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8일 임은정 검사가 서울중앙지법 법정에 들어섰습니다.
지난 1962년 5·16 군사쿠데타 세력에 의해 조작된 '통일사회당'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피해자 윤길중씨의 재심 재판에서 검사 구형을 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 해당 사건은 2011년, 윤길중씨와 같은... 사건으로 처벌받은 다른 관련자 5명이
이미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그 사건입니다. 같은 사건에서 이미 무죄가 내려졌기 때문에
검찰이 유·무죄를 판단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법정을 들어서는 임 검사 표정은 매우 무거웠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검찰 상층부의 지시 때문이었습니다. 법정에 들어서기 전, 임 검사는 검찰 내부
논의 과정에서 윤길중씨에게 무죄 구형을 내리겠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검찰 상층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임 검사와 달리 부장검사는 "법과 원칙에 따라 판결해 달라"고만 말하고 무죄 구형
은 하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임 검사는 반발했습니다. 대법 판결로 이미 같은 사건 관련자의 무죄가 확정됐으니,
지금 검찰이 무죄 구형을 하지 않는 건 옳은 태도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통해 과거 독재정권 때 잘못된
검찰의 기소와 구형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피해자에게 지금이라도 사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 겁니다
. 이는 지난 2011년 임 검사가 담당했던 '또 다른' 유신독재 피해자 박형규 목사 재심 재판 당시 이미 실천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2011년 9월 6일 서울중앙지법. 이날은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함께 조작된 '민청학련 사건' 으로 징역 15년을
선고 받은 재야인사 박형규 목사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이 열리는 날이었습니다.
이날 '대한민국 사법 역사상 최초'라고 기록될 중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해 단죄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검사가 피고인에게 무죄를 구형한 것입니다.
박형규 목사에 대해 검사 구형을 내리라는 재판장의 요청에 따라 임 검사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박형규 목사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다음처럼 구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 땅을 뜨겁게 사랑해 권력의 채찍을 맞아가며 시대의 어둠을 헤치고 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몸을 불살라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고 묵묵히 가시밭길을 걸어 새벽을 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으로 민주주의의 아침이 밝아, 그 시절 법의 이름으로 그 분들의
가슴에 날인했던 주홍글씨를 뒤늦게나마 법의 이름으로 지울 수 있게 됐습니다. 무죄를 내려주십시오
." 임 검사의 무죄 구형에 재판부는 '무죄' 판결로 화답했습니다. 무려 38년 만에 박형규 목사의
명예가 회복된 것입니다. 이날 박형규 목사는 "세상이 새로워진 것 같아 감개무량하다"는 말로 기쁨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조작된 공안 사건에 대해 검찰이 사과와 함께 무죄를 구형해 유신 독재 때
받은 마음의 고통과 상처가 치유됐다고 했습니다. 임 검사가 윤길중씨 재심 사건에 대해 무죄 구형을
내리며 사과해야 한다고 고집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피해자에게 이제라도 사과해야 마땅한데
이를 검찰이 회피하는 것은 비겁하다는 확신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죄 구형을 내리겠다
"며 반발하던 임 검사의 주장은 끝내 부장 검사의 뜻을 꺾지 못했습니다. 유신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였기 때문이었을까요? 검찰 상층부 역시 단호한 입장이었습니다.
결국 끝내 임 검사가 무죄 구형 주장을 접지 않자 부장검사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게 됩니다
. 이 사건 공판검사를 임 검사가 아닌 다른 검사가 맡도록 교체하라는 전격적인 지시가 떨어진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지시에 임 검사는 해당 사건의 기록 등을 다른 검사에게 인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고민했습니다. 과연 이것이 옳은 길인가. 그리고 잠시 후, 윤길중씨 구형 공판 법정에
들어선 검사는 다름 아닌 임은정 검사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법원의 검찰 전용 출입문 앞에
"무죄를 구형하겠다"는 쪽지를 붙인 후 안에서 문을 잠갔습니다. 이미 사건을 인계한
다른 검사가 그 문을 통해 법정에 들어올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한 것이었습니다.
그 문을 걸어 잠그며 임 검사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는 자신의 행위가 결국 무거운
징계로 이어질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법정에 들어가기 전 검찰 내부게시판에 남긴 글에서
그는 자신의 징계를 각오했습니다. 그는 "절차와 월권의 잘못을 통감하며 어떤 징계도 감수하겠다"며
"(이로 인한) 중징계로 검사 직분을 내려놓더라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당연히 무죄가 나올
사안이고 담당 검사로서 (상부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다른 검사에게 사건이 재배당됐다
. 때문에 검찰 내부에서 공론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결행한다"고 밝힌 것입니다. 임 검사는
자신의 결심대로 윤길중씨 재심 결심공판에서 무죄로 검사 구형을 내렸습니다.
법원은 박형규 목사때와 같이 윤길중씨에 대해 당일 무죄 선고로 화답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임 검사가 감당해야할 몫은 잔인할 정도로 가혹했습니다. 문을 걸어 잠근 채
무죄 구형을 내리고, 독재권력 피해자에게 사과한 그의 행동을 두고 '소영웅주의'이니
'돌출행동으로 규율을 어긴 행위'라며 검찰 내부의 비난이 쏟아진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2013년 2월 5일,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는
임 검사에게 '정직 4개월' 중징계 처분을 내렸으며
이후 서울중앙지검에서 창원지검으로 좌천 인사까지 당했습니다.
정의를 선택한 잔혹한 대가였습니다.
오마이뉴스 2013. 12. 10. 기사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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