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은 가고 ‘평화’가 왔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최근 이화영 전 국회의원을 ‘연정부지사’로 임명했다. 이 부지사의 직함은 곧 ‘평화부지사’로 바뀐다. 경기도는 지난 6일 정무부지사 명칭을 연정부지사에서 평화부지사로 변경하는 내용의 ‘행정기구 및 정원 조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도는 23일 조례안이 도의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대로 연정부지사를 평화부지사로 변경할 예정이다. 평화부지사는 경기도 중심의 남북평화 기반 조성과 협력을 추진한다.
연정부지사 폐지는 정치적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전임 남경필 지사는 여소야대인 도의회와 연합정치(연정)를 위해 야당 추천 인사에게 연정부지사를 맡겼다. 하지만 지금 경기도의회는 민주당이 142석 중 135석을 차지해 사실상 연정의 필요성이 사라졌다. 이 지사는 “북한과 접경지역이 많은 경기도를 남북 교류협력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며 평화부지사 임명의 취지를 밝혔다. 6·13 지방선거 이후 정무 부시장·부지사의 명칭이 바뀌는 사례는 경기도 외에 광주, 인천광역시와 경남, 충남도, 제주특별자치도에서도 나오고 있다. 부시장과 부지사에 붙는 새로운 ‘간판’을 보면, 이들 지방정부가 펼칠 정치, 행정의 방향과 철학을 엿볼 수 있다.
경기도에서 퇴출당한 ‘연정부지사’는 제주에서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재선에 성공한 무소속 원희룡 지사는 최근 민주당과의 협치와 연정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는 제주도의원 43명 중 29명이 민주당 소속이기 때문이다. 6·13 선거 직후 민주당 쪽에 연정을 제안했던 원 지사는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연정을 제도화하면 부지사를 한 명 늘려 연정부지사를 만들면 된다. (민주당 쪽과) 협의만 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제주에서도 연정부지사가 임명되면 경기도에서 처음 도입돼 좋은 평가를 받은 여소야대 의회에서의 연정과 협치 관행이 더욱 발전하고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무 부시장·부지사 명칭에 ‘문화’가 들어간 곳은 광주와 충남이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지난 2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새 문화경제부시장은 경제보다는 문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르면 이달 안에 선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화경제부시장은 ‘문화를 통해 광주경제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역할’을 맡는다. 앞으로 전략산업국, 일자리경제실 등 핵심 경제 부서뿐 아니라 문화관광체육실 업무도 총괄한다. 광주시는 경제부시장 명칭을 문화경제부시장으로 바꾸기 위한 조례 개정을 추진 중이다.
양승조 충남도지사는 조만간 첫 문화예술부지사를 임명할 방침이다. 양 지사는 “유구한 문화적 전통을 지닌 지역이어서 도민들의 문화에 대한 갈망이 큰데도 이를 수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첫 문화예술부지사에겐 금강의 백제문화권을 벨트화하는 사업 등이 맡겨질 것으로 보인다.
경남도는 홍준표 전 지사 때 신설했던 서부부지사를 없애고, 대신 경제혁신을 추진할 경제부지사를 두기로 했다. 경제부지사로는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산업혁신실장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중앙정부의 경제 부처 출신들로 진용을 꾸린 뒤 경남의 경제 혁신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기존 정무부시장을 ‘균형발전정무부시장’(가칭)으로 바꿀 방침이다. 균형발전정무부시장은 원도심과 송도·청라·영종 경제자유구역 사이 균형발전과 원도심 재생, 도시계획 등의 업무를 총괄한다.
시민단체에선 이런 변화를 환영하면서도 정부 부단체장의 전통적인 장점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현안 업무를 맡은 부단체장의 도입은 과거 정무 부단체장들이 거액의 업무추진비를 써가며 자신의 향후 정치적 행보를 모색해온 관행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좋게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전통적으로 정무직 부단체장이 대내외 소통 창구의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정대하 허호준 홍용덕 최상원 송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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