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만든 분노, 한국도 임계점…성장·효율 지상주의 벗어나야-- 강원택 교수--

2016. 7. 4. 12:07지속가능발전/지속가능발전활동




  “브렉시트 만든 분노, 한국도 임계점…성장·효율 지상주의 벗어나야”

      ---강원택 교수===


         강ㅇ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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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정치학자 강원택 교수 인터뷰 - 영국 국민투표가 한국 대의제에 전하는 의미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가 지난달 28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최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한 국민투표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가 지난달 28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최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한 국민투표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국민투표는 끔찍하다. 의회주의를 훼손하며 근본적으로 반민주적인 제도다.” 영국의 ‘마지막 홍콩 총독’으로 유명한 크리스 패튼 옥스퍼드대 총장의 말이다. 같은 대학의 얀 지엘론카 교수도 최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물은 국민투표를 아예 ‘러시안 룰렛’에 비유했다. 국민투표는 의회주의를 훼손한다는 평가를 받음에도 세계적으로 많이 치러지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 그렇다. 1970년대 유럽에서 연평균 3회 치러진 국민투표가 2010년대에는 연평균 8회꼴로 두 배를 뛰어넘었다.

학계에서는 이를 세계적으로 정치적 리더십이 흔들리고, 정당 기능이 약화된 결과라고 분석한다. 아예 대의민주주의 자체가 위기에 처했다는 평가도 내놓는다. 국민투표, 그리고 후회할 브렉시트를 낳은 영국의 국민투표 과정과 그 결과가 한국 사회와 정치권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최근 정치학자 강원택 서울대 교수(55)를 연구실에서 만났다.

- 영국에서 공부한 한국의 정치학자로서 영국의 국민투표를 어떻게 보았는지.

“개인적으로 브렉시트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 캐머런 총리는 승리를 확신하고, 국민투표로 문제를 정리하려는 생각이었겠지만 결과는 달랐다. 유럽연합 문제는 사실 오래도록 보수당을 괴롭혀온 이슈이기도 하다. 이번 경우에는 캐머런이 상황을 너무 쉽게 생각한 측면이 있다. 사실 국민투표 자체가 의회 주권 원칙이 워낙 강한 영국 전통과는 잘 안 맞는다. 최근까지 의회가 입법·행정·사법 3권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 투표 결과를 놓고 경제적 약자나 소외자들의 불만 표출 등 다양한 분석들이 나왔다. 또 후회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미국 헌법의 설계자들이 먼저 떠올랐다. 미국 헌법을 보면 하원은 2년마다 전원 교체하지만, 상원은 6년 임기에 2년마다 3분의 1씩 바뀐다. 하원은 임기 2년이라 유권자들의 욕구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3분의 1씩밖에 바뀌지 않는 상원이 있기에 국가가 유지해온 관행이나 전통을 지킬 수 있다. 단번에 속이 시원한 결정을 내리기는 힘들어도 조정과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 과정이 이번 영국에서는 다 생략됐다. 이슈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들, 합리적인 토론이 없었다.”

- 한국에서도 새삼 국민투표의 본질적 의미, 효과 등에 대한 관심이 높다.

“보통 그리스 직접민주주의를 이야기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도시국가처럼 작은 단위에서 구성원들이 동질성을 가지고 있고, 일정 수준 이상 정보를 가진 사람들의 의사결정을 전제로 하지 않나. 그런 조건이 만족되지 않는다면, 왜곡된 정보의 제공이라든가 감정적인 접근, 포퓰리스트들의 존재 같은 것들 때문에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기 힘든 측면이 있다. 한국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과거 미군기지 이전이나 전시작전권 환수 같은 이슈가 나왔을 때, 국민투표로 결정하자는 주장이 있었다. 만약 투표를 했다면 그 과정에서 이슈 자체의 내용은 묻히고 수구냐, 종북이냐, 좌빨이냐는 식으로 갔을 거다. 이번 영국 투표도 그런 성격이었다. 합리적인 집단적 판단의 결과라기보다는 공포와 적대감을 만들어낸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전략적 승리였다.”

- 정치인들이 자기 역할을 방기한 것 아닌가.

“대의제 아래에서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들은 최고 권위를 가질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걸 버려놓은 거다.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민감한 정치적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사법부에 판단을 미루는 경우가 있지 않나. 똑같은 경우다. 미국의 정치학자 필립 컨버스의 연구결과를 보면, 선거 국면에 중요한 사안의 내용을 제대로 아는 투표권자들은 사실 전체의 20%밖에 안된다. 그래서 정당이나 정치인을 보고 결정을 하게 되는데, 이번 영국 국민투표에서는 각 정당도 제 역할을 하기 어려웠다. 보수당, 노동당 각자도 내부에 찬반파로 나뉘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 한국에서는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니, 차라리 국민이 정하자는 식의 얘기가 종종 나온다.

“우리 같은 경우 국민투표는 국회가 아닌 대통령이 결정을 내린다. 국회 스스로 자기 책임을 피하는 문제와 함께 대통령이 국회 내에서 자기 뜻에 반대하는 논의를 막기 위해 국회를 우회해 국민한테 직접 호소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국회 안에서 건강한 논의를 통해 생산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 대의제의 위기론은 어떻게 보나.

“세계 곳곳에 불만이 팽배한데, 그 불만을 손쉽게 해결하는 방법은 희생양을 찾는 거다. 이민자 때문에, 유럽연합 때문에 등. 굉장히 쉬운 논리다. 미국의 트럼프도 똑같지 않나. 한국도 ‘내가 흙수저인 건 다 무엇 때문’이라는 식의 심리가 강하고. 현대사회에서 쉬운 해결책은 없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해결 과정이 힘들어도 그렇게(국회에서의 생산적 합의) 가야 한다.”

- 한국 대의제 위기를 이야기한다면.


“정당 책임성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가, 유권자 요구에 대한 정당의 정치적 반응성을 어떻게 높이도록 강요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정치관계법의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도 필요할 것 같다. 또 브렉시트 같은 결정이 나오게 된 밑바닥의 분노와 불만이 한국에서도 임계점을 향하고 있다. ‘구의역 사고’ 등에서 잘 드러난다. 이제는 성장과 발전·효율만 강조하는 담론을 벗어나야 한다. 그 정반대의 담론도 마찬가지다. 현실에 팽배한 분노를 국가적 차원에서 제어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이나 젊은 세대 지원 같은 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해야 한다. 이는 좌우의 문제도, 여야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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