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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자기집 거실에서 열린 '작은 결혼식' 이야기

이런저런 이야기/작은 집이 아름답다

by 소나무맨 2014. 1. 2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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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자기집 거실에서 열린 '작은 결혼식' 이야기. 2014/01/17 21:24 추천 0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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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주례*와 통역이 대동된 진지한 식.

(* Civil Celebrant-종교지도자 앞에서 서약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 셀러브런트 코스를 마치고 국가기관에 정식 등록된

결혼 진행자(?)를 불러 법적인 절차를 대행토록 한다.)

요즘 한국에서도 작은 결혼식 이야기가 많이 오가는 듯 한데,

호주에서도 작은 결혼식은 흔한 일이다.

얼마전 알게된 이웃 지인의 결혼식은 자기집 거실에서 14명을 불러놓고 거행한

아주 작은 결혼식이었다.

오늘은 그 얘기나 좀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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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을 몇주간 갔다가 와보니 아들 학교에

중국 여자 아이 하나가 전학을 와 있었다.

도대체 이 깊은 시골에 이 아이는 어떻게 온걸까?^^ 라며 궁금해 하던 차에

아이의 부모를 만날 수 있었다.

좀 당황스럽게도

나이가 지긋한 (이른 70대) 호주 할아버지와 결혼을 약속하고 건너온

40대 초반의 여인 커플이었다.

어찌어찌 이 여인을 인터넷으로 알게 된 할아버지가 중국에 가서

6개월간 그녀와 살다가 호주로 데려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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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우리를 보자 눈물을 쏟을 듯 반가워 했다.

아시안 하나없는 시골에서

말도 안통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가

근처에 산다던 노란 얼굴 검은 머리의 사람들을 마침내 만났으니...

게다가 내 남편은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중국어까지 하니

그녀는 무지막지하게 자국어를 쏟아내며 감격을.

나의 아들과 그집 딸은 같은 반이라 또다른 동질감을 느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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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의 웨딩 케잌.

마른 과일과 럼주, 설탕을 듬뿍넣어 오랜시간 보관할 수 있다.

주로 하객들과 현장에서 썰어 나눠먹거나

한조각씩 포장해 하객들 집에 갈 때 들려보내거나 하는데,

몇 단으로 올린 큰 케익일 경우

10년이 넘도록 보관하며 먹기도 한다.

어떤이는 자기 아들 돌잔치 때 이렇게 보관한 케잌을 이용하기도 하고,

해마다 결혼 기념일 때 꺼내 한조각씩 썰어 먹는 이들도 있다.

설탕과 알콜,두꺼운 아이싱이 장기보관을 가능케 하며,

오래될수록 재료들이 숙성해 맛이 깊어진단다.

당근 대단한 고칼로리 음식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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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치즈를 곁들인 애피타이저

그래서 본의 아니게(?) 우리는 빠른 시일내에 좀 가까워졌고

얼마 뒤에 있을 결혼식에 남편이 통역 부탁까지 받으며

온가족이 결혼식 초대를 받은 것이었다.

난 얼핏드는 머릿속의 편견들을 깨부수려 노력하며,

또 필요에 의해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관계에 대해 나름 조심하며,

그동안 그녀의 집에 저녁초대도 받아가고

또 답례로 우리집에 초대도 하며 어울렸는데..

생각보다 그녀는 매우 깨어있고 적극적인 현대여성이었고,

(배고픔을 해결하려는 빈곤한 아시안 여성은 아니었다는.)

남편 또한 매우 상식적이고 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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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크림 애피타이저

그래서 얼마뒤 결혼식에 가게되었을 때는

진정으로 축하하하는 마음을 가지고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집은 호주 시골집답게 넓었고

사방으로 정원이 넓었다.

원래는 야외 정원에서 식을 치를 계획이었지만

날씨가 춥고 흐려 거실에서 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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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식(main meal) 사진들은 없고^^

후식으로 나온 패션푸릇 케잌.

초대된 인원은 가족과 주례 사진사를 포함해 14명이었다.

거실에 삥둘러 안아 식을 보았고

인터넷을 연결해 중국가족들에게 실시간 중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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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처음해보는 것도 아닐텐데..

그들은 긴장하며 떨었고 중간 중간 눈물도 흘렸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고

새로운 출발이란 어쨌거나 두려운 면도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어떤 연령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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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랭, 생크림과 생과일을 올린 호주식 디저트 파블로바 (Pavlova).

어느 유명 요리사가 유명 발레리나(안나 파블로바)에게 헌정한다며 이름을 따다 부쳤다.

빙 둘어 앉은 이들이 진지하게 엄숙하게 식에 동참했다.

결혼서약까지 모두 끝나자

그집 딸과 울집 아들이 정원에서 거둬 온 장미꽃잎을 몇 바구니나 뿌렸다.

엄마의 결혼을 저리 즐거워하다니..

딸의 축하를 받으며 하는 결혼이라니.

우리는 모두 환한 미소로 신랑 신부를 포옹하고 덕담을 나누고 놀다가

피로연이 열리는 마을의 골프클럽으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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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케잌

작은 클럽이고 마을 사람들의 봉사로 운영되는 클럽이라

마을 여인들이 직접 음식을 준비했고 서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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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은 롤케잌 위에 크림과 젤리를 올린 호주식 디저트, 트라이플(Tri[ple).

이 날의 주인공 신부는 여러가지로 낯설어했고 미숙했다.

호주 결혼식에선 오로지 신부가 주인공인지라

신랑신부의 자리를 맨앞에 따로 마련하고 칭송하는 분위기인데,

그녀는 이해를 못하고 엉뚱한 자리에 앉아 식사를 했으며,

하객들을 서빙하며 뒤로 물러서서 겸손하게 군다...;;

그리고는 음식이 남아 돌아

몇 접시를 집에 싸왔을 정도인데도,

왜 음식이 이것뿐인지 모르겠다며 황당해 한다.

아마도 중국식으로 접시를 테이블 위에 몇단으로 겹치지 않아서 그러는건지,

자기가 지불한 돈에 비해 비싸다 생각해서 그러는건지...

문화의 차이.

그녀는 중간에 드레스를 벗고 옷을 갈아입었는데..

하필 청바지에 반짝이는 셔츠를..

청바지는 작업복으로 취급되는 옷인데,

결혼식날 신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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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반복되는 실수를 말해줘야 되나 마나 갈등 하기를 몇번.

그러나 대체로 가만히 있었다.

첫째는 그녀와 나 사이에 편하게 소통할 만한 언어가 없었다.

둘째는 그녀가 어떤 실수를 해도 오늘의 주인공이고

하객들이 모두 당황스러움을 감수하며 결혼을 축하하고 피로연을 즐기는데,

굳이 그녀 머리속에 혼란을 더할 필요는 없는거다.

이 파티는 어쩄거나 그녀 것이고 우리가 이해하고 넘어가면 그만이고..

예전에도 두 문화가 충돌하는 사이에 서서 (주로 한국과 호주 문화)

불편해 했던 적이 여러번 있다.

그때는 언어장벽도 없고

도와준 다는 생각에

이런 저런 조언을 하며 시도때도 없이 끼어 들어야하는 상황이 많았는데,

알아듣고 고마워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내 방식만 고수하는 불통들도 있었다.

모르는 이들은 모르고

아는 이들은 감지할 수 밖에 없는

이런 상황들이 불편하고

조정을 할수도 안할수도 없는 애매함이 싫어

문화가 충돌할지도 모르는 상황들을 최대한 피하려던 시기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날 좀 편한 마음으로 이 피로연을 즐기면서

아무래도 그녀가 나와는 좀 거리가 있어

내가 담담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문화적 충돌이라는 것도

성숙한 누군가가 덮으면서 흘러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 깨달음이 나에게는 나름 큰 인식의 변화를 일으키는 부분이기도 했고

결혼식 주인공과 서로 처음 만난 하객들이 모두 한 공간에서

이리도 진지하고 친밀하게, 오붓하고 여유있게 시간을 즐기며 보냈다는 점에서

결혼식의 본 의미가 잘 살아났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이 시간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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