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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시타 정경숙이 한국정치에 시사하는 것

정치, 정책/미래정책과 정치 전략

by 소나무맨 2013. 6. 2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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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총선을 앞두고 현 정치권내에 정치ㆍ정당 개혁에 대한 논의가 분주하다. 이 논의의 본질은 단순히 제도를 개혁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람을 바꾸는 것에 있다. 즉, 지속가능한 개혁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세력을 형성하는 일이 논의의 중심에 서야 하는 것이다.

개혁이란 제도에 어떤 세력 혹은 사람을 데려다 놓는가에 따라 그 수준과 속도, 지속여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김영삼 정부가 ‘역사 바로세우기’, 김대중 정부가 ‘제2의 건국’운동을 내세웠지만 도중에 굴절된 이유가 무엇일까? 결국 개혁을 꾸준히 뒷받침하고 나아갈 신진개혁정치 세력의 부재 혹은 사람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는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 과연 해소되었는가? 노무현 정부는 널리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개혁의 동력으로 삼겠다고 이미 천명한 바 있다. 그 수단으로써 ‘개방추천’과 ‘다면평가’ 등 새로운 인사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행정권력의 개혁을 ‘파격적으로’ ‘과감하게’ 추진해가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노무현 정부의 개혁을 뒷 받침해나갈 개혁적 정치엘리트의 힘과 목소리는 아직도 미미하다. 그것은 3김정치, 보스정치로 대별되는 구 정치 틀에서 개혁적 정치 엘리트 혹은 신진정치세력이 자유롭게 성장하거나 혹은 세력을 형성할 수 없었던 정치환경의 주객관적 요인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사람의 문제는 짧은 기간 안에 해결책을 찾기가 힘들다. 따라서 할 수만 있다면 가급적 빨리 신진 개혁적 정치엘리트의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재양성의 문제는 단지 개혁진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지속가능 개혁이든 안정적인 보수든간에 어느 방향이든 2003년 한국사회는 공공분야에서의 ‘인재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물론 당장 필요한 것은 중간 간부급 수준의 인력이겠지만 이는 사람을 키우지 않으므로써 스스로의 리더십을 공고하게 했던 3김 정치, 냉전시대정치의 유물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신인서부터 현실정합성을 가지도록 교육, 훈련시켜야 한다. 비즈니스 스쿨이나 MBA의 필요성은 이미 체득하고 있지만 공공문제를 다뤄야 하는 정치인, 행정가, 일부 기업에서 필요한 인력, 시민운동가들을 교과서가 아닌 실무담지 능력이라는 면에 초점을 맞추어서 훈련시키는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리포트에서는 일본의 대표적인 정치인재 양성 프로그램인 ‘마쓰시타 정경숙’의 사례를 가급적이면 주관적인 평가를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중심으로 소개하여 공공문제와 정치분야의 인재들을 양성하는데 필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자 한다.

기초 자료는 마쓰시타 정경숙의 홈페이지(http://www.mskj.or.jp)와 1998년 6월부터 1999년 7월까지 마쓰시타 정경숙 19기생과 함께 초빙연구원으로 생활한 임수택씨의 체험기(월간중앙 2002.2월호에 게재)를 참고하였다.

마쓰시타 정경숙(松下 政經熟)의 설립취지

마쓰시타 정경숙은 경영의 신이라는 경영자로서의 정점을 뛰어넘어 개혁제창자로 불리우는 마쓰시타산업전기㈜의 마쓰시타 고노스께가 1979년에 70억 엔의 사재를 털어 일본의 지도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1946년 11월에 정경숙의 모태가 된 PHP(Peace, Happiness, Prosperity) 연구소가 만들어진 뒤 34여 년 만에 마쓰시타 정경숙은 마쓰시타 고노스께라는 한 철인(哲人)의 사고와 꿈의 결정체로 탄생하였다.

마쓰시타 고노스께는 전후 일본의 국가재건 방향성을 고민하면서 ‘지도자의 양성’이야말로 일본내에서 정치 지도력을 부활하고 나아가 아시아에서 일본이 지도력을 확립할 방법으로 보았다. 경제대국이지만 정치외교면에서는 소국이라는 평가를 듣는 일본 문제에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의 정치엘리트들이 어떻게 화답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정치.경제의 인재양성기관인 마쓰시타 정경숙의 설립으로 이어졌으며 설립취지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설립취지문에서 그는 일본의 미래를 여는 장기적 전망의 부재를 염려하면서 “명확한 기본 이념이 있다면 그로부터 강력한 정치가 생기고, 이를 기반으로 국민의 경제활동 및 사회활동이 안정되며 결과적으로 국민의 평화 행복, 국가의 안정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이같은 기본이념이 확립되어도 이를 위정자, 즉 각계의 지도자가 되는 사람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공염불”이라면서 “인재의 육성이야말로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일본에 있어서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념의 정립과 인재의 육성’을 핵심과제로 하여 마쓰시타 정경숙의 설립취지를 공표하였던 것이다. 설립초기에는 마쓰시타 재벌당을 만들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는 비난도 적지 않았으나 “마쓰시타 정경숙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과 내일을 위한 것”이라는 신념을 견지하였다.

2003년의 마쓰시타 정경숙

마쓰시타 정경숙의 인기는 평균경쟁률 200대 1에 달할 정도로 여전히 대단하다. 지금은 2004년 4월 1일 입숙을 목표로 하는 24기생을 모집하고 있다. 정경숙은 홈페이지 모집요강을 통해 만 22세에서 35세 이하의 국적불문, 학력불문 ‘인류의 참된 번영행복에 대한 명확한 기본이념을 가지고, 일본 및 세계의 이상형을 제시하고, 주로 정치분야에 있어서 그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3년간의 연수기간동안 선발된 연수생은 23기생의 경우 8명, 현재 총 숙생은 18인(여성2인)이며 이제까지 정경숙을 수료한 사람은 199인(여성23인)이다. 이들은 1년간 정경숙 공동체 생활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1년차의 경우 월정액 20만엔의 연수자금을 2~3년차의 경우 월정액 25만엔을 지급받으며 별도의 활동자금도 2년차부터 실적에 따라 지급하게 되어있다. (참고로 2002년의 활동자금 총액예산은 125만엔~175만엔)

이러한 지원금액은 기금이자율로 운영해야 하는 재단의 특성상 일본경제의 장기침체 및 이자율 저하 때문에 감소하는 추세이며 이전에 비해 상근직원(현재6명)을 절반이하로 감축하는 등 구조조정 및 경비절감 노력을 병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마쓰시타 정경숙의 저력은 이제부터 드러나고 있는 시점이 아닐까 한다. 199명에 달하는 수료생들은 이제 하나의 심리적, 문화적, 이념적 공동체로써 수평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정계를 중심으로 각계의 지도적 위치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중에서 41%를 차지하고 있는 정계부분을 살펴보면 정경숙 출신들은 한자리 숫자의 수료생들을 중심으로 정계진출을 본격화 하고 있다. 현재 중의원 의원은 모두 19명, 참의원 의원 2명, 광역의원(도.현) 14명, 기초의원(시.정.촌) 8명, 자치단체장 4명을 배출하고 있다. 이들은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고 있는 정경숙의 방침에 따라 각 정당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중의원, 참의원을 포함한 국회의원은 총 21명으로 일본 전체 국회의원의 2%를 약간 넘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30대에 한정하면 전체의 20%를 상회하는 무시못할 차세대를 형성하고 있다.

일본의 30대 국회의원 중에는 2세, 3세 세습의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정경숙 출신 국회의원들은 평범한 가정 출신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이들은 정당과 관계없이 ‘미래정치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그들의 생각을 공유하고있다.

일본 사회내에서도 정경숙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할 수는 있으나 대체로 긍적적이다. 숫자만으로 보면 이들이 일본의 정치개혁을 선도해나가기에는 아직 미약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10년, 20년 후면 정파나 정당에 상관없이 정경숙 출신들이 일본정계의 무시못할 세력으로 성장하게 되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해볼 수 있다.

마쓰시타 정경숙의 교육방침과 연수내용

정경숙의 기본이념은 숙시(塾是), 숙훈(塾訓), 그리고 오서(五誓)가 있다. 이 기본이념은 마쓰시타 고노스께가 여러 자문을 구해 만든 것이고, 이 속에는 인간이 갖추어야 할 모든 덕목이 들어 있다. 숙시는 ‘진실로 국가와 국민을 사랑하고, 새로운 인간관에 기초한 정치경영이념을 탐구하며 인류의 번영행복과 세계평화에 공헌하자’이다.

숙훈은 ‘참되고 순수한 마음으로 중지를 모아 자수자득(自修自得)으로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고 나날이 새로워지는 생성발전의 도를 구하자’이다.

숙생들이 지녀야 할 오서는 1. 항시 뜻을 품고 성공할 때까지 계속 정진하는 소지관철, 2.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헤쳐 나아가는 자주자립, 3. 보고 듣는 모든 것으로부터 배우라는 만사연수, 4. 기존의 것에 집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창조하고 개척해 나아가는 선구개척, 5. 아무리 우수한 인재가 모여도 친화가 없으면 성과를 얻을 수 없다는 감사협력 등이다.

이러한 숙시, 숙훈, 오서는 정치지도자 뿐만 아니라 한 인간이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마쓰시타 고노스께은 정경숙의 기본이념을 통해 일본을 개혁할 ‘새로운 인간형’을 추구했던 것이다.

교육방침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된다. ‘자수자득(自修自得)’과 ‘현지현장주의(現地現場主義)’가 그것이다. 정경숙의 인재상은 평론가를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개혁가를 길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전을 제시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3년간의 교육과정을 통해 배양하기 위해 위의 두가지 교육방침은 매우 중요하다. 자수자득으로 말하면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는 지도자는 자기 스스로 길을 찾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숙생은 각자 테마를 정해 활동을 계획,수행하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방침을 제시한다.

현지현장주의는 ‘진실된 정보는 현장에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숙생은 자신이 테마로 정한 분야에서 최첨단의 현장에서 문제를 보고 해결책을 구해야 한다. 정경숙에는 교실이 하나 밖에 없다고 한다. 이는 책상위에서 배우기보다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현지현장주의를 반영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 1년 동안에는 외부강사를 초빙하는 강의형식의 연수도 있지만 그것도 약 절반은 현장에서의 실지연수이다.

정경숙의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초기 1년간은 지도자의 기초적 자질을 확고히 하는 단계이다. 1년의 전반부에서는 정경숙의 설립이념이나 경제 등 기초지식의 습득 및 지도자로서의 자질배양에 주력하며 1년의 후반부에는 국내외의 활동을 중심으로 한다. 그리고 1년의 마무리 단계에서는 차년도 이후의 활동계획을 입안하고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계획안은 정경숙의 위원회에서 타당성, 독자성, 수료이후의 진로에 대한 정합성 등에 대해 엄중히 심사하게 된다.

1년간의 교육과정을 소개하면 1. 정경숙의 설립이념과 숙생의 사명-이 단계에서 설립자 마쓰시타 고노스께의 경영철학과 인간관에 대해 집중적으로 배우는 <마쓰시타 고노스께 연구>가 특징적이다. 2. 목표설정과 액션플랜 작성- 이 단계에서 <오리엔테이션 합숙>, <정치선거강좌> 및 <개별실천활동>등 실무적인 연수가 주를 이룬다.

3. 리더로서의 덕, 자질, 체력을 배양-이 단계에서는 <인간관강좌>, <일본연구강좌>, <다도, 검도, 서도>, <좌선연수>등을 배우는 등 소위 지,덕,체의 합일 교육이 이루어진다. 4. 기초정책 조사연구 능력 배양-이 단계에서는 <기초이념 및 정책강좌>, <시사문제연구>, <테마연구>등을 통해 국제관계.정치.경제 등의 기초지식을 습득하고 이슈가 되고 있는 시사문제에 대해 논의를 전개할 수 있는 능력을 주로 기른다.

5.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배양-이 단계에서는 <프리젠테이션 강좌>, <논리적 사고강좌>, <논쟁강좌>, <문장강좌>, <홍보전략강좌>, <영어회화> 등을 각계의 최고 전문가들로부터 이수하게 된다.

2~3년차부터는 1년차에서 습득했던 것을 바탕으로 자신이 정한 전문분야에 집중하게 된다. 이 기간에는 일본사회에 대한 제언과 동시에 피드백을 구하는 등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실현하게 된다. 숙생들은 각자의 활동내용을 보고해야 하며 함께 주제발표나 세미나에 참여하는 등 실천활동을 해야 한다. 최종적인 활동의 결과로 엄중한 심사를 거쳐 졸업논집을 작성함으로써 정경숙을 나와 사회의 지도자로 뛰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정경숙의 하루는 오전 6시 기상, 조기연수, 8시 아침식사, 8시 45분 조회가 있다. 이때 묵념, 숙시, 숙훈, 오서 제창이 있고 테마에 구애 받지 않는 소감발표를 하며 마지막으로 숙가를 제창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일과는 저녁 5시 45분에 마치며 그 이후엔 자유시간이다.

정경숙에서의 교육과 생활은 자유로운 선택과 시간활용, 그에 따른 책임을 강조하는 서양식 교육에 비해 다분히 집단활동과 규율을 엄격히 강조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일본적이다. 일종의 구시대적인 집체교육을 통해 과연 21세기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창의적인 인재상을 육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정경숙의 이념에 부합하는 인재상을 충실히 육성한다는 차원에서의 ‘효율성’은 재고할 수 있을 것이다.

마쓰시타 정경숙이 한국정치에 시사하는 것

모든 변화, 개혁의 핵심에는 사람이 있다.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개혁의 근본동력에는 개혁을 꾸준히 추진할 수 있는 인재와 세력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마쓰시타 정경숙의 사례를 보면서 한국 정치를 이끌어 왔던 소위 지도자들의 과거를 되돌아 보지 않을 수 없다. 인재를 육성하지 않은 정치는 필연적으로 모든 분야에 비해 후진적일 수 밖에 없다. 또한 그 결과는 국민들에게 폐해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정치는 마쓰시타 고노스께의 선견지명을 배워야 한다. 20여 년 전에 일본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인재육성 프로그램을 제시했던 마쓰시타 고노스께와 같은 정신적 선도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이다.

물론 마쓰시타 정경숙이 현대 일본정치의 고질적인 구조적 병폐-계파정치, 보스정치, 세습정치, 관료정치-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경숙의 숙생들이 10년후 20년후 일본사회의 지도적 위치를 점하게 될 때에는 분명 변화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정경숙의 설립취지는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정치는 도덕성과 개혁성, 정책능력을 고루 갖춘 신진세력, 인재의 충원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사람이 없다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또한 이러한 현상에 대해 한국의 지도층은 반성할 기미조차 보이고 있지 않다. 혹자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정치가 일본에 비해 훨씬 성숙하다고 한다. 이점에 대해 필자도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며 인재육성에 나서고 있는 ‘한국의 마쓰시타 고노스께’ 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자신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정치개혁의 핵심은 제도보다는 사람에게 있다. 제도는 이들 인재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나 도로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정치개혁은 서둘러서 되는 일도 아니다. 10년 후 20년 후를 내다보면서 지속가능한 개혁을 실천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할 수 있는 실천 가능한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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