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용작물 열매 맺기, 양봉이 야생벌 대체 못한다
2010년 10월 12일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양봉 농민 1000여명이 상복을 입고 '토종벌 장례식'을 치렀다. 그해 봄과 여름 이상 기온과 전염병으로 토종벌이 폐사하자, 보상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그날 현장에선 '벌이 죽으면 인간도 죽는다'는 문구가 등장했다. 당장 와 닿지 않았던 그 문구가 과장이 아님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단, 진짜 인류를 위협할 수 있는 것은 양봉(養蜂)의 죽음이 아니라 야생벌의 죽음이라는 결론이다.
아르헨티나·독일·미국·일본·호주·콩고 등 17개국 과학자들이 참여한 국제공동연구진은 야생벌을 비롯한 나비, 딱정벌레 같은 곤충들이 지금처럼 감소하면 인류 식생활에 심각한 위기가 올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논문을 지난달 28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인류가 기르는 식용작물의 75%는 누군가 수술의 꽃가루를 암술에 묻혀줘야만 열매를 맺는다. 가루받이 혹은 수분(受粉)이라고 불리는 이 일을 해주는 존재가 벌과 같은 곤충들이다. 그러나 지구온난화와 문명화에 따른 서식지 감소로 이 곤충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잇따라 발표됐다. 생태학자들은 이 추세가 멈추지 않으면 작물 수확이 크게 감소해 인류가 심각한 식량 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우려해왔다.
이 같은 위기론에 대해서는 반론도 만만찮게 제기돼왔다. 인간이 기르는 꿀벌, 즉 양봉이 이 야생 곤충들의 빈자리를 얼마든지 메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양봉 숫자는 전 지구적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꿀벌이 떼죽음하는 사례가 빈발한다고 해도 꿀벌에 치명적인 전염병이나 기생충을 막는 방안만 확보하면, 식량 위기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 상반된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연구진은 6개 대륙 600곳에서 곤충의 가루받이 생태를 추적조사했다. 대상은 토마토, 커피, 수박, 견과류, 망고 등 41개 식용작물이었다. 사람이 기른 양봉을 포함해 야생의 벌과 나비, 파리, 딱정벌레 등이 이 식물들이 열매를 맺는 과정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추적했다. 이를 위해 식물마다 들락거리는 곤충들을 헤아리고 종류를 분석했다.
그 결과, 양봉은 식물이 열매를 맺는 과정에서 14% 정도밖에 기여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생벌과 나비 등 야생 곤충이 나설 경우 열매가 맺히는 비율은 2배나 높았다. 양봉에 의해 가루받이가 이뤄지는 아몬드와 블루베리, 망고, 수박 등도 야생 곤충이 가루받이할 경우 열매가 훨씬 잘 열렸다.
가루받이 양상도 달랐다. 양봉은 한 식물을 맴돌며 같은 뿌리에서 난 꽃들을 공략했다. 반면 야생벌들은 여러 식물을 옮겨 다니며 다양한 꽃가루를 날랐다. 연구진은 "야생벌의 가루받이 방식은 유전적으로 다양한 형질을 뒤섞어 더 강하고 튼튼한 과일이 열리게 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양봉은 야생벌과 같은 곤충의 자리를 대체할 수 없으며, 양봉에만 의존하는 것은 식량 생산을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더 큰 문제는 야생벌 등 곤충이 급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 대학의 티파니 나이트 교수 등 미국 연구진은 지난 100년간 야생벌이 급감했다는 연구 결과를 같은 날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곤충학자인 찰스 로버트슨이 1887년부터 1916년까지 20년간 일리노이 지역 1429개 곤충의 456종 식물에 대한 가루받이 활동을 기록한 자료와 현재를 비교한 결과다.
로버트슨이 기록했던 시기에 존재했던 야생벌의 45%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식지 감소 등으로 인한 야생벌의 개체 수 감소는 일리노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현상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식물이 꽃가루를 필요로 하는 때와 야생벌이 활동하는 시기가 어긋나는 현상이 커지고 있다는 것도 확인됐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연구진은 "식물의 가루받이를 촉진하는 야생 곤충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없으면 농업 생산이 위태로워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3/04/20130304028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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