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대리운전도 "협동조합"...두달새 225개

2013. 12. 5. 21:24경제/대안사회경제, 협동조합

구멍가게·대리운전도 "협동조합"...두달새 225개

 

영세상인들, 골목상권 지형도 바꿀 수도..."보조금 보고 무작정 신청했다간 낭패"

 


#부산에서 구멍가게 160개를 모아 지난해 12월 '골목가게협동조합'을 설립한 장남권씨.

장 씨는 최근 부산시내 한 상가를 임대하면서 깊은 감회에 사로잡혔다. 이 상가 자리에도 과거 골목가게가 있었다. 그러나 인근에 홈플러스 기업형슈퍼마켓(SSM)이 개점하며 속절없이 문을 닫아야 했다. 골목가게협동조합은 이 상가를 조합 온라인 쇼핑몰의 오프라인매장 겸 물류기지로 쓸 예정이다. 골목가게를 몰아낸 SSM 바로 옆에 협동조합 매장을 내고 '맞짱' 승부를 벌이게 된 셈이다.

협동조합기본법이 지난해 12월 시행되면서 협동조합 설립 신청이 전국에서 쇄도하고 있다. 재래시장 상인들이 모여 골목상권 수호를 위한 협동조합을 만드는가 하면 장난감을 대여해주는 협동조합, 퀵서비스 및 대리운전 기사들이 모여 만든 협동조합도 문을 열었다. 아직 출범 단계지만 앞으로 이들이 유력사업자로 성장한다면 협동조합이 상권의 지형도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법 시행 두 달이 지난 1월 말 현재 협동조합 총 신청 건수는 사회적 협동조합 29개, 일반협동조합연합회 1개, 일반협동조합 319개 등 총 349개에 달한다.

이 중 사회적 협동조합 4개, 일반협동조합 221개 등 총 225개 협동조합이 인가돼 현재 운영 중이거나 운영을 준비 중이다. 하루 평균 약 네 개꼴로 협동조합이 생긴 셈이다.

협동조합은 크게 사회적 협동조합과 일반 협동조합으로 나뉜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비영리단체로 운영되며 수익을 사회취약계층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정부부처가 인가해야만 설립이 가능하다. 1월 말까지 기획재정부가 2개, 농림축산부가 1개, 고용노동부가 1개를 각각 인가했다. 취약계층에 도시락을 지원하는 '행복도시락협동조합'과 이주민들을 고용하는 '카페오아시아' 등이 대표적이다.





사회적 협동조합 '카페오아시아'에서 다문화가정 이주여성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일반 사업자들이 설립할 수 있는 일반협동조합은 이윤 추구가 가능하다. 사업 타당성이 검증되면 정부로부터 최대 1억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두 달 만에 서울서 51개, 광주에서 64개 등 총 221개가 설립을 승인받았다.

장 씨가 주도한 골목가게협동조합 역시 일반협동조합이다. 일반협동조합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사회적 약자계층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골목가게협동조합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골목가게협동조합은 최근 조합원이 219명으로 늘었다. 가입 점포는 총 210개다. 대부분 일반 슈퍼마켓이다. 이들은 협동조합 공동으로 제품을 공급받고 적정 마진을 붙여 판매한다. 구멍가게의 가장 큰 숙원인 '규모의 경제'가 형성되는 셈이다. 수백 개 점포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 공급처와의 가격 협상에 힘이 실린다. 점포 소득이 늘어남은 물론 소비자들에게도 이익이 돌아간다는 것이 조합의 설명이다.

그간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인터넷 쇼핑 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게 됐다. 장 씨는 "매장에서 판매가 어려운 것들은 인터넷 쇼핑몰을 만들어 마진을 최소화해 판매할 것"이라며 "육류 등 다양한 부문에서 대형할인점보다 싼 가격에 공급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서울에서 이창수 씨가 주도해 설립한 한국대리운전협동조합에는 22명의 대리운전기사가 출자, 참여했다. 그간 사업의 불투명성을 지적받아 온 상조 관련 협동조합 설립을 신고한 경우도 전국적으로 여러 건이다. 개인택시 복지 협동조합이나 주차협동조합 등도 설립이 신고 됐다.

소규모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소외계층 지원 사업을 위한 협동조합도 속속 설립되고 있다. 요양보호사협동조합(서울), 한국고령근로자협동조합(서울), 대구다문화협동조합(대구), 어린이장난감협동조합(광주) 등이 대표적이다.

관계자들은 협동조합이 지역경제에 궁극적으로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영세사업자들이 힘을 합치고 정부 지원이 더해질 경우 사업상 시너지가 크다는 것이다. 부산시청의 한 협동조합 관계자는 "협동조합은 영세사업자들에게는 극적인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며 "구성원들이 얼마나 제도에 맞춰 성실하게 사업에 임하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 지원을 믿고 부실한 사업계획으로 협동조합에 임할 경우 오히려 큰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 지원금이 설립 즉시 지원되는 것이 아니라 사업 타당성에 대한 검토를 끝낸 후 지급되기 때문이다. 부실한 사업계획을 갖고 협동조합을 만들었다가는 자칫 초기 자본금만 날리고 기존 사업에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부산시청 관계자는 "의욕이 넘치는 협동조합들이 복수의 사업을 하겠다고 계획서를 내는 경우가 적잖다"며 "타당성 평가 등의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업에 대한 전문성 인만큼 핵심이 되는 사업에 주력하는 전략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협동조합 내에서도 같은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서울지역 협동조합 대표는 "정부에서 지원금을 준다니 너도나도 협동조합 신청서를 내는 모양인데 목표의식이 없이 시작했다가는 망하기 딱 좋다"며 "조합원들이 상부상조하고 노력해야만 협동조합이 제대로 운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협동조합 사업자들은 정부가 협동조합 사업을 의지 있게 끌고 가며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장 씨는 "골목가게들이 제품을 공동구매하는 과정에서 큰 액수의 보증증서가 필요한데 이런 부분에 대한 정부 지원책이 마련돼 있지 않다"며 "협동조합만 만들어놓고 지원제도를 보완하지 않으면 사업자들이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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