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다시 읽기](4) ‘참주’와 ‘군주’
곽준혁 | 숭실대 가치와윤리연구소장
ㆍ야심에 찬 청년들에게 ‘참주’의 길 대신 ‘시민적 자유’ 지키는 길 설득
ㆍ“도덕이 아니라 영광으로, 절제가 아니라 공포로 참주를 가르쳐야”
‘참주’라는 말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개념이다. 종종 ‘전제군주’ 또는 ‘폭군’이라는 단어와 혼용되기도 하는데, 그 기원을 면밀히 살펴보면 이들은 다른 말이다. 한 사람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리고 그 권력의 행사가 전제적이고 잔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그러나 ‘참주’(tyrannos)는 ‘폭군’(despotes)과 다른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바로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후자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인민의 지지’가 있다는 점이다. 폭군이 신민을 노예처럼 다루는 왕을 의미한다면, 참주는 시민의 자유를 지켜주겠다는 명목으로 권력을 잡은 후에 오히려 시민을 탄압하는 인민의 ‘우두머리’를 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양 정치철학에서는 ‘폭군’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군주가 귀담아들어야 할 성찰적 지혜를 많이 전달하고, ‘참주’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이 새겨들어야 할 정치적 사려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동일한 맥락에서, 서양 정치철학에서 정치 지도자에 대한 교육은 두 가지 방향에서 전개되었다. 하나는 왕위를 계승하거나 이미 권좌에 앉은 군주를 훈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능력으로 권력을 쟁취하고자 하거나 혹은 그렇게 권력을 획득한 참주를 가르치는 것이다. 전자는 이미 어느 정도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한 왕정(basileia)을 대상으로 한 경우로, 가끔 군주의 덕성을 함양하기 위한 조언이나 좋은 정치가 무엇인지를 전하는 ‘군주의 거울’(speculum principis)이라는 갈래로 구체화되었다. 후자는 소크라테스가 참주가 되고자 마음먹은 아테네 젊은이들에게 ‘좋은 삶’(eu zen)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듯, 미래에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 또는 타인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인물에게 탁월함이 무엇으로부터 획득되는지를 가르치는 정치철학적 교육(paideia)으로 발전되었다.
비록 마키아벨리의 <군주>는 이미 권좌에 앉은 군주에게 바쳐졌지만, 특이하게도 ‘잠재적 참주’ 또는 ‘권력을 쟁취하려는 인물’을 설득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군주>의 헌정사(Dedica)의 태도가 매우 오만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군주에게 훈계를 받는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려고 글의 절반을 군주에 대한 칭찬으로 채우던 시절이다. 그러나 ‘통상’(sogliono)과 ‘복종’(servitu)이라는 단어가 형식적으로 언급된 것을 제외하고, 그는 다분히 수평적 관계에서 군주의 본질과 새로운 전망을 쓰겠다고 이야기한다. 게다가 <군주> 15장에서는 “이해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든 쓸모가 있는 것”을 쓰려 했다는 소신까지 밝힌다. 22장에서는 자기 설명을 듣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쓸모없는’(inutile) 두뇌의 소유자라고 단언했을 정도다. 이렇듯 그가 자신의 구직이 실패할 것을 개의치 않았거나, <군주>를 쓰면서도 <강론>의 헌정사에서 밝힌 “왕국(regnum)을 제외하고는 왕이 되는 데 부족한 것이 없는” 잠재적 참주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점을 입증할 증거들은 수없이 많다.
피렌체 메디치 궁전에 있는 베노초 고촐리의 ‘동방박사의 여정’(la Cavalcata dei Magi, 1461). 성경에 나오는 동방박사 세 사람의 행렬에 메디치가(家) 인물들을 그려 넣었다. 맨 앞이 로렌초 메디치, 바로 뒤가 그의 아버지 피에로 메디치 1세, 그 옆의 당나귀를 탄 인물이 메디치 가문을 일으킨 코지모 메디치다. 마키아벨리는 코지모 메디치를 ‘피렌체의 참주’로 간주했고, 동일한 맥락에서 그는 당시 지식인들과는 달리 카이사르를 로마공화정 ‘최초의 참주’라고 비난했다.
■ 소크라테스와 잠재적 참주… 정의로운 정치적 열정
화려했던 아테네 민주주의가 막을 내리고 있을 때,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은 ‘참주’가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좋은 삶’을 설득하고 나섰다. 궁극적으로 이들의 목적은 자기의 욕망에 충실한 ‘자연인’의 삶이 아니라 ‘절제’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는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이때 참주는 ‘자연인’의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인간으로 묘사되었고, 반면 소크라테스로 대표되는 철학자는 자연인의 욕망을 절제함으로써 ‘탁월함’에 도달하려는 인간으로 그려졌다. 전자가 정치권력의 획득을 목표로 하는 정치적 삶을 추구한다면, 후자는 올바른 삶에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철학적 삶을 대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소크라테스 전통에서 참주는 비이성적이고, 무법적이며, 무절제하고, 신민의 동의와 정당성을 갖지 못한 통치자로 기술되었다.
그렇다면 이렇듯 좋은 삶과 거리가 먼 ‘참주’가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이 관심을 기울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잠재적 참주들이 가진 ‘열정’(thumos)이라는 정치적 감성 때문이다. 열정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욕구로 분출되기도 하지만, 잘못된 일을 보고 참지 못하는 정의감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특히 열정이 정의감에서 비롯된 정치적 행동으로 표출될 경우, 잠재적 참주는 어떤 정치공동체를 지키는 수호자의 모습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래서 최초에 ‘참주’라는 말이 ‘군주’(monarchos)와 혼용되고, 귀족의 압제를 물리치고자 인민들이 앞세운 지도자를 지칭했다는 사실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그러했듯이,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이 공동체의 ‘수호자’(prostates)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정치철학자의 숙제가 된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좋은 삶’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정치를 혐오하거나 권력을 잡을 능력이 없고, 그들이 부딪히는 현실은 시민의 동의와 적법한 절차 따위는 관심도 없는 참주들의 세상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소크라테스 전통은 르네상스 시대까지 이어졌으며, 단테(Alighieri Dante) 이후 ‘참주 교육’은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아울러 군주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참주에 대하여>(De Tyranno)를 쓴 살루타티(Coluccio Salutati)가 대표적인 경우다. 이 책에서 살루타티는 카이사르를 로마공화정의 극심한 혼란을 잠재우려던 ‘좋은 지도자’라고까지 말한다. 이런 정도까지는 아니었더라도, 외세의 침입과 내부의 혼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군주정을 옹호하는 경우를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젊은 시절 크세노폰의 <히에론>(Hieron)을 라틴어로 번역한 브루니(Leonardo Bruni)마저도 공적 헌신만 강조하는 고전적 공화주의에 일대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피력했을 정도다. 그러나 그 누구도 ‘좋은 삶’으로부터 동떨어진 ‘올바른 정치’가 있다고 믿지는 않았다. 철학적 절제와 정치적 성공은 분리되어서는 안된다는 소크라테스적 전통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 마키아벨리와 참주 교육… 철학적 절제보다 정치적 성공
마키아벨리는 소크라테스적 참주 교육을 반신반의했다. 그가 생각했을 때, 소크라테스적 전통은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정치적 ‘열정’을 철학적 ‘절제’로 숨죽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는 것,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권력을 잡은 ‘잠재적 참주’가 외세로부터 공동체를 지켜낼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었다. ‘열정’이라는 정치적 감성을 찾아낸 것은 좋았지만, 그리고 이러한 감성을 이용해서 잠재적 참주를 가르치려고 의도한 것은 좋았지만, 정치공동체의 ‘수호자’가 되도록 유도하기 위해 잠재적 참주에게 ‘좋은 삶’을 가르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사실 마키아벨리는 철학적 절제가 없는 정치적 성공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는 ‘도덕’이 아니라 ‘영광’(gloria)으로, ‘절제’가 아니라 ‘공포’(paura)로 잠재적 참주를 가르쳐야 한다고 믿었다. 그가 <군주>에서 크세노폰의 이름만을 언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소크라테스를 따르는 사람들을 한 데 묶어 ‘헛된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지만, 크세노폰이 다른 도시의 우두머리들과 경쟁하는 것이 진정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경쟁의 승자(nikon)”가 되는 길이라며 참주를 설득한 것에는 주목했다. ‘영광’을 성취하고자 하는 욕구를 통해 참주가 공동체의 방어에 헌신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군주> 19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5권 11장의 내용이 언급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마키아벨리는 ‘공포’라는 설득 기제를 부각시킨다. 참주가 스스로를 보존하는 길은 ‘참주라기보다 신민의 종복’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충고로부터, 그는 ‘절제’가 아니라 ‘공포’가 잠재적 참주를 신민을 위해 헌신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군주는 결코 귀족의 음모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경고, 그러기에 인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죽을 수 있다는 충고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현실주의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성찰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 어떤 정치철학도 ‘공동체’를 지키지 못한다면 무익
‘자연인’의 욕구, 즉 ‘영광’과 ‘공포’에 초점을 둔 마키아벨리의 참주 교육은 참으로 거침이 없다. 소크라테스 이후 지속된 ‘올바른 삶’의 기준들이 한꺼번에 허물어지고,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다른 나라의 자유를 빼앗는 ‘제국의 건설’도 용인된다. 그러기에 <강론> 3권 6장에서 ‘시에나의 참주’(tiranno di Siena)라고 불렀던 판돌포 페트루치도 <군주> 20장에서는 엄연히 ‘군주’(principe)일 뿐만 아니라 탁월한 용인술을 가진 인물로도 등장한다. 처음 판돌포를 만나고 난 뒤, 진의를 알 수 없는 ‘미꾸라지 같은 놈’이라고 푸념할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인 것이다. 또한 <군주> 6장과 13장에서 ‘새로운 군주’(nuove principe)로 묘사되는 시라쿠사의 참주 히에론(Hieron)도 마찬가지다. 마키아벨리는 히에론의 잔인한 방법과 기만적 술수를 도덕적 잣대로 평가하지 않는다. ‘인민의 지지’를 통해 권력을 획득했다는 것, 자기만의 군대를 확보했다는 것, 그리고 외세로부터 ‘다수’를 보호했다는 것만 강조한다. 최소한 이 세 가지 측면에서 참주와 군주는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
마키아벨리의 참주 교육은 도덕적 삶의 내용을 담지 못했기에 소크라테스로부터 내려오는 전통과 단절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도 자신의 저술을 읽는 사람들의 시민적 삶에 대해 고민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마키아벨리의 거침없는 참주 교육에도 몇 가지 전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민적 자유’가 보장된 정치공동체의 설립과 유지가 정치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어떤 정치철학이든 외세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도록 만든다면 무익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마키아벨리는 아가토클레스의 탁월한 능력(virtu)을 칭찬하면서도, 멀쩡한 공화정을 전복시킨 그의 행동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다른 경우에도 곧잘 발견되는 정도의 잔인함에 ‘사악함’(sceleratezza)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분노를 표출한다. 비록 소크라테스적 전통에서는 천박한 생각일 수밖에 없겠지만, 마키아벨리도 젊고 야심에 찬 청년들이 참주의 길을 선택하지 않고 시민적 자유를 회복하는 데 헌신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