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복지협의체, 그 기능을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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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보건복지가족부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4년마다 지역복지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수립된 지역복지계획은 민과 관의 대표자와 실무자로 구성된 지역사회복지협의체(이하 지사협)의 심의를 거치게 돼 있다. 그래서 2005년부터 모든 시군구는 사회복지사업법에 근거해 지사협을 설치 운영해 왔다.
이른바 중기 지역복지계획 수립을 위한 민관협의 기구다. 물론 지사협이 민관협의 기구이긴 하나, 엄연히 계획수립의 책임은 시‧군‧구청장에게 있기 때문에 엄격하게 말하면 관 중심의 조직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통치시대의 일방적인 하향식 국가복지 설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목표와 과정은, 분명 지역복지정책의 큰 변화이자 진전이었다.
지역복지는 지역사회복지계획에 의거해야
지사협의 주요업무만 보더라도, 그 중요성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지역사회복지계획 수립·건의, 지역복지 수요 및 전망, 사회복지시설과 재가복지에 대한 장·단기 공급대책에 관한 사항, 복지자원의 조달 및 관리에 관한 사항, 사회복지전달체계에 관한 사항, 사회복지·보건서비스의 연계 제공에 관한 사항, 지역사회복지에 관련된 통계의 수집과 정리에 관한 사항, 보건·복지서비스 연계사업 추진, 서비스 중복의 감소 및 서비스 제공자 관리에 대한 합리적 조정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다. 이렇듯 지사협이 가지고 있는 기능과 역할은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대체로 사회복지계가 이론의 여지없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바이기도 하다. 그래서 꾸준하게 민과 관이 협력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의 성과를 거두고 있고, 그래서 더욱 더 지사협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자치단체가 적잖은 예산을 배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광주도 예외는 아니다. 5개 구 모두 책임간사를 채용해 지원하고 있고,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지역복지계획 수립에 5천만원 남짓 투입하고 있다. 특히 광산구 같은 경우 지사협 활동이 전국적 귀감으로 손꼽힐 만큼 활발한 역할을 하고 있고, 보건복지부가 인정하고 여러 자치단체에서 견학을 오고 있을 정도로 주목받는 지자체 중 하나다.
지사협, 형식을 넘어 내용으로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기능을 갖고 있는 지사협이 지나치게 형식에만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단, 자치단체장의 무지가 가장 큰 문제다. 지역복지계획의 수립부터 시행까지 총괄책임을 맡고 있는 단체장이
도무지 그 기능과 역할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를 만큼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예산을 쓰면서도, 그 예산의 효과성이 무엇인지 검토조차 하지 않는다. 단순히 보건복지부 방침이고, 법령에 의거한 형식적 집행일뿐이지 그 의미에 대해선 깊이 체득하지도 못한 듯 보인다. 그래서 지사협의 중기 지역복지계획이 단순히 행정의 기존역할을 취합하는 형태로 전락되기도 한다. 의미없는 예산집행이자, 책자 발간하고 회의 몇 번 하는 정도로 취급되고 있는 형국이다. 심지어 사회복지사협회, 사회복지협의회 등의 민간조직과 구분조차 못할 만큼 형편없는 단체장도 있다. 지사협에 대한 몰이해, 거기에는 보다 근본적인 한계가 자리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 많은 예산을 들여 마련한 중기 복지계획과는 무관하게 단체장의 공약사항 집행이 먼저고, 공약사항 중 특히 복지공약이 중기 복지계획을 전혀 검토하지 않고 후보시절 선심성으로 남발된 탓이다. 단체장이 복지공약을 수립할 때에는 지역복지계획을 검토하고, 이에 기초해서 공약을 제시하는 게 합리적이다. 만일 계획을 변경하고자 할 때는 사회복지사업법상 지사협의 심의를 거치고, 이를 상급 자치단체 혹은 중앙부처에 그 내용을 제출하도록 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는 무관하게 공약을 세우고 집행하기 마련이니, 어찌 많은 예산을 들여 만든 지역복지계획이 제대로 시행되겠는가. 단체장이 이런 정도인데, 기초의회는 말 해 무엇 하겠는가. 예산을 심의 의결하는 의회 의원 중 과연 몇 명이나 지역복지계획에 따른 예산심의를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단체장의 무관심과 무지, 그게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지사협의 심의를 거쳐 수립된 지역사회복지계획 자체가 모든 단체장의 복지공약이 돼야 한다. 후보시절부터 동의여부를 구하고, 현직이면 지역사회복지계획 수립과정에서부터 자신의 공약이 반영될 수 있도록 설명하고, 그 합리적 타당성을 검증받는 과정을 거쳐야 계획서 자체가 휴지조각이 되는 걸 막을 수 있다. 그래야 예산낭비도 줄일 수 있다. 올해부터 착수해 내년에 완성될 지자체별 지역사회복지계획은 그 핵심적 내용만이라도 내년 지방선거 단체장 후보와 의회 후보들의 연서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민과 관이 협의하여 수립하는 계획에 기초해서 복지정책을 펴나가겠다는 다짐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 다음 문제는 담당공무원들의 태만이다. 단체장이 관심이 없으니, 공무원도 딱 그만큼 관심이 없다.
연차별 시행계획도 매년 형식적으로 만들고, 이 또한 기존의 복지행정 업무의 취합에 불과하다. 나머지 업무는 민간에서 뽑은 간사의 역할로 땜질하고, 나아가 민간 간사의 상전 노릇하며 갑질을 하는 경우까지 있다.
그래서 예외없이 각 구별 지사협 간사는 담당공무원의 업무대행이자 하급 수족으로 전락되는 게 다반사다. 그렇다보니, 지역사회복지계획 수립단계에서부터 허술하기 짝이 없다. 몇 천 만원 용역비를 학계에 그저 관행적으로 위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또한 용역비가 부족해서 타 지자체의 베껴 쓰기 정도로 의심될 만큼 형편없는 보고서가 많다. 한 예로 그 많은 지역조사를 해 놓고도, 대한민국 자살률 통계는 있는데, 기초지자체와 각 동별 자살률은 통계조차 없다. 단적으로 지금 지역사회복지계획의 수준이 이런 정도다. 각 구별로 천편일률적이라는 얘기다.
이런 식이면 예산낭비, 이제는 제대로!
이제는 예산낭비 그만 하자. 민간 대표자와 실무자들도 들러리 그만 서자. 회의 때 아무 말도 없이 앉아서 회의 끝나면 회의비만 챙겨가는 지사협 회의가 무슨 소꿉장난이란 말인가. 3기 지역사회복지계획은 그야말로 제대로 수립해야 한다.
민간과 행정이 머리를 맞대고 과정부터 치열하게 토론해서 지역복지를 새롭게 설계하자.
관행적으로 학계에 위탁하는 방식도 좀 바꾸자. 거칠더라도 실현가능한 계획을 현장 중심으로 수립하는 게 옳다.
그리고 내년 지방선거 후보자들에게 핵심계획 정도는 확답을 받자. 그래야 지역이 살고 복지가 산다. 그런 과정이 전제돼야 지역복지에 대해서 좀 식견이 있는 단체장도 고를 수 있질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