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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희망은 고르게 가난한 사회에---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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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희망은 고르게 가난한 사회에

특별인터뷰/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대담자-이도전 교무, 정리-원광 편집부
대담일시-2001년1월30일

월간 원광 2001년3월호

만남

눈이 온다는 소식에 걱정을 했는데, 눈을 떠보니 비가 온 위에 눈발이 날려 도로가 반질거렸다. 부임 후 첫 취재라서 걱정 반 설레임 반으로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대구를 향했다. 가는 도중 몇 군데 사고를 목격하면서 조심스러웠지만 익산에서 대전까지 가는 동안 내내 한 폭의 산수화 같은 자연의 신비함이 모든 시름을 놓게 해주었다. 대구에 당도해 보니 좁은 땅 덩어리라 생각했는데 눈 한 점 없는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김종철님(55). 영문학을 전공한 영문학 교수(현 영남대)이자 문학평론가가 본업이지만,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는 금년 1월까지 격월로 56호를 낸 <녹색평론>을 통해서다. 가르쳐 준대로 수성경찰서 뒤편에 있는 사무실을 찾았다. 직원의 말 대로라면 정확한 위치인 듯 한데 <녹색평론사>란 간판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동안 두리번거리다가 철제 대문에 자그마한 <녹색평론>이란 팻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동안 사용하던 것이 낡아서 얼마 전에 새로 한 것이라 했다. 선입견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걸 적게 쓰려는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일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녹색평론>직원들과 김 교수를 소개해준 원불교 환경운동의 선두주자인 장도형 교도(부산교당)와 인사를 나누는 동안 손으로만 매만진 듯한 자연스런 머리에 좀 메말라 보이는 김 교수가 들어왔다.

그는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에서 어떻게 환경운동가가 되었는지에 대한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녹색평론>을 발간하는 일도 넓은 의미에서는 문학활동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글쓰는 능력하고, 글 읽는 능력을 조금 더 의미 있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우리가 영문학 관계 논문 하나 더 만들면 무엇합니까. 학창 시절부터 나는 순수 학문에 대한 매력은 별로 느끼지 못했어요. 소위 영문학을 공부한다고 하면서 저는 늘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녹색평론>을 펴내기 시작한 뒤로 그런 콤플렉스가 좀 줄어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평생을 영문학이나 문학평론에 골몰하다가 간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겠지만, 그러나 연구실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고 쓰면서 지나기에는 우리의 전체 삶이 너무나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생각에 갈수록 조바심이 났습니다. 인간생존의 자연적 토대 자체가 빠른 속도로 붕괴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든 다른 사람들이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겠지 하고 눈감고 지낼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거의 강박적으로 붙들려 지내다가 결국 내가 가진 능력의 한계 내에서 해볼 수 있는 작업이 잡지 발간이라고 결론을 내렸던 거지요.

잡지를 내면 나와 비슷한 고민에 싸여있을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정신적으로 교감하면서, 이 기막힌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지혜를 얻고, 대안을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겁니다."

<녹색평론>

<녹색평론>은 1991년 11월 창간되어 격월로 통권 56호를 발행, 금년 11월이면 꼭 10년이 된다. 물질문명은 물론이고, 정신문명까지 오염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분열을 치유하고 공생적인 문화가 유지되는 사회의 재건에 노력하는 잡지다.

따라서<녹색평론>은 자본주의 문명이 환경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문제에 대한 거부는 물론 산업문명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탐욕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삶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주장해왔다.

“<녹색평론>의 지향점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가난하게 살자는 것이지요. 이런 말 속에 엄청나게 심오한 철학적인 함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있는 그대로 단순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끊임없는 경제성장을 해오는 동안 소비를 많이 해야 좋은 삶이고, 진보된 삶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 것이 핵심적인 과오라는 거지요.

생각해 봅시다. 첫째, 경제적 부라는 것은 항구적인 지속성이 없어요. 미국이고, 일본이고, 한국이고 간에 이런 식의 팽창경제로서는 언젠가 그리 머지 않은 장래에 파탄이 온다는 것은 틀림없는 일입니다. 단지 파탄이 먼저 오고 지구가 사느냐, 지구가 죽으면서 사회적, 경제적 파탄이 나느냐 하는 차이만 있겠지요. 이대로 가속적으로 자연을 고갈시키고, 오염시키면서 생물학적 존재인 인간이 살아남을 수 없는 건 자명하단 말이에요.

자동차만 해도 그래요. 사람마다 자기 자동차 가지고 사는 생활이라는 건 생각해보면 이만 저만 미치광이 짓이 아닌데, 이게 당연시되는 상황이 얼마나 더 가겠어요. 이런 점에서 당장 걱정은 중국의 경제발전입니다. 중국의 그 수많은 인구가 자동차 중독증에 걸린다고 생각해보세요. 아마 지구는 그날로 끝장이 아닐까요. 청정에너지 따위로 대응해 보겠다고 하겠지만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이젠 이북도 산업화를 본격화해 볼 모양인데, 참으로 심란스럽습니다. 이러다가 큰 재앙이 닥칠 거라고들 하지만, 사실상 지금 당장 여기가 지옥이 아니고 뭡니까. 언론에서는 쓰레기를 불법매립했다고 고발도 하고, 환경에 관심있는 척하지만, 따지고 보면 불법매립과 합법매립의 차이라는 게 어디 있어요? 환경당국의 규정에 유독물질을 버릴 때 침출수가 새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영원히 새지 않게 하는 방법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핵폐기물을 버릴 데가 없는 것처럼, 모든 다른 유독성 쓰레기도 버릴 데가 없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해요. 그러니까,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순환형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지요. 지금도 늦었다는 사람이 많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그런 자연스런 순환형 사회로 돌아가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지요.”

그가 주장하는 순환형 사회는 지하에서 석탄, 석유를 파 올리고, 이른바 온갖 지하자원을 캐내어 산업생산과 소비의 무한정한 확대를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라 인간생존의 자연적인 한계를 근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태양에너지에 토대를 두고 그것이 허용하는 한도 내의 생활에 만족하면서 살아가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자연히 우리의 경제 생활이 축소되어야 하고, 가난을 즐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그는 가령 개인자동차를 굴리고 다니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물질생활은 가난하게, 내면생활은 풍요로운 삶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한 삶의 형태를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생활이나 티베트의 고원에서 사는 토착민들의 삶 속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물질적으로 가난하면서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적극적으로 선택하려면, 사상적으로 무장이 되어있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 모범적인 답이 그들의 삶 속에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인디언이 가장 위대한 민족이라고 말한다. 인디언들은 살고 죽는 문제를 자연과 함께 하고 있는 그 자체로 보고있기 때문이다. 그는 1991년 <녹색평론>창간호 머리말 다음 첫 번째 글로 인디언 추장 시애틀의 글을 게재했다.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이 총을 들고 와서 우리 땅을 빼앗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백인은 죽어서 별들 사이를 거닐 적에 그들이 태어난 곳을 망각해버리지만, 우리는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땅을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우리 홍인(紅人)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그는 인류의 미래가 있으려면 땅을 필요한 물자를 얻고 이용하는 관점이 아니라, 땅을 어머니라고 생각하는 영성적인 문화가 보편적인 것으로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한 문화를 토대로 할 때 근본적으로 농업이 중심이 된 순환적인 사회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수돗물 불소화

그는 수돗물 불소화에 대한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사회적으로 불소화 자체에 대한 관심도 적고, 그것을 문제로 보는 사회적 인식이 부각된 바도 없다. 오히려 이따금씩 신문에서 수돗물에 불소를 타서 충치를 예방한다는 식의 간단한 긍정적인 뉴스에 오르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도 예전엔 불소가 유해물질인 줄을 몰랐다. 단지 수돗물에 화학물질을 시민들의 동의도 얻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넣는다는 것이 못마땅하게 느껴졌을 뿐…. 그렇게 막연히 지내다가 80년대 말쯤에 영국에서 나오는 세계적인 환경전문지 <에콜로지스트>라는 잡지에서 특집으로 불소문제를 다룬 것을 보고 그게 유독성 물질이고, 선진국에서는 오랫동안 논란거리가 되어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당시의 정치, 사회적인 상황이 이 문제를 제기할 만한 상황이 아니어서 유야무야로 접어두고 지내왔다. 그러다가 97년도에 데이비드 브라워라는 세계적인 환경운동가가 이끄는 단체에서 발간되는 미국 환경잡지에서 불소 문제를 특집으로 다룬 내용을 또 대하게 되었다. 이때서야 이 문제가 그냥 있을 문제가 아님을 알고 관련문헌들을 국내에 번역,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수돗물 불소화 반대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러자 즉각적으로 불소화를 주요 사업으로 추진해오던 치과의사 단체가 격렬하게 반발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을 포함해서 이른바 보건전문가들은 수돗물 불소화가 효과적이고 안전하고 경제적인 공중보건 프로그램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1945년 수돗물 불소화를 도입한 이후 유해성과 윤리성의 문제를 두고 세계적으로 논란이 계속되어온 것은 틀림없으며, 1997년에는 미국의 환경청 본부에 소속된 과학자들이 그들의 노조의 이름으로 불소화 시행의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그는 불소화의 유해성 여부에 대한 명확한 판정을 떠나서 국제적으로 50여년 동안 논란거리로 되고 있는 프로그램을 의사가 개별적으로 환자에게 처방하는 방법도 아니고 수돗물에 무차별적으로 넣는 일은 마땅히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치과의사 단체를 비롯하여, 의사협회, 보건복지부 등 소위 의료전문가 집단들은 하나가 되어 들은 척도 않고 꼼짝달싹도 안한다며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모 일간지에서는 의학 전문기자가 이 문제에 대한 특집기사에서 수돗물 불소화 프로그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있었어요. 과학기술 시대에 전문가들의 견해를 존중하는 것이 올바르지, 비전문가들이 떠들고 나서는 것은 문제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나는 과학기술 시대가 심화될수록 일반 공중의 깨어있는 의식이 갈수록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산업사회의 구조적 비리로 인해 이른바 전문가들이 신뢰할 수 없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곤 한다는 것은 이런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문제이고, 설령 전문가들이 양심적으로 행동한다 하더라도 어떤 문제의 위험성이나 유해성 여부를 명확히 가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많은 과학자들의 증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과학기술을 도입할 때는 무엇보다도 사전예방의 원칙에 입각해서 신중을 기하는 것이 제일 필요한 일인 거지요.

98년 가을에 서울시에서도 수돗물 불소화 때문에 공청회를 했습니다. 그 때 내가 놀란 것은, 거기 불소화 추진측 토론자로 참석한 치과의사들이 불소가 독극물질이라는 사실에 대해 매우 둔감하거나 심지어 그런 사실 자체에 대해 무지한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또하나 놀란 것은 그때 치과의사들과 함께 불소화 찬성 쪽의 발표자로 나온 어떤 대학의 예방의학과 교수라는 사람이 불소화 같은 것은 전문가들이 알아서 할 문제이지, 이런 식으로 공청회를 열어서 토의할 문제가 아니라고, 매우 오만한 태도를 취하던 모습입니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전문가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의 수준이 저 정도라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전혀 공민적 감각이 없는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물은 누가 먹는데 시민들이 토론할 문제가 아니라고 하니…. 불소는 건강상태에 따라 일부는 우리 몸에 축적이 되고 일부는 빠져나가는데 축적 양이 많아지면 초기증상은 관절염이 온다거나, 심하면 뼈가 휜다거나 대퇴부 골절이 쉽게 발생하는 등 뼈의 이상이 오고, 여러 종류의 암의 원인이 될 수 있고, 뇌신경에 손상을 끼칠 수 있고, 송과선 분비 장애, 정서장애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등 많은 연구결과가 보고되어 있습니다. 설령 어린이들의 충치 예방에 좋다고 해도 극히 일부라도 치명적인 질병에 걸린다면 그것을 누가 책임질 겁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로 합법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아닙니다.

효과면에서 따지더라도, 불소화의 충치예방 효과는 미미하다는 사실이 점점 확실히 밝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보건당국의 보고서조차도 불소의 충치예방 효과는 내복에 의한 효과가 아니라 접촉에 의한 효과 즉, 먹어서가 아니라 불소치약이나 양치질에 의한 효과라는 연구결과를 인정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더욱이 그동안 오랫동안 불소화를 시행하다가 중단한 예컨대 핀란드나 동독의 일부지역 같은 곳에서 조사해본 바에 의하면 불소화 중단 이전이나 이후에 충치발생률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다는 연구보고도 발표되었습니다. 미국치과의사 협회에서 나온 기관지를 보면 수돗물 불소화 지역에서 오히려 치과 비용이 증가했다는 기록도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소화 추진측 자체가 그들의 논리의 빈곤함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겁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수돗물 불소화를 다년간 일부지역에서 시행하다가 10년 이상의 치열한 시민운동의 결과 의회의 결정으로 불법화되었습니다. 반대 운동에 거기서는 의사들이 앞장 섰더라구요. 세계적인 생화학자로서 30년 이상 미국의 국립암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있다가 은퇴 후 불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바 있던 딘 버크라는 미국의 원로 과학자가 네덜란드 공영 텔레비젼에 출연하여 수돗물 불소화는 간단히 말하여, "대량 살상행위"라고 선언했던 일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양심적인 과학자들이 이 문제에 제발 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합니다.

불소화로 인한 첫 증상은 반점치지요. 초기에는 작은 흰 얼룩처럼 보이다가 심하면 꺼멓게 얼룩이 집니다. 반점치라는 말을 쓰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입니다. 미국이나 그밖의 다른 나라에서는 치아불소증이라고 부르는데, 이걸 반점치라고 부른다는 것은 질병하고는 무관한 느낌을 주려는 의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치아가 그 만큼 변질이 생겼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의 골조직을 포함하여 신체의 다른 곳에도 이상이 생겼다는 증거로 보는 게 상식일 겁니다.”

인간 배아 복제, 댐 건설

영국의회는 사회종교단체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간배아를 이용할 수 있는 연구 범위를 확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연구범위를 유전질환 이외의 질환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찬성론자는 여러 가지 질병에서 고통받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또한 반대론자는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로 받아들일 수 없을 뿐 아니라 인간복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를 하고 있다. <녹색평론>에서도 56호에 생명복제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의 입장을 들어봤다.

“원불교는 어떤 입장인지 궁금합니다. 종교윤리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반대하리라고 보통 생각하고 있겠지만 오히려 종교인들 가운데도 긍정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은 것 같아요. 문헌을 읽어보니 종교인 가운데 특히 불교의 경우는 워낙 사상이 심오해서 그런지 존경받는 스님들 가운데도 "장기이식은 보살행위다. 따라서 뇌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발언도 나오는 것 같고, 기독교의 경우 역시 장기이식이나 유전자 치료 등에 대해 "그것이 사랑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주장들은 사실 논리적으로는 반박하기가 어려운 데가 있습니다. 생명공학의 경우와는 직접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경우지만, 레이건 대통령 당시 백악관 참모중 원리주의 기독교 신자가 있었는데, 그가 레이건 행정부의 반환경적인 정책을 비판하는 시민단체들을 공격하면서 뭐라고 했느냐 하면, "환경파괴도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했습니다. 세계가 환경위기로 파국을 맞고, 최후의 날이 와서 하나님께로 우리가 돌아간다면, 그런 날이 빨리 오는 것을 우리가 반겨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은 논리적으로는 나무랄 데가 없는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게 정신병자의 논리라는 건 우리가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우리가 두뇌 중심의 논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우리의 직관적인 능력을 신뢰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우리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메마른 논리만을 추구하고, 그것을 일방적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분위기에서는 미치광이의 논리, 완전히 비인간적인 논리도 합리적인 언어로 통할 수 있는 것처럼 활개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공학 문제는 앞으로 점점 심각해질 것이 분명한데, 유전자 조작기술이나 생명복제 기술이 갖는 세부적인 문제를 놓고 왈가왈부해보아야 별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건전한 인간으로서의 양식과 감수성을 잃지 않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당장 과학적으로 무해하다고 해서 생명을 함부로 조작하고, 생명의 신비를 건드리는 일을 찬성할 수 있을 것인가--나는 그럴 수 없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지금 대개 생명공학의 안전성, 특히 그것이 사람의 건강에 미칠 영향과 나아가서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두고 염려를 하고 있지만, 설령 그런 문제의 안전성이 확보된다 하더라도--물론 그럴 리 없지만--나는 생명공학에 대해 우리가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인간생존의 존망이 걸린 이 크나큰 위기의 상황에서 인간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생산력의 증대도, 경제발전도, 그런 것을 뒷받침하는 첨단기술도 아니고, 겸손한 마음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자기생존의 궁극적인 한계를 무시하고 망각하려는 데서 모든 위기의 원천이 있다고 할 때, 이런 차원에서의 인간의 자기쇄신을 도외시하고 자꾸만 기술을 통해서 현안을 해결해보려고 한다면 갈수록 수렁에 빠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지금은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철저한 겸손의 자세를 익히는 것 말고는 우리에게 활로가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가령 지금 유전자 조작 기술의 발전을 말하는 사람들이 꼭 들고 나오는 명분으로 인간의 노화를 막고, 불치병을 치료하고, 인간수명을 늘이는 데 그 기술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것은 내가 보기에 근원적으로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리석은 소리에 불과해요. 사람은 살아가면서 웬만한 고통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고, 생로병사는 필연적인 자연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겁니다. 그게 우리의 변경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인간의 진실하고 창조적인 삶이란 그런 궁극적이고 근원적인 한계를 받아들이는 가운데서만 가능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틀을 자기가 제일이라는 망상 속에서 과학기술이라는 힘을 믿고 점점 교만하게 깨부수려고 하니까 우리의 삶의 실질적인 내용이 빈곤하고 추하고 황폐할 수밖에 없습니다.”

댐 건설이나 쓰레기 매립장 등도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특히 댐 건설의 경우는 수자원공사와 건설교통부가 있는 한 끊임없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는 새만금 문제에 대해, 선거제도가 있고, 개발지상주의의 이데올로기에 깊이 세뇌되어 있는 지역민들이 그것을 원하는 한, 이대로 가면 안 할 도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우리나라 댐 공사가 시작된지 벌써 몇 십년 입니까? 그런데도 그 동안 댐 문제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그것을 제대로 문제시한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동강 댐은 천연기념물로 지정할만한 동식물이 살아있는 보고라서, 시민들의 대대적인 운동을 통해서 댐 건설을 면했다고 하지만 다른 지역의 댐들은 별로 그런 가시적인 가치나 사회적 관심이 없다고 하면 막을 길이 막연하죠. 지리산도 망가지고 있잖아요. 이런 추세라면 사람들 몇 천명 모아서 반대데모를 한들 소용없는 일이지요. 지금 굴러가고 있는 이 엄청난 수레바퀴를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지금 홍수가 나서 난리인데 홍수방지를 위해 산림녹화하자는 형국이긴 하지만, 그래서 당장 너무 답답한 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도처에서 불거지는 환경재앙에 일일이 대응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이 근원적으로 바뀌도록 하는 운동 이외에 길이 없어요. 언제 그런 세상이 올 수 있을지 막막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노력하다가 가는 도리밖에 없을 것 같아요.”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환경문제를 생각하면 너무도 막막한 느낌이 든다. 지구 전체를 놓고 볼 때 오염된 환경의 복원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 때문이다. 한 지역의 환경교정은 또 다른 지역의 환경오염을 초래하고 결국 환경측면에서 지구 한구석에서 다시 약자를 희생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쇼비니즘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녹색평론> 창간사에서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란 화두를 던졌는데 현 시점에서의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하는 사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녹색평론>은 간디학교나 한살림 등 새로운 공동체운동과 심리적 연대를 취하면서 깨어있는 사회를 만들기에 노력하고 있다.

“자폐증 아이를 가진 어떤 부모에게 들은 얘기인데, 자폐아를 교육하는 특수학교에 아이를 데려오는 부모들의 얼굴을 보면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고 해요. 밝은 표정의 부모가 있고, 어두운 얼굴의 부모들이 있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얼굴이 밝은 사람들은 뭔가 마음 속에 섬기거나 믿는 것이 있는 사람들이랍니다. 종교든, 사상이든, 신념이 있어 나름대로 삶에 대한 깨달음을 가지고, 자폐증을 가진 아이가 자기 자식이 되었다는 사실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사는 사람들의 얼굴이 밝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덮어놓고 제일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보다 더 큰 테두리 안에서 자기 인생을 생각할 줄 아는 그런 시각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는 거죠.

<녹색평론>이 단순한 환경잡지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게, 결국은 이런 점 때문이라 생각해요. 따라서 내가 간소하게, 가난하게 살자는 것도 덮어놓고 없이 살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가난한 삶과 비참한 삶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10년, 20년 옷 한벌로 지내고 누더기가 되어도 신념이 있고 사상이 있으면 위엄이 있고 아름답습니다. 스코트 니어링은 평생 누더기를 입고 다녔지만 그 누더기가 아주 거룩한 누더기란 말이죠. 그러니까 지금 원불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들이 무엇을 하시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가난해지자는 사상운동을 열심히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녹색평론>도 결국은 그런 운동의 빈틈에서 작은 몫을 해보고자 하고 있습니다만...”

<녹색평론>은 공동체교육운동에도 관심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 활동은 미미하다며, 그런 면에서 보면 대학교수의 지위를 벗어 던지고 변산반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윤구병 선생이야말로 이 시대가 존경해야 할 분이라고 설명했다.

“윤구병 선생 참 대단한 분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이 나라에서 제일 존경스런 분에 속하죠. 생각이나 말이 아니라 바로 행동으로 자신의 사상을 구현하고 있잖아요. 저보다 조금 선배인데, 그렇게 용기 있는 사람이 어디 쉽게 나옵니까? 교수로서의 직분을 양심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도 흔치 않은 시대에, 아예 특권계급으로서의 자신의 위상을 거부하고, 삶의 기초 중의 기초인 농사꾼으로 돌아간다는 건, 그것도 나이가 50이 넘어서 결행한다는 건 비상한 용기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나는 한국이든 미국이든 지금 세상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산업기술 체제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집단이 대학의 지식인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아마 이런 면에서 보더라도 윤구병 선생의 행동은 체제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저항이라고 해도 될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는 국가, 기업, 시장이 세계를 지옥으로 가게 하는 삼두마차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것을 거드는 게 미디어고, 언론이고, 이런 일의 중추적인 역할을 대학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 동안 제가 착각을 하고 살아왔던 것이 대학은 비판적인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조직적으로 길러지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왔어요. 대학은 사회에 대한 소금역할을 하는 거점이 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많은 지식인들이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이어서 사태가 개선되지 않는 것이라고, 그래서 언젠가는 지식인 사회가 제몫을 하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단 말이에요. 그러나 그건 내 착각이었던 것 같아요. 나는 지금은 대학 자체가 구조적으로 반인간, 반생명, 반민중적인 기구일 수밖에 없는 게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전체적으로 인간답게 살려면 대학의 신화를 깨고, 대학의 틀 자체를 허물어뜨려야 하는 게 아닌가....

물론 대학 내의 소수지만 일부 교수들은 자발적으로 예외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그런 예외적인 행동 자체가 결국은 양념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니냐 하는 거죠. 전체적으로 현대사회에서 대학이 어떤 기능을 해왔느냐 하고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현대적인 대학은 결국 산업체제와 공생관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산업체제를 극복하는 것을 근본 과제로 한다면, 더이상 대학에 기대를 건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윤구병 선생 같은 사람은 아무튼 자신의 몸으로 모범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학교수로서의 삶보다도 농사꾼으로 산다는 게 비교할 수 없이 진실한 삶이라는 것을 젊은이들에게 보여주고 있잖아요. 이런 예들은 외국에는 종종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굉장히 보기 힘들어요. 농사꾼이 된다는 게 뭡니까.

지난 수천년 동안 인류사회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갈라놓는 토대 위에서 계급사회가 유지되어 왔지 않습니까. 바로 그 뿌리를 잘라보겠다는 것 아닙니까. 이건 엄청난 혁명적 행동이죠. 진정한 혁명은 남들을 변화시키려는 게 아니고 자기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의미심장한 얘기입니다. 그동안 역사적으로 사회운동이나 혁명이 되풀이해서 실패해온 원인은 한마디로 그게 남을 바꾸려고만 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필요한 것은 "한 사람의 혁명"으로부터 출발하는 일일지 모릅니다.

솔직히 교수가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올바로 사는 길을 가르치고, 연구실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그 행위의 본질은 위선이기 쉽습니다. 그런 것보다 막바로 농사짓는 모습 보여주는 것은 얼마나 진실한 가르침이 됩니까. 우리 같이 별다른 실천도 없이 글이나 읽고 쓰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글이 잘됐느니, 안됐느니 하면서 신경 곤두세우고 사는 게 중요할지 몰라도, 농사짓는 사람은 그 자체로 신비스러운 세계와의 직접적인 교감 속에서 사는데 글이 뭐 중요합니까. 윤구병 선생 주변에 좋은 제자들이 그 정신을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는 99퍼센트 희망이 없다고 단정한다.

“10년 전에 이 사무실 이 자리에서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때는 이 동네가 참 조용했어요. 자동차 한 대도 없이 저 골목이 시원하게 뚫려 있었어요. 그래서 손님들이 와서 절간보다 더 조용하다고 그랬는데 지금은 완전히 주변이 주차장이 되어 하루종일 시끄러워요. 저기 뒷산도 조용한 산이었는데 산 일각을 잘라 파괴해 놓고 KBS 사옥이 들어섰습니다. 방송국 건물이 왜 저렇게 거대해져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우리가 사는 게 삶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신영복 선생은 한국의 상황이 거대한 집단수용소 같다는 말을 했지만, 나는 난민캠프라고 부릅니다. 난민캠프에서는 뿌리 박고 살겠다는 생각을 할 수 없잖아요. 어떻든 그냥 살아남는다는 것이 중요하지…. 사람이 살 집을 하나 지어도 정성스럽게 100년, 200년은 내다보고 지어야 하는데 그렇게 짓는 집이 도대체 하나도 없잖아요. 전부 장삿속으로 거죽만 번듯하게 꾸며 남들과 자신을 속이려고만 한단 말이에요.

이런 점에서 영국 같은 경우는 우리를 기죽게 합니다. 옥스퍼드대학에 400년 묵은 건물의 대들보가 낡아서 그 대책을 위해 책임자들이 모여서 의논을 하였답니다. 그 도중에 학교의 역사에 제일 밝은 사람이 학교의 건축물들에 관한 오래된 문헌을 뒤적여 보니까 400년 전에 그 건물을 지었던 건축책임자가 썼던 일지가 나왔어요. 거기엔 대들보가 400년 뒤쯤 썩을 거라는 이야기가 적혀있고, 그때 쓸 새로운 대들보를 위하여 학교의 어디어디에 지금 참나무를 심어놓는다는 기록이 있더라는 겁니다. 과연 그곳에는 수령 400년의 참나무가 있고요. 그러니까 400년 뒤에 쓸 나무를 지금 준비해둔다는 것--나는 이게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문화라고 봅니다. 우리의 현재 삶은 이런 의미의 문화적인 삶을 근원적으로 불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울긋불긋한 사치품을 달고 다니고, 물건을 많이 생산하고 소비한다고 해서 문화생활이 아닙니다. 근본이 뒤틀어져 있고, 한치 앞의 미래에 대한 고려도 없는 삶이 무슨 문화입니까. 야만중의 야만이죠. 우리는 모두 뜨내기이에요. 자신과 이웃의 삶에 아무런 장기적인 전망이 없잖아요."

그는 우리에게는 지나치게 핑계가 많다고 지적했다. 식민지니, 육이오니, 온갖 핑계로 우리 사회의 허위와 모순과 왜곡이 합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는 새로운 제도나 첨단 기술을 도입하는 데 있어서도 아무런 주체성 있는 토론 없이 무조건 미국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여 왔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산업국가들 중에서도 식량자급도가 형편없이 낮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사회가 되었지만, 이것을 깊이 고뇌하는 지식인들이 드물다.

“지금도 그렇지만, 오랫동안 농촌 사람들은 비경제적인 원칙에 따라 살아왔잖아요. 농촌 사람들이 농촌에 그대로 머물러 살고 있는 것은 경제논리로는 설명이 안됩니다. 생산비도 건질 수 없는 농산물 가격을 가지고 어떻게 살 수 있어요. 그러나 아직도 농촌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인생에서 돈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알고 느끼기 때문에 농촌을 지키고 있는 겁니다. 물론 대부분은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농촌을 떠나버렸지요. 그런데 한번 깊이 생각해보십시다. 만약 이대로 농촌이 완전히 괴멸되어 간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까요. 나는 농업과 농촌의 부활이 우리의 장래에 가장 핵심적인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땅은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첫째 조건입니다. 이것은 조금이라도 깊이 생각해보면 너무도 당연한 얘깁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인간공동체로서 완전히 붕괴직전에, 산산히 부서지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농촌의 붕괴와 직결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삶의 뿌리가 소멸되어 가고 있단 말입니다.

잠재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첨단기술을 도입하는 데 있어서는 극성스러우면서도 자기 사회의 자연적인, 생물학적인, 사회적인 토대 자체가 급속히 붕괴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이다지도 둔감하고 무책임한 사회가 있을 수 있는지, 기막힌 현실이죠. 그런데도 좀 진보적이라고 하는 언론에서도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업문제나 빈부격차의 문제, 남북문제 등에 대해서는 예민하면서도, 이 사회에서의 삶의 토대중의 토대인 땅과 흙이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망가지고 있는 데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어요. 언제까지 석유와 원자재 수입하여 그걸 가지고 전자제품, 자동차, 핸드폰을 만들어 수출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외국 농산물 사먹는다는 전략이 통할 수 있다는 것인지, 나는 이해가 안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자급자족의 기반을 다져가고 있는가 끊임없이 따지고 묻고, 이런 목소리가 살아있어야 희망이 있을 텐데, 대학교수도, 언론도 그런 일은 관심도 없어요. 모두가 다 임시로 살아남는 문제, 거기에 급급하면서 장기적인 미래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으로 나가고 있어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일 형편없는 게 닥치는 대로 사는 겁니다. 그게 바로 우리 꼴이에요. 나는 책을 만들기 위해서 국내외의 잡지들을 좀 보는 편인데, 우리나라에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지식인들이 너무도 부족해요. 허구헌 날 진지하다는 사람들은 동북아정세가 어떻고, 앞으로 중국과 이북이 개방정책으로 나가면 한국이 힘의 균형 속에서 뭐 어쩌고 저쩌고 이런 공허하기 짝이 없는 소리들만 하면서 지식인이란 타이틀만 유지하려고 하지요. 정말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어요. 사상의 중심 축이 없다는 얘기지요.”

사상의 중심 축을 종교가 그 역할을 해야 할 큰 책임을 느낀다는 말을 하자 그는 원불교에서 받은 인상을 피력했다.

“원불교는 교세확장에 연연하지 않으니까 좋아 보이긴 해요. 그리고 우리의 밑바닥 삶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려는 모습도 좋고요. 가까운 선배 어머니가 오랫동안 교당에 나가셨는데, 그분 돌아가셨다는 얘기 듣고 문상을 가보니까 원불교 교우들의 손으로 장례 절차가 참 간소하게 깔끔하게 처리되고 있더군요. 그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장례든 혼례든 인간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품위있는 의식을 보는 건 거의 불가능하잖아요. 모든 게 겉치레, 속임수, 천박함으로 일관해 있어요. 이걸 다 알면서도 너도나도 정작 일을 닥치면 남들 하듯 다 따라 하는데, 그러니 조금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요. 종교단체들도 마찬가지예요. 불교는 돈있는 사람들이 아니면 근접도 못하게 되어있고, 기독교 특히 개신교 쪽은 말할 수 없이 극성스럽게 자기중심주의에 빠져있어요. 다른 문상객들이 와도 아랑곳도 안하고 빈소 앞을 차지하고 찬송가를 끊임없이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것 다 접어두고 사람은 생로병사 아닙니까. 종교가 기본적으로 이것 처리해주려고 나온 것 아닙니까. 외로운 사람 위로해주고 버림받은 사람 안아주고, 죽고 나면 시체 치워주고, 태어날 때 잘 받아주고 이게 제대로 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요즘 절집에서는 천도재 지내는 데 몇백만원씩 든다고 해요. 돈 없으면 귀신도 저 세상으로 가지 못해요. 스님들도 개탄스러워 해요. 그런데 오랜 관습 때문에 꼼짝달싹 못하는 것이지요. 원불교가 이런 점에서 모범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분의 스승

그는 90년을 전후한 격변기에 그의 인생에 있어 큰 가르침을 두분의 스승에게서 얻었다. 어느 날 한 잡지에 실린 장일순 선생의 말을 접하고 부터다. 이전에는 원주에 사는 반체제 인사로 생각하고 있었지, 그에 대해 알아볼 기회는 없었다. 92년 9월 원주에서 한살림 운동의 제창자로 알려진 장일순 선생을 찾아가 이 공동체 운동의 사상적 배경에 관한 말을 들어보기 위해 만났다. 그는 장일순 선생과의 만남을 통해 동학의 지도자 해월 선생에 관해 좀더 깊이 있게 공부해볼 기회를 갖게 된다. 장일순 선생 덕분에 해월 선생 법설집을 읽어야 되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 것이다.

“장일순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그런 법설집이 있는 줄도 몰랐을 거고, 물론 법설집을 챙겨서 봐야 되겠다는 생각도 안 났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장일순 선생님은 드러나지 않게 가르치는 좋은 스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해월 선생에 대해서는 저는 사실 별 아는 게 없지만, 어떻든 그분의 행적과 말씀에서 느끼게 되는 것은 지극한 겸손과 철저한 소박성입니다. 그분은 늘 밑바닥에 계셨습니다. 우리가 입으로 밑바닥으로 가야 된다는 소리 백 번하면 뭐합니까. 자신이 밑바닥에 있어야지.

해월 선생이 생존하셨던 백년 전의 우리나라 상황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점에서는 지금이 더 위기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지금부터 100년 전 왕조말기의 상황은 정말 기막힌 상황이었겠지요. 소태산 대종사님도 그렇고 민족종교들이 탄생되던 때가 이런 상황이었는데, 아마 민족의 역사적 체험에서 가장 어려운 격변기였던 탓에 그런 근원적인 가르침이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기막히게 캄캄한 어둠의 시절이었으니까요. 지금 우리는 그래도 서구 제국주의가 무엇인지, 자본주의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 산업기술사회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100년 전에는 무엇이 어떻게 닥쳐오는지도 모르는 가운데서 엄청난 소용돌이를 몸으로 겪어야 했단 말입니다. 느닷없이 긴 세월 동안 의지하고 있던 질서가 어이없이 무너지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데, 서구문물과 제국주의의 공격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었거든요. 그 때 그 캄캄한 세상에서 길을 밝혀준 분들이 그 분들인데, 생각해보면 그런 분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힘 이외 하늘의 도움이 있었던 게 틀림없어요.

그런데 해월 선생의 가르침에는 거창한 목소리도, 추상적인 소리도 없어요. 어떤 종교처럼 높은 데서 내려다보며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는 권위주의적인 목소리가 아니에요. 해월 선생은 밑바닥에서 사람이 하루하루를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시대의 어둠을 뚫고 역사의 어둠을 뚫고 나가는 길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어요. 일상적 노동에 충실하고, 어린애들 귀하게 생각하고, 약자들을 하늘처럼 섬기고, 베짜고 부엌일 하고, 밥하는 부녀자들의 일이 곧 하늘의 일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매일같이 쫓겨다니면서도 나무 심고, 새끼 꼬고, 짚신 만들고, 마당 쓸고, 구들장 고치고, 손님 하나 하나, 사람 하나 하나를 거룩하게 여기고, 아주 일상적인 일을 정성스럽게 하는 것이 세계를 구원하고 우리가 살 수 있는 활로라고 가르쳤단 말이에요. 거창하고 요란한 소리 안 했어요. 자기가 잘 낫다고 내세우는 게 조금도 없어요. 나는 우리가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가르쳐온 수많은 민족의 스승들이나 애국지사들과 해월 선생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해월 선생의 가르침은 강자의 논리, 부국강병의 논리, 즉 모든 전통적인 권력주의를 배격하는 데 그 핵심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극히 여성주의적인 원리에 토대를 둔 가르침이지요. 이런 점에서 해월 선생의 가르침은 진정한 개벽사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해월 선생은 이른바 하늘로부터 천어(天語)를 직접 들은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다만 그 마음이 지극히 소박하고 겸손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주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비우라는 이야기지요. 해월 선생의 법설집은 어떤 점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를 낮춰서 살아라"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자기라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것은 허깨비라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앞서거나 남들보다 위에 서고 싶다는 권력욕망이라는 게 결국 모든 사회적 죄악과 생태적 재난의 원인인 것 같아요. 그게 원죄라면 원죄가 아닐까 싶어요. 인간과 인간을 갈라놓고, 인간과 자연세계를 갈라놓고 있는 뿌리가 바로 자기가 제일이라는 심리, 거기에 맞물려 있는 권력욕망에 있다고 할 때, 해월 선생의 가르침은 이러한 권력욕망으로부터 우리가 해방될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답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그는 최근에 <간디의 물레>와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이란 책을 펴냈다. 그가 주장하는 "시적 인간"은 원불교에서 말하는 "은적 인간"과도 일맥상통한다. 원불교의 "은적 인간"은 우주만물과 나와는 없어서는 살수 없는 관계로 말한다. 정산종사는 "감사생활을 하면 늘 사은(우주만물)의 도움을 받게 되고, 원망생활을 하면 미물곤충에게서도 해독을 받으리라"했다. 그는 시적인 감수성이야말로 생태적 감수성이라 한다.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은 그 동안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쓴 글을 버리지 못하고 묶다가 보니까 옛날에 문학평론 하다가 녹색평론 만들면서 관심이 좀 이쪽으로 왔는데, 그 두 개를 결합시키려고 하다가 보니까 그런 제목이 나왔을 겁니다. 그렇게 거창한 의미가 배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막상 이름을 붙여놓고 책을 엮어보니까 그럴싸하게 보이기도 해요. 결국 시적 언어의 본질은 메타포에 있는 것인데, 그 메타포라는 것은 근원적으로 생태적 감수성과 뿌리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메타포라는 것은 나무를 보고 사람을 생각하고, 개미를 보고 풀을 생각한다든지, 하늘을 생각한다든지 그러니까 얼른 봐서 합리주의적인 눈으로는 관계가 없는 것들인데 단순히 육안에 비춰지는 것을 넘어서 어떤 정신의 투시력으로 볼 때는 다 연결이 된다 하는 것이 전제가 될 때 메타포가 나오는 것이거든요. 또 그런 시적인 표현 방법이라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잠재적으로 생명의 연결성에 대한 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옛날에 신라 향가에 보면 형제간에 서로 이별하는 것을 한 나뭇가지에 달린 두 개의 잎사귀로 비유하잖아요. 잎사귀 하나가 먼저 떨어진 것이 먼저 죽은 것이고, 뒤에 떨어지는 것을 자기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말하자면 메타포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고, 이것은 가만히 보면 단순히 말장난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단 말이죠. 깨달음의 눈으로 볼 때는 그러니까 시적인 발상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생태적인 발상과 똑같은 거죠. 생태적인 발상이라는 것은 생명이라는 것이 서로 이렇게 뿌리를 같이하고 있다는 깨달음에 근거하는 것이거든요. 천지동근(天地同根)이며, 만물일체(萬物一體)라고 하잖아요. 이게 핵심입니다. 이게 시적 상상력이고, 동시에 생태적 상상력이지요. 그러니까 사람 누구에게나 시심이라는 것이 있고, 그런 만큼 생태적 감수성도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보면, 잘 활용하면 생태적 위기극복의 가능성도 이런 데서 나올 수 있지 않을까--그런 논리를 담아보려고 했던 것이죠."

사상의 기저와 소망

그의 사상의 기저에는 자본주의적 생산구조를 부정하는 면이 강하다. 따라서 그가 제일 답답해 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농촌이 없어지고, 마을문화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을 용서할 수 없다고 한다. 농업에 대해서 너무나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자립적으로 인간답게 살수 있는 마지막 근거는 농촌에 있다고 믿고 있다. 우리의 식량자립도는 25%라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석유를 써서 이 정도니까 실제 자립도는 거의 절망적인 수준인지도 모른다.

“제퍼슨 같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는 자기 땅을 가진 소농민들의 존재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척추라고 했어요. 지금의 미국이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로부터 거리가 멀어진 것도 결국 독립적인 소농이 몰락하고, 권력과 돈이 소수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 문제를 떠나서도 진정으로 인간다운 사회 역시 소농중심의 문화에서만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속 가능한 순환형 사회가 성립할 수 있는 전제조건으로서의 소농중심 경제, 문화는 필수적입니다. 이렇게 근본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데도 소농민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져 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나는 이것보다 더 큰 재난이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온 힘을 다해서 농촌을 살리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농촌을 살리려면 농산물이 제값 받게 하고, 원거리 수송을 동반하는 농산물 수출입을 막아야 합니다. 지식인들이 특히 농촌 없이는 우리 사회에 미래가 없다는 것을 뼈아프게 자각해야 됩니다.”

인류사에 있어 유례없는 정치·경제·도덕 등의 전면적 위기를 막연하게라도 모두가 느끼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위기나 환경재난이 제기하는 근원적인 물음으로부터 계속해서 도피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토양오염이나, 온실효과, 오존층 고갈, 사막화 등이 진행되는 가운데도 살아남기 위한 가능한 방법에 대한 기술적 탐구에만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 생물학적 존재라는 것을 변경할 수 없는 한 어떤 기술적 재간으로도 생존 조건을 파괴하면서 살아남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맑은 공기, 푸른 하늘, 산야, 강물이 없는 세상에서도 사람들이 살고 싶은 욕망을 느낄 수 있겠느냐고 그는 묻는다. 그는 과학은 우리 삶의 바탕과 우주의 근원적인 진리를 해명하는 데는 너무나 미약한 수단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과학기술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개인보다 더 큰 존재를 습관적으로 의식할 수 있는 문화를 회복하는 일이다. 우리가 생명의 문화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러한 문화의 재건은 우리 각자의 인간적인 자기쇄신 없이는 이뤄질 수 없을 것이라고 그는 역설한다. 오랜 세월 사람들은 자기확대와 부국강병론의 틀 속에서 행복과 안정을 꿈꾸어왔지만,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분열과 전쟁과 생태적 파괴로 나타났다. 이제 우리는 모두가 고르게 가난하게 사는 공동체적 사회야말로 진정으로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틀이라는 것을 겸손한 자세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고르게 가난한 사회'는 녹색평론사가 발간한 책 <오래된 미래>에 그려진 인도북부 히말라야 고원의 공동체, 라다크 전통사회의 모습에서 하나의 범례를 찾아볼 수 있다. 라다크 전통사회에서 사람들이 오랫동안 척박한 자연환경에서도 조화롭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유지하며, 노인과 어린이와 여성을 공경하는 모범적인 사회로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물 한 방울도 아끼지 않으면 안 되는 가난한 환경이지만 물자를 아끼고 그것을 사람들 사이에서 고르게 나누는 지혜로운 삶을 영위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도 더 늙기 전에 땅에 뿌리박고 사는 공동체로 돌아가기를 소망하고 있다.

녹색평론사 (02)738-0663, 0666 fax (02)737-6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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