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호텔 부럽지 않은 잣나무숲의 고요한 하룻밤

숲에 관하여/숲, 평화, 생명, 종교

by 소나무맨 2014. 1. 4. 21:41

본문

 

 

[미니멀캠핑 | 연인산] 호텔 부럽지 않은 잣나무숲의 고요한 하룻밤

백패킹 마니아들이 꼽은 수도권 최고의 야영터 월간산 | 글·신준범 기자 | 입력 2014.01.02 14:57




↑ [월간산]시간이 멈춘 듯 평화로운 잣나무숲에서 야영한다. 칠성급 호텔 부럽지 않은 운치 있는 숲의 저녁이다.

"수도권 최고의 숲 속 야영지는 바로 거기죠."

미니멀캠핑 마니아들은 자기만의 캠핑지가 있다. 스스로 발굴해 낸 고요한 어느 지점, 그리곤 혼자만의 비밀 장소로 삼는다. 아무에게도 알려 주지 않는 것이다. 이런 마니아들이 꼽는 수도권 최고의 야영지는 연인산(1,068.2m)이다. 단순히 터만 좋다고 해서 최고의 야영지가 될 수 없다. 주차장에서 너무 멀지 않아야 하고, 물도 있어야 한다. 연인산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곳,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잣나무숲'으로 간다.

마일리 국수당 등산로 입구에 차를 세우고 배낭을 둘러맨다. 바다, 그것도 제주 바다처럼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산에 든다. 매트리스를 매단 듬직한 배낭을 둘러맨 이들은 안명선(아이더 검단산점장)씨와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인 최은경씨다.

그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당시 여고생으로 출전해 쇼트트랙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1,500m에서 은메달을 땄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도 3,000m 계주와 1,500m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땄다. 2008년 은퇴했으며 현재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스포츠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아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은행 나뭇잎의 노란 융단이 기분 좋게 사람을 맞는다. 연인산 안내판을 지나자 본격적으로 오르막 산길이다. 부담스럽지 않은 건 한 시간만 올라가면 우정고개에 닿고 거기서 10분만 가면 야영지에 닿기 때문이다.





↑ [월간산]1 국수당에서 우정고개로 이어진 길. 연인산 능선으로 이어진 최단코스인 탓에 많은 등산객들이 다닌다. 2 연인능선을 내려와 우정고개로 이어진 임도를 걷는다. 초겨울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운치 있는 숲길이다.

알파벳 Y모양의 큰 잣나무를 지나자 노란 눈이 내린다. 잣나무의 노란 솔잎이 느리게 떨어지고 바닥엔 노란 융단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오르막에 몸과 마음을 묻고 한동안 몰두하자 우정고개다. 열린 경치는 없지만 정상에 온 듯 상쾌하다.

우정고개는 육거리다. 임도 3개와 등산로 3개가 교차하는 보기 드문 곳이다. 원래 전패고개였으나 가평군에서 이름을 바꿨다. 연인산과 우정봉도 가평군에서 1999년에 새로 지은 이름이다. 본래 연인산 정상인 1,068.2m봉은 국토지리원 발행 지형도에는 이름 없이 높이만 표기되어 있었다. 상판리 주민들은 이 봉을 우목봉이라 불렀다. 조선조 문헌에는 월출봉으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 상판리에서 보면 이 산 위로 달이 뜬다 해서 그렇다.

산이 아닌 '봉'으로 불려 명지산의 위성봉 정도로 취급 받던 산이 '연인산'이라는 친근감 있는 이름으로 바뀌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어찌됐건 개명을 통해 스타가 된 산이다.

이때쯤이면 능선에 뼈대만 남은 나무들이 헐벗은 마네킹처럼 서 있어야 하지만 연인산 능선은 잣나무가 많아 여전히 푸른빛이 돈다. 아직 겨울 같지 않다. 잣나무 사이를 억새가 드문드문 채우고, 오후의 누운 햇살에 황금색으로 억새가 빛난다. 우정고개는 등산인들과 산악자전거 동호인들이 지나는 교통의 요지답게 통신사 중계기가 있어 통화가 잘 된다.





↑ [월간산]우정고개에서 우정봉으로 이어진 능선길. 바다보다 더 파란 하늘이 경치의 완성도를 높인다.

묘하게 걸음이 설렌다. '시간이 멈춘 듯한 숲'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임도를 타고 내려가 작은 도랑을 넘어 순한 지능선 위에 올라선다. 일순간 세상이 정적에 잠긴다. 거짓말처럼 시간이 멈추었다. 거대하고 똑바른 잣나무숲이 아늑하게 펼쳐진다.

오후 햇살이 도인처럼 명상에 잠긴 잣나무 사이를 내려서고, 와중에 솔잎은 슬로비디오로 떨어지는 것 같은 꿈결 같은 착각. 도시를 떠나 산에 온 정도를 넘어, 다른 시공간에 온 듯한 깊고 진중한 평화가 감돈다. 이 숲에서 잠들면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도 깊이가 있어질 것 같은 기분이다. 과연 수도권 최고의 야영터다.

텐트를 치고 물을 긷는다.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니 작은 개울이 있다. 수량은 적지만 맑아 식수로 모자람 없다. 준비해 온 음식을 꺼내 축복 받은 잣나무숲의 저녁을 즐긴다. 해가 지자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고 순수한 어둠이 찾아온다. 램프를 켜고 두런두런 지나온 산 이야기로 잣나무숲을 채운다.

숙면을 하고 짐을 싼다. 우정능선을 종주해 정상을 올라 연인능선으로 내려와 다시 여기로 되돌아올 계획이다. 미니멀캠핑 장비를 모두 가져갈 필요는 없으니, 나무 뒤에 슬쩍 숨겨두고 간다. 우정고개에 닿자 자명종처럼 딱따구리 소리가 크게 울린다.





↑ [월간산]1 우정고개 인근의 고요한 잣나무숲. 마니아들이 꼽은 수도권 최고의 야영터 중 한 곳이다. 2 우정능선의 서리가 내린 낙엽과 산거울.

싸늘한 아침 기온에 몇 겹을 입었다가 산을 오르며 하나둘씩 벗는다. 능선엔 마른 가지들만 나부껴도 휘황찬란하다. 금빛 억새는 가을의 끈을 놓지 않아, 아직 잔치가 끝나지 않았다며 춤을 추자고 손을 내민다. 수북이 깔린 낙엽은 침대 위를 걷는 것 마냥 푹신하다 못해 조심해야 할 정도다.

"싸그락 싸그락" 하는 낙엽 밟는 소리가 익숙해져 들리지 않을 쯤 우정봉이 가깝게 다가와 있다. 산불방화선이 여유롭게 자리 잡은 능선길은 푹신한 흙길 위주라 이어지는 오르막이 어렵지 않다. 죽은 구상나무가 산지기처럼 서 있는 우정봉에 닿자 남쪽과 서쪽으로 경치가 터진다. 눈 닿는 곳마다 화려한 산국의 향연이다. 연인산은 이름처럼 둥글둥글 포근한 산세로 흘러내린다.

지나온 산줄기를 보면 능선을 기준으로 동쪽은 푸르고 서쪽은 마른 가지들이 가득해 산의 속살이 드러난다. 동쪽이 잣나무가 많아서다. 첩첩산중의 남쪽보다 시선을 끄는 건 서쪽의 비범한 산, 운악산이다. 순백의 바위가 산 곳곳에 솟아 자연스럽게 눈길을 끌어당긴다. 우정봉에는 정상 표지석은 없고 '연인산 2.3km' 남았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연인산의 다른 이름은 '연인 깨기산'?





↑ [월간산]국수당에서 우정고개로 이어진 길. 푸른 잣나무와 아직 떨어지지 않은 잎들이 한 여름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임도처럼 넓은 능선길에 걸음이 가볍다. 능선은 거대한 보아구렁이처럼 몸을 좌우로 흔들며 고도를 높인다. 어느덧 신갈나무가 점령한 앙상한 숲이 나타나 시선이 닿는 저 끝까지 뻗어 있다. 헐벗고 마른 겨울산은 숨김없이 산의 골격을 드러낸다. 두세 명이 나란히 걸어도 좋을 여유로운 산길은 오르막임에도 속도 내기 좋다.

구렁이의 부드러운 흐름을 따라 오르막을 올라서자 연인산에서 가장 넓은 전망터인 1,048m봉 헬기장이다. 정면으로 연인산 정상이 표지석까지 보일 정도로 가깝다. 더 먼 곳엔 명지산이 드문드문 뿔 같은 바위를 지닌 채 거칠게 솟았다. 연인산이 여성스런 부드러운 산세라면 명지산은 남성적인 힘의 산이다. 명지산 왼쪽 너머로는 한북정맥 최고봉 국망봉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경기도 최고봉 화악산이 막강한 산세를 과시하고 있다. 경기도 알프스인 가평군 북면 일대에 명산들이 군웅할거하고 있다.

안부로 한 번 내려선 뒤 구상나무가 드문드문 초록을 드러낸 정상을 오른다. 잠깐 뒤돌아보니 무인대피소가 보인다. 무인대피소를 비롯한 정상 일대의 완만한 터를 가평에서는 '아홉마지기'라 이른다. 좁씨를 아홉 말이나 뿌렸을 정도로 완만한 터가 넓다고 해서다. 이곳에 얽힌 전설이 있다.

옛날 숯을 굽는 청년과 참판댁의 여종이 사랑에 빠졌다. 결혼을 청한 청년에게 참판은 조 100석을 가져오면 결혼시켜 주겠다고 했다. 청년은 연인산 정상 부근의 분지를 발견해 아홉 마지기의 밭을 일궈 조 100석을 마련한다. 그러나 참판이 역적의 아들로 몰아 청년은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실의에 찬 청년은 아홉마지기 밭에 불을 질러 그 속에 뛰어들어 죽고, 처녀도 따라 죽었다.





↑ [월간산]부드러운 굴곡의 우정능선에는 억새가 아직 남아 가을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정상에 닿자 하트 모양의 표지석이 '사랑과 소망이 이뤄지는 곳'에 온 걸 반긴다. 4방위를 표시한 반석 위에 올라서자 파노라마 경치가 펼쳐진다. 싱그러운 하늘은 더 없이 푸르러 먼 곳에 있는 산은 바다 위에 뜬 섬산 같다.

상당히 가팔라 연인이 오면 싸울 것 같은 연인능선을 중력에 몸을 맡겨 내려서자 휴식 같은 임도다. 실제로 연인산의 다른 별명은 '연인 깨기산'이다. 낭만적인 이름만 보고 온 젊은 청춘들이 힘든 산행을 하다 말다툼을 벌여 종종 헤어지게 된다고 해서 붙었다. 평소 등산을 하지 않았다면 1,000m 넘는 산을 오르는 것이 쉬울 리 없다.

임도를 따라 어제의 잣나무숲으로 간다. 곳곳에서 축제다. 불꽃놀이의 가장 화려한 장면을 정지시켜 놓은 것 같은 새빨간 단풍이 기념사진을 찍지 않고는 못 가게 만든다. 임도는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뒤집는 축제의 향연을 만끽하며 '시간이 멈춘 숲'에 닿았다. 땀에 젖은 몸이 숲에 닿자 차분히 가라앉는다. 숨겨둔 짐을 찾아 하산 채비를 한다. 시간이 멈춘 매혹적인 숲을 떠난다.

산행 길잡이





↑ [월간산]1 늦가을의 색감이 화려한 산길. 밟을 때마다 "싸그락"하는 소리를 낸다. 2 경치가 시원한 연인산 정상. 하트 모양의 표지석이 독특하다

주차장에서 1시간만 오르면 캠핑지 닿아

연인산은 도립공원이라 원칙적으로는 야영이 불가하다. 그러나 주말이면 많은 마니아들이 찾을 정도로 수도권 야영과 비박의 메카로 손꼽힌다. 현실적으로 거의 지켜지지 않는 법인 셈이다. 특정 구역과 한정된 인원에 한해 야영을 허가하는 법의 유연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수도권 최고의 야영터로 불리는 잣나무숲은 국수당을 올라와 우정고개에서 직진하면 된다. 세 개의 임도 중 가운데 임도다. 5~10분을 내려가면 왼편으로 길이 나 있다. 올라서면 그 숲이다.

국수당에서 우정고개까지 1.7km에 1시간 걸린다. 우정고개에서 정상까지 4.9km 거리에 3시간 정도 걸린다. 정상에서 연인능선을 거쳐 우정고개로 돌아오는 데 4.3km 거리에 1시간 30분 걸린다. 당일산행으로 가정했을 때 국수당 원점회귀는 12.6km에 7시간 정도 걸린다. 능선이 뚜렷하고 이정표가 있어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연인능선 내리막길이 가파르고 희미한 편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차체가 낮은 승용차는 국수당 등산로 입구까지 올라가지 말고 포장도로까지만 가는 것이 좋다. 동네에서 운영하는 유료주차 공터가 있다. 국수당 등산로 입구에 차량 3~4대를 세울 공터가 있다.





↑ [월간산]

교통

경기도 가평군 하면 현리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국수당 연인산 입구로 가는 버스가 3시간 간격(07:10~18:20)으로 운행한다. 연인산 회차 지점에서 900m 정도 길을 따라 걸으면 국수당 등산로 입구에 닿는다. 청량리역과 상봉역에서 1330-44번 좌석버스를 타면 현리에 닿는다. 30분 간격(07:00~24:00)으로 운행한다. 청평역에서도 현리행 버스가 2시간 간격으로 운행한다. 현리택시(031-585-0473, 584-7750)

숙식(지역번호 031)

현리에서 국수당으로 이어진 길에 업소가 간간이 있다. 디파우제펜션(585-8181), 통나무펜션(584-1666), 풀향기 머무는 집(584-6689), 자연의 소리(585-5750), 별무리펜션(010-5350-1133) 등의 숙소가 있다. 식당과 민박을 겸한 곳으로 산골유원지(585-5335), 민박식당(010-8381-1755) 등이 있다. 현리의 맛집으로 순대국과 선지해장국이 별미인 홍천순대국(585-6550), 토속적인 반찬과 전통순두부가 별미인 할머니순두부(533-5479) 등이 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