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원/경희대 교수·비교정치학세월호 참사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 등을 통한 사과와 함께 해양경찰 해체, 국가안전처 신설, 행정혁신처 신설, 사회 부총리(副總理) 신설, 국정조사 등 ‘국가 개조’ 수준의 해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상처 회복에 시간이 많이 걸릴 뿐 아니라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화·정보화·
후기산업화 등으로 표현되는 전환기적 시대 상황은 불확실성에 기반한 ‘탈(脫)신뢰사회’를 동반하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더더욱 어렵다.
탈신뢰사회란, 단순히 ‘믿지 못하는 사회’가 아니라 ‘믿음이 가능하지 않은 사회’를 말한다. 즉, 종전의 과학·지식·전문성·법·제도·공동체 등 국가의 힘과 권위 및 가치가 점점 의문시되는 사회를 가리킨다. ‘탈신뢰사회에 있어서 위험관리’(2005년)의 저자 로그너 로프스테드에 따르면, 정부와 관료들의 권위가 축소되고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그 어느 때보다 극대화되는 시대상황을 말한다.
우리 사회도 개인의 권리의식이 커지는 민주화에 더해 이 같은 전환기적 시대상황을 맞고 있다. 공동체가 약해지고 개인이 파편화·유동화함으로써 그 어느 때보다 사회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개인주의와 이익 갈등이 첨예화하는 가운데 분열·
불안·불신의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상황에서는 집권 세력이 좌파든 우파든, 진보든 보수든 관계없이 누구든 구조적으로 국정(國政)을 운영하기 힘든 ‘통치 불능 상태(ungovernability)’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러면 갈수록 심해지는 정부 불신에서 벗어나고 세월호 침몰 사고가 던진 당면 과제와 시대적 과제를 치유하기 위한 방향과 방법은 무엇인가.
대통령이 제시한 처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정부의 신뢰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 불신의 원인은, 단순한 개인 리더십이 아니라 변화한 시대상황에 부응하지 못하는 전문가·관료·정부제도 등 ‘낡은 국정 운영의 패러다임’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새로운 국정 패러다임 제시와 정부 혁신이 필요하다. 그 핵심은 신뢰 거버넌스 구축과 제3섹터 중앙부처 신설을 통한 국정 운영의 혁신이다.
정부 관료와 시민의 관계가 새롭게 설정되는 국정 운영의 틀을 짤 필요가 있다. 민주화 이전에 그 관계가 권위적이고 하향적으로 관료는 명령을 내리고 시민들은 이를 추종하거나 수동적인 대상으로 동원됐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는 둘의 관계가 좀 더 수평적이고 상향적으로 달라졌다. 정부 관료와 시민의 이분법적 구분도 상당히 약해졌다. 따라서 관료와 시민은 리더십과 동시에 팔로어십을 동시에 겸비하지 않으면 국정이 마비되는 상황이 됐다. 그런 만큼 둘 간의 관계가 민·관(民官) 협력이 가능하도록 새롭게 설정될 필요가 있다. 특히 리더십과 팔로어십의 겸비와 민·관 협력의 제도화를 통해 관료와 시민이 편협하고 부분적인 분파의식(partisanship)에서 벗어나 국가의 주인의식(ownership)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영국이 ‘제3섹터부(部)’와 ‘시민사회청’을 두고,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시민참여국’을 설치했다는 사실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토니 블레어 정부는 2006년 제3섹터(자원봉사조직 및 공동체조직, 자선단체,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를 활성화하고 지원하는 제반 정책을 수립·집행할 컨트롤타워로 제3섹터부를 설치했다.
지금은 ‘정부 탓’ ‘국민 탓’이라는 분파적인 접근을 할 게 아니라, 초당파적인 협치(協治)를 통해 국가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지키기 위한 신뢰 회복책을 실천하는 데 힘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