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나무 한 그루의 배치에도 사상을 담았던 선조들의 조경과 건축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 나무와 풍경으로 본 옛 건축 정신…최종현 지음 | 현실문화 | 304쪽 | 1만6500원
중국 지린성 지안에 있는 고구려 무용총 현실(玄室) 서벽의 고분벽화는 숭목 사상을 잘 보여준다. 숭목 사상은 신이 나무나 숲을 통해 강림하거나, 나무에 신성한 존재가 머물러 있다고 믿는 생각이다. 이 벽화에는 왼쪽의 ‘수렵도’와 오른쪽의 ‘우교차도’를 분할하며 두드러지게 서 있는 큰 나무가 있는데, 저자는 “(이 나무가) 국가나 부족 간의 활동영역 경계를 표시하는 장치였으며,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우주의 중심목이며 신목(神木)일 것”이라고 말한다. 고분벽화에서 드러나듯 자연 숲과 나무는 한국 역사에서 숭앙과 경외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건축학자인 저자는 전통 수목이 마을·도시를 조성하고 경관을 구성하는 것은 어떤 특성과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를 생각하다 수목과 배식(培植)에 관한 한국의 전통사상을 분석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옛 문헌과 건축 속에 등장하는 나무들의 종류와 함께 선조들이 어떤 믿음과 생각에서 그 나무들을 심고 키웠는지를 살펴본다. 17세기 ‘천하도’에도 왼쪽에는 부상목(扶桑木), 오른쪽에는 반격송(盤格松), 북쪽 상단에는 천리반송(千里盤松)이 그려져 있다. 부상목은 해와 달이 떠오르는 곳이고, 반격송은 지는 곳이다. 천리반송은 하늘과 소통하는 우주목이다. 이 지도의 나무 심기와 배치는 실제에도 적용됐다. 저자는 “선조들은 나무를 그저 보기 좋으라고 심는 것이 아니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의 의미와 기능이 분명히 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조선시대 성리학 이념이 건축물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살펴본다. 예로 든 것은 퇴계 이황이 지은 도산서원이다. 저자는 도산서원 동쪽에 조성한 실개천인 몽천, 몽천 밖에 만든 화단인 절우사, 나뭇가지로 엮어 만든 정문인 유정문 같은 것들이 단순히 외부 환경이나 풍경이 아니라 물아일체의 대상이었다고 말한다. 도산서원은 “하늘이 명을 내려 부여한 것이 성(性)이며, 성을 따르는 것이 도(道)이며, 도를 수양하는 것이 교(敎)”라는 <중용>의 경구처럼 퇴계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상과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정밀하게 조성된 공간이라고 했다.
저자는 고려·조선 시대 예술작품에 드러난 ‘관동’ 지방의 풍경과 경치, <삼국사기> <고려사>에 나온 옛 누정의 연원도 함께 소개한다. 조선 중종 때의 학자 충재 권벌이 자리잡고 살았던 경북 봉화군 닭실마을의 입지와 조성이 성리학에 기반한 것임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