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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정원의 재해석 - 9. 중국정원 벤치마킹(하)-쑤저우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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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정원의 재해석 ]

전통정원의 재해석 - 9. 중국정원 벤치마킹(하)-쑤저우 정원 3選아름다운 경관 풍부한 산물…강남 정원 중 으뜸
정진우  |  epicure@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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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10  11:5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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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정원

중국의 민간정원인 사가원림은 강남지역이 구심점이다. 중국에서 강남은 창장(長江)이남의 장쑤성(江蘇省) 일부, 저장성(浙江省) 일부, 상하이(上海) 등을 가리킨다. 물산이 풍부하고 전통적인 상업지역인 강남은 거상, 문인, 은퇴관료들이 많이 거주했던 문화예술의 중심이기도 했다. 이 가운데서도 수향(水鄕)인 쑤저우(蘇州)는 '상유천당 하유소항(上有天堂 下有蘇杭·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는 말처럼 중국에서도 자연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명나라이후 중국정원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바다와 같은 넓은 호수인 태호(太湖)와 평지를 두른 쑤저우에서는 바위·나무 등 조원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었고, 경제적·문화적 기반이 심후했던 만큼 유명 문인과 정치인들이 앞다퉈 '명원만들기'에 나설 수 있었다.

쑤저우의 정원은 '천하의 원림은 강남에 있고, 쑤저우의 정원이 가장 으뜸'이라는 찬사와 함께 중국 남방 고전원림건축예술의 정수로 알려져 있다. 송대부터 이어진 쑤저우 정원은 200여곳. 지금은 10곳 가량이 복원된 상태다. 특히 졸정원과 유원은 중국의 4대 명원으로 평가받는다. 이에 졸정원(拙政園), 사자림(獅子林), 유원(留園) 등 쑤저우의 유명 정원 3곳을 지면으로 소개해 본다.

● '중국정원 자존심' 졸정원
- 정갈한 운치 아마추어 화가 북적 / 부지 최대규모 보존도 가장 완벽

  
▲ 졸정원

중국의 크고 작은 정원에서는 운치와 정경을 화폭에 가득 담으려는 화가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중국정원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졸정원에서도 아마추어 화가나 미술학도들이 수두룩했다.

중국의 원림건축이 '옛사람들이 꿈꾸던 이상향의 축소판'이었던 만큼 화가들이나 사진가들이 예술적 감흥을 충전하기 위해 유명정원을 찾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다. 굳이 화가가 아니더라도 졸정원에서 들어서면 관조와 소요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졸정원은 쑤저우 정원 가운데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보존도 가장 완벽하다. 부지면적이 5만1570㎡에 달한다. 명나라 정덕제때인 1509년 어사벼슬을 지낸 왕헌신(王獻臣)이 지었다. 설계에만 3년이 걸렸고, 공사기간도 13년을 넘기는 등 조성기간만 16년의 공력을 들였다.

졸정이라는 명칭은 진(晉)나라 시인 반악(潘岳)이 지은 '한거부'(閑居賦)에서 '졸자지위정'(拙者之爲政·채소밭에 물을 주고 채소를 가꾸는 것도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위정이다)이라는 글귀에서 빌렸다. 권력을 잃고 낙향한 왕헌신이 당시의 세도가를 꼬집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호수가 전체의 2/3를 차지하고, 연못이 원림의 중심을 관통한 뒤 그 둘레를 감싸돈다. 원향당을 비롯해 수기정, 의옥헌, 대상정, 설향운울정, 하풍사면정, 견산루, 향주, 삼십육원앙관, 십팔만다라관, 유청각 등은 대부분 물가에 자리잡고 있다. 이는 수면에 비친 건물을 감상하다는 의도가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서쪽에 위치한 선정에는 푸른빛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남아 있다.

● '가산천국' 사자림
- 자연스러운 것보다 인공미 강조 / 태호석 산봉우리 구사봉 인상적

  
▲ 사자림

사자림을 처음 찾는 사람이라면 인공바위산에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을 것이다. 커다란 구멍이 뚫린 태호석을 이어붙여 만든 캄캄한 동굴길을 지나면서 지나친 인공미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다. 하지만 가산(假山)을 오르내리다 보면 기흐름의 완급조절을 체감할 수 있다.

사자림은 강남원림 가운데서도 가산이 유독 많다. 가산의 면적은 1152㎡에 이른다. 가산 위의 돌길은 우회하면서 기복이 많고, 석조 봉우리의 형태는 사자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역동적이다. 경쾌한 리듬속에서도 다소 지친다 싶으면 정적인 그윽함이 보인다.

사자림은 처음에는 사찰원림으로 건설됐고, 이로 인해 사가원림의 특색과 사찰원림의 체취가 공존하는 곳이다.

부지면적이 8800㎡로, 원나라 혜종때인 1342년 선승 유칙(惟則)이 조성했다. 정원 안에 사자와 비슷하게 생긴 전설 속의 맹수를 닮은 기암괴석이 발견됐다며 사자림보리정종사(獅子林菩提正宗寺)로 명명하고, 줄여서 사자림이라고 불렀다.

쑤저우의 정원에 가산이 많은 것은 이 지역의 지리적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강남지방은 물은 풍부한 반면 평지로 이뤄진 지형이라는 점에서 정원에서 만큼은 산과 물이 중심이 되는 가경(假景)을 만들게 됐다.

한국 정원이 풍수를 고려해 정원을 배치했다면, 강남의 원림은 자연을 인간의 세상으로 끌어오는 방법을 택한 셈이다. 정원에는 태호석이 쌓여 산봉우리를 이룬 구사봉(九獅峰)이 있고, '총명한 사람은 9마리의 사자를 볼 수 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 '자체가 예술품' 유원
- 직선·곡선, 밝음과 어둠 절묘한 조화 / 明 서시태 개인정원…19세기말 재건

  
▲ 유원

운이 좋았다. 유원에 들어서는 순간, 한 여인이 조각배에 몸을 싣는 모습이 보였다. 그 여인은 비파를 연주하며 중국최고의 아름다운 소리라는 설창예술인 '평탄'을 선보였다. 유원이 배우들을 고용해 선보인 선상이벤트였다. 유원의 고즈넉한 정경과 중국악기의 선율이 어우러지며 유원의 품격과 몸값을 높여줬다. 굳이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유원은 직선과 곡선, 밝음과 어둠, 높음과 낮음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정원 자체를 예술품으로 만들어준다.

명나라 1525년에 세워진 유원은 서시태(徐時泰)의 개인 정원으로, 19세기말 당시 쑤저우에 있던 모든 정원들의 장점만을 골라서 재건됐다. 비교적 늦게 조성된 정원답게 졸정원의 물과 사자림의 돌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700m에 이르는 복도식 통로가 인상적이다. 중국 역대 문인들의 필적이 정교하게 새겨진 회랑과 화창이 유명하다.

여느 정원과 마찬가지로 중앙에 연못을 둔 유원은 서쪽과 북쪽은 가산, 동쪽과 남쪽은 정자·누각 등 건물로 이뤄진다. 유원은 한겨울의 정취를 으뜸으로 친다. 눈이 내릴 때 연못에 비친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라는 것.

중국 정원은 당대 최고의 건축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세월이 변했고, 사람들의 눈높이도 변했다. 전통정원이라는 기치를 내걸은 덕진공원에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뺄 것인지, 고민도 확신도 커졌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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