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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고기동에 지어진 나무 조립주택 ‘스테키 홈’의 외관과 집 안 모습. 집은 방향에 따라 다르게 조립할 수 있다. 스테키코리아 제공 |
[매거진 esc] 살고 싶은 집
실용성 견고성 강조하며 한국 상륙한 일본 스테키홈…가족유형별로 주택 디자인 제공하는 국내 브랜드 ‘리빙큐브’
조립식 집이라고 하면 샌드위치 패널로 지은 집을 떠올린다. 동시에 한 단어가 더 연상된다. 싸구려. 하지만 지금 설명하는 집은 나무집이다. 값이 싸지는 않다.
경기도 용인시 고기동 일대에 ‘스테키 홈’이 분양 신청을 받고 있다. 스테키 홈은 일본 목재사 나이스 그룹의 목조주택 브랜드다. 여러 모듈을 결합해 짓는 집이다. 한국 진출을 선언하며 이 회사가 야심차게 내세운 두 어휘는 나무, 그리고 39일이다. 39일은 집을 짓는 데 걸리는 날수다. 40일도 괜찮고 20일도 괜찮다. 이 숫자들은 내가 살아갈 내 이름의 집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순간 눈앞에서 그 집이 지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집이 지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아이가 있다면 함께 와서 볼 수 있다. 약간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으며 집을 짓는 일을 거들 수도 있단다. 이 숫자들은 집에 대한 인식을 전환한다. 이렇게 지어진 집에 오래오래 살 수 있을까? 39일 만에 완성된 나무집을 보러 갔다.
외관보다 집의 가치에 충실
30평대 시공비 2억원대
모듈러 방식 표준화 ‘리빙큐브’
6가지 유형 집 제시
작년에 열차를 타고 가나자와시를 지나갔다. 창밖으로 단출하게 지어진 비슷한 주택이 줄지어 있었다. 심심하게 간을 낸 맑은 뭇국 같았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거지 같은 정치인은 싫지만, 그 나라 사람들이 지은 집은 싫지 않았다. 고기동에 있는 스테키 홈 모델하우스는 그 집들과 비슷했다.
객관적인 사실만을 적자면 이렇다. 일단 가격. 집값만 2억원 중후반대이다. 복층이고 30평 내외다. 땅값을 더하면 훨씬 비싸진다. 나무로 집의 골격을 세웠다. 가격은 비싸지만 나무로 만든 집의 장점은 피톤치드가 나온다는 것이다. 새집에 가면 늘 머리가 아팠는데 이 집은 안 그렇다. 폴짝폴짝 뛰어서 공중의 나무에 손을 대며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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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고기동에 지어진 나무 조립주택 ‘스테키 홈’의 외관과 집 안 모습. 집은 방향에 따라 다르게 조립할 수 있다. 스테키코리아 제공 |
1층에 거실과 부엌이 있고 방은 2층에 두개가 있다. 가족 구성원이 집에 들어오면 거실을 온전히 다 거쳐서, 그리고 부엌을 바라보며 2층으로 올라가야 방에 도착하는 구조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대화가 부족한 현대 가족을 생각하면 이런 동선은 환기하는 바가 크다. 공간이 자연스럽게 가족을 이어준다.
2층을 두개의 공간이 아니라 세개의 공간으로 나누고 싶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면 방이 세개가 된다. 벽을 없애서 하나의 방으로 만들 수도 있다. 살다가 나중에 변경할 수도 있다. 베란다로 나가면 가까이에 산이 보인다. 숲 속의 집이다. 집 밖으로 나와 집 주변을 둘러보니 관목들이 집을 감싸고 있다. 넓진 않지만 마당이다. 상추를 심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년까지 이곳에 13채의 집이 들어설 예정이다. 왠지 서로 친하게 지낼 것 같다. 사족인데 진도 8의 지진에도 끄떡없다고 했다. 물론 대한민국에선 그런 지진이 생길 가능성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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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고기동에 지어진 나무 조립주택 ‘스테키 홈’의 외관과 집 안 모습. 집은 방향에 따라 다르게 조립할 수 있다. 스테키코리아 제공 |
“실용성, 안전, 집의 가치와 기능을 생각하고 지은 집입니다. 외관에 초점을 맞춘 집이 아니에요.” 스테키코리아 직원이 말한다. 좋은데 문제는 돈이다. 집값이 2억원 중후반대다. 그런데 돈 들인 티가 너무 안 난다. 가격을 고려하면 폼을 조금이라도 잡았어야 한다. 내부 마감재도 고급스러워 보이진 않는다. 3억원에 육박하는데 이렇게 수수하면 곤란하지.
고기동에서 강남 신사역까지 자가용을 타고 한시간이 안 걸린다. 출퇴근 시간에는 한시간쯤, 조금 더 걸릴 수도 있다. 비교적 서울 근교인 셈이다. 강남과의 거리를 고려할 때 보통 이 정도면 30평 아파트 전셋값이 싸게 잡아도 2억~3억원이 넘을듯하다. 밤에 문밖에 나가 앉아 흙을 밟으며 하늘을 보면 먼 곳에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신기하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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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고기동에 지어진 나무 조립주택 ‘스테키 홈’의 외관과 집 안 모습. 집은 방향에 따라 다르게 조립할 수 있다. 스테키코리아 제공 |
미사와홈, 세키스이하임도 최근 한국에 진출했다. 두 회사 다 일본의 큰 회사다. 가격은 스테키 홈과 비슷하다. 포스코에이앤씨와 삼성물산도 모듈러 건축 시장의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포스코에이앤씨는 마감까지 다 된 완제품으로서의 집이다. 포스코는 이 모듈, 즉 집을 쌓아 기숙사를 지었다. 삼성물산이 관심을 갖는 것은 ‘피시(PC) 콘크리트’다. 공장에서 콘크리트 주물을 떠서 집의 부분을 만든다. 대기업이 주도하는데다 많은 공정이 공장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공업화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개성적인 작은 시장도 눈을 떴다. 건축가들이 만든 네트워크인 ‘하우스 스타일’은 건축가가 제안하고 모듈러 방식으로 생산하는 표준화 주택 ‘리빙큐브’를 시행하고 있다. 목조 주택뿐만 아니라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된 집도 짓는다. 한국인의 생애주기와 생활 방식에 따라 6가지 유형의 집을 제시하는 ‘여섯 생(生)의 이야기’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다. 아이가 있는 가정을 위한 집, 은퇴한 부부를 위한 집 또는 독립을 선언한 청년을 위한 집, 대가족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집 등이다. 이 중 하나를 선택하고, 자신에게 맞는 형식으로 수정·보완하는 방식으로 설계가 이루어진다. 설계 단계에서부터 참여하는 방식이다. 시공사에 대한 자문도 구할 수 있다. 오차 없이 동일하게 재단된 상자에 몸을 맞춰 들어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우리 몸에 맞는 집의 형태에 대해 건축가, 시공사와 함께 고민해보는 것이다. 하우스 스타일의 김주원 대표는 “리빙큐브는 보편적 해법을 가진 집,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인 집을 짓기를 원한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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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조립식주택 1층과 2층 모형도. 집은 방향에 따라 다르게 조립할 수 있다. 스테키코리아 제공 |
6개의 표준 모델 중 아이가 있는 30~40대 부모가 고려할 만한 표준모델 ‘유년의 추억’의 경우 36평 기준 1억8천만원 정도다. 생활 방식과 집터의 모양에 대응할 수 있도록 단층형과 복층형 상품을 갖추고 있다. 리빙큐브 중 가장 작은 주택인 목조 레고하우스는 1층이 5.4평, 다락이 2.4평, 합쳐서 7.8평이다. 가격은 4천만원이다. 쉽게 넘볼만한 가격이 장점이다.
집은 삶의 거의 모든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우리가 사는 집이란 차가운 콘크리트로 된 네모난 상자다. 네모난 상자를 지우면 우리에게 떠오르는 집의 구체적인 이미지는 없다. 집은 현실을 이기지 못한다. 집에 대한 꿈은 통장 잔고 앞에서 무너진다. 그러나 꿈의 집이 더 이상 모호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은 사실이다. 영혼 없는 네모 상자가 아닌 집들이 지금 한국 땅에서 ‘심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우성/시인, <아레나 옴므 플러스> 기자
>>> 조립식 집이 궁금하다면
스테키 홈 스테키코리아 누리집(www.suteki.kr), 02-539-4915, www.youtube.com/watch?v=WiYC_nFw6v8에서 집을 짓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리빙큐브
hs@hausstyle.co.kr, 02-564-7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