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생활을 예찬한 미국의 사상가 소로는 "자연을 두고 천국을 이야기하다니 지구를 모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숲을 두고 여름을 이야기하는 것 역시 지구를 모독하는 게 아닐까? 강렬한 태양도 수많은 초록 이파리에 가려 연약해지는 숲.
실수도 미련도 생각도 멈춘 그곳.
7월 어느 날, 숲으로 가자.

◆ 숲은 병원이다
히포크라테스는 사람이 고칠 수 없는 병은 자연에 맡기라고 말했다. 이는 그냥 신에게 목숨을 맡기라는 뜻이 아니라 자연이 가진 치유의 힘을 이야기한 거다. < 나를 살리는 숲, 숲으로 가자 > 를 쓴 작가 윤동혁이 숲을 "하늘이 만들어준 무료 병원"이라고 칭했듯, 나무는 치유 에너지를 발산한다. 나무의 에너지는 마치 천연 약재처럼 우리 몸속에 들어가 치유 효과를 낸다. 나무를 먹을 필요도, 태울 필요도 없다. 그저 나무 옆에만 있으면 된다. 일례로 아토피를 치유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숲 속의 오솔길을 매일 2시간씩 산책하는 것이다. 그 어떤 약도 이 원시적인 방법의 효과를 따라가지 못한다.
음이온이 좋다면 음이온를 발산하는 기계를 집에 들일 게 아니라 음이온이 폴폴 퍼져 나오는 숲으로 가는 게 옳다. 세포는 활성산소로부터 하루 1천 번의 공격을 받는다. 활성산소는 전자가 하나밖에 없어 모자라는 전자 하나를 세포로부터 빼앗는다. 전자를 약탈당한 세포는 제 기능을 잃고, 이것이 암세포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음이온을 한껏 받아들이면 음이온이 세포 대신 활성산소와 결합해 사라지기 때문에 세포들은 고스란히 보호받게 된다.
숲 속에서는 오전 10시쯤 음이온이 가장 많이 발산된다. 축축한 흙냄새와 풀냄새, 신선한 공기 등 우리가 숲에서 느끼는 모든 것이 바로 음이온 덕분이다. 신기한 것은 음이온이 피부로도 흡수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숲에서 신체의 많은 부분을 노출시킬수록 건강에 좋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벌거벗고 돌아다닐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겨울보다는 여름이 숲의 치유 효과를 얻기에 더 적합한 계절이다. 큰 나무가 몇 그루 서 있다면 그 근처에서 서성여봐라.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이온은 모두 당신 것이다. 이 여름, 숲에 발을 들인 당신이 마시는 것은 바로 숲의 생명력이다.

◆ 사람에겐 숲의 DNA가 있다
이렇게 구구절절 우리에게 숲이 왜 필요한지 과학적으로 논하지 않아도 된다. 기다란 나무가 마치 보디가드처럼 죽 늘어선 숲을 어슬렁대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왜인가? 새소리, 바람소리, 어쩌면 햇빛 소리까지 숲에는 온갖 자연의 소리가 있고, 그것들은 우리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그래서 숲에 들어서면 어느 누구도 황급히 뛰지 않는다. 우리는 마치 누군가한테서 배우기라도 한 듯 숲에 들어서면 깊은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걷는다. 우리의 DNA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는 것이다.
사람, 특히 도시인에게 숲은 낯선 공간일 것이다. 병원에서 태어나 삼칠일간 꼼짝없이 갇혀 있다가 우주복에 꽁꽁 싸여 첫 외출을 해봤자 도시 한복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숲에 처음 간 아이들도 금방 겁을 털어버린다. 나무줄기의 단단한 껍질을 만져보고, 이파리를 뜯어 씹어보고, 흙장난을 한다. 거침없는 행동에 엄마들은 경악하며 '에이 지지~'를 외치지만 아이들은 개의치 않는다. 아이들의 DNA에도 숲이 있다. 인류는 수백만 년간 숲과 함께 살아왔기에 그 기억이 아이들의 유전자에도 새겨져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숲의 존재들이 하나도 두렵지 않다.
◆ 숲은 가장 건강한 공간이다
숲은 아주 작은 미생물부터 커다란 들짐승까지 모든 생태계를 품고 있다. 수많은 식물과 동물, 풀꽃과 나무, 곤충과 새들이 서로 치열하게 공생하며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존재는 식물이다. 풀빛문화연대 유영초 대표의 표현대로라면, 나무는 '햇볕 한 자락만 있어도 모든 생명의 젖인 에너지로 바꿔낼 수 있는 위대한 존재'다.
인공 숲과 처음부터 존재했던 자연 숲은 다르다. 만약 인간이 숲을 만든다고 해보자. 널따란 땅을 준비해 갖가지 나무를 뿌리째 종묘상에서 데려와 심고 빈 곳은 잔디로 채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만든 '조경'은 심미적으로 아름다울 수는 있지만 자연스럽지 않다. 혹 사람 눈엔 그럴듯하게 보일지라도 속으로는 인위적인 작업으로 인해 생태계가 어그러진다. 새로 만든 정원에서 나무가 여럿 죽어나가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시멘트로 예쁘게 닦아놓은 쭉 뻗은 숲길을 걸으며 좋아하지만, 사실 그건 숲이 아니다. 불규칙한 숲이 진짜 숲이다.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해서 불편하게 느껴지는 숲길을 걸을 때 우리는 좀 더 숲다운 숲을 경험할 수 있다.
얼마 전 여행 칼럼을 위해 북악산에 갔다. 여행 동무들과 평상에 앉아 명상을 하는 동안 기자의 귀에 두 가지 소리가 들렸다. 하나는 꽤 시끄러울 정도로 큰 새의 지저귐, 또 하나는 모 여행사에서 등산객들을 위해 설치했다는 먼지 제거기 소리였다. 데시벨로 환산하면 거의 비슷할 것 같았으나, 오직 기계음만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우리 귀가 도시의 소음을 잘 참아내고 있는 것 같지만 결코 아니다. 우리는 소음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숲에 다다르면 소음이 사라진다. 숲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들어 의식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소리들이 온전히 사라지는 유일한 공간이다. 숲에도 온갖 소리가 존재하지만 그것들은 100% 백색 소음이다. 백색 소음은 학습 효과 개선, 암기력 개선 등 건강에 상당히 좋은 효과를 보인다. 슬프게도 이 푸른 숲에서 가장 시끄럽게 소음을 내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나 자신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조잘대던 입을 잠시나마 닫게 된다.

◆ About Forest
숲이 좋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지만, 숲 자체에 대한 지식은 상당히 부족하다. 또 숲을 그저 '유원지'나 '캠핑장'으로 인식하고 이용하는 태도도 문제가 될 것이다. 풀빛문화연대 유영초 대표에게서 숲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흔히 '숲'을 만나려면 산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에 평지 숲이 얼마나 있나요?
A_우리나라는 평지 숲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평지나 경사가 완만한 산은 거의 논농사나 밭농사를 위해 개간했기 때문이죠. 그래도 지역에 따라 마을 근처 평지에 숲이 남아 있는 곳이 있어요. 경상도 함양의 상림, 상주의 어부림, 담양의 관방제림, 춘천의 올미마을 숲 등이 대표적인 곳입니다. 물론 유럽이나 미국처럼 인간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넓은 숲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마을 숲은 오랫동안 지켜온 만큼 아름다움이 있으니 잘 알려지지 않은 곳들을 찾아가 봐도 좋을 거예요. 또 제주도의 비자림도 완만한 평지에서 원시림의 느낌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에요.
Q '숲'에서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까요? 생각나는 건 걷기 아니면 캠핑뿐인데요.
A_누워보세요. 누워서 숲을 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달라질 겁니다. 틀림없습니다. 또 요즘은 기술이 발전해 싸고 좋은 확대경이나 망원경이 많이 있습니다. 10배율 루페로 꽃술을 바라보면 장담하건대 10배는 즐겁습니다. 또 그 좋은 스마트폰으로 새벽의 새소리를 담아보면 숲의 기쁨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밤에는 나뭇가지에 걸린 별들을 헤아리는 일도 할 수 있겠지요. 풀빛문화연대에서 진행하고 있는 '숲태교', '숲학교'에서도 숲이 학교라는 모토 아래 이런 간단하고 일상적인 활동을 포함하고 있어요. 굳이 교육이 아니더라도, 숲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합니다.
Q 가족 여행으로 숲에 많이 가는데 아이들과 함께 가다 보면 여러 사건사고가 일어나더라고요. 또 아이가 자연에 해를 끼치는 경우도 많고요. 아이들에게 반드시 이야기해주어야 할 숲 관련 지식은 뭘까요?
A_저는 어린이 숲해설가를 양성하는 게 꿈이랍니다. 어릴 때부터 숲의 생태적 지식을 배워야 숲을 사랑하고 지키는 사람이 되겠지요. 아이들은 원래 무릎도 깨지고 얼굴도 까지면서 자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더 그래도 한다고 봐요. 생태적 지식은 모험적 활동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으면 거의 죽은 지식이에요. 하다못해 벌이나 뱀이 위험하다는 것도 현장의 느낌이 없으면 마음에 와 닿지 않죠. 사실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책 시리즈가 < 사막에서 살아남기 > < 숲에서 살아남기 > 서바이벌 시리즈거든요. 이건 본능이라고 봐요. 산과 숲으로 가서 직접 경험하지 못하니, 체험적인 욕망을 책으로 푸는 것이죠. 가끔 사고가 일어나는 건 평소 자연과 접촉하지 않다가 느닷없이 접촉해서 벌어지는 상황이죠. 일상적으로 위험을 감지할 수 있도록 자주 자연과 접하는 게 최고의 예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숲은 얕잡아보면 무서운 곳이지만, 겸손하게 다가가면 절대 해치지 않는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게 중요해요. 또한 독이 있는 뱀이나 독버섯, 해충들에 대한 사전지식을 익히면 복장과 조심스런 행동이 뒤따르겠지요. 그러면 깊은 산에 가면서 슬리퍼를 신는 무모함은 없어질 겁니다.
Q 숲에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은 뭔가요?
A_남에게 해가 되는 행동입니다. 남이라면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숲은 인간의 서식처라기보다는 다른 생물들의 서식처니까요. 물론 인간도 숲에서 나는 산나물이나 열매를 먹고 사는 동물에 속하기에 완전히 피해를 없앨 수는 없겠지만, 지속 가능성이 문제겠지요. 나물을 캐더라도 어린 싹을 모두 잘라버려 다음 해에는 씨가 마를 정도로 채취하면 안 되는 거죠. 인간의 행동 때문에 생태계가 파괴되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마치 손톱이 계속 자라듯 재생되는 것이 생태계입니다. 다만 산불은 재앙 수준이니 항상 조심해야죠. 그리고 생태계 속의 생물들은 서로 순환관계에 있기 때문에 멸종위기종이나 지표종 같은 것을 잘 알아두고, 특히 귀한 생물을 채집하거나 잡으면 안 됩니다. 수많은 관계의 망으로 이루어진 생태계가 끊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해요.
Q 숲에 대한 지식을 꼭 갖춰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표님께선 숲해설가이기도 한데, 숲해설가의 존재 이유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A_지금도 '숲해설가'라고 쓰면 한글 프로그램에서 빨간 줄이 생깁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스페셜가?' 하고 되물어볼 정도였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죠. 숲해설가는 말 그대로 숲을 설명해주는 전문가로 숲에 대한 생태적, 경제적, 문화적 지식을 일반인들에게 전하는 일을 합니다. 설명이 필요할 만큼 사람들이 숲에 대해 잘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학과 황새, 소나무와 잣나무를 구분하지 못하면서 살아갑니다. 개를 고양이라고 하는 것만큼 당황스러운 일이지요. 영어 단어를 모르면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숲과 자연을 모르는 생태맹(生態盲)은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숲해설가들은 우리의 생태맹을 어느 정도 해결하고 숲의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인 셈이죠. 21세기 지구에서는 다양성과 지속성, 관계성이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이를 성찰하는 가장 좋은 매개체가 바로 숲이라고 생각합니다. 숲해설가들의 공급과 수요가 늘어난다면 잃었던 숲과 자연에 대한 감각을 되찾게 되겠지요?
"TV와 인터넷, 모바일 등 끝없이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는 매체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숲은 심심해 죽을 만큼 무료한 공간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풀과 나무, 곤충과 새, 야생동물들이 만들어가는 생명의 공간에 존재하는 수많은 재잘거림을 그저 우리만 못 들을 뿐이지요. 자유롭고, 상큼하고, 치열한 녹색 스탠딩 파티에서조차 인간은 '셀프 왕따'가 되고 있는지도 몰라요."
※ 여행작가 박동철의 추천 코스
● 우포
숲이 모두 산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1억 5천만 년 전, 공룡들이 노닐던 백악기에 탄생한 우포늪은 원시의 숲을 그대로 간직한 천혜의 자연경관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우포, 사지포, 쪽지벌, 목포를 둘러보는 우포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에 금세 동화된다.
● 장태산 자연휴양림
하늘 위로 쭉쭉 뻗은 키다리 나무, 메타세쿼이아는 유난히 멋스럽다. 이 멋쟁이 나무들이 숲을 이룬 곳이 바로 대전의 장태산 자연휴양림이다. 20만 그루의 나무가 피톤치드를 뿜어대 우리나라에서 피톤치드가 가장 많다고 알려져 있다.
● 오대산 월정사
오대산 국립공원이 품고 있는 비경은 월정사에서 시작된다. 아름드리 전나무 숲길이 만드는 아늑한 풍경은 금세 오대산을 사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길은 곧장 상원사로 이어진다. 상원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이다.
진행:최진주 기자 | 사진:박동철(여행작가) | 도움말:유영초(풀빛문화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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