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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나눔의 미덕 콩반쪽 운동’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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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나눔의 미덕 콩반쪽 운동’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거창군은 경상남도 북서쪽에 위치한 조그마한 군이다. 북쪽이 가야산과 덕유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에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인구는 6만명이 조금 넘는다. 수도권의 2~3개 동을 합친 것과 비슷하다.

이곳에서 지역
사회를 아래로부터 바꿔보려는 작은 흐름이 일어나고 있다. ‘콩 반쪽도 나눠 먹는다’는 속담에서 이름을 따온 ‘콩반쪽 운동’이다.

콩반쪽 운동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맡겨놓은
커피’(suspended coffee) 운동과 취지와 방식이 유사하다. 콩반쪽 가게 손님이 익명으로 특정 품목의 금액을 먼저 내고, 가게는 이를 보관해 뒀다가 해당 물품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제공하는 방식이다.

아딸 거창점의 콩편지. 콩반쪽을 내는 사람이 콩편지를 쓰면 콩반쪽을 쓰는 사람이 답장을 적는다. /백철 기자

누군가 먼저 돈 내고 다른 사람이 이용

올해 4월 시작된 거창 콩반쪽 운동은 커피뿐만 아니라 모든 품목에 나눔을 확장시켰다. 커피,·빵과 같은 먹거리뿐만 아니라 미용·목욕과 같은 서비스도 누군가 먼저 익명으로 낸 것을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있다. 먼저 돈을 낸 사람은 콩편지 종이에 콩반쪽 이용자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쓴다. “떡볶이 1인분 맡겨요”라고 쓰면 콩반쪽 이용자가 “배가 너무 고팠는데 감사해요”라는 답장을 남기는 식이다.

콩반쪽 운동의 참가자들은 “오래 가기 위해 천천히 간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한때 이들은 김준호 동서울대 교수가 시작한 ‘미리내 가게’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김 교수가 미리내 가게 확장에 신경쓰는 모습을 보면서 거창 콩반쪽 운동은 6월부터 독자적인 행보를 하기로 결정했다. 좋은 취지의 운동이라고 해서 빠르게 가게 수를 늘려가는 것이 올바른 방법은 아니라는 게 콩반쪽 활동가들의 생각이다. 가게 수를 늘리다 보면 콩반쪽을 악용해 손님들이 먼저 내고 간 금액을 챙기거나, 가게 주인이 콩반쪽 운동을 개인 홍보수단으로 삼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현재 거창과 합천에서 콩반쪽 운동에 참여하는 가게는 총 10곳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거창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신뢰를 쌓아온 사람들이다.

콩반쪽 운동이 거창 지역사회 내에 서서히 전파되면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콩반쪽 운동의 제안자 정연탁 안의한의원장(50)이 페이스북에 개설한 ‘나눔가게 콩반쪽’ 페이지에는 현재 330명이 넘는 회원들이 가입해 있다.

거창군청 인근에 위치한 목욕탕 ‘건강랜드휴’의 주인 유영재씨(42)도 시민단체 출신이다. 유씨는 대학에서 지역사회 운동을 공부한 뒤 거창 YMCA, 푸른산내들에서 실무자로 활동하며 정 원장 등과 인연을 쌓았다. 콩반쪽 운동에 동참하자는 제안이 왔을 때 유씨는 망설임 없이 승낙했다.

유씨는 콩반쪽을 이용하는 사람에 제한이 없다는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유씨는 그동안의 경험상 날씨가 비교적 추운 때에는 60대 이상 노인들이 자주 목욕탕을 찾는다고 전했다. 특히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 온수 사용이 여의치 않은 노인들에게는 목욕탕이 절실하다고 했다.

유씨는 “목욕탕에서 무료쿠폰을 만들어 노인봉사단체에 전달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쿠폰을 받는 분들이 어쩔 수 없이 나에게 마음의 빚을 질 수밖에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콩반쪽은 주인인 내가 내주는 것도 아니고, 돈이 없는 사람만 쓰라는 법도 아니기 때문에 이용하는 분들도 마음의 부담 없이 사용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콩반쪽 가게 초록마을 거창상림점의 주인 정은주씨(40)는 경제사정이 좋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정씨는 “집에 쌀이 없어 영세민 카드를 내고 쌀을 타오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마다 혹여라도 친구가 내 모습을 볼까봐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고 말했다.

그는 “콩반쪽 운동은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다함께 살아가자는 운동이다. 하지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넌 도움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 처지’라고 일깨워주는 게 아니라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방식으로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남 거창군 창남초등학교 인근에 위치한 마사 커피숍. 입구에 ‘콩반쪽’ 간판이 걸려 있다./백철 기자

“어려운 사람 자존심 건드리지 않는 방식”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주로 콩반쪽을 이용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용에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용돈을 받고 생활하는 학생들도 콩반쪽 가게를 자주 찾는다.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거창의 학생들도 하교시간에 떡볶이집에 모여든다.

떡볶이 프랜차이즈 ‘아딸’ 거창점을 2011년부터 운영해온 김태민씨(42)는 콩반쪽 운동에 참여한 이후 가게를 찾는 학생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고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나도 10대 자녀가 둘 있지만 요새 아이들을 보면 놀랄 때가 많다. 중학생들이 자주 가게를 찾는데, 돈을 낸 아이들만 떡볶이를 먹고 돈이 없는 아이는 음식을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고 말했다.

콩반쪽 운동에 참여한 이후 김씨는 돈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콩반쪽을 통해 떡볶이 등을 먹을 수 있게 해줬다. 그는 “콩반쪽을 줄 때마다 학생들에게 나눔의 의미와 콩반쪽 운동의 취지를 설명해줬다. 그래서인지 요새는 돈이 있는 아이, 없는 아이가 함께 나눠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민씨는 유영재씨와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였다. 현재도 유씨처럼 거창지역 시민단체 회원으로 있다. 김씨는 콩반쪽 운동에 참여하기 전부터 독거노인, 탈학교 청소년들에게 자신이 만든 떡볶이와 빵 등을 무료로 제공해 왔다. 시민단체 활동, 봉사활동을 하면서 김씨도 자연스레 콩반쪽 운동에 참여한 것이다.

거창에 나눔문화가 퍼진 지 4개월이 지났다. 아직 콩반쪽 운동은 그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콩반쪽 활동가들은 이 운동이 ‘공짜 서비스’처럼 인식되는 것을 걱정했다. 실제로 콩반쪽을 공짜로 생각하고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김태민씨는 “일전에 아주머니 한 분이 와서 이거 공짠데 떡볶이 6인분 정도 포장해 달라고 말한 적도 있다. 부잣집 아이가 확실한 학생들이 콩반쪽을 이용할 때도 가끔 있다”고 말했다.

거창 창남초등학교 앞에서 커피숍 겸 교회 ‘마사’를 운영하는 강인중 목사(43)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하교시간이 되면 커피뿐만 아니라 팥빙수, 빵을 파는 마사에 창남초 학생들이 몰려든다.

콩반쪽은 누군가 먼저 돈을 낸 만큼만 나눠주기 때문에 갯수에 제한이 있다. 이 콩반쪽을 선점하기 위해 창남초 학생들끼리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강 목사는 콩반쪽 운동 초창기에 벌어지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눔의 문화가 정착이 될수록 능력에 따라 기부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적으로는 빈곤하지 않더라도 정서적으론 빈곤한 아이들이 요새 참 많다. 부모의 맞벌이로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않는 아이들, 손가락질만 받고 자라난 아이들, 이들에게도 차별 없이 나눔의 의미를 전하고 싶다. 콩반쪽을 무조건 공짜로만 여기던 아이들도 차츰 콩편지에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도 커서 기부 많이 하고 살게요’라는 메시지를 남기기 시작했다.”

김태민씨도 “콩반쪽을 이용한 학생들이 콩편지에 남긴 짤막한 글을 보면 효과가 전혀 없지는 않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이 사회에 나눔을 주는 어른으로 자라나는 데 콩반쪽 운동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거창에 콩반쪽 운동이 완전히 뿌리내렸다는 것은 아니다. 한계도 있다. 8월 29일 아딸 거창점의 콩반쪽 알림판은 콩반쪽이 다 사용되고 없다고 적혀 있었다. “콩반쪽이 많이 활성화돼서 없는 것이냐”고 묻자 김태민씨는 “콩반쪽을 가져가려는 사람이 많은 반면 나누는 사람은 적다”며 “몇 달간 운영해보니 나누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생각보단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평소에 알고 다니던 사람들이 주로 콩반쪽을 나눈다. 지인들이 기부하고 가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는 일반 손님들도 많이 내야 하는데 아직은 그런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거창군청 인근 ‘건강랜드휴’의 콩반쪽 알림판에 누군가 먼저 낸 목욕비 현황이 걸려 있다./백철 기자

운동 초장기라 ‘공짜’로 인식할까 걱정

콩반쪽 운동을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콩반쪽 가게가 아직 미리내 가게의 일부였던 지난 5월 초와 6월 중순, 언론에 미리내 가게가 소개됐다. 이후 거창군민 사이에서 콩반쪽 가게를 알아보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반대로 콩반쪽 운동을 오해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거창군은 인근 경남지역에 비해 시민단체, 농민단체가 활성화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거창군도 기본적으로는 보수적인 정서가 지배하는 곳이다. 초록마을 거창상림점을 운영하는 정은주씨는 “시민단체가 활성화된 것은 맞다. 하지만 시민단체에 열심히 참여하는 한편 정치적으로는 새누리당을 지지하시는 분도 많은 게 거창”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나눔 실천을 ‘종북주의’로 오해받은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6월에 미리내 가게에 대한 기사가 나온 다음날 연세가 지긋하신 남성분들이 가게를 찾아왔다. 우리 가게에는 주로 반찬거리를 사려는 아줌마들이 자주 오는데 그날 따라 이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분들이 가게 안을 휘저으며 이런저런 트집을 잡기에 ‘어떤 일로 오셨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한 분이 ‘나누자, 공짜로 주자는 것 이거 공산주의 아니냐. 종북 아니냐’고 시비조로 말했다”고 전했다.

마사 커피숍의 강인중 목사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강 목사는 “하루는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 커피숍을 찾아왔다. 그래서 나는 평소처럼 손님에게 콩반쪽 운동의 취지를 설명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설명을 들은 남성이 ‘목사가 어떻게 좌파들하고 어울리면서 좌파활동을 하냐. 이 나라가 어떻게 지켜졌는지 알고 이런 일을 하냐’고 따지듯이 말하더라. 그래서 ‘내가 1996년 북한 잠수함 사건 때 군생활하면서 군인들 죽어나가는 것 옆에서 직접 봤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애국이나 조국을 내세우지 마라’고 했더니 말 없이 돌아가더라”고 전했다.

초록마을 거창상림점 주인 정은주씨가 남편 조영준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백철 기자

취지 왜곡될까 취재요청 난색 표하기도

이런 경험들 때문인지 콩반쪽 활동가들은 처음에 기자의 취재에 난색을 표했다. 이들은 “그동안 여러 신문·방송에서 콩반쪽 운동을 취재하겠다고 요청했지만 6개월 이상 지나기 전에는 취재에 응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짧게 기사가 난 것만 가지고도 자신들의 취지를 왜곡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초록마을의 정은주씨는 “자영업자들은 다 마찬가지지만 자기 생계를 챙기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다. 콩반쪽 운동을 한다고 해서 그냥 현판만 걸어두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눔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콩반쪽 가게 주인들이 콩반쪽 활동에서 이익을 보는 건 없다. 누군가 5000원어치 콩반쪽을 내면, 또 다른 누군가가 그만큼을 가져간다.

콩반쪽 주인들이 경제적으로 얻는 건 없지만 계속해서 손님들에게 콩반쪽 운동에 대한 입소문을 내야 한다. 콩반쪽을 나누거나 이용하는 사람이 없다면 이들의 운동은 지역사회에 큰 의미를 남길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콩반쪽 가게 주인들은 양심적인 운영을 요구받는다. 공동선을 추구하기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콩반쪽 운동을 활용하는 가게가 나타나면 콩반쪽 운동 전체의 신뢰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영재씨는 “가게 주인이 손님이 내준 콩반쪽을 자기가 챙기는지, 콩반쪽 이용하는 손님을 차별하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오로지 가게 주인만 믿고 가야 한다”며 “그래서 무작정 가게를 늘리기보다는 어느 정도 신뢰가 생긴 사람 위주로 천천히 확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나눔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아 콩반쪽 운동을 그만둔 사례도 있다. ㄱ음식점은 한때 콩반쪽 가게의 일원이었다. 두어 달 정도 콩반쪽 운동에 참여했던 ㄱ음식점은 결국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탈퇴했다. 자신도 모르게 콩반쪽을 사용하는 손님들을 ‘공짜 손님’으로 여기고 다른 손님들과 다르게 대우하는 마음을 지우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콩반쪽 활동가들은 “전국에 콩반쪽 가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란 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거창에서만이라도 느리지만 뿌리 깊게 나눔의 마음이 자리잡길 원한다”고 말한다.

마사 커피숍 주인 강인중 목사는 “한국인들 안에는 자본주의 논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자기 것을 나누는 문화와 전통이 있다고 생각한다. 콩반쪽 운동이 진행되면서 우리 안의 착한 본성도 되살아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강 목사는 믿을 뿐만 아니라 가능성도 보고 있다. 그가 말했다.

“이제서야 손님들이 콩반쪽을 내기 위해 지갑을 열기 시작하는 단계에 들어왔어요. 진짜 콩반쪽을 나누는 마음이 생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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