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생장특성이나 주변 환경 고려 않고 심은 뒤 마구잡이 가지치기
잘 심은 가로수 길 몇 십년 뒤 명품도시 선사…적합한 자생 수종도 많아
» 미루나무 세 그루 가운데 어떤 나무가 가장 행복할까.
어떤 나무가 행복할까? 사람에게 돈, 권력, 명예, 건강 같은 것이 행복의 조건이라면 나무는 과연 어떨 때 행복할까?
강가에 미루나무 세 그루가 서 있다. 이 가운데 어떤 나무가 제일 행복할까? 왼쪽 나무는 홀로 서 있고 가운데 나무는 줄기가 둘로 갈라져서 형제처럼 자라고 있고 오른쪽 나무는 두 나무가 가까이 이웃해 자라고 있다.
혼자만 자라는 나무가 행복할까. 둘로 갈라져 형제처럼 자라는 나무가 행복할까. 아니면 둘이 이웃해서 자라는 나무들이 행복할까.
나무는 여름에 잎이 무성해졌을 때 나뭇잎이 하늘을 80% 정도 가리면 건강한 나무라 할 수 있다. 첫 번째 나무는 혼자 서 있기는 하지만 수세가 약해 잎이 너무 적게 나 있다.
가운데 나무는 둘로 갈라졌지만 아름다운 수형을 이루고 건강한 모습으로 잎을 제대로 만들고 내고 있다. 오른쪽 나무는 둘이 이웃해 외롭지 않게 자라고는 있지만 가지를 펼칠 공간을 서로 나눠 가지느라 둘 다 약하게 자란다.
나무는 자신의 형질대로 수형을 이루고 잎을 많이 내어 마음껏 햇빛을 받아 생장해 자손을 많이 냈을 때 행복하다 할 수 있다. 그런 의미로 필자의 기준으로는 아름다운 수관에 잎을 가득 매단 가운데 나무가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인 인권(人權)이 있듯이, 나무도 사람처럼 지구 위에 살아가는 동등한 생명체로서 살아있는 동안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런 나무들의 권리를 ’수권’(樹權)이라 부른다. 그런데 사람들은 문명이라는 권력으로 너무나 많은 나무의 수권을 유린하고 있다.
개발이나 목재 생산을 위해 숲에서 벌목되는 수많은 나무는 물론이고 도시 주변에서도 노예나 죄수처럼 핍박받으며 자라는 나무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렇게 학대받는 대표적인 나무들이 길가나 도로에 심어진 가로수이다.
» 사지가 절단된 은행나무.
우리가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만나는 가로수 중 하나가 은행나무이다. 은행나무는 가을에 예쁜 노란 단풍이 들어 낙엽이 지는 낙엽수이지만 전형적인 침엽수 형질을 지니고 있어 줄기 끝에 있는 눈 중심으로 생장하는(정아 우세) 나무이다.
이런 이유로 은행나무가 자라는 위쪽에 다른 장해물이 없는 곳에 심어야 되는데 위 사진에 보이는 은행나무는 어떤 무지한 산림공무원이 결정했는지 전신주 아래 심어져 해마다 줄기와 가지를 잘라줘야 한다.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은행나무는 해마다 능지처참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고 있다.
» 현충사 앞 은행나무 길.
» 과천 중앙로 은행나무 가로수.
» 올림픽공원로 은행나무 길.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은행나무는 상부에 장애물이 없는 곳에 심어 잘 관리하면 이렇게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해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도시의 품격을 높여주는 가로수가 될 수 있다.
» 조망을 위해 가지를 짧게 자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모습
서울 송파구 개롱역 주변에 아파트의 소음을 막기 위해 심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있었다. 두 해 전까지만 해도 아름다운 수형으로 멋진 경관을 연출했는데 작년에 아파트 주민들이 조망권을 위해 민원을 냈는지 모두 몽땅 빗자루처럼 줄기와 가지를 짧게 잘라 버렸다. 나무가 반항하거나 말하지 못한다고 사람들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나무에 너무나 잔인한 형벌을 내렸다.
» 단양 메타세쿼이아 길.
가로수는 식재될 도로나 도시 환경을 고려해 수종을 잘 선택해 심으면 그때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멋진 풍경으로 아름다운 길이나 명품 도시를 만들 수 있다.
» 서울 도곡동 고층에서 바라본 양재천 주변 메타세콰이어길.
메타세콰이어도 상부에 장애물이 없고 주변에 공간이 넓은 장소를 선택해 심으면 메타세쿼이아 고유의 이등변 삼각형의 아름다운 수형을 즐길 수 있다.
»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도심 가로수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양버즘나무이다. 양버즘나무는 겨울 추위와 공해에 강해 도심에도 잘 생육하고 넓은 잎에는 잔털이 많아 미세먼지를 잘 잡아주어 도심에 많이 심는 가로수이다.
그런데 전신주가 있는 곳에 심었거나 상점 간판을 가렸다는 이유로 위 사진으로 보는 것처럼 뼈다귀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을 자주 접하게 된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해마다 가지와 생이별해야 하는 양버즘나무의 몸과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괴로울까?
» 올림픽 공원의 잘 자란 양버즘나무 길.
양버즘나무는 잎이 크고 수세 회복이 빨라 조건이 좋은 장소에 심어 관리하면 이렇게 멋진 녹음과 운치 있는 풍경을 만들어 주는 가로수가 될 수 있다.
» 경기도 남양주 진접읍 장현 느티나무길.
느티나무는 도로 폭이 좁은 곳에 양쪽으로 식재하면 10년만 지나도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숲 터널을 만들어 낸다.
» 처마 아래 식재된 전나무.
도심에서는 가로수 말고도 집 정원이나 공원에도 나무를 많이 심게 된다. 그런데 조경을 하시는 분들은 수목의 생리나 수형을 고려하지 않고 처음 심었을 때 고객에게 보일 모습만 생각하고 나무를 조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 사진의 나무도 끝눈 중심으로 생장하는 전나무이다. 전나무가 크게 자랄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처마 아래에 심어 버렸다. 시간이 지나고 지금은 줄기 끝이 처마에 닿았는데 전나무는 장애물을 만나 어쩔 줄 모르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전나무에 지금 내려진 형벌은 허리를 펼 수 없는 독방에 가둬 두는 것과 같다. 조경은 그래픽이 아니고 작은 숲이다.
» 낙엽이 지는 은행나무와 잣나무를 섞어 심은 모습.
나무 식재 시 나무에게 가장 잔인한 방법이 가을에 낙엽이 지는 낙엽수와 늘 푸른 상록수를 같이 혼식하는 경우이다. 그중에서도 은행나무와 잣나무를 함께 심는 것이 가장 나쁘다. 잣나무는 빛을 아주 좋아하는 양수라 은행나무가 빛을 가리게 되면 제대로 생장하지 못한다. 여름에는 은행잎이 같이 나 있어 울창하게 보이지만 가을이 되어 은행잎이 떨어지면 잣나무는 병들어 털 빠진 고양이처럼 보이게 된다. 이 형벌은 순진하고 힘없는 죄수를 힘세고 사나운 조폭과 함께 합방하는 것과 같다. 은행나무 옆 잣나무에 세상 살아가는 일은 얼마나 괴롭고 힘겨울까?
가로수는 길이나 도시를 아름답게 해 주는 옷과 같은 존재이다. 어떤 옷을 입히느냐에 따라 품위 있는 길이나 도시가 되기도 하고, 아니면 노숙자의 모습처럼 초라한 길과 도시가 되는 것이다.
또한 가로수는 한번 식재되면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백 년 이상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래서 길이나 도시에 가로수를 처음 심을 때 수종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 경기도 남양주의 튤립나무와 공작단풍 가로수.
남양주 구리에서 내촌으로 연결된 47번 국도에 몇 해 전 튤립나무와 공작단풍을 심었다. 47번 국도는 도로변에 전신주가 많이 서 있고 도로 양쪽으로는 상가가 많은 도로이다. 또한 큰 도시와 인접해 있어 수시로 다양한 공사가 진행되어 가로수 보존이 어려운 도로이다. 그런데 어떤 생각 없는 공무원이 이 도로에 가로수를 심을 계획을 세우고 수종을 선정했는지 교목으로 높이 자라는 튤립나무와 도로 적응력이 약한 공작단풍을 심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식재된 가로수들은 20%나 살아남았을까. 47번 국도는 가로수를 심어 관리하기 어려운 도로인데 만약 어쩔 수 없다면 비교적 수고 조절이 자유롭고 불량 환경에도 잘 견뎌 수세 회복이 빠른 이팝나무, 당단풍, 회화나무 등을 심었어야 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불필요한 세금 낭비가 너무나 아쉽기만 하다..
» <한국의 가로수>
산림청에서 2012년에 발간한 <한국의 가로수>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는 전국에 식재된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가로수 모습들이 실려 있다. 필자의 사진도 많이 담겨 있는데, 연구사업 시한에 쫓겨 각 지방의 좀 더 다양한 가로수들을 가장 아름다운 적기에 찾아가 사진을 담지 못한 게 많이 아쉽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식재된 많은 아름다운 가로숫길을 소개한다.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 충북 청주의 양버즘나무 길, 천암 삼거리 능수버들 길, 충남 아산 현충사 앞 은행나무 길, 대구 수성구의 개잎갈나무 길 등이 대표적이다.
가로수는 한번 심으면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켜야 하므로 식재될 지역의 전통문화나 생육환경을 고려해 신중하게 선택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제대로 식재된 아름다운 가로수 길은 오가는 국민에게 숲에 온 듯 편안한 마음을 주고 도시의 랜드 마크가 되어 도시의 품격을 높여줄 수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가로수는 벚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일색이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나무들도 꽃이나 열매 혹은 단풍이 아름다워 가로수로 잘 어울리는 나무가 아주 많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키가 크게 자라는 나무로는 구상나무, 전나무, 솔비나무, 측백나무, 야광나무, 산돌배나무, 층층나무, 팥배나무, 모감주나무, 붓순나무, 나도밤나무, 합다리나무, 조록나무, 먼나무, 이나무, 비술나무, 굴거리나무, 느릅나무, 난티나무, 팽나무, 가래나무, 참가시나무, 찰피나무, 왕버들, 때죽나무, 쪽동백나무, 귀룽나무, 산사나무, 마가목, 아그배나무, 채진목, 자귀나무, 다릅나무, 말채나무, 산딸나무, 복장나무, 복자기, 음나무, 버들개회나무 등이 있다.
키 작은 나무로는 함박꽃나무, 생강나무, 히어리, 황근, 돈나무, 물참대, 말발도리, 꼬리말발도리, 갈기조팝나무, 가침박달, 병아리꽃나무, 해당화, 다정큼나무, 미선나무, 화살나무, 누리장나무, 꽃개회나무, 줄댕강나무, 주걱댕강나무, 붉은병꽃나무, 괴불나무, 분꽃나무, 분단나무, 백당나무, 아왜나무, 홍가시나무 등이 있다.
나무 이름을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이라면 위에 열거된 나무가 얼마나 예쁜 꽃을 피우고 단풍과 열매가 아름다운지 알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나라에도 가로수로 심어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우수한 나무가 많은데 묘목도 생산되지 않고 가로수로 식재 가능한지 하나도 연구되지 않은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산림청이나 국토부는 지금부터라도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장기적으로 가로수 개선사업을 진행하면 어떨까? 필자가 생각한 가로수 개선 계획안은 아래와 같다.
■ 가로수 개선 30년 장기계획
1년차: 지역별 전통문화 및 환경에 맞는 가로수 예비수종 조사 및 선정
2~3년차: 지역별 가로수 예비수종 종자 수집 및 파종
4~10년차: 예비 가로수 묘목 육묘
11~20년차: 지방자치단체와 협의 후 예비 가로수 식재, 환경 적응성, 병·해충 및 생육 조사
21년차: 지역별 가로수 수종 선정 및 수요조사
22~30년차: 전국 가로수 육묘 및 순차적 식재(산림청 전국 묘목장 활용)
지난 이명박 정부 때 치적 사업을 위해 수십조의 돈을 쏟아부어 4대강을 ’녹차 라테’로 만들었는데 4대강 사업비의 4분의 1만 가로수 개선사업에 투자해도 그 정부는 대대손손 자손들에게 오래도록 존경받는 업적으로 기억될 것이라 필자는 확신한다.
» 광릉숲
광릉숲이다. 숲에는 수많은 생물 종들이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서로 먹고 먹히고 경쟁도 하고 살아가지만 자신의 차례가 오기까지 인내도 하고 때론 배려와 양보하는 지혜로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 대통령 선거도 끝나고 새로운 정부가 시작되었다. 숲의 수많은 생명이 숲 생태계 안에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처럼 이번 정부는 우리 사회도 보수나 진보, 좌익이나 우익 혹은 영남 호남으로 편 나누지 말고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으로 더욱 발전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힘을 합쳐 모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숲의 지혜로움으로 사람은 물론 함께 살아가는 반려동물도, 길가에 가로수들로 모두 행복해 질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 참고 문헌
나무와 숲 남효창. 계명사
꽃의제국 강혜순. 다른세상
한국의 나무 김진석.김태영. 돌베개
한국의 나무 바로알기 이동혁. 이비락
글·사진 양형호/ 국립수목원 전시교육과 현장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