄자군으로 흡수되기도 했다. 검정고시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바쁜 모범생형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학교이탈 청소년 상당수는 공부를 포기한 순간 사회가 존재를 잊은 잉여인간이 됐다. 학교를 떠난 아이들 40명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이들이 학교 밖에서 맞닥뜨린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사의 부당한 체벌로 학교를 관뒀다는 부산의 이모(19)군. 학교 실습실에 쓰레기를 무단 투기한 것으로 오해받아 교사에게 뺨을 맞은 뒤 대들다가 밉보이게 됐다. 한번 찍히니 학교생활은 괴로워졌다. 학교에만 가면 배가 아팠다. 수업시간마다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담배 피웠냐?" 생활지도교사는 변기 위에 쪼그려 앉아 있다가 나온 이군의 손가락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모욕감은 잦은 결석과 유급으로, 결국 자퇴로 이어졌다. 고1 때였다.

처음 학교를 그만뒀을 때는 검정고시든 취업이든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열여섯의 나이로는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건 금세 깨달았다. 1주일 동안 울기만 하던 엄마는 이모네로, 사업하는 아버지는 설득을 포기하고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혼자 남은 이군은 1개월 동안 잠만 잤다. 자다자다 더 이상 못 자겠다 싶을 때는 일어나 TV를 켰다. "보지도 않았어요. 그냥 켜놓고 앉아 있어요. 뭘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멍하니."

그럴 때면 문득 학교에서 수업 받고 있을 동갑내기들 생각이 났다. "미래 걱정은 아니고요. 쟤들은 저렇게 반짝반짝 빛나는데 나만 이러고 있구나, 그런 거."

교사와의 갈등으로 고2 때 학교를 나온 부산의 이모(18)군도 자퇴 후 한동안 잠만 잤다고 했다. 잠과 은둔은 자신이 '자퇴'한 게 아니라 학교 밖으로 밀려났다는 걸 깨달은 아이들이 겪는 일종의 자퇴증후군 같은 것이었다.

또 다른 통과의례 중 하나는 범죄와 일탈이다. 학교이탈 청소년이 학교 안 아이들보다 범죄율이 높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출이 동반된 경우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 휴대전화를 훔쳐 팔고 취객의 호주머니를 털었다. 학교를 떠난 아이들을 찾아내 이유를 묻고 지원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고 1때 가출해 길거리 생활 2년째인 안모(18)군은 배고플 때마다 먹을 것을 훔치거나 식당에서 음식값을 치르지 않은 채 도망가는 방법으로 배를 채웠다. 유흥비가 필요하면 노상에서 꼬마들 돈을 빼앗거나 스마트폰을 훔쳤다. 그렇게 훔친 물건은 "길거리에서 만난 형들을 통해서" 현금화했다. 찜질방에서는 취객의 지갑을 노렸다.

안군도 한때 제빵을 배우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한 적도 있다. 그러나 한 달 내내 일해도 손에 쥐는 돈은 휴대전화 몇 대 훔치는 것보다 적었다. 그는 "쉽게 번 돈은 금세 없어졌다. 한 달 버티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결국 주머니가 빌 때마다 훔치는 예전의 생활로 돌아갔다.

특별취재팀=이영미 정승훈 이도경 김수현 정부경 황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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