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혼자들』--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2014. 8. 30. 12:04이런저런 이야기/책 속에 길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번이나 읽으셨던 책이랍니다

 루카치는 만초니가 역사소설 분야의 스승인 월터 스콧을 능가하는 위대한 작가라 극찬했다.
밀라노 폭동, 30년 전쟁,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었던 17세기 초의 롬바르디아를 배경으로 악독한 지방 태수와

 비겁한 교구 사제들 때문에 쉽사리 결혼을 못하는 두 농사꾼 연인의 투쟁을 그린다.

 

만초니 『약혼자들』 한글판 출간| Ξ ˚ 생 사 뱅 。

유라 | 조회 106 |추천 0 | 2004.06.29. 03:50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르반테스가 고전에 내린 정의를 자기 말처럼 즐겨 인용한다. "어린이들은 그것을 손안에 가지고 있고, 젊은이들은 그것을 읽으며, 어른들은 그것을 이해하고, 노인들은 그것을 두고 찬양한다." 다시 말해 고전이란, 세련된 전문가들을 위한 특별한 작품이 아니라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자기 것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교황은 이런 작품으로 단테의 <신곡>, 횔덜린의 <히페리온>을 꼽았으며, 도스토옙스키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약혼자들>의 서두를 외우도록 가르치셨어요"

고전이 반드시 오래된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은, 교황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애독자라는 것으로 증명된다. 또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로 가브리엘 악셀 감독의 <바베트의 만찬>을 들기도 했으니 이자크 디네센이 쓴 동명의 원작 소설도 분명히 좋아할 것이다. 교황은 이 외에도 많은 작가와 철학자를 언급하는데, 아르헨티나의 걸출한 소설가 레오폴도 마레찰이나 일부 비평가들이 '천주교의 프루스트'라고 부르는 요셉 말레그처럼 한국에 번역되지 않은 현대 작가의 작품도 꽤 있다. 다행히 예수회 사제이면서 교황이 특별히 좋아하는 두 명의 현대 프랑스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인 미셸 드세르토의 경우 <루의 마귀들림-근대 초 악마 사건과 타자의 형상들>(문학동네, 2013)을 시작으로, 같은 출판사에서 그의 책이 속간될 예정이다.

교황의 애서 목록 가운데 가장 이채롭고 특별난 것은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약혼자들>(문학과지성사, 2004)이다. 그는 교황이 된 뒤에 이루어진 어느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약혼자들>이라는 책을 세 번 읽었는데 또 읽으려고 지금 책상에 두고 있습니다. 만초니는 저에게 많은 것을 주었지요. 우리 할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 이 책의 서두를 외우도록 가르치셨어요."

1821~1842년 만초니가 세 번이나 고쳐 쓴 <약혼자들>은 토스카나 방언을 중심으로 이탈리아 표준어가 확립되는 데 공헌했으며, 이탈리아 통일운동인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이탈리아의 민족의식을 일깨운 이념·문학 운동)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 작품이 나왔을 때 이탈리아 반도는 여러 공국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밀라노가 주도인 롬바르디아 지역 전체는 오스트리아 지배 아래 있었다. 작가는 검열을 피하기 위해 무대는 그대로 살린 채 시간 설정만 스페인 치하의 17세기로 옮겼다.

밀라노 근교의 레코에 사는 렌초와 루치아는 결혼식 날 아침, 주례를 보기로 한 마을의 신부 돈 압본디오로부터 주례를 볼 수 없다는 통고를 받는다. 스페인 귀족이자 이 지역의 영주인 돈 로드리고가 루치아에게 흑심을 품고 돈 압본디오에게 주례를 서지 말라고 위협했던 것이다. 내막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잠시 돈 로드리고의 마수를 피하기로 하고, 렌초는 밀라노로 가고 루치아는 몬차의 수녀원에 숨는다. 밀라노에 도착한 렌초는 도시에서 일어난 식량 폭동에 휘말려 누명을 쓴 수배자가 되고, 몬차 수녀원에 숨었던 루치아는 돈 로드리고의 사주를 받은 산적에게 납치된다. 평범한 계급의 연인이 세도가(勢道家)의 방해로 혼사 장애를 겪는 이처럼 세속적인 이야기의 처음과 끝에 정의를 위해 고통받는 것을 회피한 마을 신부가 있다.

"편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과 존경받는 강력한 계급에 몸을 맡기는 것이 그가 성직자를 선택하게 된 충분한 이유인 듯했다. 돈 압본디오는 자신의 몸을 바침으로써, 그리고 다소 위험을 무릅씀으로써 얻어지는 그런 이익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의 삶의 방식은 주로 모든 대립을 회피하는 것이었고, 피할 수 없는 대립에는 굴복하는 것이었다. 예외적인 경우, 두 적수 사이에서 편을 들어야 했을 때, 그는 더 힘센 편을 들었지만, 늘 그 뒤쪽에 서 있었는데, 다른 편에게 자신은 자발적으로 그의 적이 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본 압본디오는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저 소심하고 나약한 인간 군상에 지나지 않는다. 대신 그와 정반대 편에 있는 페데리고 보로메오 추기경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루치아를 납치한 산적과 맨몸으로 만난다. 이 장면은 "당신이 무척 좋아하는 사람, 친구를 만나 이야기하러 가는데 유리 상자 안에 들어앉아 그들을 찾아갑니까?"라며 매번 방탄차를 물리쳤던 프란치스코 교황을 떠올려준다. 교황의 표현을 따라 하면, 그것은 "절반의 소통"이다. 이 외에도 작중 추기경은 약자에게 연민을 쏟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많이 닮았다.

이 책이 교황의 수신 교과서였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분명 교황은 그의 덕성을 예수회와 프란치스코 성자의 가르침을 통해 닦았을 테고, <약혼자들>은 수신 교과서보다 더 뛰어난 소설 중의 소설이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 뛰어난 고전들로 교황 방문 효과를 연장하지 못했다는 것. 이 불만은 영혼 없는 자본주의를 일관되게 비판해왔던 교황의 노력을 따라 서점의 매대에 세 번째 구역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교황과 직간접으로 연관된 해방신학이나 종교와 정치를 주제로 한 네 번째 구역이 만들어지지 못한 아쉬움에까지 연결된다.

에코의 (주로 문화비평관련)책을 통해서도 자주 소개됐던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1827년작 <약혼자들>(I Promessi Sposi)이
드디어 한글로 번역되어 나왔네요(전2권, 김효정 옮김, 문학과지성사).

어제 영풍문고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네르바 성냥갑> 구경갔다가
신간코너에 있던 이 책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다시 나온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나
새로 나온 <만티사>(이상 두권은 김석희 역, 열린책들)가
한켠으로 밀려날 만큼 반가운 만남이었습니다.

한글판은 흰색바탕에 표지장정도 깔끔하게 나왔습니다.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네요.
작품 및 작가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미디어서평 붙입니다.

* <약혼자들>의 서지와 만초니에 관해서는 정보가 불일치하는군요.
만초니의 외조부는 <범죄와 형벌>로 유명한 계몽사상가 베까리아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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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탈리아 문학사에서 최초의 근대적인 장편소설로 평가받는 소설. 괴테는 인본주의에 대한 천착과 소박하고 해학적인 문체의 조화로움을 높이 평가했고, 루카치는 만초니가 역사소설 분야의 스승인 월터 스콧을 능가하는 위대한 작가라 극찬했다.
밀라노 폭동, 30년 전쟁,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었던 17세기 초의 롬바르디아를 배경으로 악독한 지방 태수와 비겁한 교구 사제들 때문에 쉽사리 결혼을 못하는 두 농사꾼 연인의 투쟁을 그린다.
19세기는 신학이나 보편적 윤리가 지배하던 세계에서 탈피하여 인간의 이성을 중심으로 문명의 발전을 도모한 시기. 르네상스, 계몽주의, 프랑스 혁명 등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주체적인 인간, 즉 민중이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때문에 <약혼자들>은 전통적인 이탈리아 문학의 폐쇄성을 탈피하여 새로운 근대 문학의 지평을 열어준 작품이 되었다.

[저자소개]

알레산드로 만초니[Manzoni, Alessandro Francesco Tommasso Antonio, 1785.3.7~1873.5.22] : 밀라노에서 태어나 1792년 부모가 이혼한 뒤 어린 시절을 주로 수도원에서 보냈고, 라틴어와 그리스어 및 예수회 학파의 전통적인 문화를 교육받았다. 1805년 파리로 이주, 1808년에 엔리케타 블론들과 결혼하여 10명의 자녀를 두지만, 그중 8명은 만초니보다 먼저 사망했다. 1810년 나폴레옹 황제의 결혼식 도중에 발생한 폭발물 테러로 피신해갔던 산로코 교회에서 종교적으로 강렬한 충격을 받는다. 이후 종교적 갈등과 광장 공포증, 신경 장애로 말을 더듬는 등 심각한 정신 질환에 시달리다가 그해에 로마 카톨릭으로 개종했다. 1833년 첫번째 아내가 폐결핵으로 사망했고, 1837년 재혼했던 테레사 보리마저 1861년 사망했다. 이 같은 가족사의 비극은 만초니의 신앙심을 더욱 굳건히 해주었다. 1873년 산페델레 교회에서 미사를 마치고 나오던 중 미끄러지면서 계단에 머리를 부딪혀 사망했다.
파리에 체류하는 동안 역사 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종교시와 서사, 역사 서정시 및 역사 소설과 희곡(비극) 창작에 몰입했다. 또한 계몽주의 및 이후의 낭만주의 사상가들과 폭넓게 교류하면서 새로운 안목과 통찰력으로 역사를 바라보았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일련의 종교시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오순절"(1822)과 종교 윤리 내용을 담은 학술 논문 "카톨릭 도덕에 대한 논평"(1819), 베네치아와 밀라노 간의 분열과 냉전을 다룬 비극 <카르마뇰라 백작>(1820), 샤를마뉴의 프랑스인들의 침략한 롬바르디아 왕국의 쇠퇴기를 희화적으로 그린 시극 <아델키>(1821) 등이 있다.

김효정 : 1967년에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엘사 모란테의 <역사>의 서사적 특성과 낙관적 비극성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대 이탈리아과 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조선일보 2004.6.5]

알레산드로 만초니가 <약혼자들>을 출판한 것은 1840년이다. 처음 이 소설을 구상한 계기는 1821년 피에몬테 지방에서 일어난 민중봉기였다. 당시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1817년부터 밀라노에서 반(反)오스트리아 결사 조직에 참여하던 만초니는 민중들의 저항 동력을 피부로 느끼면서 이를 소설로 옮겨보기로 작정한다.

소설의 무대는 만초니가 살던 당대보다 200여년을 거슬러 올라간 17세기 이탈리아다. 당시 이탈리아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외세의 지배 곁에 얼쩡거리는 영주들, 그에 결탁한 귀족과 성직자 따위의 지배층들, 그리고 페스트가 당시 이탈리아 민중의 삶을 누르고 있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의 철저한 고증 위에서 그 역사를 살았으리라 여겨지는 평범한 민중을 상상력으로 재현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설의 기본 구도는 만초니가 살던 19세기 전반의 이탈리아로 고스란히 적용된다. 거의 유일한 변화라면 스페인 대신에 오스트리아가 들어선 것이었다.

19세기 전반 이탈리아의 분위기는 낭만주의로 얘기할 수 있다. 이탈리아 낭만주의는 근대민족국가의 수립을 위한 뚜렷한 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실천한 문학운동이었다. 그것은 지식인뿐만 아니라 민중에게 현실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고 국가의 통일과 독립, 민중의 해방이라는 꿈을 실현하려는 국가사업에 그들을 참여하게 만들었다.

만초니는 "약혼자들"에서 평범한 시골 총각과 처녀를 중심으로 이런 거대한 역사의 흐름과 전망을 펼쳐내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렌초와 루치아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지만, 루치아를 좋아하는 지방 영주가 방해하는 바람에 도피를 하게 되고 서로 헤어져 온갖 모험을 겪은 끝에 마침내 다시 만나 행복한 결합을 이룬다.

평범한 설정이지만 곳곳에서 다양하게 얽힌 에피소드들과 치밀한 상황 설정, 그리고 감칠맛 나는 묘사로 소설 읽기의 최고의 재미를 준다. ‘<약혼자들>이 당대 이탈리아에서 이른바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것은 바로 그렇게 시대적인 흐름을 민중의 구체적 모습과 언어로 생생하게 재현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민중 독자들로서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첫 경험이었다. 이탈리아문학사에서 민중을 이만큼 근대적 감각으로 재현한 소설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찾아보기 어렵다.

<약혼자들>의 가치는 역사를 다루는 만초니의 문학적 천재성에 있다. 루카치는 만초니를 인물의 성격 창조, 묘사의 다양성과 깊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작가로 평가한다. 그런 면에서는 역사소설의 대가였던 월터 스콧을 뛰어넘는 경지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스콧은 문학보다는 역사에 중심을 두면서 주인공들의 기본 구도는 역사로, 세부적인 것들은 상상으로 채웠던 반면, 만초니는 상상의 세계를 중심축으로 하여 역사는 필요한 만큼만 가져왔다. 그래서 소설을 들녘의 풍경과 사회의 관습부터 다양한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와 행동까지 섬세하고 재기발랄한 묘사로 가득 채우고, 역사를 죽은 과거가 아니라 숨쉬며 말하는 현재로 살려낸다.

<약혼자들>은 이탈리아의 국민소설이다. 이탈리아 국민이라면 누구나 즐겨 읽고 공감하는 소설이다. 그런 한편 <약혼자들>의 이념적 한계를 지적하는 쪽도 만만치 않다. 예로 그람쉬는 지역문제와 계급갈등 따위의 복잡한 이탈리아의 근대사를 주조한, 흔히 미완의 통일이라 불리는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한계를 담고 있는 소설로 비판한다.

민중의 생생한 재현에도 불구하고, 민중을 가톨릭교의 섭리와 지배층의 계몽주의적 주도에 이끌려 스스로 내면의 삶을 지니지 못하는 보호와 연민의 대상, 그리고 자발적인 실천과 해결의 주체보다는 감상에 찬 민족주의 감정에 휩쓸리는 수동적 모습으로 그려냈다는 것이다.

엇갈리는 찬사와 비판 속에서 <약혼자들>은 20세기 이탈리아 비평계의 최대 논쟁거리들 중 하나로 떠올라 이탈리아 사회와 역사에 대한 반성의 틈을 벌려주었다. <약혼자들>은 그렇게 그 자체로 이탈리아의 현대사를 이루어왔다. 큰 소설 <약혼자들>의 국내 번역으로 이러한 이탈리아의 지적 맥락이 우리에게 펼쳐지길 기대한다. - 박상진 (부산외국어대교수, 이탈리아문학전공)


[경향신문 2004.6.3]

16~17세기 근세 유럽을 무대로 한 수준 높은 역사소설의 번역서들이 최근 잇따라 출간됐다.

알렉산드로 만초니가 쓴 ‘약혼자들’(문학과지성사·전2권)은 이탈리아 문학사에서 최초의 근대적 장편소설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 책은 비평가 루카치가 작가 만초니에 대해 “역사소설 분야의 스승인 월터 스콧을 능가하는 위대한 작가”라는 찬사를 보내게 된 이유가 됐다.

작품의 무대는 17세기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지방. 당시 유럽은 30년 전쟁(신교와 구교가 1618~1648년에 벌인 종교전쟁), 페스트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특히 이탈리아는 밀라노 지방의 폭동까지 겹쳐 농민 등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소설은 레코라는 작은 마을의 돈 압본디오 신부가 불한당들을 거느리고 있는 지방 귀족 돈 로드리고에게 협박을 받는 모습에서 시작된다. 로드리고는 루치아라는 순박한 마을 처녀를 괴롭히며, 처녀가 약혼자인 농부 렌초와 결혼하는 것을 방해한다. 결혼식을 올리려고 마을에서 도망치는 루치아와 렌초, 그리고 루치아를 손아귀에 넣으려는 로드리고 일당의 추격이 펼치지는 가운데 밀라노 폭동, 페스트 등 역사적 사건들이 등장한다.

이 소설이 1840년 출간 당시 비평가들은 “고전처럼 귀족적이고 고상한 주제와 인물을 다루지 않고, 하층민들의 세계를 소박한 문체로 묘사했다”며 혹평했다. 그러나 만초니는 일반 시민들로부터는 깊은 사랑을 받았다. 1860년 그가 죽자 국장(國葬)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 김용석기자

 

 

 

 

 





 

 

 

교황이 세 번 읽은 책

시사INLive | 장정일 | 입력 2014.08.30 11:30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한하기 직전 어느 신문은 "지난해 10종에 불과했던 프란치스코 관련 서적이 올해 현재까지 39종이나 나왔다"라면서, 올해 1월과 6월 사이에 300~ 400권을 오르내리던 판매량이 7월부터 2800권 넘게 치솟기 시작했다고 알렸다. 교황의 한국 방문이 사회 전체에 끼친 영향은 향후 자세한 평가가 따르겠지만, 저 보도만 보자면 교황에게 열렬한 환호와 기대를 표명한 사람들 가운데 출판계와 서점 업계가 빠질 수 없다. 각종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은 교황 관련 서적을 위한 매대를 따로 만들었다. 하지만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이 벌인 특별기획전은 교황 관련 서적을 내지 않은 출판사에까지 교황 방문 효과를 물방울 떨어트리듯 하려는 착상은 없었다.

교황은 자신이 쓴 글이나 대담을 통해 자신의 문화적 취향을 상세히 드러냈다. 좋아하는 음악·영화·그림은 물론이고, 한때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기도 했던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작품과 작가를 열정적으로 예찬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것들이 인간의 창의성을 보여주는 징표이자, 진리의 표현 형태가 여러 가지일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며, 삶과 체험에 대한 깊은 이해가 사회의 결핍된 열망을 드러내고 공동체를 결속시켜주기 때문이다.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이 좀 더 차근하게 기획했더라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쓰거나 교황에 대해서 쓴 책만이 아닌, 그가 읽었던 책들로 두 번째 구역(매대)을 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르반테스가 고전에 내린 정의를 자기 말처럼 즐겨 인용한다. "어린이들은 그것을 손안에 가지고 있고, 젊은이들은 그것을 읽으며, 어른들은 그것을 이해하고, 노인들은 그것을 두고 찬양한다." 다시 말해 고전이란, 세련된 전문가들을 위한 특별한 작품이 아니라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자기 것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교황은 이런 작품으로 단테의 <신곡>, 횔덜린의 <히페리온>을 꼽았으며, 도스토옙스키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약혼자들>의 서두를 외우도록 가르치셨어요"

고전이 반드시 오래된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은, 교황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애독자라는 것으로 증명된다. 또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로 가브리엘 악셀 감독의 <바베트의 만찬>을 들기도 했으니 이자크 디네센이 쓴 동명의 원작 소설도 분명히 좋아할 것이다. 교황은 이 외에도 많은 작가와 철학자를 언급하는데, 아르헨티나의 걸출한 소설가 레오폴도 마레찰이나 일부 비평가들이 '천주교의 프루스트'라고 부르는 요셉 말레그처럼 한국에 번역되지 않은 현대 작가의 작품도 꽤 있다. 다행히 예수회 사제이면서 교황이 특별히 좋아하는 두 명의 현대 프랑스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인 미셸 드세르토의 경우 <루의 마귀들림-근대 초 악마 사건과 타자의 형상들>(문학동네, 2013)을 시작으로, 같은 출판사에서 그의 책이 속간될 예정이다.

교황의 애서 목록 가운데 가장 이채롭고 특별난 것은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약혼자들>(문학과지성사, 2004)이다. 그는 교황이 된 뒤에 이루어진 어느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약혼자들>이라는 책을 세 번 읽었는데 또 읽으려고 지금 책상에 두고 있습니다. 만초니는 저에게 많은 것을 주었지요. 우리 할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 이 책의 서두를 외우도록 가르치셨어요."



↑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이지영 그림</font></div>

ⓒ이지영 그림1821~1842년 만초니가 세 번이나 고쳐 쓴 <약혼자들>은 토스카나 방언을 중심으로 이탈리아 표준어가 확립되는 데 공헌했으며, 이탈리아 통일운동인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이탈리아의 민족의식을 일깨운 이념·문학 운동)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 작품이 나왔을 때 이탈리아 반도는 여러 공국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밀라노가 주도인 롬바르디아 지역 전체는 오스트리아 지배 아래 있었다. 작가는 검열을 피하기 위해 무대는 그대로 살린 채 시간 설정만 스페인 치하의 17세기로 옮겼다.

밀라노 근교의 레코에 사는 렌초와 루치아는 결혼식 날 아침, 주례를 보기로 한 마을의 신부 돈 압본디오로부터 주례를 볼 수 없다는 통고를 받는다. 스페인 귀족이자 이 지역의 영주인 돈 로드리고가 루치아에게 흑심을 품고 돈 압본디오에게 주례를 서지 말라고 위협했던 것이다. 내막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잠시 돈 로드리고의 마수를 피하기로 하고, 렌초는 밀라노로 가고 루치아는 몬차의 수녀원에 숨는다. 밀라노에 도착한 렌초는 도시에서 일어난 식량 폭동에 휘말려 누명을 쓴 수배자가 되고, 몬차 수녀원에 숨었던 루치아는 돈 로드리고의 사주를 받은 산적에게 납치된다. 평범한 계급의 연인이 세도가(勢道家)의 방해로 혼사 장애를 겪는 이처럼 세속적인 이야기의 처음과 끝에 정의를 위해 고통받는 것을 회피한 마을 신부가 있다.

"편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과 존경받는 강력한 계급에 몸을 맡기는 것이 그가 성직자를 선택하게 된 충분한 이유인 듯했다. 돈 압본디오는 자신의 몸을 바침으로써, 그리고 다소 위험을 무릅씀으로써 얻어지는 그런 이익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의 삶의 방식은 주로 모든 대립을 회피하는 것이었고, 피할 수 없는 대립에는 굴복하는 것이었다. 예외적인 경우, 두 적수 사이에서 편을 들어야 했을 때, 그는 더 힘센 편을 들었지만, 늘 그 뒤쪽에 서 있었는데, 다른 편에게 자신은 자발적으로 그의 적이 된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본 압본디오는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저 소심하고 나약한 인간 군상에 지나지 않는다. 대신 그와 정반대 편에 있는 페데리고 보로메오 추기경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루치아를 납치한 산적과 맨몸으로 만난다. 이 장면은 "당신이 무척 좋아하는 사람, 친구를 만나 이야기하러 가는데 유리 상자 안에 들어앉아 그들을 찾아갑니까?"라며 매번 방탄차를 물리쳤던 프란치스코 교황을 떠올려준다. 교황의 표현을 따라 하면, 그것은 "절반의 소통"이다. 이 외에도 작중 추기경은 약자에게 연민을 쏟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많이 닮았다.

이 책이 교황의 수신 교과서였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분명 교황은 그의 덕성을 예수회와 프란치스코 성자의 가르침을 통해 닦았을 테고, <약혼자들>은 수신 교과서보다 더 뛰어난 소설 중의 소설이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 뛰어난 고전들로 교황 방문 효과를 연장하지 못했다는 것. 이 불만은 영혼 없는 자본주의를 일관되게 비판해왔던 교황의 노력을 따라 서점의 매대에 세 번째 구역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교황과 직간접으로 연관된 해방신학이나 종교와 정치를 주제로 한 네 번째 구역이 만들어지지 못한 아쉬움에까지 연결된다.

장정일 (소설가) / webmaster@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