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은 가장 보수적이라고 한다. 어릴적에 먹은 음식은 오랜시간이 지나가도 잘 잊혀지지 않는다. 오랜세월이 지난 후 그 음식을 먹을 때면 어릴 때 그 음식을 먹었던 장면 까지 선명하게 떠오르곤 한다. 긴 세월이 지나가도 혀는 그 맛을 정확히 기억하고, 그 맛과 관련된 잊혀진 기억까지도 뇌 깊숙이서 불러낸다.
어릴적에는 김치와 된장, 우거지국을 그렇게 싫어했지만 희안하게도 나이가 들면 그 맛이 그리워진다. 이런 이야기는 드라마와 소설의 단골소재이기도 하다. "대장금"에서 한 상궁은 죽기전에 어릴적 맛있게 먹었던 찐쌀을 한번 더 맛 보고 죽는게 소원이었다. 수많은 비슷한 찐쌀을 가져갔지만 모두다 아니라고 내쳤다. 그리고 장금이가 가져간 찐쌀을 맛보고는 할머니와의 기억이 떠올라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행복한 죽음을 맞았다.
이서군 감독이 만든 "된장"이라는 영화에서는 이 스토리를 더 극적으로 그렸다. 사형수인 탈주범이 된장을 먹다가 잡혔고, 죽기전에 그 된장을 다시 한번 더 먹고 싶다고 했다는 것으로 이 영화는 시작한다. 그리고 그 된장 맛이란 것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를 딸이 재현해 나간 발자취를 따라 가면서 비극적인 러브스토리와 함께 긴 여운을 남긴다.
<영화 "된장"의 한 장면>
우리나라 음식의 특색은 발효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김치, 간장, 된장, 고추장, 갖가지 장아찌 등 발효음식은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이중에서도 장맛은 모든 음식 맛의 기본이 된다. 그래서인지 예전부터 그 집 장맛을 보면 그집 음식 솜씨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잊혀져가는 우리의 전통장류 음식들
안타깝게도 이런 우리의 장맛은 점차로 잊혀져 가고 있다. 대도시에서 메주를 쒀서 띄우고, 그것으로 된장을 담는 다는 것은 여간해서는 쉬운일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재배된 콩을 사는 것 마저도 만만치 않은 일이되었다.
시골에서도 점차로 장을 담그는 집들은 줄어들고 있다. 시어머니의 장담그는 솜씨는 며느리에게로 전해지지 않고, 집안마다 다양하던 그 나름 맛의 비법들은 세대가 지나면서 맥이 끊어지고 있다. 아이들은 어릴적 부터 외국 음식에 더 익숙하고, 우리 입맛은 일본식 간장과 공장에서 생산된 된장 맛에 어릴적부터 길들여져 지고 있다. 이렇게 한세대가 가고 두세대가 가면 우리의 맛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할 수나 있을까?
시골에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집들이라면 점점 더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먹을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우리가 애써 전통방식으로 조리하는 식당을 찾지 않는다면 전통의 장으로 만든 음식을 맛보기는 어려워져만 간다.
한국인은 김치와 된장을 먹는사람들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치즈를 먹는 사람들이다. 그것도 매일 같이 다른 치즈를 먹는다. 일본 사람들은 톡소는 와사베가 들어간 초밥 ,나또, 간장 국물에 우동을 먹는다. 인도사람들은 탄도리와 카레를 먹고, 터기 사람들은 케밥을 먹는다. 나라마다 그 나라 고유의 음식문화가 있고, 그 음식이 가지는 독특한 향은 그 나라 사람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외국에서의 긴 여행동안 느끼한 음식에 지쳐갈 때 쯤 고추장 한 숟가락은 새로운 힘을 쏟게 만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짧은 여행기간이라도 호텔 식당에서 김치를 꺼내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체면이고 뭐고 없다. 나도 대한항공을 타면 승무원에게 말해서 볶은 고추장을 한두개씩 더 쳉겨간다. 나의 마지막 생존비기 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문화재는 소실되었고 문화와 언어들은 잊혀져 갔다. 하지만 음식 문화만큼은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 남았다. 패스트푸드가 범람하고 있지만 나이가 들면 햄버거 보다는 구수한 된장찌게를 더 찾게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전통의 된장과 간장, 김치에 대한 강한 끌림이 있다. 어릴적부터 어머니로부터 그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맛이란 것은 뇌속 깊숙이 잠자던 그 맛을 느끼던 때의 장면을 생생히 되살려내고, 더 나아가 우리민족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가치있게 느끼게도 만든다.
세월이 지나면서 음식 맛도 변해가고 개량된다. 음식문화가 발전할수록 원류부터 그 다양성은 증대된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맛의 전승을 걱정해야 할 때이다. 급격한 도시화와 핵가족화는 전쟁만큼이나 파괴적으로 우리의 음식문화 전승을 어렵게하고 있다. 맛은 전승이 가장 쉬운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 존립을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초등학교에서 장독대를 볼 수 있다면...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이런 우려를 보고만 있지 않고 해결하기 위해 행동을 하신 분들이 있다. 어린이들에게 맛의 기억을 물려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해하고, 기막힌 방법을 찾아내었다. 바로 학교에 장독대를 두고 장을 직접 담궈서 급식에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나도 획기적으로 들렸다. 어떻게 학교에 장독대를 둘 생각을 할 수 있었을지, 학교 급식을 먹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매일같이 아이들에게 급식을 공급하는 선생님이라면 가능할 듯 싶었다.
매일 같이 회사 구내식당과 바깥 식당에서 마법의 가루로 맛을 낸 음식에 길들여지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애들이 어릴때부터 학교식당에서 그런 맛에 길들여지는 것에 대해 자뭇 걱정을하던 나에게 학교의 장독대는 신선하기도하고 안심이 되기도 하였다.
이일은 경남지역 한 초등학교의 영양사 선생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초등학교에 장독대가 필요할 것이라고 누구라도 쉽게 생각하기는 어려웠을 테니. 기획안을 처음 내었을 때는 대부분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교육감을 설득하고 예산(3억원)을 신청하고, 도의회 까지 설득하여 예산을 확보하고 사업을 시작하였다. 여기에는 도의원들을 직접학교에 초청하여 학생들이 장을 담그는 모습을 보게하는 것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한다. 어린이들이 우리의 장을 담그고 그 맛을 이어갈 수 있다는데 누가 찬성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 결과로 경상남도의 103개의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매일 같이 장독대를 볼 수 있고,학생들은 매년 직접 장을 담그고, 그 장을 학교급식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고하니, 아마도 그 학생들은 평생토록 자기들이 직접 담구었던 그 장맛을 우리 전통의 장맛을 기억할 것이다. 그 음식을 함께 먹었던 정다운 친구들의 얼굴과 함께. (안타깝게도 지금은 초등학교 장독대 사업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하일 초등학교 장독대 전경, 콩이랑농원 블로그(http://blog.daum.net/jjho365)에서>
점점 더 세계화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 살더라도 전통 장맛을 본 사람들이라면 고향을 결코 잊지 못 할 것이다. 혀의 돌기세포는 그 맛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농산물로 담근 우리의 장맛이 지켜지는 한 우리의 식문화와 그와 관련된 전통은 영원히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장독대 사업의 확산
2011년도에는 경기도 교육청에서도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장독대"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하남의 풍산초등학교가 시범학교(10개의 시범학교 중 하나)로 선정 되었는데, 도교육청에서 1천만원을 지원받아 지난해 8월에는 학생들과 함께 고추장, 된장, 간장, 매실진액등을 담궜다고 한다. 올해부터 풍산초등학교에서도 학교급식에서 직접담근 전통 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도시화로 인해 집에서 점점 더 우리 고유의 장맛을 맛 보기 어렵게 되었다면 학생들이라도 그 맛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은 정말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점점 더 확산되어 급식을하는 모든 학교에 장독대가 들어설 수 있기를 바라본다.
우리의 맛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때
이러한 노력과 움직임에 정부의 지원도 적극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특히나 주관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전통식품 및 관련 문화보존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라도 만들어서 우리의 전통음식과 관련된 문화가 잘 보전되고 발전 할 수있도록, 우리의 전통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었으면 한다. 학교 장독대 사업을 중앙정부차원의 사업으로 으로 확대하고, 전통발효 음식과 관련된 연구에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리고 무엇이 전통의 맛이 었는지를 현재의 시점에서 기록을 남기고 맛의 원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만약 국가적인 지원이 없다면 우리 고유의 맛에 관련된 기억들은 산업화되고 표준화된 맛에 의해 쉽사리 묻혀버릴지도 모른다. 중세 아랍의 발전은 고대 그리스 문명의 기록들을 번역하면서 시작되었고, 르네상스는 십자군 전쟁에서 가져온 그 아랍 번역본들이 다시금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꽃을 피웠다. 우리 음식문화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맛의 원류를 잘 보존한다면, 훗날 이의 재해석을 통해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새로운 식문화로 발전시켜 나갈수도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담그는 장에는 우리 농촌에서 재배한 콩들이 사용되어지고, 학생들은 어릴적부터 우리 농산물 고유의 맛을 기억할 것이다. 이는 우리농업을 지켜나가는 일이고 우리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지켜나가는 일이 다. 먹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기 때문이고, 말로하는 애국심 보다는 혀끝의 세포가 더욱 더 그일을 훌륭히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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