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에게 유리한 성장--부탄에서

2015. 11. 28. 21:37세계와 여행이야기/부탄 이야기

 
 
 
박진도의 부탄 이야기

가난한 사람에게 유리한 성장

경제성장으로 하위 40% 계층의 소득이 가장 빨리 높아져… 인도 의존 높은 후진국형 경제구조가 문제, 2020년에는 경제 자립 달성할 수 있을까

제1084호
2015.10.28
등록 : 2015-10-28 17:32
체쿠 도르지는 왕실 직속 연구소의 통계팀장이다. 그에게 “부탄 사람은 가난하지만 행복하냐”고 물었다. 그는 ‘예스 앤드 노’(yes and no)라고 답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내 느낌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들은 하루하루 살기에 급급하다. 심지어 하루 세끼 식사를 해결하기에도 벅차다. 어떻게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나?”

굳이 체쿠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기초적 필요를 충족하지 못하면 행복을 느낄 여유가 없다. 국민총행복(GNH) 조사에 따르면 생활수준에서 많은 사람들이 충분문턱(Sufficiency Threshold)에 미달하고 있다. 특히 농촌 지역은 고된 노동과 낮은 생활수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의 생활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부탄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물적 토대의 성장이 필요하다.

부탄은 1990년대 이후 빠른 성장을 하고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70년 212달러, 1980년 312달러, 1990년 511달러, 2000년 778달러로 서서히 성장했고, 2000년대의 고도성장을 거쳐 2013년 2363달러가 되었다. 고도성장과 더불어 부탄은 빈곤 퇴치에서 놀라운 성과를 달성했다. 1990년 부탄은 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처럼 빈곤율이 50%가 넘는 최빈국이었다. 그러나 한 세대가 경과하지 않은 2012년 극단적 빈곤은 거의 사라졌고, 빈곤율은 12% 수준으로 낮아졌다. 이는 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 여전히 30% 전후의 높은 빈곤율을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부탄 경제는 외국 원조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부탄의 한 시장에서 팔리는 인도산 과일들.

건강·교육까지 고려해 빈곤 측정

부탄 정부는 빈곤선(소비 기준)으로 빈곤인구를 측정하는 한편, 생활수준만으로 빈곤을 측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생활수준과 건강 그리고 교육을 동등한 비중으로 평가하는 다차원 빈곤지수(MPI·Multidimensional Poverty Index)를 보완적으로 사용한다. MPI 기준의 빈곤인구는 12.7%로 소비 기준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빈곤선과 MPI 기준 빈곤인구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빈곤선 이하이면서 동시에 MPI 기준으로도 빈곤한 사람은 30% 정도에 지나지 않는 반면, 소비 기준으로는 빈곤선 이상인 사람 가운데 25% 정도는 MPI 기준으로는 빈곤하다. 빈곤선이 현재의 상태를 반영한다면, MPI는 빈곤에서 벗어날 역량(capabilities)을 보여준다. 부탄의 제10차 5개년 계획(2008∼2013년)은 MPI 기준의 빈곤 퇴치를 중점 과제로 설정했다.

부탄이 빈곤 퇴치에서 이러한 성과를 거둔 것은 성장이 빈곤층에게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의 결과, 빈곤율이 하락했을 뿐 아니라, 모든 빈곤층에서 빈곤 격차가 줄어들었다. 성장의 과실은 전 소득계층이 향유했지만, 특히 하위 40% 소득계층의 소득 증대가 가장 빨랐다.

빈곤 감소는 크게 두 가지 요인에 기인했다. 하나는 도로·전기·통신·물·위생과 같은 인프라가 크게 개선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빈곤감축목표 프로그램’ 덕택이다. 우선 도로의 확장은 부탄 농민들의 시장접근성을 크게 개선했다. 과거에 농촌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기 위해 동네에서 며칠씩 걸어나와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1시간 이내에 대부분의 자동차 도로에 접근할 수 있고, 3시간 이내에 거의 모든 농촌 사람들이 자동차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충전 중인 전기자동차.

가난한 사람 보살필 왕의 의무

전기와 이동전화의 보급도 농촌 생활을 크게 개선했다. 오늘날 전기와 이동전화는 거의 100% 보급됐고,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농촌 사람들의 생활이 외부와 연결되고 그들의 생활양식도 변화하고 있다. 동시에 물과 위생 상태가 개선되면서 사람들의 건강이 좋아졌다. 여기에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는 노동력의 질적 개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는 다른 후진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변화다.

특히 부탄 정부는 매우 가난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한 빈곤 퇴치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빈곤층 대상 정책에 대해 카르마 치팀(국민총행복위원회 전 차관, 현 인사위원회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경제가 성장해서 낙수(Trickle Down) 효과에 의해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마치 물을 채워 바다에 있는 모든 배를 떠오르게 하는 것만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직접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부탄 왕은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필 의무(KIDU·키두)가 있다. 토지가 없는 농민 혹은 토지가 적은 농민은 왕에게 토지를 나눠줄 것을 청원할 수 있고, 왕은 이에 응해야 한다. 왕은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을 대상으로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연간 일정 금액을 주고, 돌보는 사람이 없는 노인들에게도 절에 가서 기도하고 먹고사는 데 필요한 생활비를 지급한다.

왕의 키두 이외에 부탄 정부는 농촌 빈곤층만을 대상으로 한 정책을 실시한다. 그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가난한 농촌 공동체를 대상으로 한 ‘재정착 프로그램’이다. 이는 외딴 오지에 살아서 사회적 서비스나 인프라에 접근하기 어려운 마을(커뮤니티)을 대상으로 한다. 그들이 원할 경우 여건이 더 나은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이다. 이때 정부는 도로·학교·전기·보건소·수도 등 일체의 인프라를 제공할 뿐 아니라 경작에 필요한 토지를 비롯해 집을 짓는 데 필요한 건축자재와 목수·미장이 등 숙련노동자의 비용도 보조한다.

‘농촌경제 향상 프로그램’은 가난한 농촌 주민의 생활 향상을 위해 주택시설을 개선하고, 가금류를 사육하도록 하고, 협동조합을 만들어 농산물 판매를 장려한다. 그리고 가난한 세대를 찾아서 그 세대가 필요한 것(주거, 학교, 일자리, 식품 등)을 직접 지원한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토지 키두인데, 국왕이 줄 수 있는 토지는 점차 줄어드는 반면 인구는 증가하고 있어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 부탄 전 국토의 7%에 해당하는 66만4천 에이커가 경작 가능지인데, 이 가운데 약 50만 에이커는 사적으로 등기된 소유지이고 나머지 16만4천 에이커가 국가 왕실 소유이다. 이것을 가장 적절하게 사용하기 위해 ‘토지 재사용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즉 키두 토지는 소유권이 아니라 이용권을 주어 교환·저당·판매·증여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이농 등으로 키두 토지를 경작할 수 없게 되면, 그것을 반환하도록 하여 다른 사람이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위장실업률 높고 제조업 일자리 적어

부탄의 GNH 정책으로 대부분의 국민은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고 대체로 그들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부탄 국민의 생활수준은 여전히 매우 낮다. 빈곤율 12%는 아직도 높은 수준일 뿐 아니라, 그 기준이 되는 빈곤선이 너무 낮다. 부탄의 빈곤선은 세계은행이 정한 빈곤선인 구매력 평가 기준 하루 소득 1.25달러보다는 높고 2.5달러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빈곤선 기준인 1705눌트룸(약 3만1천원)으로 한 달을 살아간다는 것은 부탄에서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교육과 의료가 무상이라 해도 말이다.

도시의 빈곤율은 1.3%에 지나지 않지만 사실 도시에서 월 1705눌트룸으로 생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실제 부탄의 최저임금은 하루 125눌트룸인데, 이것조차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이 임금으로는 사람을 고용할 수 없다. 도로 공사 인부도 하루 200∼300눌트룸은 주어야 하고, 도시에서 집수리를 하려면 하루 400∼500눌트룸은 주어야 한다. 빈곤선이 너무 낮고 그것을 올려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부탄 관리들은 동의한다. 실제 부탄의 빈곤선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부탄의 빈곤선은 소득 하위 계층 40%의 사람들이 80% 이상 소비하는 생활물자의 값을 기준으로 해서 결정된다.

생활수준 향상에 대한 부탄 사람들의 열망은 매우 강하다. 그만큼 경제성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부탄의 산업구조나 경제구조로 볼 때 쉬운 일이 아니다. 최대 산업인 농업에 취업자의 약 60%가 종사하고 있으나 GDP의 비중은 16%에 지나지 않는다. 농업생산성이 매우 낮고, 위장 실업이 상당히 존재한다.

반면 부탄 정부가 크게 의존하는 전기(수력발전)는 GDP의 14%를 차지하지만 취업자의 비중은 1.2%에 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건설업 분야도 GDP 비중은 약 17%에 달하지만 취업자 비중은 3.2%에 지나지 않는다. 전기와 건설업 분야의 취업자 비중이 낮은 이유는 취업자의 대부분을 인도인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수력발전은 장치산업이라 고용 유발 효과가 적고 그나마 기술자 대부분은 인도인이며, 건설업(수력발전·도로·건축 등)도 5만∼6만 명에 달하는 저임금 인도 노동자가 담당하고 있다. 고용 효과가 큰 제조업은 GDP나 취업자에서 모두 낮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구조의 왜곡을 어떻게 해결하는지가 부탄 경제의 큰 과제이다.

그러나 부탄의 경제 상황은 녹록지 않다. 국민계정통계에 의하면 2013년 전체 인구는 73만 명이고, 1인당 GDP 2440달러에 총 GDP는 17억8천만달러(약 2조1천억원)이다. 한 국가를 운영하기에는 경제 규모가 너무 작다. 게다가 부탄은 아직 전형적인 후진국적 경제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탄의 한 건설 현장. 수력발전·도로·건축 등 건설업에서 인도 저임금 노동자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재정·국제수지 등 적자 심각해

첫째, 만성적인 재정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2013/2014 회계연도의 정부지출은 380억눌트룸(약 6840억원)인데 재정수입은 220억눌트룸(약 4천억원)에 지나지 않는다. 부족한 재정을 외국 원조(46억눌트룸)로 충당하지만 이것으로도 부족해 GDP의 4.4%에 달하는 재정 적자를 보고 있다.

부탄 헌법은 재정 적자를 GDP의 5% 이내로 허용하지만, 만성적인 재정 적자는 부탄 경제에 큰 부담이다. 정부의 경상지출은 반드시 국내 세입으로 충당하도록 하고, 자본지출에 한해서 외국 원조와 차입을 허용해 나름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정부지출에서 외국 원조가 차지하는 비율은 30% 전후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둘째, 국제수지도 만성적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2013/2014 회계연도의 수출은 5억3천만달러인 반면, 수입은 9억달러로 약 3억7천만달러의 무역 적자, 여기에 무역외수지 적자를 포함한 경상수지 적자는 4억7천만달러로 전체 GDP의 27.3%에 달한다.

부탄의 수출품은 매우 단조롭다. 2013년을 보면, 광물자원이 49.9%, 수력전기가 35.2%, 농산물이 9.7%, 공산품이 7.6%를 차지했다. 광물자원과 수력전기가 전체의 85% 이상이다. 수입품은 매우 다양한데, 쌀을 비롯한 곡물, 육류, 버터와 치즈, 식용유, 설탕 등 식품 수입액이 전체 수입액의 11.7%인 1억500만달러에 달한다. 반면 채소류와 과일 등 농산물 수출액은 1800만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취업자의 약 60%가 농림업에 종사하면서 농산물 무역수지가 큰 폭으로 적자인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더욱이 부탄의 생활수준이 올라가면서 생필품 수입이 늘어나자 무역수지 적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셋째, 대외 채무가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부탄은 수력발전과 도로 건설 비용 등으로 많은 외채를 끌어들이고 있다. 2013/2014 회계연도의 누적 채무 잔고는 17억7천만달러로 GDP의 100%를 넘어섰다. 수출로 벌어들인 돈 가운데 원리금 상환에 사용해야 할 비율은 26.8%로 높다. 세계 부채탕감 운동조직인 주빌리(Jubilee)는 부탄을 부채위기 고위험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넷째, 인도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 부탄과 인도는 역사적으로 매우 가까운 사이이고, 1962년 제1차 5개년 계획은 거의 100% 인도 원조로 수립됐다. 오늘날 부탄은 수출의 86.1%와 수입의 83.5%를 인도에 의존하고 있고, 무역수지 적자의 약 80%, 경상수지 적자의 94%가 인도에 대한 것이다. 부탄은 해외 원조의 70% 내외를 인도에 의존하고 있고, 대외 채무 잔고의 약 64%는 인도에 대한 채무이다.

인도에 대한 경제의존도 높아

인도에 대한 경제 의존의 취약성은 2012년 루피 위기로 나타났다. 2000년대 부탄은 연평균 8.1%의 고도성장을 했다. 인도로부터의 루피 차관에 의한 정부의 건설사업(수력발전과 도로 등)이 민간 건설업에 활력을 불어넣어 민간부문 신용이 10배나 늘어나 인도로부터 수입이 급증하자 급기야 루피 부족 사태를 초래했다. 부탄 정부는 자동차, 주택 건설, 그리고 기타 개인 소비와 관련된 대출을 중단했다. 민간 건설업의 대부분이 문을 닫으면서 실질 경제성장률은 2013년 2.1%로 급락했다.

다섯째, 수력발전 의존도가 너무 높다. 수력발전은 수출의 31%, 정부 수입의 20%, GDP의 14%를 차지하고, 건설업 등 수력발전 건설에서 생기는 파급효과도 매우 크다. 히말라야의 빙하가 녹은 물로 수자원이 풍부해 수력발전이 용이하다. 기술적으로 경제성이 있는 잠재 수력발전량은 2만4천메가와트로 추정된다. 현재 그 6%인 1480메가와트가 이용되고 있어 그 개발 잠재력은 매우 크다. 부탄은 생산한 전력의 약 75%를 인도에 수출하고 있다. 전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도는 부탄에 대해 수력발전 건설 자금과 기술을 지원하고 생산된 전기를 값싸게 수입하고 있다.

현재 부탄의 인도에 대한 전기 수출 가격은 양국 협정에 따라 생산비에 15%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선에서 결정된다. 부탄 정부는 수력발전의 추가 개발로 재정 적자와 대외 채무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수력발전 개발은 산림 등 자연을 파괴하고 동식물 다양성을 훼손하고 수질을 오염시키는 등 심각한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재정 적자와 무역 적자 그리고 대외 채무에 대해 내가 염려하자, 부탄 관리들은 “1960년대에 우리는 100% 외국 원조에 의존했으나, 의존도가 점차 낮아지고 있어서 크게 염려하지 않는다. …대외 채무의 대부분은 수력발전 건설에 사용하기 때문에 수력발전 건설이 끝나고 전기를 수출하게 되면 대외 채무 상환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과연 부탄은 그들이 바라는 대로 2020년에는 외국 원조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적 자립을 달성하고 가난한 나라를 벗어날 수 있을까.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충남대 명예교수


히말라야 자락의 작고 가난한 나라, 부탄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되었을까?

‘행복’에 대한 부탄인의 삶과 문화를 배우기 위해 우리는 부탄으로 떠납니다.

일정 2016년 2월 4일(목) ~14일(일)

대상 행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남녀노소 20명

장소 부탄(파로, 팀푸, 푸나카, 붐탕) - 타이(방콕) 일대

참가 문의 042-335-3600 (공감만세)

<한겨레21> 독자 특전 5만원 할인 + 대전 대흥동 공정여행권 또는 서울 북촌 공정여행권 + 자료집 및 기타 여행 물품(손수건, 배지 등)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