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22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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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도 진보와 보수의 다툼으로 맛을 낸다.
축배였다 위로주가 된 술
두 해 전 일이다. 6월 2일! MB 교육 정책을 심판하자는 바람은 인천을 휩쓸고도 교육청 문턱을 넘지 못했다. ‘서해안 벨트’는 서울과 경기, 전북, 광주를 거쳐 전남으로 이어졌지만 인천만 비껴갔다. 미완성 서해안 벨트를 되돌아보자니 또다시 아리다. 그 날, 저녁부터 시작한 술이 새벽을 지나 아침을 봤다. 긴 하루였다. 축배가 되었다가 위로주가 되었다가, 술은 그저 술일뿐인데, 마음이 그 술잔에 천국과 지옥을 번갈아 채웠다. 어떤 시간은 마셔도 취하지 않았고, 또 어떤 시간은 안마시고도 취했다. 환호성에 깨고 한탄에 시들기를 수십 차례, 술 없이는 견딜 수 없는 등락이었다. ‘진보’라는 말에 그 날처럼 경건한 적 없고, ‘보수’라는 말에 그 날처럼 예민한 적 없었다.
응원단이 이 지경이니 선수들은 오죽했으랴. 날은 같은 날, 진보도 이기거나 졌고, 보수도 이기거나 졌다. 진보 때문에 이겼다는 이도 있고, 보수라서 이겼다는 이도 있다. 시민들은 정권을 심판한다는 신호를 정확히 보내면서도 구색을 맞춰 진보와 보수를 선택했다. 교육위원회가 사라지고 시의회에 병합된 첫 선거, 교육위원은 ‘안정감’으로, 시의원은 ‘변화’로 당락이 갈렸다. 임기의 절반이 지나는 반환점을 앞두고, 인천시의회 교육상임위원회는 교육청이 두 번이나 요청한 고등학교 기숙사 신축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본회의는 몰라도 교육위원회는 통과할 것이라는 예측이 빗나갔다. 누군가 위로주를 마시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막걸리는 진보, 보수보다 힘이 세다
교육상임위원회 소속인 이수영은 교육위원이고 강병수는 시의원이다. 이수영 의원은 시교육청 교육국장 출신이고 강병수 의원은 민주화운동 유공자다. 둘 다 부평에서 뽑혔다는 게 유일한 공통점일 정도로 다르다. 하지만 둘은 막걸리로 어울린다. 어떤 자리에 가나 막걸리를 찾는 의원은 단 둘. 막걸리에는 보수도 진보도 들어있지 않다. 이수영은 대학 시절, 지독하게 가난한 배를 5원에 한 잔씩 하는 막걸리로 채웠다. 학교 강당 귀퉁이를 빌려 잠을 자야 할 만큼 어려웠으니 싼 값에 배도 부르고 취할 수 있는 막걸리가 은인이었다. 강병수는 암으로 위를 1/3이나 잘라내는 큰 수술을 받았다. 5년 동안 치료하고 막걸리를 마셨다. 위가 독하지 않는 막걸리에 잘 적응해 줘 지금껏 막걸리를 즐긴다. 연배 차이를 넘어 “막걸리 친구”라고 말하는데 둘 다 스스럼이 없다. 막걸리는 보수나 진보라는 프레임보다 세다.
강 의원은 교육상임위에서 일한 지난 두 해를 회상하면서 이 의원을 띄운다. “의안을 심의할 때 구체적 정보가 필요한데, 객관적 사실을 충실하게 설명해 주셔서 많이 배웠죠. 이 의원님의 교육 행정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이 의원이 받는다. “교육청 편만 들지 않아요. 계산하거나 재지 않고 사실대로 정확하게 말합니다. 편견 없이 정확한 정보를 공유해야 의안 심의를 제대로 할 수 있어요.” 막걸리는 역시 강한 접합제다.
2014년이 되면 교육위원 제도가 사라진다. 마지막 교육위원이 될 수도 있는 이 의원이 힘주어 말한다. “교육위원회를 독립 기구로 존치해야 합니다. 상임위로 있는 건 교육자치가 아닙니다. 헌법 정신에도 어긋난다고 봅니다.” 강 의원은 조금 다르다. “교육자 출신이 있는 지금의 제도를 몇 번 더 운영해 본 후 판단하면 좋겠어요. 교육자출신 다섯 명과 교육경험이 없는 네 명이 있는 지금 구조가 황금 비율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위원이 자동으로 사라지는 일몰제는 반대해야죠. 정치인 출신이 교육을 알려고 해도 잘 알 수 없다는 걸 제가 경험했습니다.”
“교사들을 위해 해 준 게 없네요.”
이 의원은 정치와 교육자치를 뒤섞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정치, 경제 논리가 교육에 너무 깊이 개입해 들어오는 게 문제라고 진단한다. 정치 따로, 교육자치 따로 가야 한단다. 비록 선거로 뽑힌 교육위원이지만 여전히 교육자로서의 정체성을 우선으로 여긴다면서 “교육이 외풍을 너무 많이 받는다”고 탄식한다. 강 의원은 또 다르다. “정치의 핵심이 교육이라고 봐요. 교육과정만 해도 국가가 정하잖아요. 방법만 교사에게 위임했으니 교묘하게 정치적이라고 할까요? …… 사회가 1%를 위해 가더라도 교육은 모든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자고 해야죠. 지금은 교육이 순수한 본질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침탈당했죠.” 다른 말로 시작해서 어딘가에서 접점이 생긴다. 이 의원은 연신, 정치는 잘 모른다면서도 강 의원 말에 공감을 표한다. 생각이 달라도 방향을 맞추려는 과정이야말로 정치일 텐데, 잘 모른다 모른다 하면서 잘 하는 정치?, 둘이 어울리는 이 관계가 정치 아닌가?
“시가 교육청에 줘야 할 법정 전출금과 학교용지분담금 문제를 환기해 시가 재정마인드를 갖게 했어요.” 이 의원이 자랑하자 강 의원은 반성으로 장단을 맞춘다. “교사들을 위해 해 준 게 없네요. 비정규직 문제나, 전교조가 억울하게 여기는 점은 해결하려고 노력 했지만 보편적인 교사들의 처우는 살피지 못했어요.” 이 의원은 강 의원이 문화복지위원회에서 성과를 내느라 그랬을 것이라고 거든다. 적절하게 끼어들며 동료를 엄호하는 정치 감각! 강 의원은 ‘가고 싶은 학교 만들기 특위’를 구상중이다. 반대하고 비판하는 게 아니라 학교 의견을 들어 변화를 생산하는 역할을 담고 싶단다.
홍어 속에 진보와 보수, 삭거나 썩거나
막걸리는 인천교사신문 우수 독자도 찾아 준다. 이 의원은 인천교사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읽는단다. 지난 호에 나왔던 신포동 다복집 단골이었다. 동인천역 뒤편 순대골목, 석바위 연중반점, 구월동 명동보리밥까지 대폿집 곳곳에 추억을 아로새겨왔다. 특히, 명동보리밥 주인장과는 오누이처럼 친하다. 간석5거리 순대국집 시절부터 맺어온 인연은 굵고 질기다. 강 의원은 막걸리 명가로 부평 개코막걸리를 꼽는다. 예전부터 다녔고 여전히 단골이다. 털털하게 찾을 수 있어 맘 편한 그런 주점 분위기를 즐긴다.
학이 날개를 접는 둥지, ‘소학(巢鶴)’은 부평우체국 뒤편 골목에 있다. 홍어 전문점이다. 주인장은 나주에서 나고 자라며 몸으로 익힌 맛을 낸다. 상호가 고향마을 이름이라는데, 문득 그 마을에 가고 싶다.
홍어든, 막걸리든 맛은 시간과의 긴장이다. 지난 시간에 집착하면 떫고, 앞서가면 쉰다. 홍어 속에서 진보와 보수가 다툰다. 홍어가 바다의 찰기에 연연하면 비리고, 너무 나가버리면 썩는다. 홍어를 삭히는 힘은 진보와 보수의 길항이다. 입안에 들어오면서부터 온 몸으로 퍼지는 알싸한 삭은 향, 그 맛은 시간과 타협해야 얻을 수 있다. 홍어를 씹으며 진보도, 보수도 얼큰하다. 주인장이 포천 막걸리를 덤으로 내온다. 정치는 밤에 한다지만 이 밤은 그저 술이다.
임병구(인천해양과학고, 인천교육연구소장)
[출처] [막걸리&말걸기]홍어도 진보와 보수의 다툼으로 맛을 낸다.|작성자 인천교육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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