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은 콘크리트, 안은 벽돌…뒤집어서 옹골찬 집
충주 문추헌
젊은 건축가들과 함께하는 유쾌한 집짓기 ⑩ 충주 문추헌
오십 몇 년간, 홀로 일하고 봉사하고 때론 즐기며 살아왔다. 차츰 ‘인생을 재구성할 때가 됐다’ 생각했을 때, 수중에는 몇 천 만원이 남아 있다. 당신이라면 이 돈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김문숙(58)씨는 집을 짓기로 했다. 슬슬 가을로 접어드는 인생을 알차게 여물게 할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싶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용기를 내 ‘인생 최대의 쇼핑’을 결심했다. 그렇게 탄생한 집이 이달 초 충북 충주시 엄정면에 들어선 ‘문추헌(文秋軒)’이다.
집은 충주 시내에서 20㎞가 넘게 떨어져 있다. 논과 밭을 지나고 또 지나 동네보건소를 끼고 돈 다음 언덕을 한참 올라야 한다. 평생을 서울과 경기도 일대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한 건축주가 낯선 이 곳을 택한 것은 친구 때문이었다.
“함께 나란히 집을 지어 살자고 약속한 친구가 이 지역을 잘 알았어요. 집을 지어야겠다 결심했을 때, 마침 충주 시내 양로원에 일자리가 나서 다행이었죠.”
천장에서 벽으로 이어지는 기역자 창문을 따라 길게 늘어지는 빛이 내부 공간에 신비로움을 더한다. 처음엔 도면도 직접 그렸다. 한번 봐 주십사 하고 건축가 서현 교수(한양대)를 찾아간 게 인연이 됐다. 서 교수는 도면만 봐 주려다 ‘과연 어떤 집이 탄생할까’ 호기심이 생겨 발을 담그게 됐다. 처음 계획은 혼자 살 수 있는 49㎡(약 15평) 규모에, 예산은 4500만원 선이었다. 설계 과정에서 면적은 56㎡(약 17평)로, 예산은 6000만원으로 늘어났다. 집의 첫인상은 “완공된 거 맞습니까”였다. 논밭으로 둘러싸인 언덕에 네모난 콘크리트 박스가 덩그러니 서 있다. 엇갈린 사각형의 거푸집 흔적이 남은 콘크리트벽은 여기저기를 기운 회색 승복(僧服)처럼 보이기도 한다.
집이 완성됐다고 가족들을 초대했는데, 콘크리트가 드러난 외관을 보고 다들 ‘이제 여기다 뭐 할거니?’라고 물었을 정도다. 그래도 김씨는 “시골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외관이 맘에 쏙 든다”고 했다.
집 뒤편으로 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반전’이 기다린다. 황량한 외부와는 달리 연한 주황색 벽돌이 그대로 노출된 내부는 밝고 포근한 분위기다. 방과 거실을 구분하는 벽채는 구멍이 숭숭 뚫린 벽돌면을 그대로 노출시켜 장식 효과까지 줬다. 바깥은 콘크리트로, 안은 벽돌로 마감한 것은 건축주와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합쳐진 결과다.
서 교수는 “원래는 외관을 벽돌로 마감할 계획이었지만, 건축주가 ‘콘크리트에 벽지를 바른 집이 싫다’고 하더라. 그 순간 안과 밖의 마감재를 뒤집어보면 어떨까 싶었다”고 했다.
아담한 내부는 ‘1인 가구’의 라이프스타일에 딱 맞춰졌다. 침대가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 하나와 화장실, 세탁실을 제외하고는 거실 겸 주방으로 활용되는 널찍한 공간이 전부다. 평당 건축비는 약 350만원으로, “쓸 데 없는 데 돈을 쓰지 않는다”는 게 기본 원칙이었다.
바닥은 온돌마루로, 문은 참나무로 간소하게 마감했다. 대신 건축주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주방과 탁자 겸 책상은 고급스런 자재를 썼다. 겉은 화려하지 않지만, 내부는 따뜻하면서도 실용적인 집은 “외관보다는 내실 있는 삶을 추구해 온 건축주의 인생을 반영한다”게 서 교수의 설명이다.
매력적인 포인트도 갖췄다. 침실과 화장실 위쪽으로는 골방 같은 느낌을 주는 작은 다락방을 만들었다. 주방 오른쪽 벽에 천장으로 이어지는 기역(ㄱ)자 창을 내 하늘과 건너편 산의 풍경을 집 안으로 끌어들였다. 김씨는 “원래는 난방비를 좀 절약할까 해서 천창(天窓)을 내 달라고 했는데, 건축가의 손을 거치니 이렇게 멋진 창이 탄생했다”고 감탄했다. 거실 한쪽에 놓인 커다란 의자에 앉아 어두워지는 하늘과 산을 바라보는 것은 건축주가 요즘 가장 즐기는 ‘힐링’이다.
집을 지으면서 고민의 시간도 많았지만, ‘사람들의 고마움’을 확인하게 된 것이 가장 값지다고 했다. 새집을 짓는다는 소식에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고, 가구나 소품 등 다양한 선물을 안기기도 했다. 집 한쪽 벽에 있는 문패 ‘文秋軒’은 형부가 직접 글씨를 서 금속으로 활자를 떠 준 것이다. “제 이름의 문(文)자에, 가을 추(秋)를 붙여 봤습니다. 가을이 되면 이 주변 산들이 온통 색색으로 물들어 정말 아름답거든요. 제 인생의 가을도 이
집에서 아름답게 가꾸어나가고 싶네요.”
충주=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건축가 서현=1963년생.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 서울대 건축학과,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 졸업. 해심헌·김천상공회의소·효형출판사옥 등 설계. 저서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건축을 묻다』 『배흘림기둥의 고백』 등.
※이글은 중앙일보에 게재됐던 기사를 전재한 것입니다.
☞중앙일보 바로가기 www.joins.com |
애들에게 “뛰지마” 대신 “나가서 놀아” 말합니다 (0) | 2014.01.26 |
---|---|
군불 땐 방에서 뒹굴뒹굴… 집이 즐거워요 (0) | 2014.01.26 |
화제가 되고 있는 5평 초미니 하우스 (0) | 2014.01.26 |
4.5평의 조립식 초미니하우스 (0) | 2014.01.26 |
유목민의 주택으로 딱입니다..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0) | 2014.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