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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간 인문학…--김영선·이경란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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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가장 좋은 배움터다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 마을로 간 인문학…김영선·이경란 엮음 | 당대 | 359쪽 | 1만6000원

영국의 하트랜드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교사다. 학교를 시작할 때 마을의 도공에게 물었다. “정규 도자기 선생님을 모실 여유가 없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오셔서 우리 아이들을 가르쳐주시겠습니까?” 도공은 대답했다. “네, 기쁘게 하지요. 날마다 도자기만 만드는 게 지루해졌습니다. 하루를 비워서 아이들을 가르치겠어요.” 이런 식으로 마을의 농부, 목수 등을 찾아다녔고 그 사람들은 학교에 와서 실제로 필요한 것들을 가르친다. 마을 사람들은 자기들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를 자기들의 학교라고 느낀다. 이 학교에서는 마을 전체가 우리의 학교라고 말한다. 학교를 공동체의 중심에 두고 아이와 어른들이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이 학교의 모델을 구현하려는 동네가 있다. ‘마을에서 인문학을 하는’ 서울 마포의 이야기다. 2012년 마포 주민들과 마을 활동가들, 연구자들이 머리를 맞대 ‘마을배움@네트워크 판’을 내놨다. ‘판’은 마포지역 배움터들이 모여 만든 교육네트워크다. 마포지역에서 20년에 걸친 다각적인 교육 운동의 성과가 집적된 결과로, 마포지역 70개의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지난 27일 서울 서교동 창비카페에서는 연세대 국학연구원 인문한국(HK) 사업단 주최로 ‘마을로 간 인문학’이라는 주제의 워크숍이 열렸다. ‘마을로 간 인문학’은 ‘판’이 내놓은 책의 제목이면서 동시에 ‘판’ 프로젝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이날 워크숍에서 <마을로 간 인문학>의 필자인 김장환·이경란 ‘판’ 운영위원은 ‘판’이 만들어진 과정과 1년간의 여정에 대해 소개했고, 김영선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와 허성우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 등은 마을 공동체에서 ‘배움’을 어떻게 함께 지향해야 하는지 자유롭게 얘기를 나눴다.


■ ‘마을배움@네트워크 판’이 되기까지

2001년 마포두레생협은 아이들을 지역에서 계속 키우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잘 키우자는 바람으로 우리마을꿈터를 설립했다. 2004년 우리마을꿈터는 사교육이 범람하는 현실에서 어떤 교육을 할 것인지 논의했고, 내 몸과 마음 다루기 및 치유하기, 자연과 소통하기, 사회관계, 부모들의 품앗이 교육을 핵심 교육영역으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마을에서 평생교육’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러나 독자적인 재정 안정화가 어려운 구조였고 상근자를 두기도 어려웠다. 우리마을꿈터는 2008년 네트워크형 프로그램의 연대체인 ‘성미산마을배움터’를 만들면서 재구성됐다. 지역의 교육 자원을 배분하는 방식이 특정 공간 중심의 ‘센터형’(우리마을꿈터)에서 자원이 있는 곳을 서로 연결해주는 ‘네트워크형’(마을배움터)으로 전환된 것이다. 배움터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사람들은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이 가르치고 배우는 평생교육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런 네트워크적인 성격이 점점 사라져갔다. 운영비의 문제였다. 결국 참여하던 단체들은 다시 자기활동 중심으로 돌아갔고 교육연대 활동은 중단됐다.

2012년 ‘마을인문학’이라는 제안이 나왔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HK 사업단, 세교연구소, 성미산마을 활동을 하는 단체 ‘사람과마을’이 한자리에 모였다. “성미산마을만이 아니라 마포지역 전체로 마을인문학 네트워크의 교육활동을 확대하고 나아가 각 마을들을 연결하면 좋겠다” “사회에 참여하고자 하는 연구자들이 네트워킹해 마을에서의 배움과 마을 연구의 지원체계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이었다. 마을 주민-마을 활동가-마을 단체들-연구자들 간의 긴밀한 관계망인 ‘마을배움@네트워크 판’은 이렇게 탄생했다.

지난 27일 서울 서교동 창비카페에서 열린 ‘마을로 간 인문학’ 워크숍.


■ 왜 마을, 배움, 네트워크일까

그렇다면 왜 마을이고 왜 배움이고 왜 네트워크일까. 김장환 ‘판’ 운영위원은 “도시인들은 베드타운에서는 잠만 자고 오피스타운에서는 일만 하는 진자 운동을 하고 있다”며 “삶의 공간을 회복해 마을에서 가치 있는 것을 얻는 것, 즉 마을이 배움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의 교육은 점수를 위한 교육, 남을 이기기 위한 교육이고 학교 교육은 서비스가 되었다는 문제의식이다. 김 위원은 “교육을 통한 배움이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외시키는 현상을 가져왔다”며 “내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필요한 자발적인 교육이라는 개념에서 배움이라는 말을 썼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판’의 핵심은 엮는 것이다. 김 위원은 “흩어져 있는 좋은 걸 잘 꿰었을 때 각각의 영역 이상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속버스터미널을 예로 들면 ‘판’을 이해하기 쉽다. 각각의 버스회사가 저마다 노선을 만들어 운행하는 터미널에서는 고속버스들의 운행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또 그곳에서 차를 타고 각자의 목적지로 향한다. ‘판’도 이와 같이 각각의 교육 단위들이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모아서 배움을 원하는 사람들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해주는 교육 프로그램의 터미널이자 플랫폼이다.

‘판’은 먼저 마을을 인문사회과학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으로 마을인문학 강좌를 진행했다. 그리고 2013년 2월 첫번째 ‘판’ 홍보물이 발간되었다. 여기에 마포두레생협, 마포FM, 우리마을꿈터, 동네책방 개똥이네책놀이터 등 8개 단체의 28개 프로그램이 참여했다. 1년이 지나고 현재 6호까지 홍보지가 발행되었고 참여하는 단체는 70개로 늘어났다.


■ 마을인문학이란

책 <마을로 간 인문학>은 ‘판’이 기획되고 실행된 보고서이자 인문학적 해석의 결과물이다. 책은 두 가지 축으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지역에서 이뤄져 오던 20여년에 걸친 마을교육의 경험과 최근의 지역교육 현실, 마을에서의 배움을 네트워크로 재구성한 ‘판’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의미, ‘판’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또 하나는 배움의 목적과 방향이 달라질 때 사람들의 세계인식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살펴보는 접근이다. 바로 ‘마을인문학’이다.

이경란 ‘판’ 운영위원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생활과 사유의 전환, 배움의 방식의 전환 그리고 연구의 전환을 마을인문학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소개한다. 마을인문학에는 두 가지 연구의 축이 있다. 하나는 연구자들이 현장과 결합함으로써 자기의 언어를 바꾸는 것, 또 하나는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 언어에 자신감을 갖고 언어화시켜 사회적으로 자신의 연구를 발표하는 것이다.

우선 연구자들은 마을인문학을 통해 변화한다. 김영선 교수는 “인문학 연구자는 사회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실천의 의무가 있고, 마을로 간 인문학을 통해 다시 대학에서 새로운 인문학적 감수성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며 “이는 대학 안의 강단 인문학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주민들과 활동가들도 마을인문학을 통해 새로운 언어를 발견한다. 위성남 마포마을넷 운영위원장은 “새로운 커뮤니티 활동과 마을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경험과 현상들을 설명하고 해석할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하다”며 “새로운 언어의 생산은 지역활동가와 전문연구자가 서로 협동해야만 가능한 작업으로 이 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당사자들 스스로의 주체화 과정과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연구자들, 주민들, 활동가들 사이에 “생활-배움-연구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김 교수는 “마을 현장에서 오래 축적된 교육 실천의 경험을 통해 지역 현장에서의 실천과 제도권의 인문학 연구가 선순환할 수 있는 연구방법론을 탐색했다”며 “이 책은 대학과 마을, 연구자들과 주민들의 오랜 협동작업의 결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시마을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새로운 인문학 공동체의 선도적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 아직도 갈 길은 멀다

가장 큰 문제는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김장환 위원은 “저녁이 없는 삶을 살다보니 우리 스스로 여유가 너무 없다”며 “그러나 스스로 자꾸 여유를 만드는 게 필요하고 우리가 만든 마을공동체가 여유를 만드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연대의 경험이 취약하다는 약점도 있다. 김 위원은 “연대하는 습관이 부족해 함께 뭔가를 한다는 것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실질적으로 재정을 확보하는 것이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힘을 담보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 2013년 10월 ‘판’은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원사업 공모에서 1800만원을 지원받았다. 2014년 9월까지는 안정적으로 홍보물을 제작할 수 있는 금액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외부 지원에 의존할 수는 없다. 결국 네트워크의 질은 재정 자립에 달려 있다.

개인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허성우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는 “책은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제언 중심인데, 더 나은 사회도 좋지만 더 나은 인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로 가야 하지 않을까”라고 조언했다. 허 교수는 “어떤 인간들이 사회를 구성하는지가 그 사회의 내용과 형식을 결정한다”며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고 혁신시키는 게 어렵다는 측면에서 더 나은 인간되기에 초점을 맞춰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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