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쇄신을 촉구하는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 교수 일동

2015. 1. 26. 13:08시민, 그리고 마을/시민사회운동과 사회혁신

{시국선언문}...

 

청와대와 정부의 전면적인 쇄신만이
국가를 정상화하는 길이다

광복 70주년인 2015년
새해가 밝은지 채 한 달도 넘기지 못한 지금,
온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과 현 정부에 대해
실망을 넘어서서 불안과 절망을 느끼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우리는 악몽과 같았던 작년이 되풀이되는 듯한 일을 겪고 있다.
의정부의 큰불은
정부의 허술한 안전 관리 시스템과
구멍 뚫린 규제를 드러내면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제2롯데월드의 계속되는 부실논란,
LG 디스플레이 공장의
질소 가스 누출 인명사고 등은
재벌과 당국의 안이함 탓에
올해도 귀한 인명이
속수무책으로 위험에 노출될 것임을 예고한다.
남부럽지 않은 사회 경력을 지닌
한 가정의 가장이 실직과
주식투자 실패를 이유로
아내와 딸들을 무참히 살해하는가 하면,
다른 곳에서는 죄 없는 10대 소녀의 목숨까지
빼앗는 끔찍한 인질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다수의 어린이집에서 되풀이되는
아동학대는 눈에 띄지만 않으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험악한 사회 분위기를 실감하게 하며,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보육교사들의 현실이 적나라하다.

이 모든 불행한 사건들은
한국 사회가 처한 구조적 문제의 표출이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는 오랜 세월을
독재정권 아래에서 신음했지만
미래를 향한 희망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1960년 당시 자산지니계수와
중위소득층 비율로 볼 때
한국은 식민지 경험을 한 신생국 중에서
가장 앞서 있었다.
이는 무엇보다도 일제의 강점,
분단과 한국전쟁 탓에 거의 모두가
헐벗고 가난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농지개혁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한국사회는 토지소유 및 소득의 양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평등했고,
이는 교육을 비롯한 각자의 노력으로
사회적 이동성을 한껏 끌어올려
'다이내믹 코리아'를 이룩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바로 이것이 한국의 놀라운 경제성장의
역사적 배경이며,
우리 사회의 역동성이 살아있던 시기가
'박정희 시대'의 성공과 겹쳐짐으로써
'박정희 향수'라는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면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와 산업화를 공히 이루어냈다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여러 지표는 경제성장의 과실을
온 국민이 공유하지 못하고
소수가 독점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최상위 1% 혹은 10%의 소득 비중을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할 때,
한국은 1990년 중반 이후로
빠른 속도로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선진국 최악의 불평등 국가인
미국에 근접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노인 빈곤률,
비정규직 비중, 영세소기업 비중 등이 모두 1위이며, 조세부담률 및 세금을 통한
소득재분배 효과 최하위라는
불명예스러운 지표들은
격심한 사회적 양극화와
계급구조의 고착화라는 현실을 고발한다.
노동소득분배율 역시 1990년대 중반 이후
급격하게 낮아지고 있으며,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복지 불모'의 무한경쟁 속에서
국민 절대다수의 삶은 피폐해지고
수많은 '미생'들이 절망의 나락으로 치닫는다.
당연한 귀결로서 내수시장의 위축과
성장잠재력의 저하가 불가피하며,
사회적 활력이 사라지고 있다.

참으로 심각한 것은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가
성장 동력의 기반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피땀흘려 이룩한 민주주의의 성과마저
무너뜨리는 현실이다.
우리는 국내 최고의 재벌가인 삼성이
부당한 방식으로 부의 세습을 꾀하는 가운데
법조계, 언론계 등에 대한 로비를 통해
사회 기강을 심각하게 훼손시켜왔음을
잘 알고 있다.
삼성은 세습의 물적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또 다시 상장과 매각을 통해
막대한 부당이익을 챙기고 있다.
또 다른 재벌 한진그룹 일가의
한 사람이 저지른 '땅콩회항' 사건은
경영능력의 검증없이
부의 세습을 넘어 경영권까지 세습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이렇듯 재벌은 수십 년간
국민과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아
성장한 대기업집단을 독점적으로 장악하면서 봉건시대에나 어울리는 세습왕조를 구축하여
우리로 하여금 자본의 독재에 직면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법조계 및 언론계만이 아니라
정관계, 시민사회단체, 노동계, 학계 등을 전방위적으로 '머슴'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그 결과 주체적 시민의식은
현대판 신분제의 굴종적 의식으로 대체되고 있다.

위기의 대한민국을 침몰에서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국민 하나하나가 당당하고 떳떳한
민주시민으로서 우리 사회를 휩쓰는
극심한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를
극복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서 지식인 사회부터
자신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지식인 집단의 성찰적 능력은
공동체가 미처 예상하거나 대비하지 못한
일에 대해 사전에 경고하고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구실을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대학은
지식공동체 아닌 취업학원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대학다운 공공의 비판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언론 또한 엄정한 사실보도를 통해
힘있는 자들을 견제하며
제대로 된 여론 형성에 기여하지 못하고
정치권력과 자본의 비위를 거스를 줄 모르는
한낱 영리기업으로 위축되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은 법조계가 정의를 표방하면서도
사실상 강자의 이익을 대변함을 웅변하며,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및
지역구 의원직 박탈 결정은
스스로 헌법을 어기는 자기부정행위에 다름없다. 검찰의 지극히 정치적이고 편파적인 행태는
덧붙일 것도 없다.

실로 우려스러운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와 정부이다.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
4·16 세월호 참사,
서울시공무원 유우성씨 간첩조작사건,
윤 일병 사망 사고,
대북전단 살포 파동,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무기한 연기,
가계부채 1천조 시대,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사건 등이
지난 2014년의 주요 뉴스들이다.
그리고 4대강사업, 자원외교,
방위산업의 비리 규모는
수십조를 넘어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과연 국정을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는가.
무책임한 국정 운영의 와중에
백년 앞을 내다보는
국가의 미래 설계는
완전히 망각되고 있다.
그 결과 '통일대박'은커녕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관계 개선은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현 집권층은 '종북몰이'와
극우단체의 기막힌 행태가 가져오는
정치적 이익을 근시안적으로 즐기고 있다.

한 마디로 지금 한국은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다.
여기에는 박근혜 대통령 자신과 청와대에
가장 무거운 책임이 있다.
지금 대통령 주변에는
소위 '문고리 3인방'이니 '십상시'니 하는
이들을 포함하여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인물들이
진을 치고 있다.
최소한의 소신을 지키다가
대통령과의 갈등 끝에 이미 물러난
진영, 유진룡 두 전직 장관을 제외한다면
정홍원 국무총리 이하 모든 국무위원들도
국정을 힘있게 이끌기는커녕 허수아비와
다를 바 없는 형국이다.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이제라도 박근혜 대통령은 위기를 직시하고
청와대의 인적 쇄신과 국무총리를 포함한
내각의 전면적 개편을 당장 실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가를 정상화시키고
민주 정치를 복원해야 하며,
더 나아가 경제 민주화와 복지 확대,
남북관계 개선에 관한 대선공약을
실천할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그것만이 집권 3년차에 들어서는
현 정권이 정치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국민들을 도탄으로부터
건질 수 있는 길이다.

우리는 술렁이는 국민 여론에 귀 기울이며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1.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의 인적 쇄신과 전면 개각을 단행하라.

2. 박근혜 정부는 대화와 타협, 상생의 정치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

3. 박근혜 정부는 경제 민주화와 복지 확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대선공약을 실행하라.

 

2015. 1. 22.


 국정 쇄신을 촉구하는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 교수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