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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군 북일면 덕암리는 내수읍 둘레길 코스에 자리 잡고 있다. 덕암천과 형동천, 석화천을 따라 이어진 내수읍 둘레길은 '자연과 사람, 문화가 만나 만들어지는 이야기길'을 지향한다. 내수의 아름다운 자연과 전통이 어우러진 물길은 덕암천과 형동천을 지나며 세종대왕 100리길과 교집합을 이룬다. 상당산성자연휴양림이 개장하면서 전원주택단지로도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내수읍 덕암리를 찾았다.
◆ 계곡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 마을
덕암리는 물길의 시작이다. 세종대왕 100리길 2코스는 상당산성자연휴양림을 끝으로 숲길에서 물길로 전환하는데 그 지점에 덕암리가 있다.
덕암천을 따라 상당산성자연휴양림과 가까운 마을이 덕암2리, 충북보건과학대학 인근 마을이 '대추마을'로 불리는 덕암1리다.
사계절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 마을에 도시 사람들의 이주가 시작된 것은 올해부터다. 지난해 상당산성자연휴양림이 개장한 이후 마을에는 새 집을 짓고 들어온 이웃만 다섯 가구가 넘었다.
잘 정비된 마을 길, 저마다 모양을 달리한 최신식 전원주택은 마을 풍경을 더욱 서정적으로 만들어놓았다. 덕암리는 덕암천을 사이에 두고 큰길과 마을 안쪽 길로 나뉘는데 큰 길이 차량 위주라면 안쪽에 자리한 하천 둔치 길은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이면 마을회관에 모여 레크리에이션을 즐기고, 낯선 이방인에 대한 경계라곤 찾아볼 수 없는 후덕한 인심을 자랑하는 곳이 덕암리다.
내수읍 중앙에 위치한 덕암리에는 430여 명의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동쪽으로 운보의 집이 자리한 형동리, 서쪽으로 묵방리, 남쪽으로 국동리, 북쪽으로 풍정리가 맞닿아 있다.
과거 청주군 산외일면에 속했던 덕암리는 상당산 밑에 큰 바위가 많다고 해서 '시드물' 또는 '덕암'으로 불렸다. 지금도 큰 바위가 여러 개 있는 둠바위, 멍석처럼 생긴 멍석바위, 안장처럼 생긴 안장바위가 마을을 대표하는 지명으로 쓰이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이 폐합되면서 용성리와 묵방리를 일부 병합해 덕암리라는 이름으로 북일면(현 내수읍)에 편입됐고, 북일면은 지난 2000년 1월 1일 내수읍으로 승격했다.
◆ 메밀꽃 필 무렵 덕암리의 고마리
소하천을 따라 이어지는 물길은 오래된 시골집과 전원주택이 만들어놓은 마을 풍경만큼이나 고즈넉하고 평화롭다.
마을회관 앞, 느티나무 그늘 밑에 놓인 평상이며, 가로수 밑에 나란히 놓아둔 낡은 나무의자 2개가 덕암리 인심처럼 여유로워 보인다.
큰 길에는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저녁 무렵 만난 메밀꽃은 가을 달빛과 바람을 타고 파도의 포말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바닷가 어부들은 파도가 일면서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을 '메밀꽃'으로 표현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바다의 메밀꽃이 물꽃이라면, 덕암리 물길에 피어 있는 메밀꽃은 작고 하얀 거품을 닮았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도 '숨 막힐 듯 하얀 소금을 뿌려놓은' 메밀꽃이 등장한다. 주인공 허생원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 삶의 질곡과 어려움을 벗어버리고 달밤에 길을 걸으며 회상했던 성처녀와 하룻밤 이야기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행복했던 추억과 조우, 힘들었던 기억과 화해는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이른 새벽, 비 오는 날, 늦은 저녁 덕암리를 찾아 걸을 때마다 '쓰린 기억'은 추억이 됐고, '화해의 열망'은 희망으로 바뀌었다. 아무리 볼품없어 보이는 생명도 이유 없이 자라는 생명은 없다고 했던가. 고통을 인내하며 삶을 키워가는 것은 길섶의 들풀, 물길을 따라 자란 고마리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던 걸음을 불러 세운 것은 덕암천의 고마리 군락이었다. 마치 꽁꽁 얼어붙은 겨울 강의 숨구멍처럼 가는 물줄기만 남겨놓은 채 고마리 꽃무리는 하천을 넓게 덮어버렸다. 다 감싸줄 것처럼, 다 덮어줄 것처럼 풍성한 꽃을 피워놓고는 묵묵히 하천 물을 정화시키고 있었다.
◆ 마을을 걷다가 만나는 詩적 체험
시집 한 권을 들고 걸어도 좋은 마을. '걷기'가 시가 되는 체험은 덕암리만의 선물이다. 지친 발걸음을 하나-둘-셋-넷 옮겨놓을 때마다 이성복 시인의 '지치거라, 지치거라, 마음이여…'가 떠올랐고, 머물며 걷다가 비워진 마음을 마주할 때는 천상병 시인의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는 울림이 맴돌았다.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읽어도 좋고, 상처를 긍정하게 하는 복효근의 '상처에 대해서'를 읊조려도 좋을 것이다.
들꽃은 마을에서 만난 주민들과도 비슷했다. 물가에 풍성하게 핀 고마리 꽃처럼, 길가 메마른 땅에서 꽃대를 올린 구절초처럼, 덕암리 주민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채 이주민과 낯선 이방인들을 넉넉하게 품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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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마다 함박웃음 '꽃보다 할머니'
버스 종점에 살고 있는 박순백(77) 할머니의 이웃도 전원주택을 짓고 마을에 이주한 경우였다. 이른 저녁을 해결하고 이웃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웃의 새집 낮은 철망 울타리 너머로 젊은 아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 게를 좀 사왔는데 좀 드셔보세요."
비교적 큰 스테인리스 양푼에는 보기에도 큼지막한 '게' 여러 마리가 수북하게 담겨 있었다.
"이 귀한 걸. 근데 이거 살아 있는겨?"
"우리는 이런 거 줘두 못 해먹어."
한바탕 웃음이 흘렀다.
덕암1리에서 만난 박태노(73) 할머니는 오지로 통했던 덕암2리의 변화가 부럽다고 했다.
"휴양림 만들어지고 외지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더 좋아졌어. 땅 값도 엄청 올랐구…."
"부러우세요?"
"그렇지 뭐."(웃음)
덕암1리와 덕암2리의 풍경은 사뭇 달랐지만 주민들의 표정에선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지난 10일 오후 4시에도 할머니들은 마을회관에 모였다. 매주 목요일은 사회복지회관의 레크리에이션이 진행되는 날. 그 날도 여섯 명의 할머니들이 고운 옷으로 갈아입고 일찌감치 회관을 찾았다.
최고령을 자랑하는 김복식(96) 할머니, 핫 핑크가 눈에 띄는 윤옥예(77)·노영순(83) 할머니, 꽃무늬 옷을 입은 신묘식(75)·함유분(82) 할머니, 수줍게 손을 흔들어 보인 김동예(80) 할머니까지 얼굴 가득 웃음꽃이 피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덕암리 할머니들. "괜찮다, 괜찮다" 따뜻한 격려가 필요하다면, 시골 할머니들의 후덕한 인심과 시(詩)적 감성을 충전하고 싶다면 '내수읍 둘레길'과 '세종대왕 100리길'이 만나는 덕암리 덕암천 물길 걷기를 추천한다. / 기획취재팀
■ 기획취재팀 = 김정미 팀장, 김미정, 신국진, 임은석, 류제원, 사진 김용수 부국장, 신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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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동강 문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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