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정책토론]
|
|
|
▲ 사회 :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
|
|
|
▲ 정부 행정 : 권해수 (한성대 교수) |
|
|
|
▲ 정치 사회 :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
|
|
|
▲ 노동 :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 |
|
|
|
▲ 언론 : 신태섭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 / 동의대 교수) | 언론장악의 역사 청산하고, 민주적 언론법제 재구축해야
신태섭(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 / 동의대 교수)
1. 저널리즘과 민주주의
저널리즘이란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와 해설 등 뉴스를 전달하고, 주의주장들의 시시비비를 가리며, 이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고 1), 사회적 합의에 의한 문제해결을 촉진하는 언론현상 또는 그러한 실천 과정을 뜻한다. 그 핵심은 방송이 시민들에게 공적 정보를 정확하고 충분히 전달하고, 다양한 의견을 형성·교류할 수 있도록 공정한 공론의 장을 형성하는 것이다. 저널리즘은 민주주의가 구현되고 작동 할 수 있도록 하는 필수조건이고, 신문사나 방송사 등 저널리즘 기관은 그 필수 인프라다.
국민들이 서로 다른 관점의 다양한 의견과 주장을 접할 수 있을 때, 특히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입장과 의견을 접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저널리즘 기관들이 그것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주창할 때, 여론조작은 어려워지고 여론 다양성은 제고된다. 자본과 노동, 부자와 서민, 강자와 약자 등 대립적 관점과 주장들이 언론보도를 통해 공존하고 경합할 때, 숙의민주주의 또는 공론장은 비로소 실효성 있게 작동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주권자는 국민이다. 국민이 실효적으로 주권자가 되려면, 공적 사안들을 숙지할 수 있어야 하고, 그에 관해 토론할 수 있어야 하고, 그와 관련한 사회적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에겐 관련 이해관계와 관점들을 포함한 공적 사안에 대해 알 권리가 있고,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소통할 권리가 있다. 저널리즘 기관들은 국민들에게 그러한 기회를 제공할 도덕적 책무를, 방송의 경우 법률적 책무를 지고 있다. 따라서 국가는 정상적인 저널리즘의 작동을 지원(신문) 하고 보장(방송)해야 한다.
2.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언론정책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은 최악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감사원·검찰·국세청·교육부·방통위·공영방송 이사회 등 공정하고 중립적이어야 하는 국가기구와 공공기구를 동원해 KBS, MBC, 연합뉴스, YTN 등 공영 미디어들을 부당불법하게 장악했다. 이명박 정부의 공영 미디어 장악은 다음과 같은 다섯 단계의 수순을 밟으며 진행되었다. 첫째 낙하산 사장 투입, 둘째 친정부 편파방송을 함께 도모할 간부인사 단행, 셋째 노조원 등 비판적인 사내구성원들에 대한 탄압과 징계, 넷째 정부에 대한 비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프로그램의 폐지 또는 축소, 다섯째 친정부 홍보프로그램 편성과 실행이다.
이로 인해, 민주적 여론형성과 국민의 알권리를 사명으로 하는 공영 미디어들은 정권 등 기득권층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고, 매우 불공정한 정권의 홍보도구로 돌변했다. 많은 언론인들이 파업 등의 방법으로 이에 항의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1975년과 1980년 언론인 대학살과 유사한 해고 19명 등 440명의 대규모 징계였다.
이명박 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방송구조 자체까지 개악했다. 글로벌 미디어를 육성하고 고용을 창출한다는 허황된 슬로건을 내걸고, 신문과 대기업의 지상파방송 소유를 허용하고, 광고시장의 한계를 넘어서서 조선·중앙·동아·매경 등 신문에게 종합편성 PP를 신규 허가했다. 이로써, 한편으로는 보수 기득권층의 여론지배와 여론독과점이 더욱 심해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언론사들은 정부와 대자본의 차별적 시혜 없이는 정상경영이 어려운 언론생태계의 파괴, 언론시장의 황폐화가 초래됐다. 이명박 정부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정치적으로 검열의 도구로 악용해, 방송과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탄압하고 축소시켰다.
2012년 7월 대선후보출마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MBC 파업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방송 언론의 공정성은 확보돼야 하고, 독립성이나 자율성도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대통령 선거공약집 287쪽에서 “방송은 공공성을 지닌 미디어이나 공영방송의 지배구조에 정치적 영향력 행사로 독립성, 중립성 침해 논란(이) 발생” 했다고 현실을 진단하고, 방송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회복하고 개선하기 위해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편”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289쪽에서는 인터넷 표현의 자유에 대해 “통신심의의 남발과 인터넷포털사의 임시조치 남용으로 인한 표현의 자유 위축”을 지적하고, “통신심의를 대폭 축소하고, 임시조치 제도를 개선하여 정보 게재자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선 승리 이후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그 약속들이 애초에 그런 공약이 없었던 듯 일절 외면과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출범 초기엔,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해 ICT 산업 진흥을 꾀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근본적으로 더 심각하게 훼손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강행했고,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는 이명박 정부의 방송장악과 구조개악을 계승·확대하는 데 몰두해왔다.
3. 언론개혁 과제 1 : 역사 바로 세우기
반민주적이고 역사퇴행적인 공영 미디어 장악의 비극적 사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언론을 장악해 통치수단으로 삼으려는 독재회귀 정권을 법과 제도로 막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또 최선도 아니다. 낙하산 방지법을 제정하고, 사장과 이사 선임과 운영방식 개선 등 공영방송의 거버넌스 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그러한 퇴행적 시도를 어렵게 하거나 완충하는 데 도움은 될지언정 그것을 근원적으로 막아내지는 못한다.
그런 비극의 재연을 막기 위해, 그리고 이미 벌어진 비극을 극복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정권에 의한 언론장악과 언론악용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윤리적으로나 실정법상으로나 용납되지 않는 상식과 문화를 확립하는 일이다. 즉, 엄중한 심판과 처벌을 통한 역사 바로 세우기이다. 국가권력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사상과 의식을 조작·동원하는 일은 용서받을 수 없는 매우 중한 범죄라는 상식을 온 국민이 학습하고 공유하는 역사에 시민들이 참여하고, 목도하게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선진국들에서 법과 제도가 뛰어나지 않더라도 혹은 오히려 부족함이 있더라도 정부가 공영방송을 장악해 정치적으로 이득을 보려는 시도가 없거나 적은 것은 일찍부터 그 같은 정치문화와 언론문화가 뿌리내리고 계승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2008년 이명박 정부로부터 시작돼 박근혜 정부까지 지속되고 있는 언론장악과 언론악용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그 책임을 묻는 것이 첫 번째 과제라 할 수 있다. 검찰, 감사원, 국세청, 교육부,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공영방송 이사회 등을 앞세운 정권의 방송장악, 비판적 방송인 및 프로그램 탄압, 인터넷 표현의 자유 억압, 언론자유와 공정언론을 요구하는 언론인에 대한 대규모 탄압 등의 진상을 규명하고 그 책임여부를 밝혀야만 비로소 정권에 의한 언론장악이 재연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실시하고, 그 결과 밝혀진 방송장악과 언론자유와 언론인 탄압의 책임자를 관련 법규 위반으로 고발해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현존하고 있는 낙하산 사장과 그 부역자들의 언론자유 탄압과 정권호위의 진상도 규명하고,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 과정과 박근혜 정부의 그 계승 과정에서 그에 대한 저항이나 불복으로 인해 징계를 당한 언론인들의 원상과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도 병행되어야 한다.
3. 언론개혁 과제 2 : 방송의 독립성 ·공정성을 보장하는 법제·정책의 개선
첫째, 방송의 독립성을 유효하게 보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편성위원회의 구성·운영 방식을 법률로 규정하고, 방송의 공적 책임에 관한 규정을 보완하는 한편, 이를 재허가·재승인에 반영하고, 위반 시 벌칙을 강화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현행 방송법은 방송제작·편성의 자율성 보장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보장은 실속이 없어 국가나 소유주 및 경영관료의 자의적이거나 과도한 통제에 대해 유효한 대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정권이나 경영진이 상식과 법 취지에 반해 부당하게 방송제작·편성에 개입하려 할 때, 이를 완충하고 제어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도가 없는 상태이다. 우선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정한 방송법 제4조를 개선하여 정부, 광고주, 방송사업자 등이 방송편성에 간섭할 수 없도록 하고, 동시에 종합편성 또는 보도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의 경우, 노사 동수의 비율로 편성위원회를 구성해 ‘편성규약’을 제정토록 하고, 편성규약 안에 ‘노사동수로 구성되는 공정보도위원회의 운영’ 과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방송사 자율심의의 기준과 절차’에 관한 규정을 포함 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방송의 공적 책임에 관한 규정을 개선하고 그 실효성을 제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적 여론 형성’을 우선적인 방송의 공적 책임으로 강조하고, ‘여론다양성 보호·신장’을 방송의 공적 책임의 하나로 추가해야 한다. 또한, 편성위원회를 구성하지 않거나 그 운영을 해태하거나 방해하는 경우, 그리고 편성규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체결된 편성규약을 시행하지 않는 경우에 대한 벌칙 규정을 개정·강화 하고, 이를 재허가·재승인에 연결된 방송평가에 비중 있게 반영토록 해야 한다.
셋째, 공영 미디어의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다. 현행 방송법은 정부여당이 공영 미디어 이사의 절대다수를 독식하고 이를 통해 낙하산 사장을 투하하는 것을 견제할 장치가 없는 상태이다. 이사회 구성에서 여야의 균형 혹은 절대다수제의 도입으로 여당의 일방주의를 차단하고,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의 자격요건을 개선하는 한편, 이사와 사장 추천·선임 과정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넷째, 정권의 방송통제 도구, 행정편의적인 통신규제 도구로 전락한 방송통신위원회를 방송의 독립성과 민주적 여론형성 및 통신에 대한 자유롭고 보편적인 이용을 보장하는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공공정책 규제기구로 재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방송통신규제기구의 목적을 방송의 독립성과 여론다양성 및 통신에 대한 보편적 접근성 등 방송통신의 공적 기능 보장과 커뮤니케이션의 자유 함양으로 규정하고, ‘위원장을 포함한 2인의 대통령 지명권’을 삭제하고 위원장과 부위원장은 위원들 간의 자유로운 호선을 통해 결정하게 하는 등 합의제적 성격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정책의 독립성과 전문성 및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한 장치의 보완도 필요하다.
다섯째, 방통심의위 해체와 민주적 심의기구로서 재조직화해야 한다. 방통심의위는 그 구성과 심의 과정에서 잦은 정치적 공정성 시비를 빚으면서 저널리즘을 위협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검열기구·권력기구로 변질됐다. 또한 수용자 정서와 괴리된 빈번한 탈맥락적 심의로 인해서 창작자들의 창의성이 위축되고 제작진의 자기검열을 초래하는 문제를 낳고 있다. 심의위원 구성에서 여야 추천을 대등하게 하고 시민과 전문가의 참여를 확대해 과도한 정파성을 배제하는 것, 공정성 심의가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방통위 설치법 제18조, 방송법 제32조 및 제33조, 방송심의규정 등 관련 규정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밖에 여론다양성을 위해 대기업·신문의 방송지배를 금지하는 방송 소유·진입 규제의 회복과 여론독과점 규제의 실효화, 여론조작과 미디어 생태계 파괴의 주범 종편에 대한 부당한 특혜의 해소와 종편 규제체계의 정상화, 시청자주권의 토대 위에서 방송영상산업의 발전을 효율적으로 촉진하는 진흥체계의 재정비 등도 필수적이다.
4 . 언론개혁 과제 3 : 신문지원체계의 정비와 신문시장 정상화
여론다양성과 산업 양 측면에서의 신문의 위기도 누적적으로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마련된 언론진흥기금과 지역신문발전기금 등 신문지원제도는 이명박 정부 이후 크게 축소·왜곡되어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 민주적으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의견다양성 보장은 헌법적 요청이다.
신문의 다양성 구현과 산업 진흥을 위해 2009년 이전 신문법 체제를 복원·개선하는 일, 지역신문법 개정과 지역신문지원제도를 복구·재정비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신문현업, 학계, 기자협회, 노조, 시민언론단체, 국회 문방위 등을 포함한 신문산업 관련자가 참여하는 대통령 자문기구로 신문산업진흥위원회를 운영하고, 그로부터 주요 정책제안을 제안 받아 입법·추진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신문시장의 공정거래질서를 왜곡시키는 다양한 경품제공과 무가지 배포 등 신문의 불법 독자매수 행위는 아예 일상이 된 상태이다. 경품 및 무가지 제한 기준을 강화하는 등 신문고시의 내실화를 기하고, 공정거래위원회의 감시 감독 기능을 실효화 하는 일도 추진해야 한다.
문화행정, 혁신적 창의적인 거버넌스 실험이 필요하다
이원재(문화연대 사무처장)
1. 국가의 문화행정은 수동적이고 일방적인 국가권력의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통제를 욕망하는 국가권력”과 “개인의 행복을 향한 욕망” 사이에서 존재하는 수많은 갈등과 충돌의 ‘장’(field)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국가의 문화생산을 주관하는 문화행정과 관료사회는 사회변동, 국가권력의 변화, 사회적 합의 등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 발달해 왔다. 문화행정의 목적, 대상, 방법, 주체 등은 경험적이고 관성적으로 고착된 것이 아니라 사회변동과 권력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갈등하고 충돌하며 변화 해 온 결과물들이다.
특히 한국 사회는 국가정책에 있어 문화의 정치적, 경제적 종속 현상이 심각한 사회다. 지금까지의 문화정책과 문화행정은 국정 운용에 있어 문화적 가치의 사회적 생산 및 소통보다는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른 수단 및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다시 말해 국가 권력의 교체와 변화에 따라 문화행정의 정체성과 목적 등은 일방적이며 단절적으로 해석되거나 재편되어 왔다.
【표】각 시기별 문화행정의 목표 비교분석
▪ 박광국 <문화행정 60년의 분석과 과제>(한국사회와 행정연구 2008) 재구성
2.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더불어 본격적인 문화행정이 시작되고 문화관료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국민의 정부 시기부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전 시기들에서도 문화권력과 문화관료는 존재했지만 이는 일반적인 국가권력의 질서 속에서 차별화된 특성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국민의 정부가 문화복지, 문화산업 등 문화행정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하면서 국가 문화행정과 문화관료 사회는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국민의 정부에서 시작하여 참여정부, 이명박정부를 거치며 본격화된 문화행정과 문화관료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신자유주의, 생산력주의, 신성장동력 등의 경제적 가치에 기반한 문화정책의 재구조화 경향이다. 이는 후기자본주의의 사회변동, 경제위기 등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는데, 무엇보다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일상화된 경제위기 속에서 문화는 그 상대적 자율성마저 크게 상실됐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후기자본주의 사회와 문화행정에서 문화를 둘러 싼 사회적 경계는 외파 되어 일상의 대부분이 “문화적”으로 인지되고 소비되는 구조를 생산·재생산하게 되었다. 그 결과 후기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문화와 경제의 융합화(문화경제)가 가속화되고, 이를 통해 문화자본의 형성 및 문화소비의 확대가 진행되었다. 문화와 경제의 경계가 소멸하고 탈분화(de-differentiation) 되는 경향이 심화되는 “문화적 정치경제”(cultural political economy)가 형성되었고, 이를 둘러 싼 국가권력과 지배권력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집행하는 문화관료 사회가 작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표】 최근 한국 정부 문화행정의 주요 흐름 및 특징
이러한 과정을 경유하면서 한국의 문화행정과 문화관료 사회는 국가 단위 문화의 생산, 유통, 분배 등에 있어 적극적인 이해관계와 영향력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문화관료들은 문화의 사회적 영향력을 통한 새로운 국가권력 및 문화권력의 탄생, 다양한 문화자본의 형성과 산업화, 문화적 형식을 차용한 대규모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단위의 개발사업, 문화행정과 제도에 기반한 사회적 이해집단 구성, 국가재정의 독점과 분배를 통한 문화생태계 서열화 등에 능동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3. 최근 들어 문화의 사회적 가치가 부상하고 문화를 매개로 하는 사업영역들이 양적으로 확장되면서 국가 단위 문화생산에 있어 문화관료들이 차지하는 권력과 영향력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중앙 정부 문화관료에서 시작하여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문화분야 전문기관과 중간조직 그리고 현장 문화예술인들로 흘러가는 국가 재정과 하달식 지원사업 구조는 어느새 한국 사회의 문화생태계를 “하청구조화” 하였다. 국가 권력이 “갑”이 되고 현장 문화예술인과 주민이 “을”이 되는 불평등하고 일방적인 권력 관계가 형성되고, 이를 계기로 문화관료들은 자신의 이해를 서슴없이 요구하고 관철시키는 관료주의적 문화행정 체계를 수립하였다. 문화관료 중심의 문화행정이 가져온 문제점들을 확인 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문화관료 중심의 문화행정은 문화를 지배권력 중심의 정치적, 경제적 도구로 전락시켰다. 둘째, 문화관료 사회의 이권과 관성 속에서 문화정책 및 문화행정은 능동적으로 사유화되었다. 셋째, 문화관료 중심의 문화행정은 문화민주주의와 문화 공공성을 형식화하고 있다. 넷째, 문화관료 중심의 문화행정은 문화적 가치를 통해 사회적 갈등이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들을 오작동 또는 무력화 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문화관료 중심의 문화행정에서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대규모 시혜성, 전시성 사업들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4. 이제는 한국 사회의 관료화된 문화행정, 문화관료 사회 중심의 이익 집단화된 문화생산 질서에서 벗어나 문화생산과 문화행정의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안적인 문화 생산의 출발점은 아마도 “정책” 또는 “행정”을 지배권력, 중앙정부, 공공기관 등의 일방적인 업무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자율적인 삶의 영역을 다양하게 기획하고 구체화하는 과정, 그 자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문화정책과 행정은 국가기관에서부터 개인까지, 지구적인 네트워크에서 마을의 이웃까지, 예술가에서부터 주민들까지, 놀이에서 소비까지, 과거에서 미래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작동한다. 이제 문화행정은 5년이라는 권력의 시간, 지배권력의 교체 사이클과 문화관료들의 이해관계 구조에서 벗어나 좀 더 본질적이고 지속적이며 다양한 시공간 속에서 형성되고 관계돼야 한다.
그렇다면 대안적인 문화생산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현대사회 속에서, 노동 착취는 물론이고 감수성과 상상력까지도 상품화하고 거래하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우리는 어떠한 문화를 상상하고, 만들어 갈 수 있을까? 그 모든 과정들이 지원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공급되고 있는 정책구조 아래서, 철저하게 "하청계열화" 되어 있는 전달체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아마도 이에 대한 정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수많은 상상력과 실천 그리고 시행착오의 반복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문화정책과 행정을 상상하고, 공유하고, 실험하고, 공진화할 수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대안적인 문화생산, 관료화된 문화행정의 혁신을 위한 몇 가지 출발점을 제안해 본다.
먼저 대안적인 문화생산은 허위적인 문화예술이나 문화관료들을 위한 전시행정이 아니라 삶을 둘러 싼 생존의 영역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둘째, 대안적인 문화생산은 자본주의의 “공급된 삶”을 경계하고 자율적 문화 형성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 대안적인 문화생산의 중요한 전략 중에 하나는 바로 프로그램 공급에서 벗어나 “자율시간의 확장”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넷째, 대안적인 문화생산은 “지역화” 전략과 문화적 관계의 복원에 주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문화관료 중심의 구조화된 문화행정의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문화생산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거버넌스”의 실험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