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협동조합 모델 제조업에도 가능할까

경제/대안사회경제, 협동조합

by 소나무맨 2013. 3. 8. 20:24

본문

                 ""  협동조합모델, 제조업에도 가능할까""

장승희 | 2013.02.19
트위터 페이스북

UN은 2012년을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지정한 바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보여준 협동조합 기업들의 위기 극복 능력과 시장 자본주의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경제모델로서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협동조합 모델이 다시 조명 받고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성장이 둔화 또는 정체되면서 성장보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협동조합의 본질적 속성이 특히 경제위기기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협동조합은 민주적 운영절차, 조합원 편익 추구, 조합원간의 상생과 협동 추구 등 여러 측면에서 주식회사와 많은 차이가 있다. 의사결정이 더딜 수 밖에 없다. 협동과 상생의 이상적 가치는 인정하지만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협동조합들이 경쟁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①의사결정 에서의 느림을 강한 실행력으로 극복한 서울우유와 네덜란드의 라보방크 협동조합은행 ②혁신을 통한 제품 및 서비스의 차별화로 경쟁력을 확보한 폰테라 협동조합과 제스프리인터내셔널 ③경영의 투명성과 조합원 상호간의 신뢰구축으로 조합원간 협동과 참여를 성공적으로 끌어내어 협동조합의 가치와 운영원칙을 성실히 지켜나가는 모범사례인 캐나다의 등산장비 협동조합 MEC 등을 들 수 있다. ④스위스의 미그로의 경우에서와 같이 협동조합이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사업체로서의 적정 규모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세계의 협동조합의 분야별 분포를 살펴보면 대부분 1차와 3차 산업에 포진해 있다. 제조업에서도 협동조합 모델이 유효할까? 제조업체는 가치사슬이 복잡하고 소비자 기호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느린 의사결정구조를 지닌 협동조합 모델을 바로 적용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몬드라곤 협동조합그룹의 하나인 자동차 부품회사 로라멘디의 경우 협동조합으로 전환 후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한 회사다. 기업의 주인이 된 직원들은 혁신을 일궈냈고 안정적인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사출, 단조, 일반조립 등 기술변화와 생산성 변화가 급속하지 않은 영역에서는 중소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협동조합형태로 전환하여 경쟁력과 협상력을 높여나갈 여지가 클 것으로 보인다. 이후 점차 다른 영역에서의 적용도 가능할 것이다. 협동조합모델이 많은 부문에서 성공할 수 있다면 양극화, 사회갈등 해소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기업의 생태계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 목 차 >

Ⅰ. 협력과 상생의 모델, 협동조합의 재조명
Ⅱ. 협동조합의 특징과 주식회사와의 차이
Ⅲ. 협동조합은 경쟁력 있는 기업이 될 수 있을까?
Ⅳ. 제조업과 협동조합
Ⅴ. 협동조합이 뿌리 내리려면...



1979년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액셀로드 교수는 ‘죄수의 딜레마’이론을 응용하여 2인용 토너먼트 방식의 컴퓨터 게임으로 만들고 경제학, 수학, 정치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게임이론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컴퓨터 죄수의 딜레마 대회(Computer Prisoner’s Dilemma Tournament)를 개최했다. 게임에서 이기기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 상대와 협동할지 또는 배신할 지 동시에 수를 내서, 끝까지 높은 포인트를 유지하면 된다. 총 14개의 프로그램이 참여했는데,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하게 토론토 대학교의 아나톨 라포포트(Anatol Rapoport) 교수가 만든 ‘Tit for Tat’이라는 가장 단순한 프로그램이 우승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워낙 내노라하는 전문가들이 참가했기에 고도의 복잡한 전략들 중의 하나가 우승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이는 빗나갔다. 액셀로드 교수는 이 결과를 참가한 전략가들에게 알리고 다시 2차 대회를 개최했다. 총 6개국에서 총 62개의 프로그램이 참여한 2차 대회는 진화생물학, 물리학, 컴퓨터 과학 등의 분야에서 유명한 고수들이 프로그램을 만들어 참여했다. 하지만 2차 대회의 우승자도 가장 단순한 ‘Tit for Tat’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Tit for Tat’의 전략은 단순하다. 첫째, 배려와 협력을 내세우고, 둘째, 공격 당했을 때는 반드시 응징하며, 셋째, 응징하고 나서는 다시 협조로 돌아간다는 원리다. 이 사례는 이기적 개인들의 사회에서도 협력은 진화하며, 단순한 지략이지만 관계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면 상호주의에 입각한 협력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최고급 키위 브랜드로 독보적 세계 1위 자리를 구축한 뉴질랜드의 제스프리(Zespri)는 극단적 경쟁에서 협력과 상생이라는 패러다임으로의 극적 전환을 통해 기적을 일군 대표적 사례다. 1970년대 6개에 불과하던 키위 수출업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1980년대에는 수출업체 난립과 가격파동으로 무한 가격 인하경쟁으로 내몰리면서 품질 악화와 뉴질랜드 전체 키위 농가의 소득 하락이라는 만성적 악순환에 직면하게 된다. 그 결과로 1990년대 중반에는 적자생존의 무한 가격 경쟁의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린 키위 농가들이 1997년 최후의 선택으로 협동조합 결성에 합의하고 뉴질랜드 키위의 수출 마케팅을 전담하는 제스프리인터내셔널을 설립, 단일 브랜드 방식을 통한 수출을 결정한다. 뉴질랜드 키위 농가들은 모두의 공멸을 막고 함께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협동조합을 탄생시켰다. 뉴질랜드 정부도 농가들의 진정 어린 노력에 화답하여 키위 농가들이 100% 소유한 제스프리 브랜드를 통해서만 수출이 가능케 한 ‘수출창구단일화법’을 제정하였다. 이른바 제스프리의 기적이 이루어진 것이다. 제스프리는 개별 농가들의 생산 시설을 직접 관리하면서 품목과 재배방식을 지도하여 전체 키위 농가들의 품질 및 생산 역량을 높여나가는 한편 나라마다 맛과 크기가 다른 키위를 내놓는 등 상품 혁신에 주력하여 여타 경쟁 국가들의 키위보다 50% 높은 가격을 보장받는다. 한편으로 기후변화와 각종 질병에 대응하여 국제 가격 변동을 완충하는 역할을 수행할 뿐 아니라 키위용 전용 숟가락을 완전분해가 가능한 플라스틱으로 제작하는 등 협동조합의 가치에 걸맞은 사회책임경영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 그 결과 제프스리는 전세계 수출량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금액 베이스는 70% 이상을 독점하는 세계 최고의 키위 브랜드로 부상할 수 있었다.


Ⅰ. 협력과 상생의 모델, 협동조합의 재조명


1899년 창단되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명문 축구 구단인 FC 바르셀로나가 협동조합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전세계 누구나 회비 150 유로만 내면 2년동안 조합원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지금은 조합원 수가 17만 명을 상회한다. 조합원 자격을 취득하면 홈구장 입장권 구입 시 22%의 할인 혜택이 주어질 뿐 아니라 이사회에 참석하여 구단 운영 연간 보고서, 장기계획, 예산 등을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6년마다 캄프누에서 개최되는 클럽 회장 선거에 참여해 회장(구단주)을 선출할 권리가 주어진다.

오늘날 많은 국가들은 심각한 사회경제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를 계기로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불신, 일상화된 경기침체와 빈부격차 심화, 취업난과 실업자 양산 등으로 사회적 갈등과 분노가 고조되고 있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향후 세계 경기는 유로존 위기의 후유증이 지속되면서 경기 하강 국면이 이어지리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대안 경제모델의 탐색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 금융위기 이후 보여준 다양한 협동조합 기업들의 위기 대응 능력과 회복 능력에 전 세계가 관심을 보이면서 협동조합모델이 시장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경제주체의 하나로 조명받고 있다. UN은 2009년 제 64차 총회에서 협동조합이 성장의 과실이 사회전체에 공유되고 빈곤해소와 소득분배 개선에 기여하는 동시에 경제 성장의 새로운 원동력으로 가능하다고 인식, 2012년을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지정한 바 있다. 협동조합이 세계적인 경제 위기에도 강하고 저성장 시대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UN은 협동조합 활성화를 통해 소수의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승자독식사회에서 협동중심의 ‘사회적 경제’로의 변환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세계 경기회복이 지연되고 성장잠재력도 낮아진 지금의 상황에 대해 경제 활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고용 창출 능력이 떨어지면서 실업과 양극화 심화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고, 고령화, 복지 수요 증대, 고용 불안정 등의 문제들은 더 이상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여 최근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기업의 한 형태로서 협동조합에 대한 논의가 이전에는 주로 사회학, 사회복지학, 노동정책학 등의 시각에서 연구가 진행되었다면 지금은 경제학 및 경영학 차원에서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협동조합은 영국에서 1844년도 세계최초의 로치데일(Rochdale)공정선구자조합이 탄생한 이래 150년 동안 지속 운영되어온 사업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속성상 대부분 해당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어 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펼치는 글로벌 대기업과 같은 인지도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협동조합이란 생소하지는 않으나 낡고 구시대적인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시점에서 협동조합이 경제민주화 바람과 더불어 자본주의의 대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새롭게 관심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성장에서 지속 가능성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지금까지는 이익 확대를 위해서는 투자자 소유의 주식회사 구조가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믿음이었다. 그러나 성장이 둔화 혹은 정체된 시대로 접어들면서 지속 가능한 대안 모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경제위기가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자, 협동조합 특유의 위험 회피적인 성격이 조직 및 경제의 안정성에 기여하는 긍정적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 ‘08년 캐나다의 퀘백 정부 공식 조사에 따르면, 협동조합의 5년 이후 생존률은 62%, 10년 뒤에도 44.3%에 이르는 반면,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들은 5년 뒤 35%, 10년 뒤는 19.5%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택, 통신, 사회서비스, 음식/숙박, 학교(서점 카페), 농업, 산림, 교통 등 8개 업종에서 협동조합의 생존율이 두 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이처럼 협동조합의 생존율이 높게 나타나는 이유는 주식회사와 같은 투자자 소유 사업조직이 단기적 이윤 추구에 중점을 두는 반면,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편익과 장기적 이익을 중시하기 때문에 지속 가능성 차원에서 안정적 경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협동조합은 이익 극대화 압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 시각에서 사업에 접근하고 과감한 외부 자본 유치나 고위험-고수익 투자에 잘 나서지 않는다. 또한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일반 협동조합은 수익의 10%, 사회적협동조합은 수익의 30% 이상을 법정적립금으로 의무적으로 적립해야 한다.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협동조합으로서는 적립금을 통한 내부 유보가 안정적 경영과 성장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적립금은 조합원 개개인이 아닌 협동조합 자체의 소유로서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협동조합은 은행차입보다 자본금에 주로 의존하기 때문에 다른 형태의 기업들보다 재무 건전성이 높게 나타난다.

둘째, 위기에 강한 협동조합 기업에 대한 관심

전세계 신용협동조합과 협동조합은행들은 금융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성장을 구가하여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여러 상업은행들이 파산했으나, 협동조합은행은 단 한 곳도 파산하지 않았다. 영국 최대의 협동조합은행인 ‘더 코퍼러티브 뱅크(The Co-operative Bank)’는 영업이익이 ‘07년 79억파운드(약 14조원)에서 ‘12년에는 133억 파운드(약 23조)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오히려 증가했다. 네델란드 국민의 50%가 조합원으로 가입된 네델란드 라보방크(Rabobank)는 무배당원칙과 내부적립만으로 42조원의 자기자본을 축적하고 있으며,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에 오히려 20%나 순이익이 급증한 바 있다. 이외에도 유럽, 미국, 캐나다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예금과 대출이 늘어나고 조합원도 증가했으며, 금리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스페인의 대표적 회사 중 하나로 111개 협동조합과 120개 자회사 등 총 255개 사업체로 구성된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세계 경제위기의 여파로 스페인 기업 중 26%가 도산하고 고용률이 20%나 하락했던 2008년에도 오히려 1만 4천938명의 신규 고용을 창출하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대부분의 스페인 기업들은 불황이 닥쳤을 때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투자와 고용을 줄였지만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연대를 통해 고용을 유지하고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9년 영국 정부 조사에 따르면 영국의 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적 기업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약 56%가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증가했다. 매출이 줄어든 기업은 20%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다른 형태의 기업들은 약 28%만이 매출이 증가했다.

이처럼 협동조합은행들이 위기에 흔들리지 않고 성장을 유지한 것은 다른 은행들이 부동산이나 위험 부담이 큰 대형 수익 사업 진출을 통해 이윤 극대화를 추구한 반면, 협동조합은 본연의 사업영역과 다른 의사결정을 할 때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조합원을 위한 최상의 상품과 서비스에 집중하는 전략이 영업 확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회사에 대한 소유자인 동시에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용자이다. 협동조합의 사업은 소유자인 조합원들이 결정하기 때문에 협동조합의 사업 목적과 조합원의 목적이 동일시되면서 조합원들의 조직에 대한 충성도와 경영에 대한 참여가 높고 의사소통이 활발하다. 따라서 위기 시 주식회사 주주들보다 위기를 감지하는 능력이 빨라 위기를 피하거나 한발 앞서 대책을 세울 수 있다는 측면이 있다. 협동조합기업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구조조정을 최소화하고, 빠른 경영 정상화를 통해 경제안정에 기여했다.

셋째, 지역 공동체와의 상생 도모

성공적인 협동조합기업은 윤리경영과 사회적 가치를 토대로 지역사회에 철저히 뿌리내리는 것을 중시하고 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하나인 에로스키(Eroski) 유통 그룹의 하이퍼마켓은 시내 중소 상인을 보호하기 위해 모두 도시 외곽에 위치해 있다. 또한 협동조합의 핵심 수익모델인 이용배당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이를 가격 할인으로 적용하여 조합원 소비자들의 높은 신뢰를 구축하여 금융위기가 진행되던 2008년에만 19%의 매출 신장을 달성했다. FC 바르셀로나 선수 유니폼에서는 기업 광고를 찾아볼 수 없고 대신 유니세프와 카타르 재단 로고만 볼 수 있다. FC 바르셀로나는 구단 수익의 0.7%를 유니세프에 기부하는 데 이는 영리법인의 광고를 싣지 않고 지역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조합원들의 합의에 따른 것이다. 스위스의 최대 소매 기업이자 협동조합기업인 미그로(Migros)는 판매 물품이 사회적, 환경적, 윤리적으로 생산되는지를 최우선시 한다. 고객에게 유해한 물건은 판매하지 않는다는 원칙 하에 술, 담배, 성인잡지 등은 취급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취급하는 모든 제품에 이산화탄소 라벨을 부착하여 소비자가 기후 보전에 도움이 되는 물품을 구입하도록 유도한다. 매장 위치도 자동차 이용을 줄이기 위해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해서 오기 용이한 장소’로 선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기여 원칙에 따라 해마다 1억 스위스 프랑(약 1,224억원) 이상을 교육 및 문화에 투자한다. 찰스 굴드(Charles Gould) 세계협동조합연맹((ICA: International Cooperative Alliance) 사무총장은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지역과 사람에게 기여할 수 있는 협동조합 방식이 최상의 기업모델로 부각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넷째, 우리 정부의 협동조합기본법 시행

우리나라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8개의 개별 협동조합특별법에 근거한 8개 협동조합만 가능했다. 그러나 이들마저 주로 1차 산업에 편중돼 있어 변화된 경제여건을 반영하지 못했다. 2012년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2차 산업과 금융, 보험 업종을 제외한 3차 산업에서 협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전에는 법에서 정한 영역에서만, 그리고 특정한 요건을 갖춰야만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어 다양한 아이디어를 활용한 상상력이 제한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법제도가 구비되면서 협동조합을 이용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세상에 나오기 시작하고 있고, 특히 기존 주식회사나 유한회사의 협동조합 전환 등의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이용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드는 사업조직이므로 일상 생활에서도 충분히 주위사람들과 함께 협력한다면 가능한 아이템과 사업모델을 찾을 수 있다. 기본법 시행 이후 2013년 1월 15일 기준으로 사회적협동조합 인가 21건, 일반협동조합인가 신청 160건이 쇄도했으며, 일반기업이 협동조합으로 전환 검토하는 사례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협동조합기본법 시행이 지니는 가장 큰 의미는 시장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쟁과 대립이 아닌 상생과 협력으로 공동체적 가치를 발전시킬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Ⅱ. 협동조합의 특징과 주식회사와의 차이


협동조합의 특징

협동조합은 경제적 약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고안된 설립 취지에 따라 경제주체간 상생과 협동에 중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기업의 과실이 투자한 주주들에게만 돌아가는 것이 아닌, 구성원 모두에게 돌아가는 구조로 조합원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최선의 가격으로 제공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으로 조합원이 소유하고 통제하며, 조합원이 사업의 편익을 누려야 한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창출된 수익이 내부 유보나 해당 사업을 위해 재투자되어 궁극적으로 전체 조합원의 편익에 기여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둔다. 해당 기업이 수익을 낼 수 있다면 어떠한 사업이든 진출하는 투자자 소유 기업과는 달리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이용자 편익을 기준으로 사업 범위를 결정한다. 배당에 있어서도 협동조합은 투자자 소유 기업과 큰 차이를 보이는데, 협동조합은 주주가 없으므로 배당하지 않고 조합원에게 돌려주거나 사업에 재투자한다. 사업을 통해 이익이 발생하면 주주에게 이익을 나누지 않고, 이를 조합원과 사업, 그리고 지역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협동조합의 중요한 책무다.

협동조합은 경제적 약자 다수가 서로 뭉치고 나누는 호혜의 힘으로 시장 지배력을 키우고, 자본주의 독점으로 나타날 수 있는 폐해를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19세기부터 영국, 독일 등의 유럽에서 시작된 협동조합은 조합원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조합원 편익을 최우선시 하는 본질적 특성상 양극화와 빈부격차 등 사회갈등 요인을 완화하는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협동조합과 주식회사의 차이

주식회사는 투자자(주주) 소유 기업인 반면, 협동조합은 사업 이용자들이 협동하여 출자한 이용자 소유기업이다. 사업의 목적도 주식회사는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업을 운영한다면,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편익 증진이 주식회사의 이윤 추구 동기를 대신한다. 주식회사는 자본이 중심이므로 1주 1표의 의결권이 주어지지만, 협동조합은 사람중심의 의결권이기 때문에 1인 1표의 의결권이 주어진다. 주식회사는 대주주 혹은 소수 경영진이 주요 경영 의사결정을 하는 반면, 협동조합은 전체 조합원들이 경영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한다. 사업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 처분의 경우 협동조합은 출자액에 비례한 이익을 이자 수준으로 제한하고 이용고배당을 우선한다. 반면 주식회사는 이윤 극대화를 위해 수익경영에 의해 창출된 이익금을 출자액에 비례하여 투자자 주주에게 배분하고 일반적으로 이용고배당은 없다. 이는 협동조합과 주식회사를 구분하는 결정적 기준이 된다.


Ⅲ. 협동조합은 경쟁력 있는 기업이 될 수 있을까?


협동조합이 민주적 운영 측면에서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 그 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은 무한 글로벌 경쟁과 빠른 기술 변동을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시장체제하에서 장기적으로 생존하지 못하리라는 우려 때문이다. 시장 자본주의의 핵심이 아닌 주변의 소규모 조직에서 직접 민주주의 형태로 유지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핵심적 부문으로 성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기존의 일반적 평가였다. 그러나 지난 76년간 우유시장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서울우유는 주식회사형태의 경쟁기업들을 상대로 충분히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서울우유협동조합은 1937년 서울, 인천 경기, 충청남도와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 5마리 이상의 젖소를 사육하는 낙농업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된다. 서울우유가 성공한 핵심 성공 요인으로 우유의 원료가 되는 원유의 품질 경쟁력이 꼽힌다. 조합원으로 가입한 축산농가는 출자를 해야 하고, 사업시설을 이용해야 하며, 내부규정을 준수할 의무가 발생한다. 최저가격이 아닌 최선의 가격으로 조합원들이 생산한 원유를 매입하고, 조합원들은 최고 품질의 원유를 공급하고자 노력한다. 아울러 원유 품질을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09년 우유시장에 획기적 선풍을 몰고 온 제조일자 마케팅(유통일자에 제조일자를 병기)도 소비자들에게 서울우유의 생산과 배급과정의 투명성을 강조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신뢰를 높이는데 기여했다.

협동조합은 조합원의 이용자 편익을 창출하기 위해 하나의 기업으로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협동조합의 핵심역량은 서울우유의 사례에서처럼 원가경영의 강화에 있다. 또한 원가경영에 따른 이용자 편익의 창출은 조합원의 공동행동을 촉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협동조합 고유의 경쟁 수단은 원가 경영 전략과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조합원의 공동행동이다. 조합원의 공동행동은 해당 사업의 이용과 정보 공유를 통해 원가경영을 강화하는 한편 사업계획, 가격결정, 이익배분 등 경영권 행사를 통해 원가경영을 보장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처럼 원가경영과 공동행동은 상호의존적이며, 양자의 합리적 조화는 협동조합의 성공 조건이다. 그러나 이는 시장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협동조합이라는 작은 배가 침몰하지 않기 위한 일차적 조건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경쟁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협동조합들은 어떻게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을까?

첫째, 느림을 강한 실행력으로 극복

협동조합기업은 민주적으로 의사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소수 지배주주 중심의 의사결정구조를 지닌 주식회사보다 합의를 이끌어내는 시간과 비용이 더 소요된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그러나 성공적인 협동조합기업들은 강한 실행력으로 느린 의사결정을 극복했다.

서울우유의 제조일자 마케팅의 경우 기획에서 실제 실행에 이르기까지 3년여의 시간이 소요됐다. 마케팅팀은 2006년 신선도에 대한 고객의 요구를 파악하고 이를 반영한 마케팅 전략을 입안했지만 조합 내부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야 했다. 특히 생산과 유통담당부서의 경우 휴일에도 근무 강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자 더욱 거세게 반발했다. 하지만 마케팅팀은 인내와 끈기를 갖고 조합내 반발에 맞서 ‘고객을 만족시키면 물건이 더 많이 팔릴 것이고, 기업 이익이 커지면 보상이 직원들에게 돌아간다’는 논리로 이들을 설득했다. 결국 3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만장일치의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나 한번 결정이 이루어지자 엑셀레이터를 밟듯 강력한 추진력으로 실행에 옮겨졌다. 모든 조합원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결정된 사항을 향해 더 큰 확신을 가지고 스스로 매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통을 통한 합의는 통합된 한 목소리를 찾기 위한 풍부한 논의를 가능케 한다. 합리적이지 않은 안건들을 부결시켜 방만한 경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장점으로 나타날 수 있다. 네델란드 3대 금융기관이자 세계 25위의 라보방크 협동조합은행의 한 경영진은 ‘토론을 많이 하고 시간이 걸릴 거라고 하지만 라보방크는 토론 후에 실행이 빠릅니다. 우리는 100여년 동안 조합원이 모아준 공동 자산에 대해 강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고, 그 돈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책임을 동시에 느낍니다’라고 말한다.

둘째, 혁신을 통한 제품/서비스 차별화로 경쟁력 확보

개별 노력들을 하나의 단합된 힘으로 모으는 원동력은 집단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열정에서 나온다. 차별화와 혁신을 갖출 때만이 협동조합이 추구하는 협동과 상생이 이상적인 가치만이 아닌 경쟁력을 갖는 운영원리가 될 수 있다.

전세계 수출용 유제품의 30% 이상을 과점하면서 압도적 1위를 지키고 있는 폰테라(Fonterra)협동조합은 400명에 달하는 R&D 센터를 중심으로 신제품 개발에 연 1억달러 이상 투자하며 지속적인 제품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세계 각 지역별로 유연한 브랜드 전략을 운용하며 각 지역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게 적극적인 현지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00년이 넘는 전통과 돈육 제품 부문 세계 1위를 자랑하는 대니시크라운(Danish Crown)은 엄격한 품질관리와 검역으로 유명하며, 도축장 사업부문에서 가장 엄격한 환경 기준과 최첨단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농장과 돼지마다 고유번호를 부여하여 생산지에서 수출지까지 추적이 가능한 원산지 추적시스템을 업계 최초로 도입하였으며 도축의 전 과정을 CCTV로 기록하여 수입자가 요구하면 언제든 공개하여 고객의 신뢰를 확보하고 있다. 제스프리인터내셔널은 나라마다 맛과 크기가 다른 키위를 내놓는 등 상품 혁신에 주력하는 한편 키위 전용 숟가락을 완전분해가 가능한 플라스틱으로 제작하는 등 협동조합의 가치에 걸맞게 책임경영과 차별화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기술 개발과 연구진 확충 등에 쓰는 비용이 유럽 평균 기업 전체 매출의 6% 보다 높은 10%에 달할 정도로 과감한 경쟁력 확보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최근에는 독자적 산업 로보트와 미래형 자동차 등 첨단산업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셋째, 조합원의 신뢰로 투명성 확보

조합원간 협동과 참여를 성공적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조합원과 경영자, 그리고 조합원 상호간의 신뢰 구축으로 경영의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투명한 운영의 첫 걸음은 운영 내역을 조합원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조합은 원가내역, 결산내용, 중장기 사업전략 등을 조합원들에게 알리고 적극적인 참여를 구해야 한다. 협동조합은 규모가 커질수록 조합원의 적극적 참여와 건강한 감시가 더 중요하다.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사업에 관여하도록 끊임없이 장려해야 하며, 참여하지 않는 조합원들에게 완전한 혜택을 주어서는 안 된다. 협동조합의 사업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함께 하는 서로에 대한 믿음 여부에 달려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될 때만이 조합원들은 사업 운영에 대해 참여할 것이고, 사업의 이익을 공평하게 나누어 가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캐나다의 등산장비전문 협동조합 MEC는 1971년 결성되어 40년 만에 캐나다 전체 국민의 10%를 넘는 360만명의 조합원을 확보하고 2011년 기준 매출이 2억 7천만 달러에 달하는 거대 소비자협동조합으로 성장했다. 이렇게 대규모 기업으로 성장한 이후에도 MEC는 협동조합의 가치와 운영 원칙을 성실히 지켜나가는 모범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MEC의 협동조합 이사회는 조합원 편익을 위해 경영진의 원가경영을 촉진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이사회는 조합원의 사업 참여, 정보 공유, 이익 배분 등에 관한 협동을 촉진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지금 MEC에 조합원으로 가입하기 위해서는 40년 전과 동일한 5달러의 출자금을 내야하며, 가입 이후 기존 조합원과 동일한 권리 행사를 누릴 수 있다. MEC는 모든 조합원이 동일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원칙으로 모든 조합원의 자금 기여 또한 비슷해야 한다는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조합원 간 격차 해소를 위해 출자 지분 상환 정책을 도입했다. 이는 해마다 일정금액의 재원을 투입해 조합원의 과도한 출자 지분을 현금으로 사들임으로써 전체 조합원간 출자 규모를 고르게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다. MEC는 ‘우리는 조합원이 소유하는 기업이다. 사업을 지속할 수 있을 만큼의 최소 잉여금만 남길 뿐 더 많은 잉여금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헌장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전체 조합원의 신뢰를 통한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넷째, 사업체로서의 최소한의 적정규모 확보

협동조합기업은 하나의 사업체로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여 적정수준의 규모에 도달해야 한다. 조합의 사업규모가 적정 수준에 미달하게 되면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 및 서비스 도입이 어렵게 되고, 전문화나 분업의 이익이 낮아지면 결과적으로 단위당 생산 혹은 취급 비용이 높아져 서비스의 품질 또한 저하됨으로써 조합의 장기 지속 가능성에 적신호가 발생한다.

스위스의 미그로는 커피, 설탕, 비누 등의 생필품 유통 마진을 줄여 경쟁자보다 40%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여 스위스 최대의 소매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미그로는 이익을 많이 남기는 것보다 좋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전략으로 시장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었다. 현재 스위스 인구 700만 명중 200만 명이 미그로의 조합원이고, 총 매출액은 약 32조에 달한다. 미그로는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 대신 스위스 안에서 조합원의 편익을 더할 수 있는 수많은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함으로써 지역 사회에 철저히 뿌리내리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Ⅳ. 제조업과 협동조합


세계협동조합연맹에서 발표한 ‘글로벌 300’ 협동조합기업 분야별 매출 비중을 보면 대부분 1차 산업과 3차 서비스 산업 중심으로 성장해왔음을 알 수 있다(<그림 1> 참조). 제조업을 포함한 2차 산업에도 협동조합모델이 적용될 수 있을까?

급변하는 글로벌 기업 환경에서 기업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개별 기업들의 경쟁력뿐 아니라 중소협력업체들의 협력과 연대를 통한 공동체적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공동체성이 떨어지는 경제는 경제 위기 시 대응력이 약하며, 사회 구성원들의 미래를 위한 의욕과 창의성도 떨어지기 쉬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많은 기업들이 사후 성과를 공유하는 협력에 그치는 것이 아닌, 가치사슬 초기단계부터 적극 협력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협력사가 자생력을 갖도록 지원함으로써 협력사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개선해 궁극적으로 생태계의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규모가 작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중소제조기업들에 협동조합모델을 적용하여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가능할까? 실제로 몬드라곤 협동조합그룹의 하나로 자동차 부품회사인 로라멘디의 경우 2003년 당시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하였다. 로라멘디는 전환 여부를 두고 팽팽한 논쟁을 벌인 후 협동조합기업으로 새로이 출발하였으며, 기업의 주인이 된 직원들은 혁신을 이뤄냈고 안정적인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은 조합원들이 기업에 대해 높은 신뢰를 바탕으로 경영의사결정과정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BMW, 벤츠, 폭스바겐에도 부품을 납품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경영상이나 자금상 어려움으로 인해 직원들이 협동조합을 결성하여 인수하고 협동조합들끼리 공동 자재 구매, 공동 마케팅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특허나 기술 공유를 통해 기술 개발 역량을 강화한다면 제조 경쟁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모든 제조영역에 일괄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사실 제조업체는 가치사슬(Value Chain)이 복잡하고 소비자 기호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느린 의사결정구조를 지닌 협동조합모델을 바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사출(Injection), 단조(Press), 일반 조립(Assembly) 등 생산성이 한계에 이른 영역에서 중소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협동조합형태로 전환하여 비용절감 및 생산성 향상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나가는 방안을 시도하고 이후 점차 다른 영역으로 확산을 검토해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정부도 규모가 작고, 조합의 진퇴가 자유롭다면 공정거래법 예외 적용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대기업 입장에서도 규모가 작은 개별 기업들의 동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들을 협동조합형태로 묶어 공동 카테고리를 만들어 대응하게 되면 저변을 한꺼번에 끌어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처럼 협동조합모델을 중소기업의 R&D 능력 배양과 대기업과 협력업체간의 기술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적용하고, 기술개발로 기대되는 성과의 일부분을 공동 펀드 자금으로 활용함으로써 공동 기술 개발 환경을 개선해나간다면 대·중소기업간 상호 Win-Win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방안이 현실화된다면 중소기업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소수의 대기업, 중견기업이 존재하는 ‘압정형’ 기업 생태계 구조(<그림 2> 참조)에서 선진국형 피라미드 기업 생태계 구조로 변환하는 데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Ⅴ. 협동조합이 뿌리 내리려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 뷰티풀 마인드(Beautiful Mind)의 실제 주인공이자 199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존 내시(John Nash)는 참여자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하면 파이의 크기가 커져 결국 개개인의 몫이 늘어난다는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주장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바 있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협조적인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경쟁적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보다 나은 성과는 내는 경우가 90%에 달한다고 한다. 협동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일할 때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활용할 방식으로 그 잠재 가능성은 더 활용의 여지가 있다.

협동조합은 협동을 기반으로 성공할 수 있는 구조다.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민주적 운영을 충실히 지킬 때만이 협동조합모델이 지속 가능할 수 있다. 특히 SNS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참여가 크게 확대되고 있고, 이러한 환경은 협동조합 성장을 위한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협동조합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조합원들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구심력으로 작용해야 한다. 하지만 그 동안 경쟁과 효율을 강조해 온 우리 사회는 신뢰와 소통, 그리고 협력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적 자본이 취약하여 협동조합이 자리잡기 힘든 구조적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협동조합이 다시 주목 받는 것은 협동조합이 조합원을 중심으로 운영되어 일자리 창출과 고용안정에 기여하는 동시에 양극화와 빈부격차 등 사회갈등 요인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일 것이다. UN이 2012년을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지정한 이유도 경제 위기 시 경제를 안정시키고 일자리를 확대하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동시에 신규 고용을 창출하는 협동조합의 순기능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동조합이 시장에 뿌리내리기에 상황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 글로벌 시장경쟁이 심화되면서 협동조합은 이미 각 사업영역에서 세계적 수준의 주식회사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협동조합이 결코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아니다. 협동조합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경계해야 한다. 이미 미국에서도 북미 최대 농협인 Farmland와 Agway와 같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대형 협동조합기업들이 실패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들 협동조합들은 조합원의 정치적 요구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짐으로써 효율적인 사업이 저해되고, 조합원의 편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핵심사업이 아닌 분야까지 진출해 위기를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협동조합의 지속 생존과 경쟁 우위 확보를 위해서는 혹독한 시장경쟁에서도 지지 않을 정신과 실력이 필요하다. 성공한 협동조합기업들은 협동조합의 가치와 정신에 대한 공유, 뒤지지 않는 기술력 확보, 자체적인 금융 기반 조성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철저한 준비를 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시행된 협동조합기본법은 금융과 보험분야의 진출을 불허하고 있어 신생협동조합들은 마땅히 자금을 끌어다 쓸 수 있는 통로가 제한되어 자금 조달에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지 않고 원가 경영을 하는 협동조합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 자본조달에서는 결정적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은 시장에서 주식이 거래되지 않아 직접 자본시장의 길이 막혀 있을 뿐 아니라, 기업 심사 시 중요한 지표인 순이익률, 자기자본이익률, 투자수익률 같은 수치에서도 낮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은행 대출도 여의치 않다. 금융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기존 협동조합의 경우는 금융부문의 협동조합이 신규 협동조합의 창업 및 투자자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심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기금 설립이 필요하다. 또한 신생 협동조합의 설립을 돕기 위한 지원시스템을 구축하여 협동조합간의 연대를 통한 금융, 교육, 훈련, 재정관리 등의 노하우가 상호교환 될 수 있어야 한다. 협동조합모델이 발달한 유럽의 경우 19세기부터 광범위한 협동조합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새로운 협동조합이 설립되면 금융 및 경영지원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구비되어 있다.

협동조합기본법의 시행으로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협동조합모델 시도가 나올 것이다. 협동조합모델이 성공한다면 우리 시대의 과제인 양극화와 사회갈등 해소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주식회사 중심의 기업 생태계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제도적 지원과 금융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이익의 집중이 아니라 확산을 추구하는 협동조합이 향후 경제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끝>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