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6. 09:54ㆍ시민, 그리고 마을/시민사회운동과 사회혁신
미국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 - 하워드 진새책,이벤트소식
『미국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 -미국사에 감춰진 저항과 투쟁, 자유와 해방의 언어들
● 제 목: 『미국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 ● 원 제: Voices of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 엮은이: 하워드 진Howard Zinn ․ 앤서니 아노브Anthony Arnove ● 체 제: 신국판 / 무선 / 1,144쪽 / 값 55,000원 ● ISBN: 978―89―6157―047―3 93940 ● 발행일: 2011년 1월 27일
|하워드 진, 『미국민중사』의 나머지 조각을 맞추다|
『미국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Voices of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은 하워드 진이 자신의 대표작 『미국민중사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를 쓰면서 참고했던 1차 자료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미국민중사』는 1980년 출간 이래 2백만 부 넘게 팔리며 수십 개국의 언어로 번역되는 등,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노암 촘스키가 『미국민중사』의 업적을 일컬어 “사람들이 과거를 바라보는 방식을 변화시켰다”라고 평할 만큼 『미국민중사』는 주류 역사학만이 정설로 인정받는 폐쇄적인 풍토에서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입증했다. 하워드 진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미국민중사』가 빚지고 있는 민중의 목소리를 더욱 생생하게 살려내는 작업에 몰두했다. 이 작업을 구상하던 당시, 하워드 진은 오직 단편적인 자료들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워드 진과 『불복종의 이유Terrorism and War』를 비롯해 여러 작업을 함께 해 오던 편집자 앤서니 아노브는 부족한 자료들을 메우고 그것들을 간추리는 일에 적격이었다. 앤서니 아노브가 자료를 찾으면 하워드 진이 그 자료들에 해설을 달았다. 2년 6개월이 넘는 작업 기간 끝에 나온 결과물이 바로 이 책, 『미국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이다. 『미국민중사』가 역사적 해설이라면 『미국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은 그 해설에 대한 ‘살아 있는 증언’이라 할 만하다. 이 방대한 작업은 이름 없이 사라져 간 미국 민중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했던 하워드 진의 마지막 역작이다.
|절망에서 길어 올린 희망의 노래들|
하워드 진은 전작 『미국민중사』와 마찬가지로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침탈에서부터 부시 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에 이르는 500년이 넘는 시간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생전 자신의 역사관으로 늘 강조해 왔던 “아래로부터 바라보는 역사”의 시각을 유지하는 가운데, 하워드 진은 민중의 목소리에서 미국 역사의 가장 생생한 단면들을 채취해 낸다. 하워드 진이 바라본 미국의 역사는 몇몇 정치인과 기업가, 혹은 전쟁광들이 움직이는 역사가 아니다. 삶의 터전을 빼앗긴 토착 미국인의 역사, 실제 미국의 부를 일궈왔으면서도 그 부에서 철저히 소외당한 노예들과 노동자들의 역사, 이등 시민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여성, 동성애자, 유색인의 역사, 미국의 팽창주의 정책에 맞서 저항했던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반전주의자들의 역사였다. 이 책에 담긴 그들의 연설문, 선언문, 편지, 시와 노래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절망의 순간에도, 그 안에서 희망을 길어 올리는 평범한 영웅들의 감동적인 서사다. |우리가 택해야 할 역사는 바로 여기, 민중의 목소리에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던 미국사의 상식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미국이 기록하지 않은 미국 역사의 이면을 보여 준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모험가에서 원주민을 잔인하게 학살한 제국주의의 선봉장이 되고, 흑인 해방이라는 허울을 벗겨낸 남북전쟁은 계급 갈등의 격전지가 된다. 헬렌 켈러는 ‘기적의 소녀’라는 신화에서 걸어 나와 제1차 세계대전 참전에 반대하는 사회주의 연사가 되고 무하마드 알리는 챔피언 벨트를 벗어 던지고 베트남에서 백인들의 전쟁 도구가 되느니 차라리 감옥을 택하겠다고 외친 정치적 투사가 된다. 비폭력 평화주의자로 알려진 마틴 루서 킹 2세는 거지에게 동전 한 닢을 던져 주기보다 차라리 체제 자체를 변혁시키는 행동에 앞장서라고 독려하는 급진주의자로 등장한다. 그 밖에 우리에게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사람들, 흑인 노예들의 탈출을 도왔던 ‘지하철도’ 건설자들, 체로키족의 ‘눈물의 행렬’을 지켜보며 죄책감을 느꼈던 백인 통역사, 참정권과 투표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라면 부당한 법에 저항할 줄 알아야 한다고 외쳤던 선구적인 흑인과 여성들, 멕시코와 쿠바, 베트남과 이라크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그 전쟁의 부당함을 고발했던 일반 사병들 혹은 장교들, 국가와 자본의 잔인한 폭력성을 죽음으로 알린 광산 노동자들, 파업 현장의 한가운데서 경찰들의 폭력 진압에 맞서는 가운데 연대의 기쁨을 알아갔던 노동자들, 불법 낙태 시술의 해악을 홀로 감당해야 했던 여성들, 버스 승차를 거부하고 쏟아지는 협박과 굴욕에도 백인 전용석에 앉아 인종 분리 정책의 부당함을 행동으로 알렸던 흑인들, 그리고 국가 권력과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질서라는 더 거대한 권력에 맞서 싸웠던 풀뿌리 민중들, 차별과 빈곤의 사슬을 끊고, 반전과 평화를 노래하고, 자유와 평등을 외쳤던 이들이 지켜온 오랜 저항의 전통이 이 책 한 권에 빼곡하게 녹아 있다. 『미국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은 이처럼 평범한 민중들이 시민 복종이 아닌 시민 불복종의 투사가 되고, 강요된 침묵이 조그만 목소리가 되어 흘러나와 이내 거대한 행동으로 터져 나왔던 역사적 순간을 바로 그 자리에서 포착해 독자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 하워드 진은 역사가 진정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우리가 택해야 할 역사는 바로 여기, 민중의 목소리에 있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역사가 된 역사가, 하워드 진 추모 1주기에 부쳐|
2010년 1월 27일, 하워드 진이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전 세계 언론사가 이 소식을 전하며, “미국의 양심”이라 불린 역사학자의 죽음을 애도했다. 작가 앨리스 워커의 스승이자 노암 촘스키의 동지였고, 무엇보다 투쟁하는 모든 이들의 벗이었던 하워드 진은 죽기 직전까지 자신이 걸어온 길을 꼿꼿하게 지켜 냈다. 이는 그가 쓴 마지막 글이, 오바마 정부의 팽창주의적인 대외 정책을 비판한 내용이었다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60년대,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들과 함께 민권운동에 발을 담근 이래 하워드 진은 미국 현대사의 굴곡과 자신의 삶을 거의 완벽하게 일치시켰다. 이 책에 기록된 역사의 현장에 하워드 진, 그도 있었다. 인종주의자들이 민중 가수 폴 롭슨의 공연을 방해할 때, 하워드 진도 그곳 피크스킬에서 군중들의 돌팔매를 감당했다. 미 정부의 베트남전 관련 기밀문서인 ‘펜타곤 보고서’를 엘스버그에게서 넘겨받아 출간을 도운 것도 노암 촘스키와 하워드 진이었다. 자신의 퇴임 강연을 30분 일찍 끝내고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합류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화다. 미국인, 더 나아가 세계인에게 “기억의 전범”을 마련해 준, 그리고 자신의 몸으로 직접 미국의 현대사를 써 내려갔던 역사의 산 증인, 하워드 진이 『미국민중사』 이후 평생의 과제로 삼았던 책이 드디어 한국의 독자를 만나게 되었다. 『참고할 만한 자료』
The People Speak(2009) 『미국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에 근거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다. 하워드 진과 앤서니 아노브를 비롯해 하워드 진의 오랜 친구기도 했던 영화배우 맷 데이먼Matt Damon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조쉬 브롤린Josh Brolin, <굿 윌 헌팅>의 제작자인 크리스 무어Chris Moore가 제작을 맡았고, 앤서니 아노브와 크리스 무어가 감독했다. 유명 배우와 가수, 작가들이 『미국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에 실린 편지, 일기, 그리고 연설문 등을 재연해 들려준다는 기획으로, 밥 딜런Bob Dylan,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등은 『미국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에 실린 자신들의 노래와 소설을 직접 낭송했고, 그밖에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모건 프리먼Morgan Freeman, 숀 펜Sean Penn, 산드라 오Sandra Oh 등이 열연했다. 2009년 히스토리채널을 통해 방영되었으며, 『보스턴 글로브』,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여러 언론사의 호평을 받았다. 현재 이 다큐멘터리는 다양한 버전으로 제작되고 있다. 영국판의 경우 영화배우 콜린 퍼스Colin Firth가 제작을 맡아 영국 역사에서 중요했던 순간을 성공적으로 재현해 냈으며, 교육용 다큐멘터리는 좀 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그들의 육성으로 미국 민중의 목소리를 전한다는 기획 의도 아래 곧 제작을 앞두고 있다. 히스토리채널 홈페이지http://www.history.com/shows/the-people-speak에서 주요 장면을 볼 수 있다.
|차 례|
■ 감사의 글 ■ 들어가며
제1장 콜럼버스와 라스 카사스 제2장 첫 번째 노예들 제3장 노예 상태와 반란 제4장 혁명의 준비 제5장 반쪽짜리 혁명 제6장 초기 여성 운동 제7장 인디언의 이주 제8장 멕시코 전쟁 제9장 노예제도와 저항 제10장 남북전쟁과 계급 갈등 제11장 도금 시대 파업자와 포퓰리스트 제12장 제국의 팽창 제13장 사회주의자와〈세계산업노동자연맹〉 제14장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저항 제15장 재즈 시대에서 1930년대 소요까지 제16장 제2차 세계대전과 매카시즘 제17장 인종분리에 저항하는 흑인들 제18장 베트남과 그 이후: 역사적 저항 제19장 여성, 게이, 그리고 다른 저항의 목소리들 제20장 1970년대의 제어력 상실 제21장 카터-레이건-부시 콘센서스 제22장 파나마, 1991년 걸프 전쟁, 그리고 국내에서의 전쟁 제23장 빌 클린턴에 대한 도전 제24장 부시 2세와 “테러와의 전쟁”
■ 옮긴이의 글 ■ 참고 문헌 ■ 저작권 확인 ■ 찾아보기 • 엮은이 -하워드 진Howard Zinn 노암 촘스키와 함께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으로 일컬어지는 하워드 진은 대학 교수, 사회운동가, 역사학자로서 누구보다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1922년 뉴욕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조선소 노동자로 떠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해 전쟁의 참화를 몸소 겪는다. “제대군인원호법” 덕분에 컬럼비아 대학에 입학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펠먼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민권운동에 참여했고, 보스턴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를 이끌었다. 2010년 1월 27일,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전까지도 오바마 현 정부의 외교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 “미국인의 양심”이라 불릴 만큼 모든 행동과 실천에 앞장섰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토머스 머튼 상”, “유진 뎁스 상”, “업튼 싱클레어 상”, “래넌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대표작 『미국민중사』를 비롯해 『오만한 제국』,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전쟁에 반대한다』 등, 20여 권의 저서를 남겼으며, 대부분의 저서들이 10여 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곳곳에서 읽히고 있다.
-앤서니 아노브Anthony Arnove 프리랜서 편집자이자 작가, 사회운동가다. 『네이션』, 『인터내셔널 소셜리스트 리뷰』, 『소셜리스트 워커』, 『먼슬리 리뷰』 등에 정기적으로 혹은 부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국제사회주의자조직(ISO: International Socialist Organization)>과 <전미작가연맹National Writers Union>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편집하고 공동 저술했으며, 하워드 진과는 『불복종의 이유』를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부시 정부의 대이라크 정책을 비판한 책 Iraq: The Logic of Withdrawal를 써서 널리 알려졌다.
• 옮긴이―황혜성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하와이 마노아 대학University of Hawaii at Manoa 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노예제도와 미국의 자유』, 『미국인의 역사』를 번역했으며,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 『사료로 읽는 미국사』를 공동으로 번역했다. 현재 한성대학교 역사문화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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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나는 희망을 고집한다."
노동자, 빈민,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미국 역사의 주인공으로 세웠던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를 읽던 이십대의 제 모습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책장 넘어가는 것이 아까워서 자꾸만 책을 덮게 되었고, 가슴이 활활 타오르게 했던 문장이었으며, 무엇보다 흑인 민권 운동에 뛰어들게 된 학자적 경험을 진솔하게 밝혀 놓은 진의 강단이 좋았습니다.
<미국 민중사 1> <미국 민중사 2> <전쟁에 반대한다>를 책장에서 꺼내 어루만져 봅니다. 전쟁에 참여해 참혹함을 경험한 뒤 열렬한 반전주의자가 되었던 하워드 진의 인생이 책 속의 문장들을 타고 새삼스레 전해집니다. 그리고, 지금 편집 작업 중인 <voice of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도 다시 펼쳐 봅니다. 살아 계셨을 때 이 책의 한국어판 출간을 보여 드리지 못한 것이 오래도록 회한이 되겠다, 싶은 생각이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스콧 니어링의 이웃들이 니어링에게 전한 말을 빌려 하워드 진의 명복을 빌어 봅니다.
"하워드 진, 당신이 있어서 당신의 미국은, 그리고 세계는 조금 더 아름다워질 수 있었습니다."
하워드 진의 명복을 빕니다.
<하워드 진에 대하여...>
노암 촘스키와 함께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으로 일컬어지는 역사학자다. 하워드 진은 그 인생 자체가 하나의 역사일 만큼 열정적인 삶을 살아 왔다. 1922년 뉴욕의 평범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고, 조선소 노동자로 일했다. 폭격수로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폭격기를 타면서 전쟁의 잔혹함을 뼈저리게 느낀 하워드 진은 그 뒤로 평생 전쟁에 반대한다. 전쟁이 끝난 후, 컬럼비아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고 흑인 여성들의 대학인 스펠먼 대학에서 교편을 처음 잡았다. 1960년대 미국을 뒤흔든 공민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등 불의에 맞선 그의 저항은 학교 당국의 눈엣가시였고, 결국 해고된다. 이후 보스턴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여든을 넘긴 지금도 이라크전쟁 반대 운동을 지지하는 등 힘없는 사람들 편에 서서 ‘민중의 역사’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초로 미국 역사를 아래로부터의 관점에서 쓴 『미국 민중사』(이후)는 하워드 진의 대표 저서다. 하워드 진의 저서들은 1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곳곳에서 읽히고 있는데,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이후), 『오만한 제국』(당대),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다른), 『하워드 진, 교육을 말하다』(궁리), 『권력을 이긴 사람들』(난장), 『하워드 진 살아 있는 미국 역사』(추수밭),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당대) 등이 있다. 2010년 1월 27일, 88세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 이후출판사에서 펴낸 하워드 진의 책들
<미국 민중사 1, 2>
민중의 시각으로 역사를 읽는다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지향하며 민중의 시각으로 미국사 전체를 읽어 낸 『미국 민중사』는 하워드 진의 역사학자로서의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난 역작으로, 1980년 첫 출간 이래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대표적인 저서다. 『미국 민중사』는 이렇게 파편화되고 해체되어 있던 또 다른 민중의 목소리와 지워진 기억을 복원하고, 다양한 입장에 처한 이들의 다양한 역사를 유기적으로 조화시킨다. 이를 통해 미국 민중들로 하여금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가 곧바로 역사가 되었다는 전제에서 미국을 읽게 만든 것이 『미국 민중사』의 성과인 셈이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미래는 현재들의 무한한 연속이며 인간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대로 우리를 둘러싼 모든 나쁜 것들에 도전하며 현재를 산다면, 그것 자체로 훌륭한 승리가 될 수 있다.”
『미국 민중사』와 『오만한 제국』으로 잘 알려진 역사학자이자 사회운동가 하워드 진의 자전적 에세이다. 실천적 지식인답게 자신의 삶을 역사에 투영시켜 감동적이고도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흑인 사회를 이해하게 된 과정과 민권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들, 제2차 세계대전 참전과 반전 운동의 선두에 서게 된 이야기들이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
<전쟁에 반대한다>
우리 시대에 고하는 하워드 진의 반전 메시지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한 명의 참전 군인으로서, 나는 내가 전쟁에 복무한 사실이 전쟁을 찬미하는 구실로 사용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5천만 명이 목숨을 잃은 이 전쟁이 끝나던 날 전 세계 사람들은 ‘이제 그만enough!'이라고 외쳤어야 했다. 우리는 그 순간부터 결연하게 전쟁을 고발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한국전쟁도, 베트남전쟁, 파나마전쟁, 그레나다전쟁, 걸프전, 발칸전쟁도 없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부터 리비아, 베트남, 코소보, 유고슬라비아, 그리고 이라크 전쟁까지 지금껏 미국이 발발 또는 개입한 전쟁을 고발하고 새 세기의 평화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하워드 진 자신이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직접 체험하고 성찰한 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http://blog.naver.com/ewhobook/30079372089 기사입력 2011-01-14 오전 11:08:24
회화나 건축이 미술품인데, 어째서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아야 하는가. ― 미셸 푸코 모든 개인의 삶은 하나의 예술작품일 수 있지 않은가. 작년(2010년)에 우리는 우리시대의 가장 양심적인 지식인 두 사람을 잃었다. 한사람은 1월에 강연여행 중 숨을 거둔 미국의 역사가 하워드 진, 또 한사람은 12월에 이 세상을 떠난 한국의 언론인이자 학자였던 리영희. 두 사람은 지리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각자의 주어진 사회적·개인적 현실에 대응하며 살았으나 그들의 생애가 그려 보여주는 궤적에는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매우 흡사한 정신적 경향, 세계인식, 삶의 자세가 드러나 있다. 그러한 공통성은 동시대인이었기에 물론 가능했겠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이 지식인의 본분에 극히 충실한 삶을 살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좀더 인간적인 사회를 위하여 《미국민중사》의 저자로 우리나라에도 상당히 알려져 있는 하워드 진은 뉴욕 빈민가의 유태인 이민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 책 한권, 잡지 하나도 구경할 수 없었던 가난한 집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문학을 좋아하는 소년으로 성장했고, 청년기에는 2차대전에 참전하여 전투기 조종사로 유럽전선에서 복무했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와 대학에서 역사와 정치학을 공부하고, 학위를 받은 다음에 그는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 전쟁 중에 자신이 네이팜을 포함한 폭탄을 투하했던 지역을 찾아가보았다. 그때 그는 미군당국이 발표했던 것과는 달리 네이팜탄 투하로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당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가 거기서 또 알게 된 것은 전쟁이 끝날 무렵 인구가 밀집된 도시들에 대하여 자행된 무자비한 공습이 대부분 실제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군부 지휘관들의 개인적 출세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면서, 무고한 인명을 학살하고도 정부와 군부는 언제나 '불가피한 사고' 혹은 '부수적 손상'이라는 용어를 태연히 쓰면서 진실을 호도한다는 것도 알았다. 이 발견으로 '국가'에 대한 그의 순진한 믿음은 깨지고 말았다. 옛 유럽전선 재방(再訪) 경험은 확실히 하워드 진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타고난 자질 탓이기도 했겠지만, 정의에 대한 그의 남달리 예민한 감수성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끝없는 동정적 관심의 뿌리에는 전쟁 중에, 비록 군(軍)의 명령에 의한 것이긴 했으나, 그가 저지른 살상행위에 대한 쓰라린 죄책감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이후 하워드 진의 일생은 평생에 걸쳐 평화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노력으로 일관되었다. 1960년대부터 흑인사회를 중심으로 시작된 민권운동, 여성 및 소수자 인권운동을 위시하여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온갖 다양한 운동에 뛰어들었고, 특히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에서는 최전선에 서서 미국의 전쟁범죄를 끊임없이 규탄했다. 베트남전쟁 동안에는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하노이를 직접 방문하여 현장을 확인한 다음에, 《철병(撤兵)의 논리》(1967)라는 책을 써서 베트남에서 왜 미군이 즉각적으로 물러나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역설하였다. 그가 보기에 베트남전쟁은 미국에 의한 침략행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민주주의의 옹호라는 미국정부의 논리는 패권주의적 지배를 은폐하는 기만적인 언어일 뿐이었다. 촘스키의 기억에 의하면,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기본적으로 범죄적이며 따라서 미군은 무조건 철수해야 한다는 것을 "소리 높이, 공개적으로, 설득력있게" 발언한 최초의 미국 지식인이 하워드 진이었다. 물론, 국가에 의한 전쟁수행을 규탄했다고 해서, 한국의 리영희가 감옥으로 가야 했듯이, 하워드 진이 감옥으로 간 것은 아니었다. 그가 속한 사회가 기본적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노골적으로 탄압하는 군사독재 치하에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워드 진의 행동이 쉽게 용납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훨씬 나중에 드러난 사실이지만, 이미 이 무렵부터 FBI는 그에 대한 파일을 작성하여 "국가안보에 대한 큰 위험요소"로 분류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식사회도 그에게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촘스키는 하워드 진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철병의 논리》가 출판되어 나왔던 당시에 이 책에 대한 단 한편의 리뷰도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하워드 진의 단호한 메시지가 지식인들에게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이라고 해서 늘 독자적인 사고와 판단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어쩌면 일반 시민들보다도 더 국가가 만들어낸 신화(神話)나 '국익'이라는 상투적인 관념 속에 안주하는 편을 택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리영희나 하워드 진은 결코 추상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해 행동을 한 것이 아니었다. 가령 베트남전쟁의 진실을 규명하는 일에 외신기자 리영희가 집요하게 매달렸던 것은 어디까지나 냉전시대의 폐색상황이 강요하는 지적 불구화와 사상적 빈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필사적인 고투였고, 그 덕분에 한국사회는 적어도 정신적인 호흡정지 상태를 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리영희는 자주 그가 바라는 것이 단지 "상식이 통하고, 최소한의 도덕성이 통하는" 사회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자신이 원하는 사회가 '인간적인 자본주의'로 불려도 좋고, '인간적인 사회주의'로 불려도 좋다고 말함으로써, 그가 결코 도식적인 도그마에 매달려 '이상사회'를 꿈꾸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 하워드 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라고 공언하였으나, 그가 믿는 사회주의란 "소련에 의해서 그 이름이 오염되기 이전의" 사회주의였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좀더 친절하고, 좀더 부드러운" 사회를 뜻했다. 그에 의하면 "사회주의사회란 사람들이 가진 것을 서로 나누는 사회, 기업의 이윤이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생산을 하는 경제시스템"이었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이 생애 마지막 무렵에 행한 발언도 매우 유사한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리영희는 거의 최후의 공식 인터뷰에서 자신이 평생 관심을 가졌던 것은 '진실'이었으며,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에서 언제나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하워드 진 역시 자신은 "힘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느낌을 준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그런데 '힘없는 사람들'이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말할 것도 없이, 그 희망은 '진실'의 힘에 의해 발효되고 배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지식인이 진실을 정직하게, 용기있게 말한다는 것은 그 지식인 개인의 삶을 위엄있게 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속한 사회를 희망의 공동체로 변화시키는 데 무엇보다 큰 기여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실'을 말하는 행위는 지식인이 자기의 이웃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민주주의의 위기와 지식인 리영희나 하워드 진과 같은 지식인의 존재가 새삼스럽게 간절한 것은 오늘날 우리의 상황이 그들이 보여준 강인한 정신과 양심적인 행동을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로 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지금 나라 안팎의 상황은 한마디로 벼랑끝이다. 세계는 인류 전체가 합심하지 않는다면 해결할 수 없는 치명적인 문제들에 직면해 있고, 우리사회는 민주주의가 어이없이 망가지고 있다. 국가권력은 단지 선거에 의해서 집권했다는 한가지 사실만을 자기정당성의 근거로 삼은 채, 시민들의 목소리를 간단히 무시하고, 국가기구를 철저히 사익 추구 수단으로 전락시키면서 가장 기초적인 민주주의 원리인 삼권분립마저 사실상 무력화시켜버렸다. 그 결과 이 사회는 지금 행정부 수장의 권력만 활개를 칠 뿐, 독립적인 입법, 사법이 존재하지 않는 흡사 식민지사회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이 정부는 연평도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지난 이십년간 애써 구축해온 남북간 화해·협력을 기조로 한 평화구조를 관리하는 데 극히 무능하고, 무책임하다는 사실을 드러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깊이 상심하고, 무력감 내지는 좌절감에 시달리며, 심지어는 우울증을 호소하고 있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쟁취한 민주주의인데 이렇게 허망하게 망가질 수 있느냐며 분노와 슬픔 속에서 견디기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민들 사이에 이러한 무력감, 좌절감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이 나라 민주주의가 심각히 손상돼 있다는 단적인 증거이다. 지금 우리사회가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이 하나둘이 아니지만, 그것들은 전부 예외없이 민주주의가 회복돼야만 제대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나라의 현재와 장래에 사활적인 중요성을 가진 4대강 보호문제와 남북간 화해·협력체제의 재구축이 그렇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이 현재의 집권세력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의 권력남용이 상당수 국민의 동조 내지는 묵인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사회에서 대중의 지적 수준이나 정치적 교양에 관련하여 궁극적인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는 학자, 전문가, 언론인, 즉 지식인들이 결국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4대강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하여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해온 소수의 학자, 전문가들의 노고를 잊을 수는 없다. 사실 이들의 양심적이고 성실한 노력 덕분에 그나마 종교계, 시민운동가, 일반 시민들이 정부에 4대강 공사의 중단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게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부가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빠른 속도로 공사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나 전문가들이 결국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반대의견을 학계의 극히 일부 의견일 뿐이라고 간단히 무시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관련 학자·전문가치고 4대강 공사의 무모성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들은 말은 안하고 있지만, 멀쩡한 강이 단순한 수로(水路)로 변형되고 있는 이 사태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토목·수문학을 비롯하여 관련학계가 전부 나서서 발언할 필요가 있다. 개인 자격으로, 또 학회의 이름으로 나서서 이 공사의 부당성을 "소리 높이, 공개적으로, 설득력있게" 말해야 한다. 공학자만이 아니라 물리학자, 생물학자, 법학자, 정치학자, 인문학자들이 모두 나서서,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공사는 나라 전체에 크나큰 재앙을 불러올 어리석은 만행이라는 것을 정직하게, 용기있게 발언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학자, 전문가들이 말한다고 해서 귀담아 들을 권력이 아니다. 그리고 일찍이 촘스키가 말했듯이 "억압적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에게 진실을 말해준다는 것은 시간낭비이며 무익한 노력"일 것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들을 마음이 없는 귀에 무슨 말을 한들 들어가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인들의 발언이 필요하다. 그것은 그 발언에 의해 권력자의 마음이 바뀔 가능성이 있어서가 아니다. 하워드 진이나 리영희가 개인적 삶을 희생하면서 '진실'을 끈질기게 천착한 것은 그것이 권력의 자기반성을 촉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지금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할 때, 그것은 국가권력의 남용에 의해서 우리사회에 합리적 의사소통의 공간이 극도로 위축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4대강 문제이다. 수없이 반복되는 얘기지만, 4대강 공사는 대운하를 전제로 하지 않고는 하나부터 열까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 최소한의 이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든 부정하지 못할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근본적인 의문에 대하여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설명을 일절 거부한 채, 정부는 수질개선과 홍수방지라는 처음부터 말이 안되는 말만 되뇌며 서둘러 강과 유역생태계를 파괴하는 데 열중해 있다. 대체 강바닥을 다 파헤쳐놓고, 모래톱과 여울과 수변생태계를 파괴하고, 그렇게 해서 수질정화의 자연적 기능을 온통 망가뜨려놓은 다음에 어떻게 수질이 개선된다는 것인가. 국민 전부를 바보로 여기지 않는다면 감히 할 수 없는 궤변에 불과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사라지는 농경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오랜 세월 강의 흐름에 의해 형성된 강변 둔치는 옥토 중의 옥토이다. 그 둔치들이 지금 무참히 잘려나가고 있다. 또한, 수많은 농지가 준설토 적치장으로 변하면서 농지로서의 기능상실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도 못 볼 노릇이다. 정부가 예상하는 대로 몇년 후에 과연 이 농지들이 농지로서의 기능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실은 매우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농경지 리모델링 사업이라는 아마도 급조한 것이 분명한 이름으로 정부는 농지를 훼손하는 일에 조금도 망설임이 없다. (우리나라는 자원빈국이라는 상투적인 말은 따져보면 극히 어리석은 말이다. 자원이 없기는커녕, 우리나라야말로 원래 좋은 기후, 비옥한 땅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생존·생활조건이 갖추어진 천혜의 자원부국이다. 자원이 없다는 것은 예컨대 석유가 나지 않는다는 얘기지만, 석유시대는 지금 종말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농사도 석유 없이는 불가능하게 된 구조가 걱정이지만, 어떻든 이 구조는 바뀌어야 할 것이지 언제까지나 석유를 믿고 그대로 둘 수는 없는 것임이 확실하다. 그리고 탈석유시대를 대비해서 가장 중요한 게 땅을 최대한 보호하는 일이라는 것도 확실하다. 석유시대가 종말을 고하려고 하는 이 시점에서 지금까지 경제가치가 없다고 무시했던 우리의 논밭 하나하나는 그 어떤 유전(油田)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임을 뒤늦게나마 깨달을 날이 곧 올 것이다.) 그러나 정부 사람들이 사태의 진상을 모르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이 합리적인 설명을 끝끝내 거부하는 것은 진실을 밝힐 수 없는 사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새삼스럽게 그들에게 '진실'을 말해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대신 지식인들은 시민들을 위해서 발언할 필요가 있다. 지금 극도로 위축되어 있는 합리적 의사소통 공간의 재생을 위해서 지식인들의 정직하고 용기있는 발언은 불가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민주주의의 소생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모두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 중에서 민주주의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없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회복 없이는 4대강을 보호한다는 것도, 남북간 화해·협력체제 구축을 통해서 평화구조를 확립한다는 것도 사실상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자유의 실천, 자기배려 그러나 문제는 지금 상황에서 더 많은 지식인들에 의한 정직하고 용기있는 발언을 기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를 들어, 최근에 출판된 책 《과학의 양심, 천안함을 추적하다》를 읽어보면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천안함 침몰사건에 관련하여 민군합동조사단의 발표내용에 드러난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해온 재미 물리학자 이승헌 교수가 쓴 일기체 기록이다. 그는 이 문제에 개입하게 된 시초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거의 매일 꼼꼼히 기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매우 귀중한 역사적 증언을 남겨놓았다. 그런데, 이 책에서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은 오늘날 한국의 과학자들이 대부분 과학연구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별로 깊이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국가나 자본의 이익을 위하여 과학을 단지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요컨대,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인간다운 삶에 불가결하다고 할 수 있는 공동체의 도덕적 기반을 보호하는 데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자들에 대한 근거 없는 중상모략이 아니다. 이승헌 교수의 책에는 천안함 '피격'의 증거로 정부 측이 제시한 결정적 자료, 즉 '1번 표시 어뢰추진체'의 신빙성 여부를 밝히는 과학적 검토 과정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동시에 거기에는 과학계의 동료, 선후배, 스승들에게 이 작업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하는 이승헌 교수의 간절한 호소가 담겨있고, 또한 그 호소에 대한 과학자들의 반응이 기록되어 있다. 과학자들의 반응은 다양하지만, 결론은 한결같이 동참불가라는 것이다. 끝내 답변을 주지 않고 침묵을 고집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대개는 이승헌의 실험결과에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시간이 없어서", "두려워서", "해봐야 소용없을 것이기 때문에" 참여를 하지 않겠다는 답변인 것이다. 이러한 과학자들이 빠져있는 가장 큰 함정은 역시 국익이라는 관념이다. 많은 경우, 그들은 진실보다는 국익이 우선이라고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자신의 침묵이나 회피가 결과적으로는 '국익논리'에 동조하게 된다는 것을 그들이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기는, 안락한 연구실 환경에 익숙한 오늘의 학자, 전문가들이 이런 성가신 일에 뛰어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북한이 범인이라는 정부와 극우언론의 '결론'을 거스를지도 모를 일에 개입한다고 생각하면 사실 불안할 것이다. 게다가 연구비 생각을 하면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승헌 교수와 그의 몇몇 동지들이 문제의 '1번 어뢰추진체'가 결국은 출처불명의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용기있게 발언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해외 거주 과학자들이라는 사실과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물론 해외 거주 과학자라고 해서 모두 과학적 양심에 충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오늘의 현실에서 예외적인 과학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단순히 실력있는 전문가가 아니다. 예를 들어, 이승헌은 그의 일기 속에서 극히 부실한 증거를 가지고 국제사회를 설득하려 한 정부의 무모함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감추어야 할 치부를 갖게 된 한국정부가 앞으로 국민에게 얼마나 많은 경제적·도덕적 손실을 끼칠 것인가"라고 탄식한다. 이러한 고뇌는 정말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고결한 인간이 아니면 기대할 수 없다. 상투적인 국익논리에서 벗어나오지 못하는 인간으로서는 절대로 흉내 낼 수 없는 정신적 자세가 거기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인간적 자질이 가장 중요하다. 일찍이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에 관해서 진지하게 물었던 루이스 코저는 《지식인과 사회》(1965)라는 고전적인 저서에서 "오늘날 대학교수를 지식인이라고 부르기에는 그들의 시야가 너무나 좁다. 그들은 자신이 지식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도 않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신랄한 말은 그대로 오늘의 한국 대학사회에 적용하더라도 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지식인이 정직하고 용기있는 발언을 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의 사회적 의무이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의 개인으로서 지식인 자신이 위엄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한, 그것은 불가피하다. 자신이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이고자 한다면 그 자유는 실천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의 자유의 실천이야말로 아마도 공자가 말한 인(仁)의 실천이며, 철학자 푸코가 말한 '자기배려'이기도 할 것이다.
하워드 진, 교육을 말하다-궁리 리뷰로그
2012/04/01 00:55
http://blog.naver.com/captinhan/140156051057
그는 거대한 교육체제가 '우민'을 생산하는 물 셀 틈 없는 시스템임을 안다. 이 빈 틈 없는 지배집단의 기획 속에 놓여 있는 교육은 진실을 말하고 알리는 공간이 아니라 교육 받으면 교육 받을수록 진실을 외면하거나 거짓을 더 공고화하는 시민으로 자라나도록 기른다. 그것은 절망의 산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워드 진은 쉽게 낙관하지도 않지만 상황을 그렇게 절망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작은 흔적, 작은 단서들에서도 변화와 희망의 싹을 발견한다. 평생을 진보의 외길에 투신하고 보수적 세계에 맞선 힘은 바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데 있을 것이다.
다음엔 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를 읽을 생각이다.
-------------------------------------------------------------------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들춰보다가 메모해 두고 싶은 부분이 있어 기록해 둔다.
메모1.) 착하고 순한 베트남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미군 병사들의 악행들은 문서로 잘 기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역사 교과서는 미국이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전혀 다루지 않는다.
왜냐하면 학교는 결코 적의 관점에서 역사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 통제위원에 해당하는 교사와 정치학자, 그리고 수많은 언론인들은 미국 역사의 특정한 측면만을 기리고, 미합중국이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그럴듯한 구실을 내세워 조직적으로 저지른 가증스러운 범죄 고발은 게을리 하는 것이다.
대신 우리는 "생각 없이 외우기만 잘하는, 비판적인 사고를 포기한, 자신을 틀에 맞추는……그 신성한 체제 연장에 꼭 필요한 이념적 특성을 주입하기 위해 알려준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아는(Paulo Freire) "이른바 착한 학생들에게 상을 주도록 설계된 학교를 만든다.
착한 학생이란 충성 맹세(Pledge of Allegiance : 미국 국민의 국가에 대한 서약-옮긴이)에 제시된 민주주의 이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한 채 그 서약에 적힌 이미 화석화된 구호들을 경건한 자세로 외우는 아이다. 착한 학생이란 자발적으로 성조기를 몸에 두르고 거대한 거짓말들을 생각 없이 믿어 버리는 아이다.
- p.32~p.33 들어가며, '거짓을 만들어내는 미국' -도날도 마세도
메모2.) 마세도 교수가 하워드 진에게 엘리트 대학에서 빈곤 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유복한 백인 학생들에 관해 한 질문에 대한 진의 대답 :
미국 내 계급 질서가 드러나지 않도록 유지하고 계급 없는 사회라는 신화를 존속시키고자 그런 것이었다고 보면 이해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모순을 해체하자는 교수님의 제안은 이른바 중산층게는 더욱 위협으로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중산층 역시 엄청난 소외와 불안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의 중산층은 원래 번영하는 미국의 상징이었고, 텔레비전 수상기와 자동차는 물론 심지어 주택을 소유한 두터운 중산층이 형성되었다는 사실은 종종 자본주의가 얼마나 성공적인 체제인가를 말해주는 증거로 제시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적극 드러내지 않았던 것은 그 계층 사람들의 마음에 도사린 불안감이었습니다. 엄청난 부를 축적한 집단과 극빈층이 공존하는 체제가 유지되는 한, 중산층은 자신들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있는지를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죠. 중산층은 유산 계급이 아니기 때문에 내일도 직장에 다닐 수 있을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설령 그들이 전문직 종사자이거나 작은 기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하더라도, 중산층은 그들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진 누군가가 지배하는 사회에 살고 있으며, 하루아침에 생계 수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미국에서 중산층들이 갑작스럽게 직장을 잃는 현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p.51~52 <학교와 대량기만(Mass Deseption) 조작> 중
메모 3.) p.71~73 고등학교 교사 빌 비글로우 씨의 '연계성(Linkage : 1969년 미국의 정치학자 J.로즈노우가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의 연계를 분석하기 위해 제창한 개념. 정치와 경제의 연계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옮긴이) 만들기 - 학생들에게 미국의 풍요가 저개발국의 민중들의 저임금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얻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축구공' 이라는 생활 소재를 가지고 수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이에 관한 몇 개 페이지가 있다. 마세도 교수는 비글로우 선생의 연계성 만들기에 대해 '빌 비글로우 선생은 얼마든지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으며, 단순히 공식화된 신화와 이념의 주입 대상이 아닌 학생 스스로가 비판의 주체가 되는 새로운 교육 구조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라고 높게 평가하고 있다.
[출처] 하워드 진, 교육을 말하다-궁리|작성자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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