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풍경에 나지막이 녹아든 ‘툇마루 집’
젊은 건축가들과 함께하는 ‘유쾌한 집짓기’ ① 김창균의 ‘보성 주택’
원래는 작은 초가집이었다. 1976년 59㎡(18평) 규모의 개량한옥으로 개축해 40여 년을 살았다.
벽이 얇아 여름에는 푹푹 찌고 겨울에는 외풍 때문에 손발이 시린 집이었다. 자식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이제는 부모님 두 분만 머물고 있는 고향집. 고등학교 때부터 객지생활을 한 아들은 한여름·한겨울이면 부모님 생각에 맘이 짠했다. 그리고 결심 끝에 모은 돈을 탈탈 털어 부모님께 새 집을 선물하기로 한다. 올해 7월 전남 보성군 원봉리에 들어선 ‘보성 툇마루 주택’이다.
건축가 김창균 25가구 정도가 모여 사는 한적한 시골마을, 마을 입구엔 작은 정자가 있다. 마을회관 옆 골목으로 들어서니 언덕배기 낮은 회색 벽돌집이 눈에 띈다. 건축가가 설계한 집이지만, 그다지 화려하거나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툇마루에 앉아 있던 건축주의 어머니 문공임(72)씨가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다”며 기자 일행을 맞았다.
건축주인 아들 박종주(46)씨가 건축가 김창균(41) 소장에게 요구한 건 ‘튀지 않는 집’이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풍경과 조화롭게 어울리고, 이웃 어르신들이 드나들기에 부담이 없는 집을 원했다. 처음엔 2층집을 생각했지만, 고령의 부모님이 오르내리기에 불편할 것 같아 단층으로 결정했다. 건축가는 설계 전 마을 집들을 한 채 한 채 돌아봤다. 그리고 소박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회색 벽돌집을 제안했다.
연면적 121.6m(36.8평)의 이 집은 경골 목구조(나무를 약 40㎝ 간격으로 촘촘하게 세워 골조를 만드는 방식)로 지어졌다. 나무 골조에 단열재를 안팎으로 이중 시공한 후, 바깥쪽에 벽돌을 쌓았다. 단열재와 벽돌 사이에는 10㎝ 가량의 틈을 뒀다. “벽에 빈 공간이 있으면 공기층이 생겨 통풍을 돕고 방음에도 좋습니다. 바람이 직접 부딪히지 않기 때문에 방한에도 유리하죠.” 김 소장의 설명이다.
뒷뜰에 마련된 아담한 툇마루. 동네사람들의 휴식처다. 올 여름에는 고추를 말리는 데 사용했다. 내부는 가로로 긴 복도에 양쪽으로 방과 부엌 등이 늘어선 일자형 구조다. 명절에 친척들이 한데 모일 수 있도록 거실은 널찍하게 만들었다. 앞마당으로 향하는 거실창문과 뒤뜰로 향하는 문을 마주보게 해 통풍이 잘 되도록 했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이 집의 포인트는 집 앞에 길게 놓인 툇마루와 다락방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테라스다. “동네 집들을 돌아보니 집집마다 툇마루가 있더군요. 어르신들의 휴식 공간이자 동네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동공간으로 꾸미고 싶었습니다.”
지붕 사이에 움푹 파인 작은 테라스에 서면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손님용으로 마련된 다락방 천장에는 별과 구름이 보이는 유리창을 달았다.
새 집 같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세련된 이 집은 동네 사람들에게 ‘서울 사람이 지은 집’으로 불린다. 공사비는 건축물에만 평당 약 460만원이 들었다. 단열을 중시해 비싼 외장재와 창호 등을 선택한 탓에 공사비가 예상보다 올라갔다.
아들은 “그래도 따뜻하고 편리한 집이 탄생한 것 같아 만족스럽다”고 했다. 어머니는 “내가 생전에 이렇게 깔끔하고 좋은 집에 살아볼 수 있을 줄 몰랐다. 무엇보다 명절에 손주들이 찾아왔을 때 편하게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이 생겨 좋다”며 웃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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