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부처 - 마하트마 간디의 오두막
/ 법정스님
가을을 재촉하는 밤 소나기 소리에 자다가 깼다.
개울가에는 벌써부터 울긋불긋 잎이 물들기 시작이다.
물가의 차가운 기운 때문에 산중턱보다 일찍 단풍이 든다.
양철지붕에 비 쏟아지는 소리는 너무 시끄럽다.
지붕의 자재로 양철(함석)은 부적합하다.
그러나 운반하기 쉽고 그 값이 다른 것에 비해 헐하기 때문에
이고장에서는 거의 양철을 쓰고 있다.
이 오두막의 분위기로 봐서는,
소나무 토막을 쪼개서 이은 너와가 제격일 것이지만
기와에 덮인 지붕이라 그대로 이고 있다.
오며 가며 눈에 띄는 수많은 집 중에서도 내 눈길을 끄는 것은 조그마한 오두막이다.
산자락에 단아하고 조촐하게 자리잡은 그런 집을 보면, 그 어떤 집보다도 호감이 간다.
그리고 그 집에사는 사람들의 인품 같은 것을 헤아리게 된다.
집은 본래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해서 지은 건축물인데,
필요 이상으로 크고 넓게, 그리고 호사스럽게 세우는 것이 요즘의 경향이다.
기껏해야 네댓 사람이 몸담아 살아갈 집인데, 그 많은 건축 자재와 거액을 들여
개인의 주택을 짓고 있는 일은 우리 같은 처지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도시나 시골을 가릴 것 없이 그 둘레와의 조화를 무시한 살풍경하고
반자연적인 건축물은 이 시대의 괴물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요즘에 지어진 집들은 집 자체가 숨을 쉴 수 없도록 쇠붙이와 콘크리트와
합성수지와 유리로 감싸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 사는 사람들도 정상적인 숨을 쉴 수 없어
온갖 질병을 지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집트 출신으로 영국에서 건축을 공부한 세계적인 흙 건축가인 하산 파디는,
노벨상에 버금가는 스웨덴의 '바른 생활상' 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신은 식물과 동물 세계로 둘러싸인 자연 속에 인간을 창조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도시에는 아스팔트와 철,알루미늄, 콘크리트밖에 없다.
우주의 기운(방사선)을 고려할 때 우리 주위를 둘러 쌀 수 있는 가장 좋은 물질은
나무이며, 가장 나쁜 것은 이로운 기운을 차단하는 콘크리트다.
물은 달에서 오는 우주선宇宙線에 영향을 받는데,
우리 몸은 거의 물로 되어 있으므로 역시 영향을 받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이 없다.
현대인은 이런 우주적인 의식을 잃어버렸다."
하산 파디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건축물은 진흙 벽돌집이다.
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은 기상 조건에 따라 내부의 온도 변화가 심한데,
진흙 벽돌집의 내부 온도는 하루 24시간 동안
섭씨 2도 이상 변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한다.
어쩌다 시골에 남아 있는 초가에 토담집을 만나면
나는 옛 고향집이라도 보듯 너무 반갑다.
초가와 토담집을 마치 가난의 상징처럼 생각하고 모조리 헐어 버린 군대식
새마을운동의 폐해로 인해 우리는 아름답고 좋은 우리 것을 많이 잃어버렸다.
옛 우리 조상들은 집을 자연의 일부로 생각하고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려고 하였다.
고산孤山 윤선도는 이렇게 노래한다.
산수간 바위 아래 띠집을 짓노라 하니
그 모든 남들은 웃는다 한다마는
어리고 향암의 뜻에는 내분인가 하노라.
어리고 향암이란 어리석고 촌스럽다는 뜻인데,
세상 물정에 어둡고 촌스런 자신의 분수에는 산과 물이 있는
바위아래 얽어놓은 초막이 어울린다는 것이다.
가난하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과 일체감을 이루려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경지다.
옛 사람들은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에도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삶의 운치인 풍류를 즐길 줄 알았다.
가난한 생활 가운데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며 도를 즐겼던 것이다.
십 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 지어 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 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강과 산은 들여놓을 데가 없으니 병풍처럼 둘러두고 보겠다니,
이 얼마나 멋진 풍류인가.
옛 선비들의 맑은 가난의 모습이, 모든 것이 넘치는 요즘에는 더욱 귀하게 여겨진다.
이반 일리치는 마하트마 간디가 살았던 오두막(아슈람)을 방문하고 나서 이런 글을 남겼다.
"내게는 두 가지가 크게 감명적이었다.
하나는 그 정신적인 면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쾌적함이었다.
나는 오두막을 지을때의 간디의 관점을 이해해 보려고 했다.
내게는 그 집의 단순성과 아름다움과 청결함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간디의 오두막은 모든 사람과의 사랑과 평등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간디는 그 자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세상은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우리의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온갖 풍요 속에서도 얼마나 궁핍하게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교훈이다.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고 한 옛말은,
기쁨을 찾는 가장 오묘한 방법이 어디에 있는지를 넌지시 깨우쳐 주고 있다.
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은, 가능한 한 필요를 적게 하는 데 있을 것 같다.
적을수록 더욱 귀하니까.
인도인들의 “위대한 영혼”(마하트마) 간디의 아쉬람에 버스로 도착하니 11시가 가까웠다. 세바그람 아쉬람(Sevagram Ashiram)에 들어서자 간디가 근방 주민들과 함께 손수 짓고서 살았던산 오두막(지금은 기와가 얹혀진), 부인 바 쿠티(Ba Kuti)가 머물던 오두막, 첫 집을 공동체로 내놓고 다시 지어서 기거한 바닌쿠리 오두막을 볼 수 있었다.
1936년의 세바그람 마을은 궁벽한 시골이었고 길도 없던 밀림이었단다. 불가촉천민 700여명이 살던 곳인데 간디는 그들을 주민으로 삼고 그 계급에서 수양딸도 입양하고 그들을 인부로 써서 건축을 하였다고 한다. 그 계급을 위한 신문도 만들고 자기도 공동체 내에서 화장실 청소와 빨래를 똑같이 하였고 남은 시간은 명상을 하면서 물레질을 하였단다.
그가 쓰던 돗자리와 그가 돌리던 쇠 멧돌, 물 끓이고 밥을 짓던 그릇들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었다. 불가촉천민에게 “하리잔”(신의 자녀)라는 호칭을 부여하고 비록 하급공무원이지만 일정 비율을 그 계급에서 뽑도록 제도화한 것도 간디의 노력이었다고 한다.
그 오두막 집에는 오만한 영국군대를 피 방울 흘리지 않고 내쫓은 그의 지팡이와 그 유명한 나막신이 전시되어 있었다.
바닌쿠리 앞에 써 있던 일곱 줄의 글, 간디가 "사회적 죄"라고 꼽은 목록은 우리 지성인들을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 원칙없는 정치
⇒ 노동없는 부
⇒ 도덕없는 상행위
⇒ 인격없는 교육
⇒ 양심없는 쾌락
⇒ 인간성없는 과학
⇒ 희생없는 예배
아쉬람의 오막집에는 현재는 남자 넷, 여자 넷이 상주하고(20세 25세 즈음의 미혼자를 회원으로 받는단다) 몇 달 머무는 객중에는 한국에서 온 처녀도 하나 살고 있었다. 다른 순례자들이나 방문객들은 길 건너 게스트하우스에서 먹고 자고를 하면서 그들의 일과에 따라서 일종의 “템플 스태이”를 한다고 들었다.
우리는 게스트하우스에서 공양을 하였다. 커리와 짜빠티, 쌀밥(입으로 불면 훅하고 날아가는), 요쿠르트 맛이 나는 우유가 메뉴 전부였다. 수저 없이 먹느라 힘들었지만 빵기가 옛날에 인도여행에서 돌아와 한 동안 오른손가락으로 밥을 주물러 먹던 기억이 난다. 빵기는 인도 체험을 무척 사랑하였고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함께 투옥되었다가 감옥에서 옥사한 아내 구티 여사에게 보낸 편지가 벽에 붙어있는데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인도독립을 위한 비폭력투쟁(Satyagraha)에 헌신하는 사람으로서 아내에 대한 사사로운 정을 넘어서 국가와 세계를 염려하는 충정이 잘 드러나 있었다. 함께 감옥에 갇혀 자기도 가까이 못 가지만 신의 품에서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교도소의 배려로 구티 여사는 남편의 품에 안겨서 숨을 거두었고 아내의 시신 옆에 그 앙상한 다리로 쭈그리고 앉아있는 간디의 사진이 우리를 눈물겹게 하였다. 그 일로 영국 여론이 악화되어 영국정부는 간디를 석방한 것으로 되어 있다.
영국의 교묘한 분리정책으로 파키스탄과 인도로 나뉨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힌두와 이슬람의 갈등을 막으려고 해마다 단식을 하며 국민에게 호소하던 이 위대한 영혼은 1948년 1월 30일 힌두교 광신도의 총에 맞아 쓰러지면서 “헤 람!”(아아, 신이시여)라고 외쳤다고 전해온다.
그 아쉬람에 가장 오래 있었다는 시스터 제나의 얘기도 들었다. 간디가 가졌던 시대정신을 지금도 계승하고 펼쳐나갈 후진들이 많지는 않아서 안타까움을 주었으나 우리의 방문 중에도 헤아릴 수 없는 인파가 아쉬람을 순례하고 갔다.
세바그람 아쉬람의 11가지 서약
프랑스 건축가라는 그에게 내가 물었다."뭣 땜에 5년을 두고 여기서 헤매는가?"
그의 대답: "내가 누군지를 아직도 모르겠다."
1. 생각 말 행동에 폭력을 쓰지 않는다
2. 생각 말 행동을 진실하게 행한다
3. 도둑질하지 않는다
4. 정욕에서 벗어나 지고의 본성을 추구한다
5.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6. 노동을 존중하고 행한다
7. 식사를 절제한다
8. 모든 것에 대해 두려움을 없앤다
9. 모든 종교에 똑같은 존경심을 갖는다
10. 형제애의 법칙을 지킨다
11. 모든 사람을 평등한 존재로 취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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