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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무엇인가 ?

교육, 도서 정보/교육혁신 자치의 길

by 소나무맨 2013. 5. 15.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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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무엇인가 ?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의 전문이다.


불과 3행 32자로 쓰여진 이 시는 어떤 영웅의 사자후보다 더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너에게 묻는다’ 라는 도발적 제목, 그리고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냐는 숨이 턱턱 막힐 듯한 질문은 우리를 속깊이 부끄럽게 한다.

 

우리는 누구에게,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던가..? 정말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너는 누구냐?’ 라는 선사의 질문이나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일갈도 과연 이만한 무게를 가질 수 있을까 싶다.

   

공부의 구조란 이런것이다.


사람은 원래 궁금해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서 말을 배우면 가장 먼저 가지는 것이 호기심이다. 이것은 무엇일까? 저것은 또 무엇일까? 그래서 아이는 늘 질문한다, ‘엄마 이건 뭐야?’ 이때 아이의 궁금증은 한없이 맑고 예쁘다, 하지만 그래서 아이가 알게되는 것들, 우리는 그것을 일러 ‘알음알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스스로 깨우친 것이 아니고 또 그것의 이치를 관통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이 '무엇'이라는 명사를 익히거나 그것의 용도를 배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에게 그것이 왜 존재하는지 , 그것이 왜 필요한지는 의미가 없다, 아이의 호기심은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것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것은 그것이다’ 이상의 것들,,, 그것은 의문이다. 궁금함과 의문은 다르다, 궁금함은 새로운 자극에 대한 조건반사지만, 의문은 그 조건반사에 대한 성찰이다.


때문에 우리가 공부라고 부르는 것은 후자다,


그러나 공부는 재미가 없다. 궁금함에 대한 충족은 게임을 배우고, 놀이를 즐기고, 놀이의 패턴을 익힘으로서 충분하지만 공부는 내가 왜 그 놀이를 하는지, 사람들이 그 놀이를 왜 즐기는지에 의문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문은 상상을 필요로하고 상상은 추론으로 연결된다.

 

이 과정은 뇌와 신경계의 노동을 필요로하고 노동은 본질적으로 재미가 없는일이다.


그래서 공부는 재미가 없다고 여긴다.


공부를 하는데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공부에서 재미를 발견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 재미를 어떻게 발견할까? 인간이 재미를 느끼면 도파민이 분비되지만, 인간이 지루함을 느끼면 에피네프린이 분비된다, 전자는 대뇌 변연계를 자극해서 엔돌핀을 형성하지만, 후자는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작용해서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근육을 긴장하게하며, 혈관내의 압력을 높이고, 얼굴이 붉어지며 기관지를 확장시킨다. 머리는 두통을 느끼고 목은 뻣뻣해지며, 근육에는 젓산이 쌓이게 된다.


재미를 느낄 때 분비되는 엔돌핀이라는 마약에는 쉽게 취하고 중독이되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그것을 거부한다,

 

공부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할 때는 어떤 성취도 이룰수가 없다. 그래서 인간은 타협한다, 궁금증을 해결은 해야하지만 스트레스는 피하고 싶은 것, 그것이 바로 알음알이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재미가 없는 공부는 아이가 궁금해하는 것을 충족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것이다.


그렇다면 공부의 재미는 어떻게 느끼는 것일까?


그것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인간은 반복에 의해 패턴을 학습한다, 처음 클래식을 들으면 즐겁지 않다, 오히려 피곤하다, 그러나 그것을 반복해서 들으면 수많은 악기들과 복잡한 화성, 그리고 조성의 변화에서 일정한 패턴을 깨닿게되고 그것은 재미로 이어진다. 즉 클래식을 들을 때 그것을 소음으로 여기는 단계를 넘어서서 그것에서 패턴을 찾게되면 그와 유사한 패턴을 발견하는 재미를 쉽게 알게되는 것이다.


매직아이라는 것이 있다.


매직아이를 처음 접하면 피로하다. 그것은 규칙이 없고, 산만하다, 그림과 색채는 패턴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양눈의 시야를 흐릿하게 하고, 멀리서 그윽하게 바라보며 초점을 보통때보다 조금만 뒤로 가면 그 그림에서 규칙성을 발견하게 되고, 그림에서 갑자기 삼차원의 구조물이 튀어 나온다, 그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 또 다음의 매직아이에서는 아주 쉽고 빠르게 목적하는 바를 이루게 된다. 이 단계는 재미의 절정이다,

 

그러나 이 단계를 넘어 계속 매직아이를 시도하면 지루해지고, 다시 노르에피네프린이 분비되는 것을 느낀다, 뒷 목이 뻣뻣해지고 눈이 피로해진다.


이유는 식상함 때문이다.


처음에는 힘들고, 다음에는 즐겁고, 그 다음에는 식상하는 것, 이것이 놀이다,


그러나 그것이 공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처음 등산을 하는 사람은 고통스럽다, 다리가 무겁고 숨이 목 젖에 찬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 참고 올랐을 때 ,우리는 그 고통를 보두 보상하는 재미를 얻게된다, 정복의 기쁨, 즉 도달에의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그것이 쉽고 대신 정상에 다다른 쾌감은 줄어든다, 그것 역시 식상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산을 오른다, 이산을 저산을, 결국에는 목숨을 걸고 에베레스트와 K2 봉에 도전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오르는 길, 그것을 오르는 방법을 습득한 이상, 그것을 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식상함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산, 더 힘든 산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게임을 하는 사람의 심리

도 그렇다,  게임의 룰을 처음 배우는 것은 힘들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포기 한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면 게임의 한계를 알기위해 도전하고, 결국 그 게임을 정복함으

서 등정의 쾌감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의 패턴에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그 정복의

의미가 사라진다,

 

그리고 새로운 게임을 찾는다,


그렇다면 공부란 무엇일까?


공부는 이 두가지의 속성을 공히 가지고 있다, 공부는 호기심을 충족하는 알음알이에 대

능과 그것에 도전하고 정복하려는 쾌감중추의 지배를 동시에 받는다, 그래서 공부

게임이나 놀이보다 훨씬 어렵다, 알음알이의 단계에서 끝내도 유사마약과 같은 가벼

흥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정상에 힘들여 오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더구나 공부를 통해 얻는 괘감보다 훨씬 쉬운 쾌감의 수단들이 우리주변에 널려있다,

 

놀이,도박,여흥,섹스,,, 이 많은 것들이 공부보다 훨씬 쉽게 쾌감에 이르게한다.


그러나 공부의 참 맛은 바로 무한성이다.


산이 거기있어 산에 오르는 등반가는 모든 산을 다 오를 수 없어 산을 계속 오른다, 공부

를 하는 즐거움은 바로 정복 할 수 없는데 있다. 게임은 어느순간 정복을 할 수 있고,

것은 늘 반복되는 패턴이지만, 공부는 늘 새롭다, 늘 새로운 산을 오르고, 늘 새로운 경

를 맞이 한다,

 

경사는 점점 가팔라지고, 오를수록 다리가 후들거리며, 숨은 턱에 차 오른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도전이다, 그것의 완성은 공부를 통해 정상을 정복하는데 있는 것

아니라, 늘 그 새로움에 도전하는 것, 늘 새로운 경치를 바라보는 것에 있다.


아이들이 공부를 싫어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은 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부가 해야하는 것이 아닌 성인이 되면 가벼운 야산을 오르는 등산의 기쁨은 누구나 알

게된다, 우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책을 사서 읽거나, 취미를 가지고, 그것을 위해 공부

를 한다, 다만 그것이 알음알이에 멈추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사진을 찍고 싶고, 그림을

알고 싶고, 음악을 듣고 싶지만, 그것에서 일정한 패턴을 발견하는 순간 그것에 머물러

버리면 알음알이가 된다,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그것의 의미를 이유를, 그리고 원리를 알고 싶어하고, 결국에는

것을 설계하려는 욕구를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설계는 궁극적인 새로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운동장에서 공을 차기보다는 들판에서 공을 차는 것 그것이 바로

창조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직 그것의 이치를 알기가 어렵다 .

 

아직은 알음알이의 걸음마에서 그리 먼 발걸음을 떼지 않은 탓이다.

 

더구나 등산을 하는 등반가가 그것이 원하는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 이어서 산을

오른다면 그에게 그것은 죽음만큼 힘든 중노동이다,

 

          

 

다음에 이어서,,,,

 

2007/03/04  시골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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