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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생태관광의 사례들(농촌의 희망을 여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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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한다. 약 14%의 사람들이 매년 국경을 넘는 여행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럽인들이다. 우리 국민의 25%도 여행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라크에 평화를 위해 가고, 어떤 이들은 전쟁을 위해 간다. 2003년 그들은 그렇게 한자리에서 만났지만 전쟁을 막지는 못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아직도 평화를 위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는 있었다.


그 많은 여행자들이 하루를 평화를 위해 여행을 한다면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까? 라는 화두를 여행가 임영신은 던진다.


인구의 83%가 관광업에 종사하는 관광대국인 몰디브는 35년간 단 한명의 대통령이 지배하는 독재 국가이다. 몰디브는 신혼 여행지로 가장 인기 있는 곳이다. 몰디브의 수많은 리조트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지상낙원을 떠오르게 한다. 세상사를 떠올릴 어떤 풍경도 없다. 하지만 그 뒷켠 도시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몰디브 인구의 43%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고 있다. 아이들의 30%는 영양실조로 고통 받는다. 그 많은 돈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독재에 항거하던 많은 사람들은 체포되고 고문 당하고 사라져 간다. 어업이 주 산업인 국가에서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지 못한다. 리조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 맑은 물에서 수영을 할 수 없다. 세상사를 떠올릴 그 어떤 행위도 용납하지 않은 완벽한 파라다이스을 위해서 그들의 외침은 도시의 빈민가에 신음 소리로 묻혀 있다.


뒷산만 가도 전문 등산화를 신고 고어텍스 아웃도어웨어를 입는 나라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노스페이스가 국민 교복인 나라이다. 네팔에서 한국사람들을 식별하느 코드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그 옷과 신발이 필요할 네팔의 짐꾼들은 비닐로 추위와 비바람을 견디며 짐을 나른다. 사막 리조트의 수영장을 위해 주변의 주민들은 급수차에 목숨을 의탁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보는 파라다이스가 과연 파라다이스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여행 방식에 의문을 제기해오고 있다. 뉴스에서 보여지는 정치가 아니라 그 속에 살아가는 평화를 염원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얘기에 귀 기울이려는 여행자들이 있다. 구경이 아닌 경험, 여행은 진실을 마주하는 만남이라고 믿는, 그들의 여행은 시민외교라 믿는 사람들이 있다. 진실은 한쪽면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에서 Global Exchange가 있고, 영국에서도 responsible tourism이라는 단체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공정여행을 추구하는 많은 단체가 있다. 코끼리를 목욕시키고, 갈라파고스 바다거북을 돌보는 여행, 베트남의 문화를 체험하는 여행, 말레이시아의 해양생태계를 관찰하는 여행. 나만을 위한 여행이 아니라 내가 여행한 그 지역을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여행을 제안하고 있다.


나의 여행이 내가 방문한 지역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그들의 문화와 생태계를 지켜줄수 있다면 좋지않을까. 아마도 그 여행은 그 지역사람들 보다는 나를 더 크게 변화시킬지도 모르겠다.


물론 세상이라는 것이 이들의 마음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세상에 아직 이런 사람들이 남아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나도 가끔 이런 여행에 동참하고 싶다. 새로운 여행, 공정한 여행에 한번 참여해 보면 어떨까? 나는 한번 도전하고 싶다.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는 자신감이 없다. 하지만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한번 쯤 만나보고 싶다. 올해가 가기전에 나의 블로그에 그 여행기를 올리겠다.



공정여행가 임영신의 강의를 직접 듣고 싶으면 아래의 링크를 참조.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 조건 변경 허락
 

영국에서도 가장 경치가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는 Lake District의 대표적 관광지 중 하나인 Grasmere 입니다. 윌리암 워즈워드 가문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 입니다. 대개의 관광객들은 윈드미어(Windmere) 호수 까지는 가는게 일적인 관광코스 입니다. 하지만 그 위로 계속가면 Ambleside와 Grasmere가 나오는데 정말 그림 같은 풍경들이 펼쳐집니다.제가 영국 Lancaster에 살 때 영어 클래스 급우 및 강사와 함께 방문했었습니다.(2005. 3. 19) 너무 경치가 좋아서 친척이 방문했을 때 가족들이랑 한번 더 가기도 했었습니다. 한번 감상해 보시지요!

 


영국에서 보여지는 전형적인 농촌의 풍경입니다. 제주도의 돌담길이 유명하지만 영국 북서부 지방에서 보는 돌담길은 정말 정교하고 규모도 상당합니다. 처음에는 숲과 돌이 우거진 황무지였지만 농부들이 나무를 베어내고 돌을 주워 내어 일군 비옥한 토양들입니다. 그 주워낸 돌들은 주변에 쌓아서 밭을 만들었습니다. 영국의 예전 농업형태는, 한쪽은 밀을 심고 다른 쪽은 휴경을 하고, 마지막 한 쪽은 양을 키우는 형태로 해서 돌려가며 짓는 방식입니다. 자연스럽게 토양의 지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었죠. 지금도 그 전통이 남아서 양떼를 키우는 곳과 작물을 심는 곳을 분리하고 돌려짓는 방식도 남아 있습니다.
맨체스터 위쪽의 북서부 지방은 예전에 산업혁명의 발상지였는데 그 명성에 걸맞게 주변에서 양떼를 아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만큼이나 흔한게 양떼 입니다. 멀리서 보면 산위에 붙은 구름처럼 보일 떼도 있습니다.


DLSR도 아니고 4백만 화소의 카시오 카메라로 찍었다는게 밑겨지지 않을 정도로 잘 나왔죠. 저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기계를 탓하기 보다는 피사체가 훌륭하고 공기가 좋아야 한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합니다. 자! 그럼, 시원한 폭포와 함께 그럼 여행을 떠나 볼까요!

 

 

 

영국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꽃, 수선화 입니다. 3월 이면 북서부 지방 어디에서나 쉽게 볼수 있는 꽃 입니다. 7송이 수선화라는 노래가 절로 떠오르지 않으세요?

 

 

아직도 세발자동차가 굴러다니기도 합니다. 신기한게 아니고 가끔 보일정도 였습니다. 제가 아주 어릴적 세발 자동차를 본 것이 기억이 나는데 그 후로는 한번도 본적이 없어서 정말 제가 본 것이 세발 자동차였나라고 가끔 의심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자동차를 보고는 아! 내 기억이 맞았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랭카스터 시내에 있는 전형적인 Flat 형 주택가 입니다. 대개는 일방 통행이 적용되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주택과는 틀리게 앞쪽은 바로 길이 나있고 뒤쪽에 정원이 있는 형태입니다. 뒤에서 바베큐 파티도하고 하죠. 자동차는 대개는 작은 형태가 대부분이죠. 큰차나 외제차는 이런 주택가에서는 보기어렵고 Detached 또는 semi-detached house에 사는 사람들이 끌고 다니죠. 차가 참 실용적입니다. 폭스바겐 골프가 이런 종류차로 가장 대중적으로 팔리고 있고, 그외 포드나 오펠 등에서 만든 자동차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라스미어의 조그마한 동네를 지나다 보면 이런 방문객 센터가 있습니다. 기념품도 있는데 별로 살만한 건 없습니다. 하지만 구석구석 세밀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영국사람들은 정원을 참 중요시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영국에 있을 때는 패션이 이랬습니다. 처음갈 때는 신사의 나라라고 해서 조금 신경을 섰는데 비즈니스맨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의 패션은 이 정도면 중상으로 보시면 됩니다. 4 seasons a day 라는 말처럼 하루에도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는 나라에서는 실용적인게 제일이죠. 스코트랜드의 속담에는 "험한 날씨는 없다. 단지 준비안된 사람이 있을 뿐이다"라는게 있죠. 이 나라 사람들이 날씨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개인 가든의 담장에도 수선화가 피었네요. 이 나라 사람들 정원하나는 정말 잘 가꿉니다. 밭의 담장들도 정원 가꾸듯 만들었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정말 신기하고 불가사의 합니다. 산 꼭대기 까지 뻗은 그 돌담들을 보고 있자면요. 멋진 자연경과과 어울어진 인공경관들이 영국을 최고의 관광지로 만들고, 상상력 있는 작가들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겠죠.


그라스미어의 도로 가 입니다. 커피숍 밖에선느 노부부가 차를 마시고 있고 2층 버스가 천천히 지나갑니다. 옛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가꾸어지고 있습니다. 정말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왜 수많은 작가들이 이 지역에서 나오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같이 동행한 파티입니다. 중국 멕시코 홍콩 독일 등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같이 갔습니다. 영국에 있으면서 보통의 모임을 만들면 대개는 같은 나라 사람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정말 다양성이 살아 있는 나라입니다. 기가 막힌 상상력이 쏟아지고 진정한 다 문화 사회입니다.


농가 뒷 편으로 우리가 가려는 산들이 보입니다. 영국에서는 등산(Climing)이라고 말하면 장비를 갗추고 높은 산을 오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 정도의 산은 대개는 트래킹(tracking)이라고 부릅니다. 처음에는 이런류의 용어 구분이 힘들어서 오해가 많이 생기기도 했었죠.




대개의 좋은 경치를 가지고 있고 사람들이 트래킹 하기 좋은 곳은 내셔날 트러스트에서 지정을 합니다. 전 국민적으로 이런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들이 벌어지고 있죠. 그런 노력들이 현재의 영국 농촌과 자연경관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땅을 매입하기도 하지만 땅 주인으로 부터 공개를 하도록 해서 모든 사람들이 이런 자연을 공유하도록 합니다. 목장의 담장들에도 계단을 만들어서 지날 수 있도록 하는 등 영국을 트래킹의 천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덕분에 시내 어디를 가도 아웃도어 매장을 볼 수 있습니다.


멕시코에서 유학온 부부입니다. 이름이 가물가물 하네요. 곤잘레스가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비가 자주오니 물이 참 풍부합니다. 우리나라가 겨울이면 대개는 건천인데 반해서 이 나라는 물이 참 많습니다. 깨끗하기도 하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입니다. 물이 흐르고 큰 나무가 옆에 다라서 있고 초원이 펼쳐지는....동화책에서나 보던 풍경들을 이곳에 가면 정원 처럼 매일 볼 수가 있습니다.


길들도 별로 인공을 가미하지 않았습니다. 거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콘크리트를 보기가 쉽자 않습니다. 어지간한 정성으로는 절대 가꾸고 유지하지 못할 거란 느낌이 듭니다.


양떼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실제로 보면 이렇게 좀 지저분해(?) 보입니다. 길을 다닐때는 밑을 잘보고 다니는 것은 필수 입니다.


상쾌한 공기가 느껴지세요. 걸어 보면 발걸음이 절로 떨어집니다. 바다은 약간 촉촉하고 폭신 합니다. 한발 내디디는 발길마다 이 풍경을 잊지 않으려고 눈은 카메라가 되고 머리 속은 인화지가 됩니다.


홍콩에서 온 아가씨인데 참 활달한 성격입니다. 옆에 계신 분이 강사이고 뒤에 수염난 남자분은 파트너 인데 같이 동행 했습니다. 영국에서는 결혼과 동거를 분명히 구분하더군요. 우리도 그렇긴 하지만....


이 길을 따라가면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이 보이고 피터 래빗이 나올 것 같지 않습니까?


좋은 산이 되려면 역시 폭포 정도는 있어 줘야죠. 돌담길이 보이죠. 이 돌담길이 산 위까지 계속 됩니다. 만리장성도 대단하지만 영국의 이 돌담길도 정말 감동스럽습니다.


다들 즐겁게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처음 기대했던 것 보다 풍경이 너무 좋아서 힘이 든 줄도 몰랐습니다.


평범한 풍경이기도 합니다만 물소리가 느껴 집니다.


폭포에서 사진을 다 같이 찍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데 가면 대개는 인공구조물 다리와 철조망도 쳐 놓고 하는데 이 사람들 참 손 안되었네요.


산위에서 잠시 휴식하고 있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바닥에는 풀들이 자라나고 있네요. 조금 더 지나면 양떼가 여기까지 와서 풀을 뜯겠죠.


물이 거울 처럼 맑습니다. 산의 그림자도 정말 실감나게 보입니다. 두들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습니다. 샌드위치와 사과 한두개를 들고 오는데 참 간편하니 좋네요. 그 맛이 꿀 맛 입니다.


호수 위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산 정상 까지 갈 수 있습니다만 이번 트래킹은 여기에서 멈추었습니다.


위에서 다른 쪽을 본 풍경인데 고원처럼 약간 평탄하게 되어 있네요. 막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는데 지금도 그때의 감동이 느껴지네요. 바닥의 누운 풀들은 고사리(draken)가 많습니다. 산 전체가 고사리 인 곳도 있습니다. 중국산 고사리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죠. 경치 참 죽여주네요.

 

그라스미어 지역은 진저브래드(생강과자)로 유명합니다. 몇백년 동안 전통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는 가게입니다. 윌리암 워즈워드의 묘소가 있는 교회 옆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패션과 모든 것들이 예전 그대로 입니다. 미소까지도요.

영국의 자연과 농촌의 풍경이 하루 아침에 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수백년 간 꾸준한 노력이 있어서 현재의 멋진 풍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보고 듣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농촌을 보면 특색이 참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너무 쉽게 지은 건물들이 넘쳐나고 잘 가꾸어지고 있지 못 합니다. 또 너무 쉽게 우리가 지켜오던 것들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게될 때면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합니다.

문화적인 차이도 있으니 직접적인 비교는 타당하지 않을 것입니다만, 우리나라의 자연 경관과 농촌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에 대한 한번의 고민은 필요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더 늦기 전에 말입니다.

조금 더디더라도 천천히 정성을 다해 가꾸어 나갈 필요가 있겠죠. 어짜피 하루 아침에 될일은 아니고 몇백년은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니 차분히 시작해 나가야 겠죠. Lake district의 그 돌담을 쌓는 정성처럼...꾸준하게...


Posted by 에코타운 에코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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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윤실

    와우->.< 멋진사진들 정말 많네요-

    2011/02/09 10:43 [ ADDR : EDIT/ DEL : REPLY ]
  2. 천방지축

    저 영국 사는데 여기 꼭 가볼려구요. 감사합니다

    2012/01/16 02:54 [ ADDR : EDIT/ DEL : REPLY ]

농촌생태관광2010/05/09 16:08
수원에서 출발한 버스는 영동과 중앙고속도로를 지나 단양 IC를 나와 5번 국도를 한참이나 달렸다. 거대한 시멘트공장이 보이고 시멘트 채취로 인해 뭉둥해진 산 정상을 바라보며 이제서야 낯선 고장에 들어 섰음을 느낀다. 5번 국도를 벗어나 59번 국도로 접어든 버스는 이내 도담삼봉을 지나 매포천을 따라 단양으로 향하였다. 단양을 벗어나 충주호 종점으로 긴 여정을 끝낸 남한강의 끝자락이 산 아래에 펼쳐지고 단양 시내를 아득히 바라보며 가곡면 어의곡리로 향하였다. 산능선에서 바라본 회돌이 물길을 한 남한강과 어우러진 농촌 풍경들이 아득히 펼쳐지면서 아찔한 현기증이 느껴진다. 옅은 연두색의 순이 막 돋아나는 나무와 하얗고 분홍 꽃들이 듬성듬성 무리를 지어 피어난 산들을 바라보며 내려서 한나절만 쉬었다 가고픈 마음이 절로 솟아난다.


농업개발연수원에서 실시한 농촌개발과정 교육과정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글은 교육과정의 일부로 단양 한드미( http://www.handemy.org/)마을을 방문하고 현장을 스케치한 것입니다.


한드미 농촌생태마을 어귀에는 정문찬 대표가 기다리고 있었다. 잘 생겨서 별도로 뽀샵을 넣어드리지 않았다. 느티나무가 울창한 마을 입구에 있는 정자에서 정대표의 안내가 시작되었다. 성황당이 있던 자리에 새워진 정자는 한 때는 이름이 유신각이었다가 지금은 이름을 어례정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2005년 이 마을을 다녀간 후에...


30여명의 일행 중 대부분 지방정부에서 농촌개발을 담당하는 직원들로 마을 개발에 대한 과정과 어려움, 그리고 성공요인과 농촌생태마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갈등사례 등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정대표가 일단은 기선 제압으로 시작을 한다. 마을자랑을 들을 것 같았지만 의외로 보이는 것과는다른 마을의


여름이면 이 정자에서 외지의 관광객들은 즐겁게 놀 수 있겠지만, 이 마을 토박이들은 예전의 상여가 보관되었던 곳을 알기에 아마도 쉽게 발걸음이 옮겨질 것 같지는 않은데...우리나라에 사연이 없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마는 그래도 이 정자가 위치한 지점의 유래를 안다면 확실히 여름밤이 더욱 시원할 것은 같다.

마을 중간에 있는 밭에서 찍은 사진으로 이 여행에 있어서 최고의 작품이다. 전적으로 기계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사진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 마을을 방문했음을 기념하기 위한 표지석과 기념수가 있다. 이 나무가 언젠가는 크게 자라서 이 마을에 찾는 관광객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주게 되기를 바란다. 정대표로 부터 3시간 30분 동안 이 마을에 머물며 노 대통령 부부가 했던
체험의
체험의 종류와 어디서 어떻게 머물다 갔는지 상세하게 들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자부심도...




마을 앞산은 바위와 나무와 꽃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그 밑으로 시냇물이 힘차게
흘러가고
흘러가고 있다. 우람한 앞산과
시냇물만
힘차게 흐르는 시냇물만 봐도 이
마을에서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음을 짐작케 한다.


한드미 마을은 원래부터가 물이 많은 동네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산골 마을 답지않게 마을 곳곳을 흐르는 물길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으며 드물게 물레방아가 오래전 부터 방아를 찧는데 사용되었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또 하나 한드미 마을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농촌유학 (
http://cafe.daum.net/handemy/) 프로그램의 학생들 숙소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이이 마을에 있는 분교는 폐교될 위기에 놓였지만 농촌유학 프로그램으로 인해서 오히려 산골학교가 활성화 되고 있다고 한다. 마을회관에서 농촌유학프로그램에서 온 학생들이 생활하는 영상을 보면서, 내 아이들도 농촌의 생활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농촌생태마을로 지정된 후 마을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적인 변화는 다음에 다루기로 하고 우선은 외형적인 변화만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마을은 담장들은 모두 돌로 쌓은 담장으로 정취있게 바뀌었다. 아마 이곳도 그 이전에는 벽돌로 만든 획일적인 담장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이 되지만 지금은 이렇제 정겹게 바구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의 동참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곳은 나무로 된 담장이 있고 수레하나도 지나가기 어려운 좁은 돌담과 나무담장 길이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는 아마도 우리 농촌의 대부분의 길폭은 이 정도 였을 텐데...새마을 운동으로 흙 담장을 허물고 앞마당과 뒷마당을 줄이며 길폭을 넓혔다. 지붕은 획일적으로 슬레이트로 바뀌었고, 수로는 콘크리트로, 담장은 벽돌로 바뀌어 갔다. 그것도 우리 역사의 일부이고 전통의 일부이기는 하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예로부터 물이 많은 동네 답게 앞 개천 뿐만 아니라 마을 옆으로 수로가 흐르고 있다. 실험적으로 밥그릇으로 만들어 달아 놓은 수차가 보인다. 생태마을 답게 에너지 자립을 위한 상징적인 발전소로 다시금 태어날 수 있게되기를 희망한다.


여기가 마을의 온갓 뉴스가 전해지던 빨래터 였다고 한다. 지금은 콘크리트 수로로 되어 있어서 예전의 그 정취는 느껴지지 않지만 그 풍경만은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이 물은 아래로 흘러 물레방아를 돌리고 또 소수력 발전기를 돌렸다고 하는데 지금은 가동을 않고 있다. 이 정도의 수량이면 이 마을이 사용을 하기에 충분한 소수력 발전이 가능하지 않을까?


요즈음 보기 힘든 너와로 만든 지붕이다. 아마도 마을을 다시금 보수하면서 너와로 만든 것 같은데 그 옛날에는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하다. 예전부터이 고장에는 너와가 일반적인 지붕의 형태였는지도...다음에 가면 물어 보아야 할까 보다.


너와지붕 아래에는 뒤딜방아와 물레방아가 나란히 있다. 이 위에는 빨레터가 있고 바로 아래에는 이렇게 방앗간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곳이 이 마을의 명동거리 였고, 그 옛날 아낙네들과 처자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을 그 시절을 떠올려 본다.



농부가 소를 끌고 들로 나가고 있다. 예전에는 너무나도 흔하디 흔한 풍경이었지만 이제는 내 눈에도 신기하게만 보인다. 촌놈인 네게도.... 소 옆의 창고는 함석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옛날에는 물레방아간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 보다 더 옛날에는 다른 것으로 만들어 졌었겠지만. 이 건물을 철거하고 새롭게 지을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세요? 어디서 부터를 우리의 전통으로 봐야할지 저도 참 고민입니다. 하지만 정대표에게는 어린 시절 부터 봐오던 것들이고 추억이 깃든 건물이겠죠. 하지만 외지인들에게는 생뚱맞은 이방인 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아마도 먼 훗날에는 역사적 민속건축물이 될지 또 누가 알겠는가. 이렇듯 농촌의 모습을 가꾼다는 것, 지킨다는 것이 그저 단순한 문제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아래는 석탄 창고로 사용되던 오래된 건물이다. 지금은 용처가 별로 없지만 이 또한 마을의 역사이니 잘 보존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여름이면 담쟁이 풀이 뒤 덮어서 나름 정취를 한껏 뽐 낸다고 하니 그때가 되면 꼭 한번 다시 가봐야 할까 보다.


농촌에 가면 흔하디 흔한 냉이도 이렇게 아름답게 보일 때가 있다. 이른 봄에는 우리 식탁에서 봄의 향기를 전해주고 이렇게 또 꽃의 향연을 보여주는, 또한 귀찮은 잡초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들 중 완전히 좋고 완전히 싫은 것은 또 어디 있을까? 풀들은 그냥 그자리에 있었고 단지 우리들의 필요에 따라 좋고 싫음을 논했을 뿐. 이제서야 내게도 이러한 풀들의 가치를, 그냥 그자리에 있는 것들의 가치를 깨달아 가고 있다. 이러한 깨달음들이 친환경농업으로 생태농업으로 발전해나가는 데 필요한 힘의 원천이 되었겠지.


농촌이 식량생산 기지로서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한다. 우리나라의 자연환경을 지키고 전통문화와 가치관을 지켜나가는 중심으로서 21세기에 더욱더 중요한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다라는 것에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만약 지금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농촌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방치한 우리의 게으름과 무지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농촌생태마을 또는 농촌광광 마을이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농촌마을은 결코 주식회사가 될 수도 없고 농촌 주민들은 결코 회사원으로 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서, 정문찬 대표의 살아 있는 경험을 통해서 느낄 수가 있었다.

한드미 마을의 농촌생태마을 실험이 우리나라 농촌개발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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