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찬의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 읽기’]

2014. 9. 22. 21:29교육, 도서 정보/최효찬의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 읽기

[최효찬의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 읽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1)‘분노의 왕(아킬레우스)’은 어떻게 영웅의 원형이 되었나

매경이코노미 | 입력 2013.05.20 09:17 | 수정 2013.05.20 16:05
인문고전의 시대라지만 실제 인문고전을 정독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창 스펀지처럼 지식을 흡수해야 할 학생들도 인문고전을 제대로 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급기야 서울대가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이란 이름으로 적어도 대학생이라면 이 정도는 읽어줘야 한다는 인문고전 100선의 리스트를 내놨지만 이 또한 리스트에 그칠 뿐이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오른 최효찬 비교문학 박사(전 경향신문 기자)가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 뼈대 읽기'를 시리즈로 엮는다.


↑ 영화 '트로이'의 아킬레우스.

빅토르 위고가 스무 살 때 결혼한 부인 아델 푸셰는 어린 시절부터 소꿉친구였는데 당초 형의 애인이었다. 형은 동생에게 애인을 빼앗기자 그만 미치고 만다. 위고의 형을 미치게 한 것은 모욕감이 아니었을까. 동생에게 애인을 빼앗겼다는 모욕감은 동생을 죽이고 싶은 분노를 일으켰을 테고 그 분노를 어찌할 수 없었던 형은 그만 미쳐버리고 말았을 테다. 미치지 않았으면 끔찍한 '형제 살해'를 불러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받는 치명적인 상처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명예나 자존심이 유린당한 데서 오는 '모욕'이다. 특히 경쟁자나 상관이 지위에 따른 권력을 이용해 부당하게 명예를 손상시키거나 자존심을 짓밟을 경우 모욕감과 노여움에 치를 떨게 되는데 이는 곧 분노와 거대한 복수심으로 바뀐다.

서구 문학의 원형으로 꼽히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Ilias)는 바로 '분노'가 주제다. B.C. 900년경 쓰인 일리아스는 트로이의 성을 의미하는 '일리오스(Ilios)'에서 유래한 것으로 '일리오스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리스 영웅들이 10년간의 전쟁 끝에 트로이성을 함락시킨다는 전설적인 이야기 '트로이전쟁'이 배경이다. 말하자면 당시 구전으로 내려오던 영웅 신화의 전설 '트로이전쟁'에 호메로스가 상상력을 가미해 일리아스를 만든 것이다.

위대한 걸작은 종종 전설이나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트로이전쟁의 전설과 신화를 배경으로 한 일리아스는 영웅 전사의 상징인 그리스의 무장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복수'를 중심축으로 10년에 걸친 트로이전쟁 중 마지막 51일 동안의 이야기를 다룬다.

트로이전쟁의 발단은 한 여인의 '납치'였다. 트로이전쟁 당시 지중해는 그리스의 도시국가 미케네와 소아시아의 트로이가 패권을 겨루고 있었다.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아우이자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에게는 미모의 아내 헬레네가 있었다. 그런데 헬레네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납치되자 이에 분노한 그리스군은 트로이에 복수하기 위해 동맹군과 함께 원정길에 오른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그리스군의 용맹스러운 전사인 주인공 아킬레우스가 그리스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에게 자신의 여종 브리세이스를 부당하게 빼앗기는 일이 벌어진다.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복수를 다짐하면서 돌연 전투 참여를 거부한다. 일리아스는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된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여기서도 알 수 있듯 일리아스의 주제는 바로 '분노(menis)'다. 일리아스는 이 주제를 중심으로 크게 세 단계로 전개된다.

먼저 첫 번째 단계에서는 그리스의 용맹스러운 전사 아킬레우스가 어떻게 분노하게 되는지에 대한 연유가 나온다. 그 이유는 두 번의 회의를 통해 드러난다. 한 번은 그리스 인간 영웅들의 회의이고, 다른 한 번은 신들의 회의다. 인간들의 회의는 아킬레우스가 소집한다. 당시 그리스군 진영은 태양의 신 아폴론의 노여움을 사 역병이 퍼져 있던 상황이었다. 회의에서 예언자 칼카스는 아폴론의 노여움이 아폴론의 사제의 딸인 크리세이스를 차지한 아가멤논 때문이며 크리세이스를 아버지에게 돌려주라고 권유한다. 아가멤논은 테베를 폐허로 만들고 그 전리품으로 크리세이스를 분배받았다.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에게 크리세이스를 돌려주라고 설득하지만 아가멤논은 크리세이스를 돌려주는 대신 아킬레우스의 여종 브리세이스를 뺏어버린다. 아가멤논은 브리세이스를 빼앗으면 아킬레우스의 기가 꺾여 고분고분해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여종을 빼앗기고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기가 꺾이기는커녕 아가멤논을 살해하려고 칼을 뽑는다. 그 순간 지혜의 여신인 아테네가 아킬레우스를 만류한다.

"나는 그대의 분노를 가라앉히려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 그러니 자, 말다툼을 중지하고 칼을 빼지 말도록 하라. (…) 우리에게 복종하도록 하라." 아킬레우스는 이렇게 화답한다.

"여신이여! 마음속으로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복종해야 되겠지요. 신들에게 복종하는 자의 기도는 신들께서도 기꺼이 들어주시는 법이지요." 아테네 여신의 개입으로 아가멤논은 살해되지 않았지만, 대신 아킬레우스는 전투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아테네 여신이 아킬레우스의 칼을 거두게 한 것처럼 때로 인간 영웅은 자신이 내린 결정도 신에 의한 결정으로 돌리기도 한다. 아가멤논은 브리세이스를 빼앗은 것을 신의 의지가 개입한 것으로 변명한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아가멤논에서 헥토르로 향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에게 화해를 제안하지만 거부당한다. 아킬레우스는 여전히 아가멤논에 대한 분노를 거두지 않았다. 이때 아가멤논은 트로이군의 공세로 위기에 처하고 부상을 당한다. 알고 보니 그리스군이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아킬레우스가 어머니인 테티스 여신한테 아가멤논에게 복수해줄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테티스는 아들의 기도를 듣고 제우스에게 달려가 아들의 복수를 간청한다. 그 결과 아가멤논은 트로이성을 공격하던 중 오히려 궁지에 몰리고 큰 부상을 당한다.

전후 사정을 알게 된 아가멤논은 마지못해 아킬레우스에게 화해를 청한다. 하지만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에 대한 분노를 풀게 된 것은 아가멤논의 화해 제안을 받아들여서가 아니다. 자신의 심복 파트로클로스가 전투에 나가 트로이의 적장 헥토르에게 살해되면서다. 이제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아가멤논에서 적장 헥토르로 대상이 바뀌고 결국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칼에 죽는다.

그런데 헥토르의 죽음에도 제우스에 의해 '신의 한 수'가 적용된다. 제우스는 헥토르를 고비마다 돕지만 마지막에는 '영웅적인 인간' 아킬레우스의 '무공'을 드러내기 위해 헥토르를 죽음으로 내몬다. 즉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영웅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희생양이 된 셈이다.

"아아! 내가 사랑하는 인간이 성벽 주위로 쫓기는 꼴을 내 두 눈으로 보아야 하다니. 헥토르 때문에 나는 마음이 아프구나. 그러니 여러 신들이여! 그대들은 잘 생각해서 결정하시오. 우리가 그를 죽음에서 구할 것인지, 아니면 그가 비록 용감해도 아킬레우스의 손에 쓰러지게 할 것인지 말이오." 제우스는 결국 헥토르를 죽게 만들었다. (다음 호에 계속)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비교문학 박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07호(13.05.15~05.21 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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