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은의 그 나라, 시리아 그리고 꿈의 여행지 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친절한 사람들이 가득했던 곳
[편집자주]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دمشق (시리아)·دِمَشقُ (다마스쿠스)·مملكة تدمر (팔미라)…" 한창 아랍어를 열심히 공부하던 때의 이야기다. 대학수학능력평가 제2외국어 영역에서 아랍어를 선택한 뒤 기쁜 마음으로 공부에 임했다. 명목상은 높은 표준점수를 얻기 위해서였지만, 머리 아픈 수리 영역 공부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어 좋았다. 나아가 아랍어 공부는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이란 상상의 나래를 펼칠 기회를 줬다. '이제 곧 대학생이 된다… 배낭여행으로 아랍어권 국가 중 어디를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장기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 먹으니 꼭 필요하단 생각에 공부가 더 잘되는 것 같았다.
시리아에는 1980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중동의 대표 유적 '팔미라'가 있다. 팔미라는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약 230㎞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여왕 제노비아 치하 1~2세기 중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실크로드의 교역도시로 번영했던 모습을 간직한 고대 도시 유적이다. 이 지역에는 오래 전부터 지하수가 솟아나는 오아시스가 있어 일찍이 도시가 형성됐다. 팔미라는 중동의 대표 교역지로 로마제국에 흡수, 속령의 하나로서 막강한 경제 성장을 이뤘다. 벨 신전을 비롯 아고라(시장), 극장, 공용 목욕탕 등 남은 흔적들은 272년 팔미라가 로마의 군인황제 아우렐리아누스(재위 270~275년)에게 함락되기 전까지 얼마나 번성했던 도시였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내가 시리아를 다른 국가들 보다 더 매력적으로 느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시리아를 다녀온 사람들이 한결 같이 시리아를 찬양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학원에서 아랍어를 배웠는데, 학원 아랍어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매 시간 "시리아를 가봐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리아에는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 멋진 풍경, 저렴한 물가… 그리고 친절한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선생님은 "세상에서 가장 인정 많고 착한 사람들이 있다면, 시리아인일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인터넷에 올라온 여행 후기도 한결 같았다. 그 중 기억에 남는 후기는 이것이다. 한 블로거는 "시리아 주요 도시를 여행하며 현지인의 따뜻한 마음을 온 몸으로 느꼈다… 하마(시리아 도시명)에선 단 한 번도 버스나 택시를 이용한 적이 없다. 손짓만 하면 지나가던 차량이 멈춰 선다. 같은 방향이면 그들은 어김없이 나를 태워다 준다. 커피나 차를 돈 내고 마신 기억도 별로 없다. 거리를 걷다보면 발길을 붙잡고 차 한 잔 마시고 가라는 상점 주인이 지천이다. 길이라도 물어볼라치면 서로들 데려다주겠다고 아우성이다. 아이들은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하지만 흘끔거릴 뿐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수줍은 탓이다. 여정을 통틀어 가장 착한 민족을 꼽으라면 난 주저 없이 시리아인을 택할 것이다"라는 후기를 남겼다.
△그럼에도 초청을 거절해야할 때는 오른손을 심장이 있는 부위 또는 이마에 댄다. 이는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 거절로 인한 이들의 심리적 불쾌감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특히 라마단 기간 저녁식사 '이프타르'(إفطار·라마단 기간 무슬림들이 일몰 직후 금식을 마치고 먹는 첫 번째 식사. 이 기간 저녁 식사를 통칭한다)에 초대되는 일이 잦다. △식사 동안 식탁 위의 음식이 없어질 때까지 내내 먹기를 권유 받는다. 집 주인의 호의를 거절하는 건 실례이므로 천천히 식사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배가 터질지도 모른다.
나름대로의 계획도 짜봤다. 처음에는 수도 다마스쿠스로 들어간다. 다마스쿠스 국립박물관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살펴보고, 시내 살라딘 광장을 가서 살라딘 동상을 본다. 살라딘은 이집트·시리아 지역에서 아이유브 왕조를 개막해 북아프리카에서 메소포타미아 지역까지 지배하면서 유럽인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탈환한 인물로 아랍 문화권의 영웅이다. 올드 시티에서 우마이야 모스크(무슬림과 기독교도 모두의 성지로, 세례자 요한의 성소가 위치)를 구경한 뒤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한다. 이후 로마 제국 당시 아라비아 지역 행정구의 수도였던 '보스라'로 간다. 보스라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유럽 전역과 북아프리카까지 지배했던 고대 로마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차근차근 문화도 공부하고 역사도 공부해가며 여행 계획을 쌓아갔다. 그렇게 어느새 대학생이 됐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시리아 여행은 차일피일 뒤로 밀려났고… 이후 이야기는 알다시피다. '아랍의 봄' 여파로 2011년 4월, '시리아 내전'이 발발했다. 그리고 올해로 7년째 시리아에 평화는 찾아오지 않고 있다. 이제 시리아엔 아름다운 풍경도, 기꺼이 외지인을 집에 초대해 호의를 베푸는 현지인도, 잘 보존된 유적지도 없다. 7년간 지속된 내전에 따른 사망자수는 약 36만명이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는 지난 9월 "2011년 3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 대한 반대시위가 벌어진 이후 현재까지 총 36만4792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3분의 1인 민간인은 11만687명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위험한 고국을 떠난 시리아 난민도 지난해 500만명을 돌파했다. '아랍의 봄'으로 시리아의 내전이 촉발됐다지만, 튀니지, 이집트, 예멘에서는 정권교체를 이룩하며 나름 성공적인 혁명으로 마무리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시리아가 유독 오래 아픔을 겪고 있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다음 편에서는 시리아 내전의 양상이 복잡해진 이유와 앞으로의 전망을 살펴본다. 참고문헌 시리아 : 지구촌 문화충격 탈출기, 휘슬러, 콜먼 사우스 시리아, 한울, 구니에다 마사키 시리아 내전 분석과 전망, 국방대학교 PKO센터, 임윤갑 시리아 바샤르 정권의 공고화 과정에 대한 연구, 한국외대, 김한지 시리아 소수집단 알라위파의 집권과 국민통합 정책에 대한 연구, 한국외대, 김한지 ☞[이재은의 그 나라, 시리아 그리고 꿈의 여행지 ②]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