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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의 성공조건1. --주몽의 꿈

정치, 정책/미래정책과 정치 전략

by 소나무맨 2013. 10. 14.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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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의 성공조건1. 


                              주몽의 꿈
 
안철수의 새정치는 성공할 것인가? 더 직접적으로, 현재 추진되고 있는 안철수 신당은 한국정치사에 의미 있는 자취를 남길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정치는 생물이어서 정답은 없고, 대안이 있을 뿐이다. 정답이 아닌, 대안을 찾는 것조차 버거운 이 질문을 놓고 두 번에 걸쳐 고민해보려 한다.

2011년 9월 1일, “안철수, 시장출마결심 임박”이란 기사가 나온 이후 안철수는 한국정치의 중심이 되었다. 대선후보사퇴라는 큰 사건을 겪었지만 안철수는 여전히 한국정치의 최대변수다.  기존정치에서 그리고 기득권체제에서 희망을 찾기 어려운 국민들은 안철수에게서 미래를 보려 한다. 안철수의 영향력이 떨어져도 ‘안철수 현상’만은 그대로다. 이것이 안철수의 힘이다. 안철수는 그 힘을 바탕으로 이제 신당을 만들려 하고 있다. 
 
정치에서는 기존의 체제나 제도가 당면한 문제를 풀지 못할 때 기존의 사고와 틀을 깨는 패러다임전환의 시도가 있곤 했다. 혁명, 개혁, 정권교체, 신당창당. 이것이 패러다임전환의 다른 이름들이다. 
정치의 패러다임전환은 대개 ‘새정치’라는 이름을 걸고 나온다. 건국후 한민당을 개편한 민국당부터 시작해서 모든 정치세력은 자신들의 새로운 등장에 ‘새정치’라는 단어를 사용해왔다.

정치평론가 임두만 선생에 따르면 우리 현대정치사에서 새정치를 내건 세력들은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다고 한다. 1987년 유월항쟁이후만 보면, 한겨레민주당(제정구-괄호안은 핵심지도자), 민중당(이재오), 신정치개혁당(=신정당, 박찬종), 통일국민당(정주영), 국민신당(이인제), 국민통합21(정몽준), 개혁국민정당(=개혁당, 유시민), 창조한국당(문국현)등이 새정치를 표방한 주요 정당이었다. 이밖에도 민국당(김윤환), 미래연합(박근혜), 국민중심정당(심대평), 평화민주당(한화갑), 국민참여당(유시민), 국민생각(박세일) 등이 나름대로 새정치를 주장하면서 창당됐다가 소멸되었다. “지금까지의 ‘새정치’ 주창 세력들은 기성 정치권에서 이탈했거나 새로운 세력이라고 나섰음에도 기성정치권의 벽을 뚫지 못하고 기성정치권에 흡수되거나 소멸되어 간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항상 실패한 것만은 아니다. 80년대 이후 세 번의 성공사례가 있었다. 김대중 김영삼이  1985년 1월 18일 창당, 불과 한 달도 안 된 2.12총선(12대)에서 돌풍을 일으킨 신한민주당, 김대중이 95년 9월에 만들어 96년 4월 15대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떠오른 새정치국민회의, 그리고 현직대통령 노무현의 지지세력이 2003년 11월 창당해 2004년 17대 총선에서 제1당이 된 열린우리당이 그것이다.
 
이들 세 정치세력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가? 
첫째, 세 당 모두 총선(국회의원선거) 직전에 창당돼 총선을 치렀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점은 매우 중요하다. 새정치세력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국적 정치무대에서 영향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 핵심이 국회다. 국회의원이 달라지고 움직여야 정계가 개편된다. 
둘째, 세 당 모두 총선의 결과에서 제1야당 또는 제1당의 지위를 차지, 새정치실험에서 성공했다. 제1당이든 제1야당이든 ‘제1당’의 지위를 차지하지 않고는 새정치세력의 성공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변화를 바라는 국민의 정치적 에너지가 최고조일 때 창당되었다. 신민당은 전두환군사독재에 대한 분노, 이름뿐인 야당인 민한당에 대한 반감 속에 이겼다. 새정치국민회의는 3당합당과 기존야당의 무기력에 대한 국민의 선택이었다. 열린우리당은 탄핵사태에 대한 국민들의 광범위한 분노에 힘입어 대승을 거두었다. 
넷째, 세 당 모두 확고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었다. 신한민주당은 김대중과 김영삼, 새정치국민회의는 김대중, 열린우리당은 노무현에 대해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기힘든 확고하고도 강력한 지지자들이 존재했고, 지역적 지지기반 또한 탄탄했다.

성공한 새정치세력인 기존의 세당과 안철수신당을 비교해보면 어떨까?
첫째, 창당시기. 안철수신당은 세당과 다르게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을 만들고 있다. 광역자치단체장을 몇곳 배출해도 전국적 정치에서의 영향력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점이 기존 세당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안철수캠프 핵심들이 창당을 주저한 것도 그리고 지금도 지방선거이후 창당주장이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둘째, 선거결과. 안철수신당이 야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까? 광주와 전남, 전북 등 호남지역 광역단체장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기초단체장과 시도의원급에서도 일정한 성과가 예상된다. 그러나 정국에 대한 영향력이 큰 서울 경기 부산 등의 선전을 기대하기도, 민주당을 제치는 성과를 거두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셋째, 정치적 에너지. 지금이 최고조인가? 안철수가 정치인이 되겠다고 선언했던 2011년 9월에서 2012년 4월총선 전까지는 안철수는 ‘핵폭풍’급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4월총선 전에 안철수가 창당했다면 제1야당은 지금 민주당이 아니라 안철수신당이었을 것이다. 현재는 안철수의 에너지가 변화를 바라는 국민의 에너지를 뒤따라가는 형국이다. 에너지가 없진 않으나 충전이 필요한 상황이다. 
넷째, 지지기반. 김대중 노무현과 달리 안철수는 맹렬한 지지세력이 적다. 중도를 지향하는 정치인답지만, 어려울 때는 광범위한 맹렬지지자가 버팀목이다. 안철수의 지역적 지지기반도 전국에서 호남으로 좁혀진 느낌이다. 물론 전국적으로도 아직 안철수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하지만 지역적 기반이 크게 축소된 것은 분명하다. 부산영도로 가지 않고 서울 노원으로 감으로써 전국적 지지기반을 넓히려 했던 당초의 구상과는 다른 사태전개이다. 
   
이렇게만 보면 안철수신당의 미래가 썩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곧바로 안철수의 정치적 미래의 전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안철수의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위의 글에서 다루지 않은 ‘사람의 문제’와 함께 정치란 무엇이고 새정치세력의 범주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로 돌아온다. 그 논의는 역사적 사례를 짚어보고 안철수 앞에 놓인 선택지들에서 대안을 찾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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