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협동조합이 끌어가는 행복한 농촌공동체를 세우는 것, 사람농사에 반평생을 바친 조현선 고삼농협 조합장이 그리는 꿈이다. 그의 환한 미소가 아름답다. 고삼농협 제공 |
[나는 농부다] 조현선 안성 고삼농협 조합장
보릿고개 시절에 태어났다. 어려서는 평균 5.1명인 형제자매들과 경쟁하고, 초등학교에서는 100명 가까운 콩나물 교실에서 2부제 수업을 받았다. 소 팔아 대학 간다 해서 ‘우골탑 대학’이란 말을 낳았고, 그렇게 열에 여덟 이상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갔다. 유신시대에 청년기를 보내고, 무한경쟁 근대화의 한복판을 달려왔다. ‘58년 개띠’로 상징되는 베이비부머들이다. 이제 본격적인 은퇴기를 맞았지만, 그들이 돌아갈 곳은 없다.경기도 안성의 고삼농협 조현선 조합장. 베이비붐 세대인 1956년생이다. 모두 도시로 떠날 때 그는 농촌에 남았다. 친구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농사를 시작했다. 친구들이 대학 다닐 때 군대에 갔고, 친구들이 군대에 갈 때 고향에서 농사를 지었다. 한우와 벼농사는 기본이고, 온갖 밭농사와 과일, 양돈, 역돔(양어)까지 경험했다. 검정고시 거쳐 대학을 졸업한 것은 불혹을 훨씬 넘기고 나서였다. 베이비붐 세대의 무한경쟁 기준으로 보면 그는 낙오자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까?“1982년에 가톨릭농민회를 알게 되고, 마을 농민들과 같이 교육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눈을 뜨게 됐어요. 그때부터 농촌에서 사람농사를 시작하게 된 거죠.” 1980년대에 밀어닥친 수입개방과 반복되는 소값·고추값 파동은 그를 쌀장사, 고추장사, 소장사의 길로 이끌었다. 대학 구내식당에 마을 농산물을 납품하는 길도 뚫었다. 근처 도시에 일찌감치 직거래 유통망을 구축했다. 농민들 공동의 힘으로 시장에 대응하는 것이 진정 농민을 위하는 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마을 일에 열심이던 청년 조현선은 1994년 고삼농협 선거에서 농민후보로 추대된다. 그렇게 서른여덟의 젊은 조합장이 당선되고, 본격적인 사람농사의 길로 들어선다. “조합장이 되고 맨 먼저 조합원 전수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를 바탕으로 장기발전계획을 수립했지요. 일방적으로 시키는 게 아니라 조합원과 함께 미래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작업이었죠.” 당시 고삼농협은 조합원 고작 400여명에 직원이 20명도 되지 않는 전국 최약체 조합이었다. 지금의 고삼농협은 조합원 1000명이 넘고 가공·유통 등 경제사업 중심의 탄탄한 농협으로 탈바꿈했다. 대다수 마을 농가를 친환경으로 조직하고 도시 소비자들의 신뢰를 붙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고삼 사람들은 이제 “우리 고삼이 생명농업의 발상지”라고 자부한다.그는 세상을 앞서가는 사람이다. 농민에게 꼭 필요하다 싶으면 주저없이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긴다. 2000년에는 상토제조기, 퇴비살포기, 콩탈곡기 같은 농기계 임대사업을 시작했다. 목돈이 드는 농기계를 조합에서 구입하고 농가에서 빌려 이용하도록 했다. 조사료장비, 액비살포기, 퇴비제조장, 사료제조장, 연근세척장 같은 시설과 장비도 조합에서 모두 투자했다. 농가 부채를 줄이는 효과가 뚜렷이 나타났다. 농식품부와 농협중앙회는 최근 고삼농협의 성공모델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힘을 쏟고 있다.2 조 조합장이 모판을 들고 있는 모습. 3 친환경농가 대표들과 함께 친환경 육모를 살피는 모습이다. 4 고삼농협은 해마다 소비자 가족들과 함께 풍년기원 행사를 벌인다. 고삼농협 제공 |
농촌에 남아 농사 시작했다
38살에 최약체 조합 대표 맡아
친환경농업, 직거래 앞장섰다
시장개방엔 연합사업으로 맞섰다
이제 ‘지역 공동체’ 보여줄 터다
도시 생활 마친 이들이
연어처럼 돌아올 수 있도록 노인들과 영세농가에 암송아지를 공급하는 ‘비빌언덕 만들기’ 사업은 생산적 농촌복지의 좋은 사례다. 농민 스스로 살림을 불릴 수 있도록 암송아지 사육의 길을 열어주자는 톡톡 튀는 발상이다. 암송아지를 받은 농가에서는 해마다 출산하는 송아지 중 1마리만 조합에 돌려주면 된다. 학교텃밭 교육과 전통음식 체험, 농자재 배송 등의 사업을 벌이는 사회적 기업도 운영한다. 자연스럽게 조합원들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1999년에는 전국 최초의 농협사업연합 조직을 안성 지역에서 출범시키기도 했다. 지역농협 하나의 힘으로 이마트 같은 대규모 유통자본과 맞설 수는 없는 일. 여러 농협 공동으로 규모화의 힘을 키우자는 연합사업 모델은 그 뒤 전국으로 급속히 확산돼 나간다.그는 1994년 이후 20년 동안의 다섯차례 선거에서 고삼 농민들의 선택을 받았다. “조합원들이 요구하는 일을 많이 저질렀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습니다. 협동조합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조합원과 함께하는 착한 기업이잖아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협동조합의 가치를 늘 새깁니다. 협동조합을 제대로 하면 마을 공동체도 건강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안성 지역에는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의료생활협동조합이 있다. 열댓명의 의료진과 100여명의 직원이 5000여가구 조합원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한방, 양방, 치과뿐 아니라 종합건강검진까지 수행한다. 아픈 다음에 찾아가서 돈 많이 쓰는 병원이 아니라, 아프기 전에 몸에 좋은 먹거리와 운동으로 조합원의 건강을 챙기는 병원이다. 돈 버는 병원이 아니라 조합원의 건강을 버는 병원이다.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적자 의료원을 폐쇄하는 현실과는 참 많이 비교되는 곳이다. 바로 이 안성의료협동조합의 출발점에도 그가 있었다.“1987년에 고삼면으로 연세대 의대 기독학생회의 예비 의사와 간호사들이 농촌의료봉사를 왔어요. 마을 청년들과 의기투합했고, 1992년 안성농민한의원과 1994년 안성의료생협의 출범으로 이어졌습니다. 조현선 조합장이 바로 그때의 마을 청년이었습니다.” 김보라 안성의료생협 전무의 회상이다. 조 조합장은 “사람을 살리는 기본은 먹거리와 의료이고 그래서 농민과 의사는 같은 길을 가야 한다는 순수한 마음이 소중한 결실을 맺었던 것”이라고 말했다.조현선의 고삼농협은 이미 작지만 강한 지역농협의 모델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가야 할 문은 여전히 좁고 갈 길은 멀다. 농촌과 농업의 문제를 푸는 해법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탓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농가 부채를 덜어줘야 합니다. 그러자면 금리를 내려야 하는데, 농협의 대출금리 인하는 곧 예금금리 인하로 이어지잖아요. 그런데 대부분 예금자는 농촌의 어르신들이고 그분들에게는 예금이자가 유일한 노후대비책이에요. 소수 젊은 농민들의 대출 부담을 줄이자고 다수 어르신들의 노후준비금을 축낼 수는 없잖아요. 대출금리를 0.1%라도 낮추고 예금금리를 0.1%라도 높여야 할 텐데, 답을 찾기가 참 어렵습니다.”그의 소망은 ‘행복한 협동조합’이다. “결국 사람들의 힘과 생각을 모으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 같아요. 건강한 협동조합이라야 그 일을 해낼 수 있지요. ‘우리 농협이 있어서 행복했다, 그래서 농촌의 삶이 희망이 있다’ 조합원들한테서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베이비붐 세대들은 영화 <설국열차>에서처럼 무리지어 열차의 앞칸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그는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했다. 스마트폰 하나 가격이 우리 아이들 6년치 쌀값인 현실, 애완용 개 사료 가격이 쌀값보다 비싼 현실을 바꾸려 했다. 그가 앞서 도전했던 친환경농업, 소비자 직거래, 의료생협, 안성사업연합, 한우 유통과 가공, 도시생협매장 지원은 설국열차의 문을 여는 암호들에 다름아니다.도시로 떠났던 친구들이 연어처럼 돌아오는 날을 위해 지금껏 흙과 농촌을 지키고 서 있었다. 열일곱 꿈 많은 소년 농사꾼이 환갑이 다 되도록 사람농사와 지역농사를 지으면서 기다렸다. 그들이 돌아오면 자녀들도 훗날 돌아올 거라 믿는다. 그런 그는 참농부다. 흙농사, 사람농사, 지역농사, 그리고 기다림으로 미래농사를 짓는 진정한 농부다.안성/박영범 지역농업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