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축에 본질적인 무언가가 결여돼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체온이다." "건축은 사람과 자연이 소통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다리이고, 공간과 사람, 자신과 타인을 잇는 소통과 관계의 촉매제여야 한다." "돌, 흙, 나무 등 자연 토착재료로 그 땅이 지닌 오래된 가치를 다시 부활시켜야 한다."
재일동포이자 세계적 건축가인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1937~2011)의 말이다. 그는 건축이 사람의 온기를 밑바탕으로, 그 위에 땅·지역의 전통과 문맥을 읽어내 담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이타미 준-바람의 조형'전(7월27일까지)은 그의 건축철학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자리다. 또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한국 국적·이름을 갖고 늘 한국문화를 이야기한 '경계인' 건축가의 삶의 자취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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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 포도호텔'(제주도). 사진 준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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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인 전시회는 1970년대 작업부터 말년의 제주 프로젝트까지 40여년에 걸친 그의 건축세계를 아우른다. 지난해 현대미술관에 기증된 그의
아카이브, 유족 소장품으로 건축작업과 회화, 서예, 직접 디자인한 소품 등 500여점이 관객을 맞는다.
그는 많은 문화예술가와의 교유로도 잘 알려져 있다. 화가 곽인식을 스승으로 일컬었고, 이우환·김창렬·세키네 노부오·하야시 요시후미 등과의 교유는 건축에 입문한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특히 인간에 의해 조작된 사물이나 사물에 대한 인식을 버리고 사물 본래의 세계를 드러내고자 한 1960~1970년대 일본 미술 경향인 모노하(物派) 정신은 그의 초기작들에 배어 있다.
1968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그는 이후 수시로 한국을 찾아 전통 건축과 고미술의 미감을 탐구했다. 실제 < 조선의 건축과 문화 > < 한국의 공간 > 등 저서도 출간할 정도였다. 그는 1980년대 철저한 소재·형태의 탐구를 넘어 1990년대 들어선 건축이 갖는 관계성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자연, 인간, 공간들 간의 소통·연결을 강조하는 것이다. 대표작들은 '핀크스 클럽 하우스'(1998년)를 시작으로 2000년대 제주도에 작업한 '포도호텔' '수(水)·풍(風)·석(石) 미술관' '두손 미술관' '방주교회(하늘의 교회)' 등이 꼽힌다. 제주의 풍토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 이들 건축물에는 사람의 온기가 스며들고, 소통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그의 건축철학이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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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교회'(방주교회·제주도). | 사진 김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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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 만난 딸 유이화씨(ITM유이화건축사무소 대표)는 "아버지는 생전에 늘 이런 귀국전을 한국에서 열고 싶어 했다"며 "비록 사후이긴 하지만 오래전부터 예정된 것이 이제 열린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유 대표는 한국인으로 성장하길 바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초등시절 한국에 건너왔으며, 역시 건축가의 길을 걷고 있다. 건축가로서의 아버지에 대해 그는 "자신에게 엄청 철저하신 분이었다. 평생 20여평짜리 집에서 살면서 검소한 삶을 강조하셨다"고 말하고, 인간적 아버지로선 "말수는 적지만 온유하셨고, 밤새 같이 술을 마신 술친구였다"고 밝혔다.
유 대표는 "디지털 건축의 범람 속에 손의 감각, 사람의 손에서만 나올 수 있는 특유의 온기와 자연미, 지역·땅의 문맥을 끊지 않는 건축을 강조한 아버지의 철학이 이 시대에 큰 의미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