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 유종일

2013. 6. 21. 14:43경제/대안사회경제, 협동조합

[세상 읽기]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 유종일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오늘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가 발족한다. 필자가 관여하고 있으니 축하한다고 할 수는 없고,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당부하는 입장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세기 굴곡진 역사를 뚫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하지만 국가 주도 개발독재와 시장만능주의 자본독재의 폐해가 누적되어 개인과 공동체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협동조합은 국가와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조와 자기책임, 공정과 연대에 기초한 민주적 운영과 상부상조를 원칙으로 하는 협동조합은 사회의 균형과 통합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말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 뒤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많은 협동조합이 생겨나고 있는 가운데, 세계 최초의 협동조합형 정책연구원으로서 지식협동조합이 탄생하는 것이다.

지식협동조합이란 무엇인가? 농협이나 신협, 그리고 생협 같은 것은 익숙한 존재지만 지협이라니, 이건 아무래도 생소하다. 에프시(FC) 바르셀로나나 에이피(AP)통신을 비롯해서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협동조합이 존재하는데, 인터넷을 아무리 열심히 뒤져봐도 네덜란드에 있는 ‘녹색지식협동조합’ 외에 지식협동조합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곳을 찾기 어렵다. 국내에서도 몇 분이 구상과 기획을 한 적은 있으나 정식으로 지식협동조합이 결성되는 것은 ‘좋은나라’가 처음인 것 같다.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는 스스로를 ‘지식과 문화의 생산과 공유 및 확산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협동조합’이라고 규정하고, ‘공동체를 위한 종합적인 싱크탱크 기능과 다양한 지식 관련 경제사업을 수행’할 것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지식의 생산과 소비야말로 협동조합이 필요하고 또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다.

대부분의 지식, 특히 정책과 직접 관련되어 있는 지식은 당파성에 물들기 쉽기 때문에 정책 논의의 저질화 우려가 있다. 물론 정책 논의가 완전히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일 수는 없다. 그러나 지나친 진영논리와 정파주의에 빠지면 논의의 수준이 낮아지고 억지주장이 판치게 되며, 사회적 합의를 도모하기보다는 갈등을 조장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이러한 지식의 생산과 전파 과정에서 권력과 자본의 입김을 배제하고 시민의 편에 서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사회적 합의와 통합을 도모하는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행히도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진영논리가 강하고 사회적 갈등도 심하다. 학문적 권위와 정치적 정당성, 즉 특정 세력이나 정파의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대다수 시민의 편에 서는 입장을 인정받는 정책연구기관의 부재가 한 원인일 것이다. 한국의 정책연구기관들은 단 한 곳도 세계 100대 싱크탱크에 들지 못하고, 그나마 가장 대표적인 곳들은 정부나 재벌의 통제 아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시민의 편에서 정책 관련 지식의 생산과 확산을 추구하기 위한 경제적·조직적 토대를 만들 필요가 있다. 협동조합이 안성맞춤이다. 대학과 시민단체의 역할도 있으나, 대학은 상아탑이 되어 현실과 거리를 두거나 돈맛에 빠져 본연의 사명으로부터 멀어진 경우가 허다하고 시민단체는 대체로 경제적 토대가 부실하다.

지식은 오늘날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이고,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토대다. 그러나 지식의 생산과 소비는 대표적인 시장 실패의 영역이다. 지식은 협동을 통해서 커지며,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협동조합은 시장의 실패를 극복하고 지식활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지식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한 나눔을 동시에 실현하는 조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