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자신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존재다.
학교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즐거워야 한다.
속부터 채워져야 곧은 나무로 자랄 수 있다.
유치원 아이들은 모두가 뛴다. 아이들은 소곤거리기가 어렵다. 즐거운 것이 아이들이다. 사소한 딱지치기에도 아이들은 뿌듯해하며 즐겁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에게 조용하고 차분할 것을 요구한다. 아이들은 자신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존재다. 그 아이들의 자신감을 키워줘야 한다.
고난이야 말로 성장을 위한 스승이다.
왜 사람들은 서로가 원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고통으로 다가오는 삶의 부조화의 원인을 밖에서 찾으면 답이 없고, 그 고통만 커진다. 그 고통의 원인을 자기 안에서 찾을 때 길이 보인다. 그런데, 자라나는 아이들은 그 고통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어린시절의 즐겁고 따뜻한 경험이 그 고통을 이기는 힘이 된다.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아이의 사소한 행동에 의미를 찾고, 아이의 특성은 인정할 때 아이와 부모가 행복하다. 학부모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아이로 부터의 해방이다. 이것이 자녀와 부모의 행복 조건이다.
아침에 산책을 함께 가면 가만히 있는 아이는 하나도 없다.
아이들은 풀과 곤충에 잔뜩 관심을 보인다. 아이의 관심에 함께 조금만 관심을 보여주면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키워진다. 모든 학문은 호기심에서 출발하지 않는가? 머릿속의 지식을 키우는 것은 사춘기때다. 아이들은 성인이 아니다. 요즘 대부분 학교활동은 머리를 쓰는 것이다. 지난 여름의 기억을 되살려 그림을 그리라고 할 것이 아니다, 밖에 나가 관찰하고 그려보라고 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노래의 박자와 계명을 배우기보다, 노래를 부르면 삶이 즐겁다는 것을 느껴야 한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내버려두어야 한다. 머리쓰기를 강요하지 말고 호기심이 자라도록 하면 아이는 스스로 성장한다.
공부를 즐거워서 하는 모든 학년의 아이들을 관찰해보았다.
그 결과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엄마의 나이가 40이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자식을 부고가 따라다니며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급해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자기 깜냥만큼 할 것이라 기다린다는 것이다. 무관심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이다. 40 이상의 부모는 조급함을 버린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 세상은 탐험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다.
행복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이번 강의에서 꼭 하고 싶은 말은 아이들은 믿어주는 만큼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은 삶은 자기가 스스로 사는 것이라는 점이다. 부모나 선생의 말을 그냥 믿는 아이는 없다. 자기 나름의 삶을 사는 것이다. 어리다는 것은 두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경험이 없으니 두려울 것이다. 그 두려움 때문에 친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린이에게는 두려움을 함께 나눌 친구가 꼭 필요하다. 자신의 실수를 해결해 본 경험이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 친구는 생명과 같은 존재다. 폭력은 구별에서 시작되었다.
비난 받지 않는 아이는 용서하는 마음이 커진다.
비난 받으면 마음이 좁아진다. 마음이 좁아지면 타인을 공격한다. 우리는 교육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을 비난하지 않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비난하지 않아야 서로 다른 존재를 인정할 수 있다. 스승의 역할은 학생이 자신을 알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여행은 단순히 즐거워야 한다. 그
리고 아이들에게 줄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고행의 경험이다. 함께 하는 고행길이다. 고행의 정도가 슬리롭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 사막을 횡단해본 아이는 사소한 문제를 큰 무게로 느끼겠는가? 여행은 여행다야 한다. 처음에는 체험이겠지만, 나중에는 도전이 되야 한다. 울릉도는 가장 이국적인 고장이다. 우리 아이들이 울릉도로 여행을 갈 때 가는길에는 대부분 멀리를 하고 심하게 토를 했다. 하지만 그 고난의 길을 다녀오는 길에는 한 명도 멀미하는 아이가 없었다. 그만 큼 자란 것이다. 좋은 시절에만 머물지 말고 울릉도의 진짜 삶을 맛보고자 했다. 고생을 경험해 보았다. 울릉도로 가는 배를 탈 때 아이들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 아이들 눈빛은 무언가 해냈다는 당당함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모두가 미래에 대한 것이다.
지금의 즐거움에 대한 관심이 없다. 지금 행복한 아이가, 앞으로도 행복하다. 우리는 아이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반성해본다. 지적능력보다 따듯함, 도전의식, 자율의식을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교과서는 아이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다. 학자들의 자리 다툼만이 있다. 미래핵심역량은 문제해결능력, 의사결정능력, 비판적사고, 창의적사고, 의사소통능력, 팀워크, 리더쉽이다. 아무리 전채라 해도 10사람의 지식을 이기지는 못한다. 이제는 인터넷의 바타에서 더욱 그렇다. 만족하는 학교를 넘어 함께 성장하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배움이란 삶의 역량을 높이는 것이다. 배움이란 나와 세상과의 관계를 맺어가는 일이다.
성미산 학교에서 고민한 것은
아이들이 즐거움을 참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작자가 가진 재능을 나누면 방과후 체험학습은 부모님들이 주도할 수 있다. 나를 알아주는 마을 어른이 많다면 나쁜짓을 하겠는가? 부모는, 선생은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즉각적으로 야단을 치면, 아이는 자신의 두려움 뒤로 숨는다. 아이들은 논리적인 맥락으로 기억하기 보다, 감정적으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행동을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조금 떨어져 바라 볼 수 있도록 해주지자. 아이들이 힘들어 하면, 그것은 아이들이 틀린 것이 아니라, 아이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어른 들이 잘 못된 것이다.
기다림에는 여유가 있어야 하고,
따뜻함은 지속성이 있어야 하며, 아이의 존재를 인정하는 격려가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단호함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기초학습에서 셈하기와 읽기는 중요한 요소다. 학력감소의 원인은 대부분 언어력 부족에 있다. 읽기능력은 유치원과 초등 1학년 사이에 결정된다. 읽기훈련이 안된 아이들은 자기가 읽고 싶은 대로 읽는다. 매일 소리내어 15분씩 책읽기를 권한다. 잘 읽는 것은 듣는 사람이 듣기 좋도록 일어야 하는 것이다. ‘지난주에 왜 가짓에 갔었다’ 가 아니라 ‘지난주에 외갓집에 갔었다’라고 듣기 좋다록 읽을 수 있게 도와주자. 말이 되도록 읽는 연습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글자를 한자 한자 읽으면 절대로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한 단어씩 일어도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한다. 두세단어씩 일으면 짧은 글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문단으로 읽을 수 있어야 속도도 나고 책읽는 재미가 난다. 소리내어 읽기가 정말로 중요하다.
아이들 스스로 교과서 만들기를 해보았다.
아이들은 참 잘 만들었다. 자신이 스스로 경험하고 난 뒤의 책은 다른 것이다. 아이들이 책을 만들 때 함께 해보았다. 아이들의 활동에 함께 참여해봐야 아이들이 애쓰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은 경험으로 안다. 존중받지 못한 아이,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존중하고 사랑할 수 없다. 시험은 능력에 초점을 맞춰야지, 정답에 초점을 맞추면 안된다. 시험은 어디까지 아이들이 해낼 수 있는 지 그 숨은 능력을 점검하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문제를 풀면서 질문하는 것도 허용될 수 있는 것이다. 교육문제는 학교 안에서 풀 문제와 학교 밖에서 풀 문제가 따로 있다. 정의와 배려가 없는 사회에서 학교폭력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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