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 21. 11:38ㆍ이런저런 이야기/책 속에 길이 있다
온 세상이 빨강에 강박적으로 반응하던 때가 있었다. 색이 아닌 이데올로기를 지칭하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북한과 대치하는 한 이데올로기의 굴레를 벗지 못할 것 같았던 빨강에 면죄부가 씌어진 사건이 등장했다. 2002년 월드컵이다. 빨강이 이데올로기에서 자신감의 표현으로, 나아가 보수 정당의 상징색이 되는 과정은 그 논리를 이성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작스럽게 전개되었다. 그래서일까 빨강을 축제의 색으로 당당하게 쓸 줄 아는 세대는 도시에 광장을 선물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광장을 제대로 쓸 줄 모른다. 벼락 같이 들끓는 변화가 그 포문을 열었다면, 그 변화가 건강히 뿌리내릴 수 있느냐는 사회 구성원의 지속적인 노력에 달려 있다.
저자소개
저자 서현
프롤로그 - 갈등의 공간
어떤 건축에 대하여
분열된 씨족의 사회 | 계절을 잃은 집 | 일상의 병영 | 지식과 공간 | 쌈밥과 햄버거 | 슬픈 신데렐라 | 우리들의 러브호텔 | 화려한 여행 | 죽음의 축제 | 허영의 신전 | 장터, 창고 혹은 공장 | 집권한 하인의 공간 | 떠나지 않는 조선시대 | 작두 위의 사회
어떤 도시에 대하여
낭랑한 노래의 거리 | 가면무도회의 도시 | 독자생존 | 결사항전 | 전투기와 단열재 | 뒷골목의 남자들 | 속 빈 도시의 미래 | 그날이 오면 | 도시가 목격한 빨강 | 꿈꾸는 도시 | 백조의 도시 | 불도저의 문화 도시 | 9에서 90까지 | 바퀴와 다리 | 가난한 신뢰 | 가상의 창조 도시
어떤 건축가에 대하여
자유로운 건축가 | 전망이 없는 인생 | 흑백무지개 | 건축을 공부하려면 | 우리의 골품제도 | 음악과 축구와 건축 | 황폐한 언어 | 귤과 탱자 | 굳게 닫힌 천년의 문 | 빛나지 않는 빛의 광장 | 가을을 담는 건축가
에필로그 - 목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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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서보다는 정치적인,
정치서보다는 인간적인,
서현의 ‘건 축 사 회 학’
어쩌다 보니 사회학자가 된 어떤 건축가의 이야기
건축 스테디셀러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의 저자 서현을 추동하는 힘은 ‘왜’라는 질문에서 나온다. 전작 『건축을 묻다』는 건축이 예술인가라는 질문에서, 『배흘림기둥의 고백』은 전통건축의 형태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이제 그의 시선은 예술과 전통건축을 거쳐 사회로 향한다. 건축과 도시, 그리고 건축가가 처한 뒤틀린 현실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 글이 이 책 『빨간 도시』이다. 독자들은 『빨간 도시』를 읽으면서 건축서인지 사회서인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를 목격한 이는 ‘건축’이지만, 목격자의 언어를 대중의 언어로 전달하기 위해 저자는 ‘사회학자’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빨간 도시』를 건축서도 사회학서도 아닌 ‘건축사회학’서라 명명하는 이유다.
대한민국 건축을 향한 질문은 부메랑처럼 대한민국 사회로 되돌아왔다. 씨족, 일제강점기, 북한, 반공, 군사/향락 문화, 경쟁, 거짓말, 과열, 월드컵 등 기형적인 건축에 새겨진 흔적들은 하나 같이 빨강으로 수렴됐다. 그래서 서현은 대한민국 사회를 ‘빨간 도시’로 정의한다. 그의 정의만큼이나 참으로 비릿한 빨강 도시의 흔적을 지금부터 찾아보자.
영원히 변치 않는 끈끈한 이름,‘씨족공동체’
요즘 세대에게 혈연으로 묶인 씨족공동체란 단어는 무척이나 진부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평생을 보내는 공간인 아파트 그리고 어떤 이든 한번은 거쳐야 하는 장소인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의 형태를 결정지은 것이 씨족공동체라면 이 단어의 현재적 위상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꼭 닭장 같았습네다.” 목숨을 걸고 탈북한 아주머니가 서울의 아파트를 보고 남긴 말이다. 이제 우리는 남한의 아파트는 왜 닭장 같은 모양을 취하게 되었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행정구역으로 서울이 확정된 해는 1963년으로 당시 인구는 300만 명 정도였다. 1988년에는 인구가 1000만 명에 이르렀으니 25년간 춘천시나 여수시 인구에 해당하는 28만 명이 해마다 서울로 이동한 셈이다. 경제적 기회를 찾아 매일 같이 밀려드는 이주민을 수용하기 위해 선택된 것이 현재의 아파트다. 짓기도 전에 팔리는 선분양제가 등장할 정도였으니, 닭장 같은 외양이나 그 안에 담을 삶은 고려 대상에 낄 수도 없었다. 급작스런 ‘씨족공동체의 해체’가 지금의 아파트 형태를 만든 것이다. 당시에 만들어진 30, 40평대 아파트 부엌 옆에 무작정 상경한 10대 식모의 거처인 가사실(17쪽)이 발견되는 것도, 낯선 대상인 입주민들과 부대껴 살 필요가 없는 아파트가 가장 편안한 공간이자 공간 일부를 잠시 공유해야 하는 엘리베이터가 가장 불편한 장소가 된 오늘날 현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현재 예식장과 장례식장의 형태는 반대로 ‘씨족공동체의 재결합’과 관련이 있다. 집안의 위세를 보여줄 수많은 하객과 화환을 담아야 하니 결혼식장의 로비는 상대적으로 비대해졌고, 로비에는 바로크 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화려한 조각과 장식이 들어섰다. 경건한 마음으로 찾아간 장례식장 입구에는 세계적 브랜드 파워를 지닌 카페와 각 은행을 대표하는 현금인출기가 늘어서 있다. 축의금만 넣고 바로 식당으로 향하는 하객, 명함과 소주잔을 돌리기에 여념 없는 조문객의 모습은 이 자리가 실은 사회적 교류의 장임을 의미한다. 사회적 교류가 축하와 애도라는 본래의 목적을 압도하면서 대한민국의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은 다른 사회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형태로 굳어졌다.
주홍 글씨보다 강력한 일제강점기의 찌꺼기들
어린 시절 우리는 선생님의 훈시를 받으며 교문을 통과했고, 구령대가 있는 운동장을 지나 교실로 들어갔다. 가을 운동회가 되면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어린이가 쥐어짤 수 있는 온 힘을 다해 경기에 임했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전교생의 반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우울해지기도 했다. 쿨해진 요즘 세대는 막판 계주에서 역전당한 친구를 향해 “괜찮아”를 연발할지도 모르지만 과거에는 며칠 간 공공의 적이 되어 시달려야만 했다.
이제는 아련하기만 한 학창 시절의 추억에 잠길 때쯤 예상치도 못한 저자의 질문이 치고 들어온다. 우리 학교의 배치는 왜 병영과 꼭 닮아 있고, 왜 기어이 학생들은 승패를 겨루어야 했냐고. 이 모든 게 일제강점기가 남긴 찌꺼기가 아니냐고 묻는다. 운동장, 구령대, 교사로 구성된 대한민국의 학교 배치는 연병장, 사열대, 막사로 이루어진 병영과 간판만 바꿔 달면 된다. 사례로 제시된 캘리포니아 초등학교 사진(37쪽)을 보면 우리가 처한 현실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동그란 마당을 중심으로 네 개의 건물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배치에서 위계와 질서를 주입하려는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전혀 다른 학교 배치가 단순하게만은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그 모습이 서로 다른 교육 철학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영 같은 학교가 원하는 학생상은 자율적 개인이 아닌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투신하는 무리가 아닐까. 학교는 공간으로 이루어진 교과서라는 저자의 말은 그래서 더욱 비감하게 다가온다.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은 빨강에 면죄부를 씌어주기까지
일제강점기가 남겨놓은 교복을 벗고, 분단이 남겨놓은 군복을 벗었다고 해서 몸에 밴 군사 문화까지 털어낸 것은 아니었다. 군사 문화는 자연스레 건설 문화로 스며들었고, 결과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도시와 규모와 속도에만 신경 쓴 건축물이 남았다. 군사 문화를 바탕으로 한 건설 문화가 정점을 찍은 사건이 서울 올림픽이었다. 경제적으로 북한에 우위에 있음을 전 세계에 알릴 멋진 그림이 필요했으니 유람선을 띄운 한강이야 말로 최고의 피사체였다. 한강 수심이 낮으면 하구에 댐을 세워 수심을 높이면 그만이었고, 북한의 공격 시 재빠른 복구를 위해 낮게 지어진 잠수교(166~167쪽)는 금세 활처럼 부풀어 올려졌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과격한 군대 구호는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온 세상이 빨강에 강박적으로 반응하던 때가 있었다. 색이 아닌 이데올로기를 지칭하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북한과 대치하는 한 이데올로기의 굴레를 벗지 못할 것 같았던 빨강에 면죄부가 씌어진 사건이 등장했다. 2002년 월드컵이다. 빨강이 이데올로기에서 자신감의 표현으로, 나아가 보수 정당의 상징색이 되는 과정은 그 논리를 이성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작스럽게 전개되었다. 그래서일까 빨강을 축제의 색으로 당당하게 쓸 줄 아는 세대는 도시에 광장을 선물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광장을 제대로 쓸 줄 모른다. 벼락 같이 들끓는 변화가 그 포문을 열었다면, 그 변화가 건강히 뿌리내릴 수 있느냐는 사회 구성원의 지속적인 노력에 달려 있다.
과거의 질문도 과거의 대답도 유효한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 대한민국
막장 로맨스의 산파인 러브호텔은 어떻게 신도시까지 밀고 들어오게 되었을까? 도서관은 왜 책의 창고로 전락하고 말았을까? 관공서는 왜 여전히 조선시대의 유물처럼 남아 시민의 접근권을 무시하고 있을까?……
질문은 피곤하다. 질문은 새로운 질문을 낳고, 질문에 대응하는 나름의 답을 찾아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질문은 위험하다. 질문을 제기한 순간부터 당연해 보였던 현실이 불편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저자 서현이 1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 힘든 과정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의 질문도 과거의 대답도 아직은 유효한, 그래서 여전히 과거를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자문하게 되는 대한민국 사회와 건축계의 현실 때문은 아닐까.
건축은 시대를 담는 그릇이다. 그렇기에 건축을 향한 질문은 소수의 건축가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는 건축이란 그릇에 어떤 시대를 담고 있는지, 혹시 그 그릇이 깨어지기 직전에 이른 건 아닌지 모두가 한번쯤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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