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부엌의 아이들입니다 - 도구를 통해 읽는 음식문화사 GE초이스
2014/08/23 19:02
포크를 생각하다 - 식탁의 역사
비 윌슨 지음, 김명남 옮김, 까치글방, 2013.12
죽음과 세금 그리고 음식
서양에 전해 내려오는 말 중에 “세상에서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뿐이다”라는 게 있습니다. 신분과 지위, 성별과 인종에 상관없이 모두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세금 역시 그렇다는 말입니다. 오래 전에 백성들이 감당하던 세금 납부의 의무가 그만큼 혹독했음을 알려주는 말입니다. 《포크를 생각하다》의 저자인 비 윌슨은 그 말을 ‘세상에서 확실한 것은 죽음과 음식뿐이다’로 바꾸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누구도 음식을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에 주목한 것이죠. 그 사실이 《포크를 생각하다》의 출발점입니다.
“음식은 연료이고, 습관이고, 고급한 쾌락이자 저급한 욕구이고, 일상에 리듬을 부여하는 요소이자, 부족할 때는 고통을 안기는 요소이다. 거식증 환자처럼 음식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있어도 인간이 살아있는 한 허기에서 탈출할 도리는 없다. 우리는 누구나 먹는다. 그런데 이 필수적인 인간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은 때와 장소에 따라 극단적으로 다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차이는 도구들이다.”
《포크를 생각하다》는 위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에 대한 대답입니다. “가장 큰 차이는 도구들이다.” 부엌과 식탁 위를 차지한 도구들. 그 도구들은 각 문화권에 따라, 또 인종, 민족, 계급, 종교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발전했습니다. 한편 각기 다른 모습으로 진화한 부엌과 식탁의 도구들은 역으로 음식문화의 차이를 더 크게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도구들은 스스로 차이를 드러내는 지표이면서 그 차이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이지요.
포크와 나이프가 놓인 서양식 식탁과 숟가락과 젓가락이 놓인 동양식 식탁을 떠올려 보세요. 그런 도구 없이 손으로 음식을 먹는 인도를 거기에 더해도 좋겠네요. ‘도구’의 차이에 따라 먹는 방법도, 먹는 음식도 그리고 그 음식에 대한 생각도 모두 달라진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겁니다. 《포크를 생각하다》는 부엌과 식탁의 도구들이 우리가 먹는 음식, 음식을 먹는 방식, 음식에 대한 감정에 미친 영향을 살핍니다.
요리로의 도약, 맛있는 진화!
음식에 대한 친숙함만큼이나 음식에 대한 이야기들도 친숙합니다. 음식의 연원과 역사를 다룬 책도 많고, 맛집을 소개하는 기사들도 잡지와 인터넷에 차고 넘칩니다. 무엇인가를 먹고 마시는 자리에서도 음식 이야기는 가장 재미난 이야기 거리 중 하나이지요. 그렇지만 《포크를 생각하다》처럼 도구에 집중한 책은 거의 없습니다. 정작 음식문화의 본령을 결정지은 요소들은 도구인데 본말이 전도되었던 것이지요. ‘음식’을 이야기하는 쪽에서 도구와 기술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처럼, 전통적인 기술사 역시 음식이나 요리에 별로 관심을 쏟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중의 소외에서 비 윌슨은 열렬히 도구들을 방어하고 찬양합니다.
고대 이집트 람세스3세 베이커리
서양 중세시대 부엌 도판
냄비를 예로 들어보죠. 냄비에 채소를 삶는 것은 너무나 손쉬운 일이어서 이 과정 속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뭔가를 삶는다는 생각 자체가 인류에게는 엄청난 진화였습니다. 음식을 삶아 먹음으로써 인류는 치아가 모두 없어진 후에도 생존할 수 있게 되었지요. 우리는 냄비 없는 부엌을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음식들이 이 기초적인 기구에 달려 있는지 잘 깨닫지 못합니다.
중국 원나라시대 냄비
“삶는 것은 가장 따분한 방법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기술의 한 형태로서 삶기는 결코 뻔하지 않다. 냄비는 요리의 가능성을 변혁시켰다. 무엇인가를 액체에 담가 끓인다는 것은-액체가 풍미를 더하든 말든-불만 쓰는 것에 비해서 장족의 발전이었다. (중략) 냄비는 먹을 수 있는 재료의 폭을 엄청나게 넓혔다. 냄비가 없을 때는 유독하거나 소화하기 힘들었던 식물들이 몇 시간 끓이게 되고부터는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바뀌었다. 냄비는 단순한 가열에서 요리로의 도약을 뜻한다.”
대략 1만여 년 전에 토기 냄비가 등장하면서, 인류는 마침내 ‘요리’의 시대에 도달했던 것입니다. 이만 하면 기술의 진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로 취급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부엌과 식탁의 도구들이 조명 받지 못했던 것은 별로 근사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저자가 이렇게 투덜거렸습니다. “숟가락은 스위치로 작동되지도 않고, 괴상한 소리를 내지도 않는다. 특허나 보증서도 없고, 미래주의적이거나 번쩍거리거나 기발한 점도 없다.”
고려시대 청동 숟가락, 젓가락
부엌과 식탁 위의 도구들은 분명 소박한 것들입니다. 그 도구들은 스스로 반짝거리지는 않지만 우리 삶을 반짝이게 하지요. 저자의 말처럼 우리 중 누구도 음식을 벗어나서 살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는 모두 부엌과 식탁의 아이들인 셈입니다.
《포크를 생각하다》에서 부엌과 식탁 위에서 벌어졌던 기술사와 정치경제의 흥미진진한 만남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너무나 익숙해서 쉽게 지나쳤던 그 도구들 이야기가 우리의 식탁을 더 풍성하게 만들 것입니다. 인류를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고 부르는 이유를 식탁의 도구로부터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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