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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생태관광 사례들(누가 농업에 상상력을 더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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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생태관광'에 해당되는 글

  1. 가정용 채소재배장치 - 누가 농업에 상상력을 더 할 것인가?
  2. 또나따 목장 - 도시와 농촌을 이어주는 목장체험
  3. 맛의 독립은 언제일까?(5)
  4. 전통장맛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들 : 초등학교의 장독대
  5. 아흔아홉칸 전통가옥 송소고택
  6. 중국의 관광 교육농장에서는...지금
  7. 프랑스 민박집에서 고향의 푸근함을 만나다
  8. 사진으로 보는 프랑스 르와르 지방의 한적한 시골마을
  9. 봉화 산골마을에서 그윽한 솔 향기를 맡다.
  10. 하늘 천평, 땅 천평, 봉화 구마계곡을 가다!


도시에만 살다보면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모른다. 흙과 멀리 떨어지면서 농업이 필요하다는 것도 희미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는 이런 경향이 더 강하다. 자연과 거리가 너무 멀어지면서 정서적으로나 건강적으로 때로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집안에 채소를 키워보는 것은 어떨까? 집 안에 한두개 가져다 놓으면 가끔씩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밖에서 상추를 살 필요도 없어진다. 방안의 수분을 공급하여 건조하지 않게 하는데도 도움을 준다.



농촌진흥청에서 만든 가정용 채소재배장치이다. LED 광원이 붙어 있어서 베란다에 내다 놓아 햇볕을 쪼일 필요도 없고, 흙을 항상 촉촉하게 적셔주는 심지도 달려 있어서 물 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재배를 위해 깊은 지식이 없어도 가능하다. 토양과 비료, 종자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다.



채소는 광원이 충분하니 잘 자란다. 이런 장치는 집안에 두는 것도 좋겠지만, 학교나 유치원에 두는 것도 좋겠다 싶다. 학생들에게 우리가 먹는 식물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보는 것도 좋은 교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이들의 정서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일일게다. 그리고 농촌과 도시를 이어주는 가교로서의 역할도 기대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농장을 도시로 옮기는 것을 넘어서 식물을 적극적으로 우리 생활로 끌어들이면 어떨까? 채소재배 장치는 물을 줄 필요가 없고, 태양광이 필요가 없다. 저렴한 비용으로 식물을 키우는 데 장소의 제약이 완전히 사라졌다. 어디에든 어떤 형태로든 설치될 수 있다는 말이다.



만약 산업디자이너들이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식물들이 저재의 서가의 중심에서 자랄 수도 있고, 가전제품 매장에서도 인테리어로 들어갈 TV와 함께 나란히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디자인 하느냐에 따라 쓰임새는 무한정 많다. 채소뿐만 아니라 화초를 심어도 문제없다.


영화 레옹을 보면 레옹은 거쳐를 옮길때 마다 항상 한 포기의 화분을 같이 옮긴다. 집안에서 식물을 키우다가 번번히 죽여버려서 포기한 사람들이라면 다시 한번 시도해보면 어떨까?


이번에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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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생태관광2012/10/22 11:53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지만 경기도 화성시는 우리나라 최대의 낙농 지역 중 하나이다. 화성시에는 수백개의 젖소 목장들이 운영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목장이 또나따 목장이다. 오늘은 목장이야기이도 하지만 생산과 가공, 그리고 농촌체험관광이 어울어진 사업모델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나따 목장(http://www.ttonatta.com/)도 처음에는 한마리의 젖소로 시작했다. 벌써 20여년 전 이야기이다. 고등학교 선배가 후원해 준 한 마리로 시작해서 지금은 350마리의 소를 가진 기업가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낙농업과 함께 또나따 목장도 성장해왔다. 하지만 사료값 상승과 수입개방의 파고를 이 목장이라고 비켜나갈 수는 없었다. 목장에도 새로운 성장 모델이 필요했다. 우유를 생산만 잘해서는 재미없는 시절이 된 것이다.

양의주 대표는 이런 면에서도 앞서가는 사람이다. 그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면에서 농민이라기 보다는 모험적인 기업가이다. 우유만 생산해서 납품하던 농장에서 우유를 직접 가공해서 부가가치를 올리는 방법을 새롭게 시도한 것이다. 그와함께 농장을 모든 사람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개방을 했다. 목장체험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한 농장에서 생산, 가공, 유통, 그리고 체험관광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곳은 아직 그리 많지는 않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또나따 목장의 시도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또나따 목장과 로봇착유기

대관령 목장을 상상하고 이 목장을 방문하면 아마도 실망할지도 모른다. 이 목장은 대관령 목장과 같이 넓은 초지가 있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목장은 심지어 평지에 있지도 않다. 산능선을 따라가면서 아담하게 조성되어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목장 중 방목할 수 있는 넓은 초지를 가진 목장은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입구에는 주차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방문객들이 편리하게 찾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입구를 들어서면 먼저 축사사무실동 앞에 설치된 방역시설(소독기)을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방문자 리스트를 기록해야 한다. 이곳은 관광체험농장이기 이전에 축산시설이기 때문이다.



방역을 마치고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학생들이 단체로 학습을 하거나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넓은 장소가 나온다. 여기가 베이스캠프가 된다. 이제부터 아이들에게는 마음껏 목장안을 돌아다니며 동물들과 마주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



목장 체험프로그램 중 하나인 트랙터 관람차이다. 목장에 대한 설명과 음악, 그리고 놀이가 함께 벌어진다고 하는데 아이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 다음은 목장 체험에서 빠질 수 없는 송아지 우유 먹이기이다. 옆에 우유가 얼마든지 잇어서 누구라도 젖병을 들고 송아지를 먹일 수 있게 되어 있다. 어린 송아지들이 얼마나 이쁜지, 큰 눈망울과 순진한 얼굴을 보면 금새 정이 든다. 이런거 하나하나 다 돈받고 할수도 있을텐데 여기는 도무지 그런게 없다.

영국에서 방문한 목장에서는 우유를 젖병에 담아 판매했다. 이렇게 하는게 오히려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비용을 지불한 일을 더 의미있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우유는 모두 기계로 짜주지만, 목장체험에서 젖짜기 체험을 건너뛸 수는 없다. 하지만 아무소나 이런류의 체험에 적당하지는 않다. 소들이 순하기는 하지만 젋은 젖소는 아이들이 젖을 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젖을 짜다 말기 때문에 조금 지나면 매우 짜증을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별히 순하고 경험이 많은 소가 이 역할을 한다.



목장 안내는 양의주 대표가 직접하기도 하지만 화성시에서 추천하는 목장체험 안내 선생님이 직접 안내하는게 일반적이다. 목장일이 그리 한가롭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목장의 생생한 얘기들과 이 마을의 역사를 모두 듣는데는 양대표 만한 사람이 없다.



소들을 방목하는 초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젖소들은 건초를 먹고 자란다. 이 기계는 시간이 되면 알맞게 소들에게 건초를 공급한다. 사람 손이 많이 가지 않도록 목장도 점점 자동화가 되어가고 있다.



이 목장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로봇착유기를 사용하는 목장이라는 것이다. 대당 2-3억원 한다는 이 로봇착유기 덕분에 우유를 짜는데 있어서 전혀 사람손이 필요하지 않다. 세척하고, 착유하는 모든 과정이 자동으로 처리된다. 그뿐만 아니라 소가 이상이 있으면 그 우유는 자동으로 버려진다. 건강하고 신선한 우유만 저장고로 보내질 수 있도록 수많은 센서가 검사한다.



이 목장을 방문하다 보면 소가 아주 영리한 동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등이 가려우면 스스로 등을 긁어주는 솔에가서 등 마사지를 하고, 우유를 짤 시간이면 소들이 줄을 서서 로봇착유기로 들어간다. 관리인은 그저 착유기의 센서를 조정해주고 장비를 정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렇게 짜진 우유는 관을 따라 바로 저온냉장고로 이동된다.


또나따 목장에서는 몇해전부터 우유 가공사업을 직접하기 시작했다. 경영효율을 개선하기 위해서 였다. 더 맛있는 프리미엄급 우유를 생산하여 직접 온라인을 통해서 판매를 하는데 상당히 인기가 좋다고 한다. 일반 우유에 비해 더 신선하고 고소한 느낌이다. 이외에도 발효우유, 스트링치즈, 우유비누를 만들고 있고, 최근에는 유청을 이용하여 클렌징폼도 만들어 판매한다.

우유에서 나오는 단백질, 지방 등 모든 성분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양한 가공을 통해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제품들은 일부 백화점을 통해 주로 판매되지만 온라인으로도 판매가 되므로 누구나 구매할 수 있다. 주변에는 상당히 많이 알려졌지만 아직도 소비자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유통의 어려움도 일부 있다고 한다.



농촌체험관광과 연계한 새로운 모델의 가능성

또나따 목장에서는 한사람이 모든걸 할 줄알아야 한다. 젖소도 잘 알아야 하고, 가공과 유통도 잘 알아야만 한다. 물론 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경영도 잘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수많은 노력과 시행착오를 통해서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것 이외에 어떤 지름길이 있을 수 있을까?

현재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은 유통에 관한 채널을 다양화하고 안정적인 판매통로를 확보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쇼규모 생산은 가격적인 면에서 불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프리미엄 시장에서 승부를 해야하지만 브랜드 인지도면에서 소규모 없체들은 불리할 수 밖에 없다.

농촌체험관광은 이런 브랜드 인지도를 개선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이 목장을 방문해본 사람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제품이 생산되는지를 알게되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체험관광에 좀 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이와함께 방문객들이 생산된 제품을 시식하고 구입 할 수 있는 전시판매장이 시급히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게 조그마한 전시판매 매장이면 충분할 것이다.


이미 이 목장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런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하나씩 구체화되어 갈 수록 우리나라에서 이런 복합형 농장모델의 모습도 달라져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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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생태관광2012/03/16 20:31

각계에서 활동하는 전문가 몇명이 모였다. 386이 다수이다. 전통주 연구소 소장, 곰팡이 전문가, 발효음식 전문가, 누룩 다큐만든 PD, 다방면에 해박한 나. 오늘의 주제는 단연 미생물, 특히나 누룩을 만들 때 작용하는 곰팡이균 얘기이다. 막걸리 논쟁에서 시작된 이 토론은 맛의 독립이라는 주제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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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에 있어서 미생물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이다. 그 중 우리 음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미생물은 대표적인 것으로 아스퍼질러스속(Aspergillus sp.), 라이조프스속(Rhizopus sp.), 바실러스속(Bacillus sp.)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아르퍼질러스속 미생물이 중요한 데, 이는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발효음식이 이 미생물의 작용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산업적으로 가장 활발히 이용되고 있는 미생물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아스퍼질러스속 미생물 중에서도 아스퍼질러스 오리재(Aspergillus Oryzae)는 콩이나 쌀을 발효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막걸리를 만들 때 이 균을 사용한다. 이 균은 균사체를 만드는 버섯균류로 황국균으로 불리는 데, 주된 역할은 전분(starch)를 당화하는 것이다.


이야기는 Aspergillus Oryzae 일본에서 국균(國菌) 대접을 받고 있다는데서 시작됐다. 일본에서 토호쿠대학의 이치시마 교수는 2006년 일본발효학회 이 균을 국균(national fungus)으로 칭하였다. 이는 그 만큼 이 균이 일본의 발효산업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일본 사케의 발효 뿐만 아니라 미소(miso)와 나또 등 수많은 일본전통식품을 만드는데 근간이 되는 균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발효산업은 일제시대의 적산물자에 의해 시작되었는 데, 그때 일본에서 국균으로 불리는 황국균(Aspergillus Oryzae)도 함께 넘어왔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간장을 왜간장이라 불렀는데, 그 왜간장이 이 균을 이용해서 만들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본의 Kikoman(기꼬만) 간장 맛을 봤을 것이고 여전히 사용하는 가정도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간장도 거의 유사한 맛을 내는 데, 그것은 사용하는 발효균이 같기 때문이다.

막걸리를 만들 때도 이 일본의 국균(황국균)을 사용한다. 일부 전문가는 일본의 국균을 사용하면서 우리 막걸리를 전통주라고 할 수 있는냐라고 토론회 때 마다 강변하지만 4, 5백개에 이르는 양조장들이 대부분 이 황국균을 사용하는데 이러한 항변이 먹힐리 없다. 이미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이다.

(막걸리를 만들 때는 백국균이라고 하는 Apergillus Kawachii(아스퍼질러스 가와치)도 쌀을 당화시키는 과정에 사용이 된다.)

우리의 전통누룩은 밀을 거칠게 빻은 후 메주처럼 모양을 만들어 누룩방에 두어 주변의 다양한 곰팡이 균들이 들어붙어 곰팡이가 대량으로 증식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여기에는 황국균(Aspergillus Oryzae) 비롯한 다양한 균들이 혼합하여 복잡한 생태계를 이룬다. 그러므로 다양한 미생물에 작용에 이해 깊은 맛을 낼 수는 있지만 발효효율 면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하게되고, 맛을 제어하는데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양조장에서는 단일화된 균으로 만들어진 곡자를 사용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된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개량 된장이라 불리는 것은 황국균만을 사용하여 균일하게 발효시킨 제품을 말하는데, 이 역시 단일균을 사용함으로 발효효율이 높고 맛을 제어하는데 유리하여 산업화하는데 우수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전통된장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균류들을 활용함으로써 깊은 맛을 내지만 지역에 따라 다른 맛을 내게되는 특징이 있다. 특히나 도시화되면서 우리 주변도 예전의 미생물 생태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님으로 옛날의 장맛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아주 시골이 아니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이렇듯 우리가 시중에서 구해 먹고 있는 전통이라 불리는 음식들이 대부분은 일본의 국균이라 불리는 황국균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전통음식을 하는 분들에게는 당연히 못마땅하게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다. 이는 전적으로 우리가 무관심 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일본 역시 예전에는 우리와는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만, 근대로 오면서 발효공정을 산업화하면서 황국균을 이용해 자신들만의 고유의 맛을 만들었고 그것을 일본의 맛으로 세계에 각인 시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일본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했을 뿐 그로인해 혜택을 보는 누구도 산업화 시대에 적합한 우리의 맛을 새롭게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지 않았다. 맛의 식민지는 계속되고 있다는 주장에도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음식맛을 결정하는 장맛이고,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막걸리라는 것이 못내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얘기하기도 현실을 생각하면 꺼려지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일본은 패전 이후에도 황국균을 계속 개량하여 왔지만, 우리나라는 일본이 60년 전에 남기고간 그 황국균을 그데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간장 맛은 일본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푸념들이 나오고 있고, 주변에서는 기꼬만 간장을 사용하는 가정도 심심찮게 본다. 우리나라에서 미생물에 대한 연구는 근래에 들어서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서 명함이나 내 밀수 있는 발효를 전공하는 연구자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유학을 한 사람들이다. 전통주의자들과 산업주의자들이 첨예하게 맞부딪히며 접점을 찾기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러한 장맛의 종속은 어이없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외국의 한 공항에서 한국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서 그나마 비슷한 일본우동을 파는 식당에 갔는데, 거기서 기꼬만 간장 맛을 봤을 때 어릴적 어머니가 간장에 밥비벼 주던 그때의 풍경이 떠올라서 감회가 새로웠다는 얘기를 들었다. 일본 우동집에서 시골고향을 떠올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에 가면 마치 고향에 온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식당가에서 나는 음식 냄새를 맡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우리 입맛이 일본 국균의 발효 맛에 길들여져 있다는 얘기일게다.


나는 전통주의자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고유의 발효 미생물들이 막걸리 제조와 간장 및 된장 제조산업에서 사용되어야 할 것이라는데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현실문제는 어쩔수 없다 할지라도 우리의 전통맛을 가장 잘살릴 수 있으면서도 산업화에도 적당한 새로운 균주 혼합체를 찾아야 할 것이다. 입맛의 독립을 위해 그런 노력들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의 입맛이 일본의 국균에 완전히 길들여지기 전에 우리의 전통발효기법을 과학화 할 수 있도록 과감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한식의 세계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간장과 된장 등 음식의 기본재료를 어떻게 개량할 수 있느냐는 음식맛의 깊음과 잔잔한 여운을 자아 내는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 갈길이 멀다. 아직도 우리 전통발효에 작용하는 미생물들에 대한 정확한 분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어떤 균들이 어떤 맛을 내는지에 대한 지식은 더더욱 없는 실정이다. 갈길이 멀겠지만 지금부터라도 꾸준한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산업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일본의 국균이 아닌 우리나라 고유의 국균을 찾아내고 이를 기반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맛을 개량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일본 간장을 쓰면 그것은 일본의 음식이다. 일본의 우동은 간장에 면발이 들어간게 다이다. 그만큼 간장 맛은 중요하다. 일본의 간장보다 우수한 우리의 간장들과 장아찌들이 모든 외국의 공항에서 맛 볼수 있기를 상상해본다. 외국의 유명 쉐프들이 포도주 처럼 우리의 장류를 요리의 향과 풍미를 높이는데 사용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이는 결코 어려운 얘기는 아닐 것이다. 과연 어느 나라가 우리나라 만큼 다양한 발효 식품을 먹는 나라가 있었던가? 우리는 이미 충분한 전통자원을 가지고 있다. 이를 어떻게 발전시킬까 하는 것은 전적으로 후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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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성우

    새로운 균주 혼합체라는 표현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2012/03/19 13:21 [ ADDR : EDIT/ DEL : REPLY ]
  2. 장성우

    단일균으로 복잡 미묘한 입맛을 잡는것보단 균주복합체를 활용하는것이 이로운 부분이 많을것같네요;.;메주나 누룩에 생성된 다양한 균들을 각각으로 분리동정 배양해서 단일균으로 접종발효 후 각각을 확인하고 균주혼합체의 황금비율과 발효환경을 찾아보면 좋겠네요..바램일 뿐이지만

    2012/03/19 13:39 [ ADDR : EDIT/ DEL : REPLY ]
  3. 사실 균의종류가 여럿이 되면 산업적으로 동시에 통제를 한다는게 어려워지게되죠. 장사장님 말씀데로 되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당분간은 꿈같은 바램이겠죠. 몇가지만이라도 다룰 수 있었으면 합니다.

    2012/03/20 20:23 [ ADDR : EDIT/ DEL : REPLY ]
    • 장성우

      백번동의합니다...ㅎㅎ.. 그렇지만 해봐야죠..우리의할일 이니까요 .. 자꾸만 귀찮케하죻ㅎㅎㅎ 답글안하셔도되요~~무식하니 들이대죠

      2012/03/20 23:34 [ ADDR : EDIT/ DEL ]
  4. 별말씀을요. 현장에 답이 있는데 저같은 사람들은 겉만 알죠.

    2012/03/21 07:03 [ ADDR : EDIT/ DEL : REPLY ]

농촌생태관광2012/03/15 18:30

입맛은 가장 보수적이라고 한다. 어릴적에 먹은 음식은 오랜시간이 지나가도 잘 잊혀지지 않는다. 오랜세월이 지난 후 그 음식을 먹을 때면 어릴 때 그 음식을 먹었던 장면 까지 선명하게 떠오르곤 한다. 긴 세월이 지나가도 혀는 그 맛을 정확히 기억하고, 그 맛과 관련된 잊혀진 기억까지도 뇌 깊숙이서 불러낸다.

어릴적에는 김치와 된장, 우거지국을 그렇게 싫어했지만 희안하게도 나이가 들면 그 맛이 그리워진다. 이런 이야기는 드라마와 소설의 단골소재이기도 하다. "대장금"에서 한 상궁은 죽기전에 어릴적 맛있게 먹었던 찐쌀을 한번 더 맛 보고 죽는게 소원이었다. 수많은 비슷한 찐쌀을 가져갔지만 모두다 아니라고 내쳤다. 그리고 장금이가 가져간 찐쌀을 맛보고는 할머니와의 기억이 떠올라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행복한 죽음을 맞았다.

이서군 감독이 만든 "된장"이라는 영화에서는 이 스토리를 더 극적으로 그렸다. 사형수인 탈주범이 된장을 먹다가 잡혔고, 죽기전에 그 된장을 다시 한번 더 먹고 싶다고 했다는 것으로 이 영화는 시작한다. 그리고 그 된장 맛이란 것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를 딸이 재현해 나간 발자취를 따라 가면서 비극적인 러브스토리와 함께 긴 여운을 남긴다.


<영화 "된장"의 한 장면>


우리나라 음식의 특색은 발효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김치, 간장, 된장, 고추장, 갖가지 장아찌 등 발효음식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이중에서도 장맛은 모든 음식 맛의 기본이 된다. 그래서인지 예전부터 그 집 장맛을 보면 그집 음식 솜씨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잊혀져가는 우리의 전통장류 음식들

안타깝게도 이런 우리의 장맛은 점차로 잊혀져 가고 있다. 대도시에서 메주를 쒀서 띄우고, 그것으로 된장을 담는 다는 것은 여간해서는 쉬운일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재배된 콩을 사는 것 마저도 만만치 않은 일이되었다.

시골에서도 점차로 장을 담그는 집들은 줄어들고 있다. 시어머니의 장담그는 솜씨는 며느리에게로 전해지지 않고, 집안마다 다양하던 그 나름 맛의 비법들은 세대가 지나면서 맥이 끊어지고 있다. 아이들은 어릴적 부터 외국 음식에 더 익숙하고, 우리 입맛은 일본식 간장과 공장에서 생산된 된장 맛에 어릴적부터 길들여져 지고 있다. 이렇게 한세대가 가고 두세대가 가면 우리의 맛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할 수나 있을까?

시골에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집들이라면 점점 더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먹을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우리가 애써 전통방식으로 조리하는 식당을 찾지 않는다면 전통의 장으로 만든 음식을 맛보기는 어려워져만 간다.


한국인은 김치와 된장을 먹는사람들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치즈를 먹는 사람들이다. 그것도 매일 같이 다른 치즈를 먹는다. 일본 사람들은 톡소는 와사베가 들어간 초밥 ,나또, 간장 국물에 우동을 먹는다. 인도사람들은 탄도리와 카레를 먹고, 터기 사람들은 케밥을 먹는다. 나라마다 그 나라 고유의 음식문화가 있고, 그 음식이 가지는 독특한 향은 그 나라 사람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외국에서의 긴 여행동안 느끼한 음식에 지쳐갈 때 쯤 고추장 한 숟가락은 새로운 힘을 쏟게 만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짧은 여행기간이라도 호텔 식당에서 김치를 꺼내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체면이고 뭐고 없다. 나도 대한항공을 타면 승무원에게 말해서 볶은 고추장을 한두개씩 더 쳉겨간다. 나의 마지막 생존비기 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문화재는 소실되었고 문화와 언어들은 잊혀져 갔다. 하지만 음식 문화만큼은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 남았다. 패스트푸드가 범람하고 있지만 나이가 들면 햄버거 보다는 구수한 된장찌게를 더 찾게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전통의 된장과 간장, 김치에 대한 강한 끌림이 있다. 어릴적부터 어머니로부터 그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맛이란 것은 뇌속 깊숙이 잠자던 그 맛을 느끼던 때의 장면을 생생히 되살려내고, 더 나아가 우리민족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가치있게 느끼게도 만든다.


세월이 지나면서 음식 맛도 변해가고 개량된다. 음식문화가 발전할수록 원류부터 그 다양성은 증대된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맛의 전승을 걱정해야 할 때이다. 급격한 도시화와 핵가족화는 전쟁만큼이나 파괴적으로 우리의 음식문화 전승을 어렵게하고 있다. 맛은 전승이 가장 쉬운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 존립을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초등학교에서 장독대를 볼 수 있다면...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이런 우려를 보고만 있지 않고 해결하기 위해 행동을 하신 분들이 있다. 어린이들에게 맛의 기억을 물려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해하고, 기막힌 방법을 찾아내었다. 바로 학교에 장독대를 두고 장을 직접 담궈서 급식에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나도 획기적으로 들렸다. 어떻게 학교에 장독대를 둘 생각을 할 수 있었을지, 학교 급식을 먹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매일같이 아이들에게 급식을 공급하는 선생님이라면 가능할 듯 싶었다.

매일 같이 회사 구내식당과 바깥 식당에서 마법의 가루로 맛을 낸 음식에 길들여지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애들이 어릴때부터 학교식당에서 그런 맛에 길들여지는 것에 대해 자뭇 걱정을하던 나에게 학교의 장독대는 신선하기도하고 안심이 되기도 하였다.

이일은 경남지역 한 초등학교의 영양사 선생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초등학교에 장독대가 필요할 것이라고 누구라도 쉽게 생각하기는 어려웠을 테니. 기획안을 처음 내었을 때는 대부분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교육감을 설득하고 예산(3억원)을 신청하고, 도의회 까지 설득하여 예산을 확보하고 사업을 시작하였다. 여기에는 도의원들을 직접학교에 초청하여 학생들이 장을 담그는 모습을 보게하는 것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한다. 어린이들이 우리의 장을 담그고 그 맛을 이어갈 수 있다는데 누가 찬성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 결과로 경상남도의 103개의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매일 같이 장독대를 볼 수 있고,학생들은 매년 직접 장을 담그고, 그 장을 학교급식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고하니, 아마도 그 학생들은 평생토록 자기들이 직접 담구었던 그 장맛을 우리 전통의 장맛을 기억할 것이다. 그 음식을 함께 먹었던 정다운 친구들의 얼굴과 함께. (안타깝게도 지금은 초등학교 장독대 사업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하일 초등학교 장독대 전경, 콩이랑농원 블로그(http://blog.daum.net/jjho365)에서>


점점 더 세계화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 살더라도 전통 장맛을 본 사람들이라면 고향을 결코 잊지 못 할 것이다. 혀의 돌기세포는 그 맛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농산물로 담근 우리의 장맛이 지켜지는 한 우리의 식문화와 그와 관련된 전통은 영원히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장독대 사업의 확산

2011년도에는 경기도 교육청에서도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장독대"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하남의 풍산초등학교가 시범학교(10개의 시범학교 중 하나)로 선정 되었는데, 도교육청에서 1천만원을 지원받아 지난해 8월에는 학생들과 함께 고추장, 된장, 간장, 매실진액등을 담궜다고 한다. 올해부터 풍산초등학교에서도 학교급식에서 직접담근 전통 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도시화로 인해 집에서 점점 더 우리 고유의 장맛을 맛 보기 어렵게 되었다면 학생들이라도 그 맛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은 정말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점점 더 확산되어 급식을하는 모든 학교에 장독대가 들어설 수 있기를 바라본다.


우리의 맛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때

이러한 노력과 움직임에 정부의 지원도 적극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특히나 주관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전통식품 및 관련 문화보존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라도 만들어서 우리의 전통음식과 관련된 문화가 잘 보전되고 발전 할 수있도록, 우리의 전통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었으면 한다. 학교 장독대 사업을 중앙정부차원의 사업으로 으로 확대하고, 전통발효 음식과 관련된 연구에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고 무엇이 전통의 맛이 었는지를 현재의 시점에서 기록을 남기고 맛의 원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만약 국가적인 지원이 없다면 우리 고유의 맛에 관련된 기억들은 산업화되고 표준화된 맛에 의해 쉽사리 묻혀버릴지도 모른다. 중세 아랍의 발전은 고대 그리스 문명의 기록들을 번역하면서 시작되었고, 르네상스는 십자군 전쟁에서 가져온 그 아랍 번역본들이 다시금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꽃을 피웠다. 우리 음식문화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맛의 원류를 잘 보존한다면, 훗날 이의 재해석을 통해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새로운 식문화로 발전시켜 나갈수도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담그는 장에는 우리 농촌에서 재배한 콩들이 사용되어지고, 학생들은 어릴적부터 우리 농산물 고유의 맛을 기억할 것이다. 이는 우리농업을 지켜나가는 일이고 우리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지켜나가는 일이 다. 먹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기 때문이고, 말로하는 애국심 보다는 혀끝의 세포가 더욱 더 그일을 훌륭히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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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생태관광2012/02/01 10:18

청송은 국립공원 주왕산,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인주산지, 달기 약수터 등이 있는 자연경관이 뛰어난 지역이다. 그리고 이외에도 청송에 들르는사람이면 머스트시(Must See) 사이트로 송소고택이 있다.


송소고택은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위치하고 있는데 청송에서 임하댐으로 흐르면 시냇가에서 조금 들어간 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덕천리 심부자댁’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거니와 주변에는 다른 한옥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마치 민속마을 같은 느낌도 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홍살을 설치한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5칸 짜리 사랑채를 만나게 된다. 측면에2칸이 있고 네 귀에 모두 추녀를 달은 팔작집 형태를 하고 있다. 오른쪽에 작은 사랑이 있고 그 뒤에 안채가 있으며, 우측에는 작은 사랑채, 그 뒤로 다시 안채가 위치하고 있다. 안채는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건물에는 독립된 마당이 있어 공간이 구분되어 있는 형태로 조선시대 상류층이 거주하는 주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별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큰 사랑채 왼편에 중문으로 이어진 별채 건물이다.



헛담

이 사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체와 안체 사이 중간에 덩그러니 담이 하나 세워져 있다. '헛담’이다. 마당에 안채로 드나드는 사람이 사랑채에서 눈에 띄지 말라고 둔 담이라고 한다. 내외가 엄격하던 시절에 대문을 들어서면 빤히 보이는 안채를 가려서 여인들에게 드나들기 편하도록 하기위함이라고 한다. 유교적 가치관도 물론 있었겠지만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99칸의 고택은 여러 개의 담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각 건물마다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사이사이에는 작은 대문들이 아담하게 위치하고 있다.


한겨울이면 구들장을 데우기 위해 불을 집힐 아궁이가 각 방마다 위치해 있다. 흙벽에는 불을 집힌 흔적인 검은 그을음이 군데군데 있어서 정감을 더하고 있다. 하지만 가마솥이 위치한 자리는 흙으로 덮여있어서 마치 부뚜막 처럼 보인다. 식구가 줄어 들면서 솥의 용도가 더이상 필요 없었기 때문이겠지만 아쉬움으로 남는다.



뒤뜰에는 굴뚝이 나즈막이 위치해 있다. 모든 굴뚝에서 다시 연기를 피워 올리는 광경을 기대하는 것은 요즈음 농촌에서는 무리일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지 중의 하나인 청송에서는 말이다.



집 안채에는 우물이 자리잡고 있다. 지금에야 이 마을에도 상수도가 다 들어와있어서 별로 쓰일 일은 없어 보였다. 나무로 만든 덮개는 사용감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내가 이건물을 둘러보면서 이해하지 못한 구조물 중의 하나가 바로 기와로 만든 창이다. 이 창의 용도는 대가집의 여자들이 바깥 구경을 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안쪽에서 바깥은 볼 수 있지만 바깥에서 안은 볼 수 없도록 약간 휘어지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여자들을 위한 나름의 배려라고 볼 수 있다.



또하나의 이해가 가지 않는 구조물이다. 담장 밖으로 난 굴뚝이라고 하는데, 용도가 자뭇 궁금하였다. 도대체 무슨 용도 였을까? 설명에 의하면 흉년이 들었을때 밥을 굶고 있는 주민들이 많을 때는 아침마다 밥하는 연기를 피우는게 미안했기 때문에 집밖으로 연기를 내보냈다고 하는데 내가 제대로 기억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렇듯 송소고택은 그간 한옥에 대해서, 그리고 잘 알지 못했던 그 시대 주택을 만든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데 많은도 움을 주고 있다.


덕천리에는 송소고택 이외에도 '초전댁'과 심호택이 분가하는 동생에게 지어준 집 '창실고택'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조선시대 전통마을의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조선시대 대가집의 풍요와 삼가하는 마음을 느끼면서 조용히 책을 읽으며 옛 선비의 정취를 맛보고자 하는 분들에거 딱 맞는 곳이 아닌가 한다.


여름이면 음악회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를 열기도 하고, 이 마을에서는 염색체험 등 학생들을 위한 체험거리도 제공하고 있다. 청송의 수려한 경관과 함께 자연을 향해 마음을 열어보면 어떨까!



청송 심씨는 고려 충렬왕 때 심홍부를 시조로 받든다. 청송을 본관으로 삼게 된 것은 심홍부의 증손 덕부가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 창업에 공을 세우고 청성백(靑城伯)에 봉해졌기 때문이다. 덕부의 다섯째 아들 온(溫)은 여식을 충녕대군(뒤의 세종)에게 시집보냈는데 이이가 곧 소헌왕후다.


덕부의 아우 원부는 고려의 국운이 다하자 형과 달리 새 왕조를 거부하고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 절의를 지킨다. 이른바 두문동 72현(賢) 가운데 하나다. 후손들도 그의 유훈을 받들어 ‘선훈불사(先訓不仕)’라 하여 대대로 벼슬을 멀리 하였는데, 현재 청송에 사는 이들은 대체로 이들 원부의 후손이라 한다. 지금 청송에는 심원부의 장증손 외 100여 호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다.

청송 심씨는 조선조 500년 간 정승이 열 셋, 왕비가 넷, 부마를 넷씩이나 낸 서인 집안이지만 우리 역사에서 두드러진 인물은 그리 보이지 않는다. 산수화에 새로운 화풍을 이루어 김홍도와 함께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알려진 심사정이 눈에 띄고, 근대에 들어와서는 소설 ‘상록수’의 작가이자 ‘그날이 오면’의 시인 심훈의 이름이 우뚝할 뿐이다. (
http://blog.ohmynews.com/q9447/264129)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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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생태관광2012/01/29 16:34
중국을 방문해본 사람들은 느끼겠지만, 모든 것이 크다는 것이다. 이 크다라는 것이 결코 뻥이 아니라는 것을 그 큰 땅덩어리 만큼이나 넓은 농장을 방문해 보고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 오늘은 중국의 대규모 집단농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라다.
우리가 방문한 농장은 북경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규모는 차를 주차하는 주차장에서 부터 그 위압감이 느껴진다. 도시의 빌딩도 아니고 농장에서 그 규모가 느껴진다. 일단은 유리온실과 함께 함께 있는 부속건물과 창고들이 내가 생각했던 규모의 농장과는 그 크기를 달리하는 듯 했다. 물론 외국의 여러농장을 방문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 규모의 농장은 정말 입이 벌어질만 했다.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농장을 소개하는 것들과 함께 유리온실로 연결되어 있었다.


관광농장답게 "여객접대중심"이라고 리셉션 사무실이 따로 있었다. 그 당시의 입장료로 39위엔이었다. 한참을 기다리니 우리를 안내할 안내인이 나와서 입장수속과 안내를 시작했다.



내부에 들어가면 다양한 식물들과 분재한 나무들, 그리고 아름다운 난들이 가득 손님을 맞이한다.



조금 더 지나 유리온실로 가면 다양한 난 종류를 재배하는 동과 채소류를 재배하는 동이 나오고 열심히 일을하시는 농장직원들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이정도 농장에서 일을하면 농민으로 불러야 할지 종업원으로 불러야 할지 헸갈리기도 한다.



이 정도의 농장규모야 나도 많이 봐았었으니 별로 놀랄일은 아니지만, 조직 배양실의 규모를 보고는 두손 두발 다들었다. 사진에 나오는 규모의 조직배양실 규모는 나는 아직 본적이 없다. 물론 이정도의 조직배양실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이다. 5-6개 정도 되었으니 어림잡아 여기에서만 70-80명의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엄청나다!



온실밖을 나오자 갈대로 담장을 한 듯 노란 색깔의 출입문들이 인상적인 농민들의 숙소가 나온다. 중국 어디에나 있는 홍등들이 걸려 있는 농장의 숙소였다. 크게 나쁘지 않은 작업 및 거주 환경으로 보였다.




이 농장은 원예작물만 재배해서 공급하는 게 아니라 북경에서 가까운 이점을 활용해서 교육농장으로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어린이들이 좋아할만한 다양한 식물들을 보기 좋게 진열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만큼이나 높은 중국의 교육열은 이런 농장들에게는 좋은 수익모델을 제공하고 있다. 아이들은 여기에서 만들기를 하기도하고 넓은 농장에서 다양한 체험거리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교육농장들이 있기는 하지만, 규모나 수준면에서는 비교가 불가한 수준이었다. 물론 이 농장이 특별한 농장이기 때문에 그럴수도 있겠지만.......




벽면에 부착하는 형태의 화분이다. 요즈음은 이런 형태의 화분들이 건물내의 조경에 많이 사용되면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농장 다른 쪽에는 두부를 만드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네 두부 만드는 방법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전통의 방법을 그데로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는게 인상 깊다.



물론 이역시도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콩을 갈 수 있는 맷돌이 수십개가 준비되어 있어서 동시에 한 한급학생들의 실질적인 체험이 가능하였다. 특이한 것은 멧돌 손잡이가 우리나라는 한사람이서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만들어진 것에 반해, 중국에서는 두사람이서 서서 돌릴 수있도록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다음부터는 농장에 있는 다양한 식물들 중에서 일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제주도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용과이다. 선인장과에 달리는 열대과일로 한얀 과육이 연한 것이 특징이다.



'천인손'이라고 듣기는 했는 데 정확히 그 이름을 모른다. 나나 방문한 사람들 모두 이런 이상한 모양의 식물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어린이들은 다 비슷한 모양이다. 애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다양한 피규어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가 익히 잘아는 캐릭터들을 보니 반갑기도 하였다. '애들은 똑 같어'


짧은 시간 동안 농장 견학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넓은 땅을 가진 나라답게 좁은 시골길이 끝이 없이 펼쳐져 있다. 길에는 잡초도 우거져 있고, 서리에 풀이 죽은 화초들도 뒤엉켜 있는 것이 이곳이 시골임을 알게 하고 있다.



이번 농장방문을 통해 중국 농업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우월감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 뉴스에서는 중국 농작물 중에 문제가 되는 사항들만 다루어지니 오해하는 면이 많겠지만, 중국농업은 그 규모와 기술적인 면에서 우려할 만한 수준이었다. 향후 중국과조 FTA가 되고 한다면 농업은 새로운 환경에 직면할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우리 농업이 중국농업에 대비한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는 것은 시급한 문제로 보였다. 그것은 규모와 안전성, 근접성, 그리고 기술적인 면에서 쉽지않은 일임이 분명해 보였다.


(이 여행기는 2009년 늦가을 중국농장을 방문한 것을 바탕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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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생태관광2012/01/11 13:09

프랑스의 농촌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슴에 품고 있었다. 영국에서 한동안 살면서 농장을 자주 방문엤었기 때문에 영국의 농촌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고 있었고, 독일의 농촌 마을은 지난해 방문을 해보았기 떄문에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농촌마을은 기차나 버스를를 타고 지나가면서 본게 다였기 때문에 더욱 궁금해 졌다. 차창밖에 보이는 풍경이 영국과는 많이 달랐고, 독일과도 분명히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연유로 겸사겸사 해서 프랑스 중부 르와르 지방의 평야지대에 위치한 민박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의 민박 운영과 농촌관광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유럽에서 잘하고 있다는 프랑스의 예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프랑스 출신 박사들의 혀굴리는 프랑스 자랑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파리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세시간 가량을 달려간 곳이지만 이름난 지역을 선택하거나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안내자는 출발전 부터 볼게 없으니 기대는 하지말라고 신신 당부를 한다.


먼길을 달려, 정말 먼길을 달려도 산하나 보이지 않는 먼길을 달려 찾아들어가니 수많은 협회 인증 간판들이 이 집이 여느 다른 집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 하다.



마당을 들어서니 조그마한 조형물들이 아기자기하게 자리를 잡고 있고 초겨울임에도 불구하고 푸른잔디와 꽃들도 활짝 핀채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그냥 지나다니면서 볼때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사진으로 찍어 놓고 보니 참 멋있는 캐릭터라는 것을 새쌈 느끼게 되는 조형물이 있다. 마치 로봇들이 나오는 만화영화의 캐릭터 같은 느낌이 난다. 좀 개구장이 같기도 하고.



민박집은 본채와 별채로 나뉘어져 있는데 손님을 받는 방은 7~8개는 되는것 같았다. 아마도 민박에 상당한 수입을 의지하고 있는 농가 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주인 아저씨는 몇백 헥타르의 농경지를 직접 경작하고 있다니... 참 부지런하기도 하다. 유럽의 겨울이 그렇듯이 비가 자주 내려서인지 마당의 잔디들은 축축하고 나뭇잎들은 물기를 머금고 있다.



마을 어귀에는 민박집을 안내하는 입간판이 자그마하게 있어 길손들을 불러모으고 있고, 집 메인 게이트 옆에는 민박 가격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그외에도 여러가지 조형물들로서 집안을 이쁘게 장식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집안은 넓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가 여름철에 왔었으면 앞뜰에서 이웃들과 함께 맥주에 바베큐도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민박집의 숙박비는 방당 55~60 유로 정도로 일반적인 B&B보다는 약간 저렴한 수준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묵을 때도 느아르 지역의 고성을 둘러보고 돌아가는 관광객들이 하룻밤 묵어가기도 하였다. 침실은 깨끗하고 욕실도 여느 도시의 주택과 큰 차이는 나지 않는다. 조금 낡기는 했지만 내가 살던 영국의 집 보다는 좀 더 좋은 괞찮아 보였다.




민박집의 음식


그집의 음식은 안주인을 보면 된다고 했던가? 자식들을은모두 도회지에서 회사를 다니고 주말마다 집에와서 일을 거든다고 자랑하는 주인아주머니의 모습은 우니네 여느 농촌의 아낙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인 아저씨는 농장에서 일을 하는지 보이지를 않고 주인 아주머니가 손님을 맞고 저녁 준비에 한창이다. 프랑스 음식이야 많이 먹어 봤지만 이 시골에서 먼 이국에서 온 손님에게 무슨 음식이 내올까 내심 기대를 하고 기다렸다.



음식을 본 순간 "에게!"리고 약간의 실망감이 들기도 했지만 시골에서 그럼 일류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를 바란건 도둑놈 심보.민박집의 음식은 프랑스의 일반 중산층들이 먹는 음식 그대로이다. 그래서 오히려 편안하고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스파게티 스프와 거친 빵 바구니, 감자, 스튜처럼 삶아낸 고기, 그게 다다. 후식으로 푸딩과 10여 종의 치즈가 나왔다. 프랑스 사람들 정말 치즈를 많이 먹는다더니 정말이다. 이 사람들은 우리나라 김치 처럼 항상 치즈 접시가 놓여진다. 정말 종류도 다양하다.



식당에서는 우리 일행 이외에도 다른 지역을 다녀가던 여행객들이 같이 묵었다. 금새 인터네셔널 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전형적이고도 소탈한 민박집 분위기 그대로다. 뭘 더 기대하겠는가? 내가 상상하던 그대로의 그 분위기라서 오히려 놀랍기도 하다.




민박집의 경쟁요소


프랑스의 민박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벤치마크를 하곤 한다. 특히나 프랑스 물 좀 먹은 이들이 자주 방문하여 배워 온 것들을 우리나라 농촌에 그대로 접목시키고자 노력한다. 매번 그들이 말하는 프랑스 용어들을 듣고는 기가 죽곤 했었는데, 사실 가보면 별거 없다. 하지만 안가보고는 큰 소리를 견뎌 내기란 참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이 민박집도 나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부부가 농사일로도 바쁠테지만 손님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이 무척이나 편안하게 느껴졌다. 이 곳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뭘 기대하는 지를 아는 듯 했다. 방방마다 방명록이 있고, 주인장 부부가 나온 뉴스를 클리핑하여 철을 해놓아 방문객들에게 인지도를 높이기도 한다. 모든 서류들은 잘 철해져 있고, 규정대로 관리도 잘 하고 있는 듯 보였다. 프랑스 민박협회(Gite de France)의 인증서를 비롯해서 다양한 협회들의 인증서들을 구비하고 있고 인터넷이나 여행사 등과도 잘 네트웍이 되어 있었다. 프랑스 신문 뿐만 아니라 일본의 신문과 잡지에도 소개가 되었다.



민박집 뜰에 있는 우물이다. 물론 현재는 사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어느 시절에 주력으로 사용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을 버리지 않고 마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 멋떨어진 조경으로 계속 자리를 잡고 있다.



짧은 여행, 긴 여운


이제 떠나갈 시간이 다가왔다. 프랑스의 민박집 체험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동네를 둘러봐도 그저 넓은 평원만 있을 뿐 심심한 풍경이었지만 그곳에도 우리네와 같이 노부부가 시골을 지키고 있었다.




떠나기 전에 주인장에게 포즈를 부탁했다. 활짝 웃는 모습이 모델로도 손색이 없는 듯 하다. 이런 미소와 여유가 유럽 중부 대평원에 있는 이름없는 마을을 찾아오게하는 원동력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방문한 지역이 관광지도 아니고 주변에 볼 것도 별로 없지만 주인부부와 같이 보낸 하루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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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생태관광2012/01/11 10:07

프랑스의 시골 마을은 어떨까 항상 궁금했었다. 하지만 프랑스 말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시골 마을까지 찾아 간다는 게 항상 모험이기도 했지만 짧은 여행기간 동안 파리이외의 지역을 방문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한데 기회가 왔다. 프랑스의 민박집을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짧은 여행기간 동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지역은 이곳 뿐이었다. 파이에서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곳은 포도 주산지가 이니어서 와이너리(winery)도 없고, 멋떨어진 고성도 없고,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그 흔한 언덕배기 하나 없는 밋밋한 곳이다. 아마도 여유가 있었으면 절대로 오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그런 이름없는 시골,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마을을 정말 보고 싶었다. 유럽의 농업대국 프랑스의 농촌은 어떤지 정말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골깡촌의 촌놈이 프랑스 깡촌(?)을 방문하였다. 기대와 설레임으로 긴 여정에 올랐다.


프랑스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길을 잃다.


시골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이 이야기는 다른 편에서 다룰 예정).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마실길 산책을 나갔다. 자칭 유럽통의 무대포로 아무런 준비없이 카메라 하나 메고 길을 나섰다. "이런 시골길"하며 그냥 나섰다. 이리저리 들판을 다니면서 작물들을 둘러보고 마실로 들어섰다. 일요일 아침이라 지나다니는 차도 거의 없고 당연히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저 민박집 개만이 앞장서 길을 잡는다.



근데 이런 평야지대의 마을 길을 걷는 것은 처음이었다. 항상 산들로 둘러 사이거나 최소한 언덕이라도 있는 동네에서만 살던 내게 평야지대의 거리감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바로 근처에 있는 것 같지만 걸으면 정말 멀었다. 더 큰 문제는 마을내로 들어서자 도무지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내가 익숙한 동네는 설사 길을 잃더라도 한두번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면 대충 방향으 잡을 수가 있었지만 여기는 달랐다. 멀기도 하였지만 지형지물 하나없는 이곳에서 방향을 잡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아침식사 시간은 다가오고, 그 식사 후에는 일행들이 바로 떠날텐데, 제기랄! 창피하게 대도시에서도 잃지 않았던 길을 시골마을에서 잃게 될줄이야! 식은 땀이 흘렀다. 정말 황당하기도하고 말로하기 창피하기도 하고! 전세계 도시를 지도하나들고 찾아다닌 기개는 오간데 없고, 집도 몇채 없는 시골동네에서 이게뭐람! 결국 기억을 되집어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가기로 했다. 그 먼거리를 다시 되돌아 갔다.


어릴적 봤던 많은 동화속 얘기들이 가슴에 와닿았다. 헨젤과 그레텔, 로빈훗 등 많은 얘기들에서 길을 잃는다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왜 길을 잃지? 내가 살던 세계에서 길을 잃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설사 그곳이 첩첩 산중일 지라도. 나는 항상 대도시에서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하나 하는 두려움을 도시를 방문할때마다 가지지만, 실제로 길을 잃는 곳은 그런 붐비는 곳이아니라 이런 평평한 시골마을 일수 있다는데 대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프랑스의 농촌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농촌은 어디나 비슷하다. 프랑스의 농가의 경작규모는 우리나라에 비해서 수백배 더 크지만 사람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 특히나 시골생활의 한적함과 도회로 보낸 자식을 기다리고, 노부부가 서로의지하며 외로움을 견디는 것등 어디나 크게 다르지 않다. 전봇대는 높이 솟고 멋스러운 주택에는 담쟁이가 무성하다.



한개 농장에서 경영하는 토지규모가 우리나라의 한개 마을보다 크다. 여기에 사용되는 농기계들도 그 사이즈가 장난아니게 크다. 하지만 농촌의 어려움은 농지규모에 상관없이 비슷한 것 같다. 아래 사진의 거대한 호스들은 아마도 축산농장의 액비들은 농경지에 살포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 같다.



겨울철이지만 유채꽃이 들판 곳곳에 피어있다. 유럽에도 바이오디젤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 많아지면서 유채를 보는 것은 아주 흔한 풍경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남쪽지방에서는 유채를 재배하고 있지만 유채를 산업화하기에는 규모면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에너지 산업은 무조건 규모가 되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심지않는 품종이다. 유럽의 마트에 가면 아주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채소이다. 우리나라에서 채소는 대개 채를 쳐서 생식으로 먹는 것에 반해서 유럽에서는 주로 수프에 원료로 사용된다. 무 처럼 뿌리작물들이 대개는 그렇게 사용된다. 독일의 시골지역의 식당에서 먹었던 채소수프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정말 맛있었다.



잔디밭 공터에는 사과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농약을 치고 가꾸지를 않아서인지 나무 가득 주렁주렁 매달였고 대부분은 병에 감염이 되어 있다. 물론 따먹는 사람도 없으니 무슨 상관이랴 마는.



아래는 축산농가의 모습이다. 마찬가지로 거래한 호스가 트레일러에 감겨져 있고, 밀짚을 분쇄해서 쌓아 놓은 거대한 더미가 있는 것이 여느 축산농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상품성이 없는 거대한 무 더미가 옆에 쌓여져 있어서 약간은 썩은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시골은 어디나 비슷하다.





농가마다 있는 거대한 창고에는 가지가지 농기계가 보관되어 있다. 위의 기계는 아마도 씨를 뿌리는 드랙터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는 비슷한 기능의 농기계가 많이 도입되긴 했지만 농장규모가 이런 농기계를 사용할 만큼 되는 농장이 많지 않아서인지 이정도 크기의 농기계를 실물로 보기는 어렵다.



들판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일반적으로 위의 사진과 같이 까마득히 보인다. 대개의 마을들이 약간 높은 곳에 자리를 잡는데 이지역은 그냥 평야지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마을의 아웃라인을 제대로 보기가 어렵다. 마을까지 가보겠다고 겁없이 걸어 갔다가는 좀 고생을 한다. 산골에서는 생각보다 가깝지만 평야지에서는 생각보다 멀었다. 거리감각이 완전히 마비되는 듯 했다.



시골마을이긴 하지만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하는 곳이 있다. 유럽의 어느 동네에서나 아주 흔한 풍경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 단지에서 조그마한 분리수거 통들이 있기는 하지만...., 영국에서는 집집마다 분리수거용 녹색 플라스틱 통에 재활용품을 담아서 짚앞에 내놓으면 수거해가는 시스템이 일반적이었다.




여느 시골마을과 같이 프랑스의 시골마을도 그냥 시골마을 이었다. 관광프로그램에 나오는 것 같은 아름다운 풍경의 그림과는 너무나도 다른 그저 밋밋한 그림을 보여준다.



정말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특히나 이곳 누와르 지방은 산이 없는 중부 유럽의 대평원 위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사방을 둘러 봐도 지평선 밖에 보이지 않는다. 평평한 벌판에 중간에 거의 흐름이 없는 조그만 강줄기가 하나 지나간다. 정말 심심한 풍경만이 가득하다. 이런 곳에서 살기란 정서적으로 정말 쉽지 않을듯 하다. 하루만 지나도 우리나라의 산이 많은 아기자기한 동네가 그리워 진다. 그 지겹던 산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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