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스러진 사람들]국외 - 반전과 인권… 그늘진 세상에 ‘빛’ 비추고
국제부
입력 : 2010-12-26 21:18:49ㅣ수정 : 2010-12-26 23:16:56
2010년 타계한 해외인사 중에서는 미국의 실천적 지식인 하워드 진을 비롯해 학계와 문화계에서 굵은 족적을 남긴 ‘문화권력’의 거두들이 많았다. 괄호 안은 향년과 사망일.
■ 하워드 진(87세·1월27일)
강단과 거리서 ‘실천지성’의 외길
“제도정치는 늘 사회운동이 일종의 국가적 분위기를 조성한 뒤에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제도정치는 시민의 요구가 강력할 경우에만 반응합니다.” 하워드 진 보스턴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이 말은 평생 ‘실천적 지식인’의 외길을 걸어온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한다. 그는 늘 역사의 전면에 나설 수 있도록 민중을 각성시키고, 세상의 주인이 고통받는 민중임을 일깨워왔다. 뉴욕의 가난한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진은 반 파시즘의 열정으로 2차대전에 참전해 폭격기 조종사로 복무했다. 종전 9년 뒤 자신이 폭격했던 프랑스 서부 루아얀 지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독일군뿐 아니라 1000명이 넘는 프랑스 주민들이 희생됐음을 확인하고 반전을 평생의 신념으로 삼는다. 이후 베트남에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전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군사주의적 개입에 반대해왔다. 컬럼비아대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68년 민권운동 참여가 빌미가 돼 재직하던 애틀랜타 스펠만대에서 쫓겨났다. 이후 보스턴대로 옮겨 88년 은퇴할 때까지 강단과 거리에서 ‘실천지성’의 전범을 쌓아왔다. 미국 주류 언론과 학계는 그를 외면했지만 그가 원주민과 흑인, 백인노동자의 시각에서 저술한 <미국 민중사(1980)>가 지난해 말 200만부를 돌파하며 대중적 영향력을 입증했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살육자로 처음 지목하며 미국사 뒤집기를 시도한 것은 진 이전의 미국사 서술에선 볼 수 없었다.
■ 주제 사라마구(87세·6월18일)
포르투갈 최초 노벨문학상 작가 바티칸은 그를 “낡은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하면서 98년 노벨상 수상을 반대했다. 비타협적인 공산주의자로 유토피아를 추구했던 포르투갈 출신의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 주제 사라마구 이야기다. 그는 시사 문제에 대해 급진적인 관점을 유지하면서 인권침해 등 사회문제와 악, 탐욕 등 인간 본성의 문제에 천착한 작가였다. 2008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대표작 <눈먼 자들의 도시>는 한 명만 빼고 모든 사람이 시력을 잃은 세상을 통해 반 전체주의적 알레고리를 드러냈다. 난해한 주제를 다루는 그의 작품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삶의 후회에 대해 다루면서도 항상 우리를 유혹하는 웃음의 정신이 함께하기 때문(해럴드 블룸 예일대 교수)”일 것이다. 늦깎이 작가였던 사라마구의 공개적인 마지막 소원은 “세상을 50년간 멈추고 싶다”였다. 하지만 그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이룬 발전이 충분하다고 말하는 용기를 가져라. 그것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뒤처진 수백만명의 사람을 돕기 위해 50년 동안 당신의 모든 에너지를 헌신하라.”
■ 안토니오 사마란치(89세·4월21일)
21년간 IOC 위원장 ‘막강 영향력’ 80년부터 2001년까지 21년 동안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퇴임 후 IOC 종신 명예위원장.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IOC 위원장의 약력 뒷부분이다. 무려 21년 동안 IOC 위원장에 재임한 사마란치는 자크 로게 현 위원장에게 자리를 넘겨주기 전까지 국제 스포츠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올림픽을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스포츠 행사로 키우는 데 공헌했다. 그의 재임기간은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로 불리는 피에르 쿠베르탱(1896~1925)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사마란치는 1920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으며 67년 스페인 체육장관에 취임했다. 스페인 올림픽위원장을 거쳐 74~78년 부위원장을 맡았다.
사마란치는 85년 스폰서십 프로그램을 도입해 수백만달러의 협찬금을 걷어들이고, 방송 중계권료를 대폭 인상하면서 IOC의 재정을 크게 늘리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99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가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IOC 수뇌부에게 막대한 뇌물을 뿌린 사건과 연루돼 결국 2001년 위원장직을 퇴임했다.
■ 레흐 카친스키(61세·4월10일)
폴란드는 물론 유럽 정계 중심인물 ‘카틴 숲 학살’의 악몽이 재연된 것일까. 지난 4월10일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은 2차대전 당시 폴란드 장교·지식인 2만2000여명이 떼죽음을 당한 ‘카틴 숲 학살사건’ 추모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러시아로 가던 길에 특별기가 추락하면서 생을 마감했다. 특별기에 함께 탔던 부인과 정계 지도자들도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카친스키의 장례는 폴란드인들의 비탄 속에 국장으로 치러졌다. 카친스키는 보안장관, 법무장관, 바르샤바 시장 등을 거쳐 2005년 대통령에 당선됐으며, 동생인 야로스와프가 총리가 되면서 ‘쌍둥이 정부’를 꾸렸다.
■ 아서 펜(88세·9월28일)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등 명작 남겨 클라이드와 보니가 잠복경찰의 집중 총알세례로 덧없이 쓰러지는 장면이 압권인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67년 개봉돼 미국 청년층을 사로잡았다. 아서 펜 감독은 1930년대의 전설적 갱이었던 클라이드 바로와 보니 카퍼 두 연인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긴 이 영화로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91세·1월27일)
‘호밀밭의 파수꾼’ 지은 은둔 작가 자전적 장편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지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는 은둔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던 지난 51년 발표된 이 작품은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학교에서 퇴학당한 소년 홀든 콜필드가 허위와 가식으로 가득찬 세상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샐린저는 65년 이후 작품을 발표하지 않고, 운둔했다.
■ 에릭 시걸(72세·1월17일)
‘러브 스토리’ ‘닥터스’ 전세계 인기 에릭 시걸은 예일대학 고전문학 교수 시절인 1970년, 여주인공이 백혈병으로 숨진다는 비극을 다룬 <러브 스토리>를 써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이 작품은 이듬해 같은 제목의 영화(라이언 오닐·알리 맥그로 주연)로도 개봉돼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그리스 라틴 고전문학 전공 교수였지만 <닥터스> 등 대중소설과 영화, 극본 집필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썼다.
■ 데니스 호퍼(74세·5월29일)
뉴아메리칸 시네마 대표적 감독 데니스 호퍼는 뉴아메리칸 시네마를 이끌었던 미국 감독이다. 호퍼가 감독·주연을 맡았던 <이지 라이더>는 60년대 미국 청년문화를 배경으로 베트남전 반대시위, 기성세대의 생활방식으로부터의 독립 등을 다룬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그에게 69년 칸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안겨줬다.
■ 네스토르 키르치네르(60세·10월27일)
아르헨티나 경제 부흥 이끈 대통령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은 2003~2007년 집권기간 중 아르헨티나의 경제 부흥을 꾀했고, 남미국가연합 사무총장으로 외교력을 발휘했다. 부인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에게 권력을 물려줬으나 현역 연방하원의원이자 집권 정의당(PJ) 대표로 막후 실권자로 군림해왔고 내년 10월 말 대선 출마가 유력시되기도 했다.
■ 루이스 부르주아(98세·5월31일)
프랑스 출신 페미니스트 여성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는 조각상 ‘마망(Maman)’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여류 조각가다. 프랑스 파리 출신인 부르주아는 1949년 뉴욕 페리도 화랑에서 첫 번째 조각전을 연 이후 82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여성 작가로는 처음으로 회고전을 열었고, 99년엔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페미니즘의 대표 작가로 20세기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
■ 벤저민 훅스(85세·4월15일)
미 최대 흑인 인권운동 단체 이끌어 벤저민 훅스는 미국 최대 흑인 인권운동 단체인 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를 이끌어온 민권운동가다. 77~92년 유색인지위향상협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조직을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는 데 크게 공헌했으며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65년 테네시주 형사법원 판사로, 72년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으로 임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